[강원의 독립유공인물]안경록 목사

기사등록 2016/03/02 09:33:35

최종수정 2016/12/28 16:41:18

【강릉=뉴시스】안경록(安慶祿) 목사 흉상. 2016.03.01. (사진=한국컴퓨터선교회 제공)   photo@newsis.com
【강릉=뉴시스】안경록(安慶祿) 목사 흉상. 2016.03.01. (사진=한국컴퓨터선교회 제공)  [email protected]
【강릉=뉴시스】김경목 기자 =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97년이 됐다. 3·1독립만세운동은 반상(班常)의 구별이 없이, 성별과 나이, 종교에 상관없이 조선인 모두가 일제의 총칼에 맞서 비폭력으로 저항한 겨레의 봉기였다. 3·1독립만세운동은 이후 중국의 5·4운동, 인도 간디의 비폭력·불복종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등 세계사(史)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봉기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민족·자유·평화 정신으로 승화하고 민족의 지표가 된 3·1독립만세운동은 97년 전 이 땅 강원도에서도 들불처럼 타올랐다. 강원도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을 주도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선열들의 활약상을 광복회 강원도지부, 독립유공자 강릉유족회, 강원동부·서부보훈지청 등의 도움을 받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교회 지하실에서 태극기·독립선언문 만들어

 안경록 목사는 1919년 4월2일 장날이었던 그 날, 강릉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이끌었던 선열들 가운데 한 명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기독정보검색에 따르면 그는 1915년 강릉교회(현 강릉중앙감리교회)에 부임한 이후 장로목사 안수(1918년)를 받고 강릉지방 감리사(1919년)가 됐다.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자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당시 성내리 소재)안에 본부를 둔 강릉청년회 회원들과 협의해 거사를 계획했다.

 독립유공자 강릉유족회가 정리한 '대일항쟁기 강릉지방의 대일투쟁'에 따르면 안 목사는 강릉보통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 거사 계획이 4월1일에 발각이 되어 일경(日警)의 감시와 검속이 강화된 상황에서도 청년회 회원들과 교회 지하실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장날인 4월2일에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군중들에게 나눠주며 만세시위를 주도, 민족혼을 일깨웠다.

 안 목사는 이 일로 옥고를 치렀고 1924년 진남포교회(신흥리 소재)로 전임(轉任)했다.

 강릉시기독교연합회는 매년 3·1절을 앞두고 구국기도회를 열고 안 목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최명희 강릉시장은 "강릉의 선열들은 참으로 위대했다. 성내동 광장과 장터, 부락마다 수천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고 특히 지하에서 만세운동을 이끈 중앙교회는 3·1운동의 성지로 관동지역 독립운동사에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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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독립유공인물]안경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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