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신동립 ‘잡기노트’ <564>
“내게 있을 땐 옆에 있는 게 그게 그렇게 소중함을 소중한지 잊는다. 결국 잃는다. 결국 실은 나 그렇고 그저 그런 인간이었다. 감사한 걸 감사할 줄 모르는 간사한 남사스러운 사람. 행복 찾아 왜 먼 산만 바라봤을까. 보이는 그대로 믿기 싫어서 믿고 싶은대로 보기 시작해 외로워지는 지름길인데 괴로워지는 기름칠인데. 꿈을 잃거나 이루거나 그 다음 날을 다시 살아가잖아. 걱정하지마 이 모든 게 꿈이야. 이 꿈에서 깨어날 때 그 모든 게 그대로 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해. 여전했으면 해. 그때는 영원했으면 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 지난날처럼 다시 행복을 위해 노래 부르며 그 노래 들으며 인생이란 꿈에서 깨어날 때 믿기 어려운 일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원래 혼자 왔다가 혼자 살다가 혼자 떠나가는 외로운 길 외로움이 굳은살이 되어 그만큼 내게 피와 살이 되어 담담해져 가. 점점 변해 가. 무덤덤해져. 나 어른이 되어가. 갈 사람은 간다 또 산 사람은 산다. 신이 내게 주신 가장 잔인한 감정 그 익숙함에 눈물 말라간다. 해가 지면 아쉬워하다 달이 뜨자마자 아름답구나. 기쁘면 꿈이 아니길 바라는 나. 슬프면 꿈이길 바라는 나. 이 꿈에서 깨어날 때 그 모든 게 그대로 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해. 여전했으면 해. 그때는 영원했으면 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 지난날처럼 다시 행복을 위해 노래 부르며 그 노래 들으며 인생이란 꿈에서 깨어날 때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짧은 순간인 것을.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짧은 순간인 것을.”
가수 싸이의 ‘드림’이다. 김준수의 절창이 보태진 곡이다. 신해철의 죽음이라는 사실보다 더 슬픈 노랫말이다. 고인의 가족을 두고두고 울릴 것이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 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왜 엄만 내 마음도 모른 채 매일 똑같은 잔소리로 또 자꾸만 보채. 난 지금 차가운 새장 속에 갇혀 살아갈 새처럼 답답해. 원망하려는 말만 계속해. 제발 나를 내버려두라고. 왜 애처럼 보냐고. 내 얘길 들어보라고.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파 힘들어하고 있다고. 아무리 노력해봐도 난 엄마의 눈엔 그저 철없는 딸인 거냐고. 나를 혼자 있게 놔둬.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엄마 나를 좀 믿어줘요. 어려운 말이 아닌 따스한 손을 내밀어줘요. 날 걱정해주는 엄마의 말들이 무겁게 느껴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게 무섭게 느껴져 왜 몰래 눈물을 훔쳐요. 조용히 가슴을 쳐요. 엄마의 걱정보다 난 더 잘 해낼 수 있어요. 그 무엇을 해내든 언제나 난 엄마의 딸로 다 버텨내고 살아갈 테니 걱정하지 마요. 말하지 않아도 난 알고 있다고. 엄만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단 걸.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엄마처럼 좋은 엄마 되는 게 내 꿈이란 거.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고. 엄만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단 걸.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바로 내 꿈이란 거.”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다. 다른 일을 하면서 흘려 들을 수는 없는 노래다.
이 같은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하모니는 또 있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다.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별사탕에 라면땅에 새벽마다 퇴근하신 아버지 주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네. 엄마 아빠 두 누나 나는 막둥이 귀염둥이. 그날의 나를 기억하네 기억하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내가 돈을 버네 돈을 다 버네. 엄마 백원만 했었는데 우리 엄마 아빠 또 강아지도 이젠 나를 바라보네. 전화가 오네 내 어머니네. 아들 잘 지내니 어디냐고 물어보는 말에 나 양화대교 양화대교. 엄마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좀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그때는 나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몰랐네. 그 다리 위를 건너가는 기분을. 어디시냐고 어디냐고 여쭤보면 아버지는 항상 양화대교 양화대교. 이제 나는 서있네 그 다리 위에.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양희은과 자이언티를 섞으면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게 또 하나 있지…”, 아마도 ‘어머님 은혜’다.
부모는 자녀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며(부자유친),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리에 있고(군신유의), 남편과 아내는 분별 있게 각기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부부유별),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장유유서), 친구 사이에는 신의를 지켜야 한다(붕우유신)는 5륜은 여전히 이렇게 살아있다.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가 현대적으로 해석한 그대로다. “부모와 자녀는 친함이 있으며, 위와 아래는 의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는 화함이 있으며, 어른과 어린이는 차서가 있으며, 동포와 동포는 신의가 있으라.” 상하차별 유교윤리는 시대변화를 타고 평등과 화합의 윤리로 업그레이드됐다.
가사가 없어도 음악이지만, 음악이 없는 가사는 시다. 재즈, 일렉트로닉, 클래시컬 등은 특히 더 그렇다. 싱어송라이터, 힙합, 블루스와는 다르다. 말이 필요없다. 느낌-멜로디-가사 순의 중요도일는지도 모르겠다. “오빤 강남스타일”을 “빠온 일타스남강”이라고 소리냈어도 ‘강남스타일’은 글로벌 히트곡이 됐을 것이다. 보니M의 ‘바이 더 리버스 오브 바빌런’을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라고 부르며 시시덕거린 것과 마찬가지다. 노래방 자막 덕 혹은 탓에 가사는 외우는 게 아닌 것처럼 돼버린 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자이언티와 양희은 그리고 싸이가 불변인 듯한 음악상식을 깼다. 리릭도 뮤직 위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양화대교, 엄마가 딸에게, 드림, 2015년 가요계의 3대 감명이다.
문화부국장 [email protected]
“내게 있을 땐 옆에 있는 게 그게 그렇게 소중함을 소중한지 잊는다. 결국 잃는다. 결국 실은 나 그렇고 그저 그런 인간이었다. 감사한 걸 감사할 줄 모르는 간사한 남사스러운 사람. 행복 찾아 왜 먼 산만 바라봤을까. 보이는 그대로 믿기 싫어서 믿고 싶은대로 보기 시작해 외로워지는 지름길인데 괴로워지는 기름칠인데. 꿈을 잃거나 이루거나 그 다음 날을 다시 살아가잖아. 걱정하지마 이 모든 게 꿈이야. 이 꿈에서 깨어날 때 그 모든 게 그대로 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해. 여전했으면 해. 그때는 영원했으면 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 지난날처럼 다시 행복을 위해 노래 부르며 그 노래 들으며 인생이란 꿈에서 깨어날 때 믿기 어려운 일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원래 혼자 왔다가 혼자 살다가 혼자 떠나가는 외로운 길 외로움이 굳은살이 되어 그만큼 내게 피와 살이 되어 담담해져 가. 점점 변해 가. 무덤덤해져. 나 어른이 되어가. 갈 사람은 간다 또 산 사람은 산다. 신이 내게 주신 가장 잔인한 감정 그 익숙함에 눈물 말라간다. 해가 지면 아쉬워하다 달이 뜨자마자 아름답구나. 기쁘면 꿈이 아니길 바라는 나. 슬프면 꿈이길 바라는 나. 이 꿈에서 깨어날 때 그 모든 게 그대로 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해. 여전했으면 해. 그때는 영원했으면 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 지난날처럼 다시 행복을 위해 노래 부르며 그 노래 들으며 인생이란 꿈에서 깨어날 때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짧은 순간인 것을.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짧은 순간인 것을.”
가수 싸이의 ‘드림’이다. 김준수의 절창이 보태진 곡이다. 신해철의 죽음이라는 사실보다 더 슬픈 노랫말이다. 고인의 가족을 두고두고 울릴 것이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 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왜 엄만 내 마음도 모른 채 매일 똑같은 잔소리로 또 자꾸만 보채. 난 지금 차가운 새장 속에 갇혀 살아갈 새처럼 답답해. 원망하려는 말만 계속해. 제발 나를 내버려두라고. 왜 애처럼 보냐고. 내 얘길 들어보라고.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파 힘들어하고 있다고. 아무리 노력해봐도 난 엄마의 눈엔 그저 철없는 딸인 거냐고. 나를 혼자 있게 놔둬.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엄마 나를 좀 믿어줘요. 어려운 말이 아닌 따스한 손을 내밀어줘요. 날 걱정해주는 엄마의 말들이 무겁게 느껴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게 무섭게 느껴져 왜 몰래 눈물을 훔쳐요. 조용히 가슴을 쳐요. 엄마의 걱정보다 난 더 잘 해낼 수 있어요. 그 무엇을 해내든 언제나 난 엄마의 딸로 다 버텨내고 살아갈 테니 걱정하지 마요. 말하지 않아도 난 알고 있다고. 엄만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단 걸.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엄마처럼 좋은 엄마 되는 게 내 꿈이란 거.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고. 엄만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단 걸.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바로 내 꿈이란 거.”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다. 다른 일을 하면서 흘려 들을 수는 없는 노래다.
이 같은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하모니는 또 있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다.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별사탕에 라면땅에 새벽마다 퇴근하신 아버지 주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네. 엄마 아빠 두 누나 나는 막둥이 귀염둥이. 그날의 나를 기억하네 기억하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내가 돈을 버네 돈을 다 버네. 엄마 백원만 했었는데 우리 엄마 아빠 또 강아지도 이젠 나를 바라보네. 전화가 오네 내 어머니네. 아들 잘 지내니 어디냐고 물어보는 말에 나 양화대교 양화대교. 엄마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좀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그때는 나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몰랐네. 그 다리 위를 건너가는 기분을. 어디시냐고 어디냐고 여쭤보면 아버지는 항상 양화대교 양화대교. 이제 나는 서있네 그 다리 위에.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양희은과 자이언티를 섞으면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게 또 하나 있지…”, 아마도 ‘어머님 은혜’다.
부모는 자녀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며(부자유친),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리에 있고(군신유의), 남편과 아내는 분별 있게 각기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부부유별),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장유유서), 친구 사이에는 신의를 지켜야 한다(붕우유신)는 5륜은 여전히 이렇게 살아있다.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가 현대적으로 해석한 그대로다. “부모와 자녀는 친함이 있으며, 위와 아래는 의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는 화함이 있으며, 어른과 어린이는 차서가 있으며, 동포와 동포는 신의가 있으라.” 상하차별 유교윤리는 시대변화를 타고 평등과 화합의 윤리로 업그레이드됐다.
가사가 없어도 음악이지만, 음악이 없는 가사는 시다. 재즈, 일렉트로닉, 클래시컬 등은 특히 더 그렇다. 싱어송라이터, 힙합, 블루스와는 다르다. 말이 필요없다. 느낌-멜로디-가사 순의 중요도일는지도 모르겠다. “오빤 강남스타일”을 “빠온 일타스남강”이라고 소리냈어도 ‘강남스타일’은 글로벌 히트곡이 됐을 것이다. 보니M의 ‘바이 더 리버스 오브 바빌런’을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라고 부르며 시시덕거린 것과 마찬가지다. 노래방 자막 덕 혹은 탓에 가사는 외우는 게 아닌 것처럼 돼버린 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자이언티와 양희은 그리고 싸이가 불변인 듯한 음악상식을 깼다. 리릭도 뮤직 위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양화대교, 엄마가 딸에게, 드림, 2015년 가요계의 3대 감명이다.
문화부국장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