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호 칼럼]'후커우와 흑묘백묘(黑猫白猫)'

기사등록 2016/02/04 16:26:04

최종수정 2016/12/28 16: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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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사회부장 = 며칠전 하오샤오페이 주한 중국대사관 공사가 "한·중 수교 이후 양국관계가 가장 좋은 시기로 접어들었다"라고 말했다. 하오 공사의 발언은 '2016 한중 설명절 문화축제'를 소개하는 기자회견 축사에서 나왔다. 그는 이말과 함께 "양국 지도자가 매우 중시하고 양국이 함께 노력한 결과"라는 부연 설명도 곁들였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의 옆자리에선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하오 공사의 발언에 잠시나마 최근의 한중관계도 망각됐다. 하오 공사의 말처럼 한중 관계가 과연 그럴까.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도발 이후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스탠스를 짚어보자. 현 정부들어 한껏 고무됐던 한중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품'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직도 중국 입장으로 보면 한반도에서 안으로 굽는 팔은 '북한'이라는 말이다.


  한국과 중국은 국교를 정상화한지 올해로 24년을 맞는다. 지난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수교를 체결했다. 이보다 10년 앞선 1983년 '중국민항기사건으로 첫 공식접촉을 가진 양국은 이후 수교에 대한 가능성을 키웠다. 당시 "서해안 시대가 열린다"는 기대는 컸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필자도 80년대에 불어닥친 '서해안 시대 개막'에 대한 기대감으로 학과를 선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정식 수교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90년 1월 무역대표부 설치로 턱밑까지 갔던 수교가 난항을 겪었던 이유도 최근의 상황과 유사하다. 바로 북한 핵 문제였다. '대만과의 단교'카드로 딜을 한 노태우 대통령이 수교직후 중국을 방문, 한반도 비핵화문제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한중수교는 양국 국교수립의 테두리를 벗어나 동북아 안보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한중수교 이후 필자는 중국땅을 10여차례 정도 다녀온 걸로 기억한다. 그 때마다 "광할한 대륙에서 55개 이민족, 13억 인구를 다스리는 사회주의국가의 지배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지곤 했다. 나름대로 얻은 해답은 바로 '후커우 (戶口)'다. 중국에서는 출생지의 후커우를 평생동안 가진다. 이로인해 거주이전의 자유에 제한을 받는다. 출생지 이외의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거주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 거주허가와는 별도로 거주 후커우를 취득하지 못하면 십중팔구는 생활에 큰 불이익을 받거나 추방되기도 한다. 중국이 경제성장으로 각종 부폐 비리가 만연하지만, 돈으로 쉽게 살 수 없을 만큼 후커우는 철저하다. 자본주의 체제 도입이후 인민을 통제할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적 제어수단이 바로 후커우인 것이다. 후커우 제도는 1958년도에 도입됐다. 이후 1970년대 말 덩샤오핑(鄧小平)의 개방정책으로 도시와 농촌의 급격한 경제 편차가 생기면서 크게 강화됐다. 농촌 사람들이 무작정 도시로 몰려들어 빈민촌을 형성하는 폐단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중국식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둥이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흑묘백묘 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의 줄임말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뜻으로 이 말을 했다. 이후 1980년대 중국식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덩샤오핑의 이러한 개혁 개방정책에 힘입어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거듭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탄생시켰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세계 최대 자본주의 시장으로 성장한 비결은 '후커우와 흑묘백묘론' 덕택이다. 반세기 넘게 유지해온 후커우로 중국인들에겐 제후국 제도를 바탕으로 한 '각자 도생' 의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한반도 통일을 결코 원치않는 중국 입장에선 남북이 '각자도생'하길 바란다. 후커우처럼 한반도에서도 남과북이 각자도생하며 자기들 입맛에 맞는 역할을 하길 원한다고 볼 수 있다. 남북한 양쪽을 왔다갔다하는 외교정책은 '흑묘백묘론'과 유사하다.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이 백묘라면, 북한은 또다른 수단의 흑묘인 셈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동북아 정세 유지를 위해 누가 흑묘든 백묘든 상관없다는 논리다. 한중수교 당시 한국대표 이상옥(李相玉) 외무장관과 중국 대표 첸지천(錢基琛) 외교부장간에 맺은 6개항 가운데 '한반도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원칙'이란게 있다. 북한 도발때 마다 한·미·일 3국이 '대북제재'를 들고 나오면 중국은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발을 빼고 있다. '대화와 타협의 해결 원칙'이라는 표면적 이유 아래는 '각자도생' '흑묘백묘론'을 깔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의 대 한반도 외교정책을 우리쪽에 유리하도록 일시에 바꾸라고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북핵도발 이후 대 중국 외교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다. 일부 식자(識者)들은 "중국이 한국을 아직 제후국쯤으로 본다"며 격분하기도 한다. 아예 중국과의 관계를 끊자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의 흑묘백묘론식 한반도 정책에 울화가 치미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섣부른 '중국 경계론'은 동북아정세를 감안하면 적잖이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현 정부가 보여준 대 중국 '몰빵외교'도 분명 되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금은 우리 국익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외교정책은 어떤 것인지 냉정하게 가려내야할때다.

 kyou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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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호 칼럼]'후커우와 흑묘백묘(黑猫白猫)'

기사등록 2016/02/04 16:26:04 최초수정 2016/12/28 16: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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