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류난영 기자 = '종합전자기업'으로 명성을 날리며 1949년부터 50년간 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던 히타치(日立). 1911년 오다이라 나미헤이(小平浪平)가 세운 전기설비 수리회사를 모태로 한 히타치는 TV, 냉장고 등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성장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로 명성을 자랑했다.
하지만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해온 히타치는 삼성과 LG 등 후발주자인 한국기업들의 무서운 추격에 무너져 내렸다.
히타치는 2008년 회계연도(2007년 4월~2008년 3월)에 7873억엔의 적자를 기록해 일본 제조업체를 통털어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내는 등 누적적자만 1조엔에 달했다.
히타치가 몰락한 것은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와 급변하는 IT환경 속에서도 과거의 영광에 도취돼 변화와 혁신보다는 자신만의 방식만 고수했기 때문이다.
히타치는 주력 사업이었던 반도체가 삼성전자에 밀릴 것으로 예상되자 덩치를 키워 대항하기 위해 2003년 NEC, 미쓰비시와 통합해 엘피다로 통합했으나 이렇다할 성과 없이 실패로 돌아갔다. 무리하게 덩치를 더 키우는 전력을 쓰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히타치 부활의 비결은 '빠른 포기'
한때 존폐위기까지 몰렸던 히타치는 그러나 뼈를 깎는 사업 재편을 통해 오뚝이 처럼 살아났다.
가전회사였던 히타치가 지금은 전력·도시개발 등 사회 인프라 기업으로 변신했다.
히타치는 대규모 적자에 허덕인지 2년만인 2010년 회계연도에는 2388억엔, 2011년 3471억엔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또 2012년 1753억엔, 2013년 2649억엔, 2014년 2413억엔의 흑자를 거뒀다.
경쟁력 없는 기존 사업의 과감한 매각과 인수합병을 통한 발 빠른 사업 재편과 경쟁력 확보가 망해가던 히타치를 부활하게 한 결정적인 힘이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사설에서 "한때 샤프보다 더 큰 규모의 적자를 냈던 히타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회생한 반면 샤프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LCD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09년 취임한 가와무라 다카시(川村隆) 회장은 히타치를 끝까지 책임지는 '라스트 맨'을 자처했다. 이는 끝까지 히타치를 구하겠다는 그의 별명이자 경영 철학이 담긴 단어다. 그는 1962년 히타치에 입사한후 히타치에서만 일한 뼛속까지 히타치 맨이다.
닛케이 주가지수가 14%나 폭락하고 소니, 샤프, 마쓰시타 등이 엄청난 적자에 허덕거리고 있을 때 히타치의 주가는 무려 43% 이상 오르는데 일조한 장본인이다.
가와무라 회장은 과감하게 사업을 정리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경영에 복귀한지 2년 만에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정상화 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내 반발을 최대한 줄이고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모든 구조조정을 100일 이내에 끝내 버리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주력 사업 반도체에서 실패하자 NEC, 미쓰비시 등과 함께 '엘피다'를 설립해 덩치를 키웠던 히타치는 2013년 이를 다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매각했다.
경쟁력이 떨어진 디스플레이, PC, 가전 사업도 잇따라 정리했다. 2012년 8월에는 TV 생산도 접고 위탁생산 체제로 전환했다. 일본 도시바가 지난해 12월에야 TV 생산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한 점을 볼 때 히타치의 결단력은 3년이나 빠르다.
◇이익 내도 미래 핵심 분야 아니면 과감히 포기
2011년에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 자회사인 미국히타치글로벌스토리지테크놀로지(히타GST)조차 경쟁 기업인 웨스턴디지털에 43억 달러에 매각했다. 당시 이 일로 일본은 크게 술렁였다. HDD는 2010년 기준으로 6억50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내던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 핵심 사업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한 가와무라 회장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대신 이 자금을 첨단 정보기술을 결합한 전력시스템, IT시스템, 건설기계, 자동차부품, 인프라시스템, 철도 등 '사회 인프라 사업'을 미래의 핵심사업으로 보고 모든 역량을 집중해 변신을 이끌었다.
히타치는 2012년 영국의 원자력 발전업체인 호라이즌뉴클리어파워를 500억엔에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철도업체인 핀메카니카를 히타치 역대 최대 금액인 2500억 엔에 인수하는 등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30여건이 넘는 기업을 인수합병(M&A)을 했다. 여기에 쏟아 부은 돈만 2조엔을 넘는다.
인수합병 과정을 겪으면서 사업구조가 재편됐다. 현재 히타치 총 매출액에서 가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보다 낮은 수준인 반면, 인프라 관련 사업은 총 매출의 6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공격적인 M&A 덕분에 2015년 회계연도에는 3100억엔의 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올해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P)을 출범키로 하면서 아세안의 인프라 개발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아베신조(安倍晋三) 총리 역시 인프라 시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향후 5년간 아세안에서 ADB와 협조해 11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히타치는 또 올해 연구개발(R&D) 비용을 올해 보다 30% 증가한 5000억 엔으로 책정했다. 이는 경쟁사인 독일 지멘스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등과도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수준이다.
이와함께 센서와 인공지능로봇 분야에 대한 R&D 투자를 3배 가량 늘리는 등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R&D 인력도 15% 늘린 3000명까지 증원할 계획이다.
[email protected]
하지만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해온 히타치는 삼성과 LG 등 후발주자인 한국기업들의 무서운 추격에 무너져 내렸다.
히타치는 2008년 회계연도(2007년 4월~2008년 3월)에 7873억엔의 적자를 기록해 일본 제조업체를 통털어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내는 등 누적적자만 1조엔에 달했다.
히타치가 몰락한 것은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와 급변하는 IT환경 속에서도 과거의 영광에 도취돼 변화와 혁신보다는 자신만의 방식만 고수했기 때문이다.
히타치는 주력 사업이었던 반도체가 삼성전자에 밀릴 것으로 예상되자 덩치를 키워 대항하기 위해 2003년 NEC, 미쓰비시와 통합해 엘피다로 통합했으나 이렇다할 성과 없이 실패로 돌아갔다. 무리하게 덩치를 더 키우는 전력을 쓰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히타치 부활의 비결은 '빠른 포기'
한때 존폐위기까지 몰렸던 히타치는 그러나 뼈를 깎는 사업 재편을 통해 오뚝이 처럼 살아났다.
가전회사였던 히타치가 지금은 전력·도시개발 등 사회 인프라 기업으로 변신했다.
히타치는 대규모 적자에 허덕인지 2년만인 2010년 회계연도에는 2388억엔, 2011년 3471억엔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또 2012년 1753억엔, 2013년 2649억엔, 2014년 2413억엔의 흑자를 거뒀다.
경쟁력 없는 기존 사업의 과감한 매각과 인수합병을 통한 발 빠른 사업 재편과 경쟁력 확보가 망해가던 히타치를 부활하게 한 결정적인 힘이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사설에서 "한때 샤프보다 더 큰 규모의 적자를 냈던 히타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회생한 반면 샤프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LCD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09년 취임한 가와무라 다카시(川村隆) 회장은 히타치를 끝까지 책임지는 '라스트 맨'을 자처했다. 이는 끝까지 히타치를 구하겠다는 그의 별명이자 경영 철학이 담긴 단어다. 그는 1962년 히타치에 입사한후 히타치에서만 일한 뼛속까지 히타치 맨이다.
닛케이 주가지수가 14%나 폭락하고 소니, 샤프, 마쓰시타 등이 엄청난 적자에 허덕거리고 있을 때 히타치의 주가는 무려 43% 이상 오르는데 일조한 장본인이다.
가와무라 회장은 과감하게 사업을 정리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경영에 복귀한지 2년 만에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정상화 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내 반발을 최대한 줄이고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모든 구조조정을 100일 이내에 끝내 버리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주력 사업 반도체에서 실패하자 NEC, 미쓰비시 등과 함께 '엘피다'를 설립해 덩치를 키웠던 히타치는 2013년 이를 다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매각했다.
경쟁력이 떨어진 디스플레이, PC, 가전 사업도 잇따라 정리했다. 2012년 8월에는 TV 생산도 접고 위탁생산 체제로 전환했다. 일본 도시바가 지난해 12월에야 TV 생산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한 점을 볼 때 히타치의 결단력은 3년이나 빠르다.
◇이익 내도 미래 핵심 분야 아니면 과감히 포기
2011년에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 자회사인 미국히타치글로벌스토리지테크놀로지(히타GST)조차 경쟁 기업인 웨스턴디지털에 43억 달러에 매각했다. 당시 이 일로 일본은 크게 술렁였다. HDD는 2010년 기준으로 6억50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내던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 핵심 사업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한 가와무라 회장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대신 이 자금을 첨단 정보기술을 결합한 전력시스템, IT시스템, 건설기계, 자동차부품, 인프라시스템, 철도 등 '사회 인프라 사업'을 미래의 핵심사업으로 보고 모든 역량을 집중해 변신을 이끌었다.
히타치는 2012년 영국의 원자력 발전업체인 호라이즌뉴클리어파워를 500억엔에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철도업체인 핀메카니카를 히타치 역대 최대 금액인 2500억 엔에 인수하는 등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30여건이 넘는 기업을 인수합병(M&A)을 했다. 여기에 쏟아 부은 돈만 2조엔을 넘는다.
인수합병 과정을 겪으면서 사업구조가 재편됐다. 현재 히타치 총 매출액에서 가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보다 낮은 수준인 반면, 인프라 관련 사업은 총 매출의 6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공격적인 M&A 덕분에 2015년 회계연도에는 3100억엔의 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올해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P)을 출범키로 하면서 아세안의 인프라 개발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아베신조(安倍晋三) 총리 역시 인프라 시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향후 5년간 아세안에서 ADB와 협조해 11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히타치는 또 올해 연구개발(R&D) 비용을 올해 보다 30% 증가한 5000억 엔으로 책정했다. 이는 경쟁사인 독일 지멘스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등과도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수준이다.
이와함께 센서와 인공지능로봇 분야에 대한 R&D 투자를 3배 가량 늘리는 등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R&D 인력도 15% 늘린 3000명까지 증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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