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무조건 고밀도로 모여 살기만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밀도에도 질과 양의 문제가 있다. 단일 용도의 시루떡 건물들로 구성된, 즉 도시 기능들이 건물별, 혹은 지역지구별로 나뉘어 있는 단순 고밀도 도시는 이런 문제에 대한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다. 고밀도가 본격적으로 친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복합이라는 또 다른 개념과 결합해야 한다. 그래서 도시 기능들이 서로 섞이고 연결되었을 때, 특히 주거가 도시 한복판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높으면 높을수록, 비로소 질적으로 우수한 고밀도가 형성된다."(47쪽)
"내가 건축가로서 우리 사회에 대해 가장 미안하고 또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문제다. 해외의 유명한 건축상을 못 받아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대다수 사람이 살아가기에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종합적인 제안이나 효과적인 건축 유형에 대한 고민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별로 싹트지 못하고 있다. 일견 그럴 듯하게 보이는 생각들도 대부분 '일단 나만 피하고 보자'는 개인적 차원의 자구책에 불과하다. 부분과 전체, 개인과 사회 간의 길항관계를 아우르는 생각이 필요하다."(51쪽)
건축가 황두진(52)이 '무지개떡 건축'을 펴냈다. 도시 역사나 사회학 등 인문적 지식과 건축공학, 개인체험을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한국 도시만의 해법을 찾는다. 한옥 연구도 '다공성', '중첩된 기하학'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한옥은 문과 창의 개폐방식이 유난히 다양하다. 대청마루의 들어열개문이 절정이다. 저자는 이를 '다공성 밸브'라고 이름 짓는다. 다공성은 외부와 내부가 만나는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난방비도 절감되고, 같은 공간이지만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 한반도 사람들이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답답한, 다공성이 현저히 낮은 건물을 짓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93쪽)
"그런데 무지개떡 건축에서는 단순한 옥상정원으로는 불충분하다. 옥상정원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바로 옆에 사람의 생활공간이 붙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면 그냥 평지붕에 조경을 해놓은 정도의 옥상정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주변의 경우를 살펴보면 된다. 다행히 여기에는 대안이 있다. 그것도 매우 훌륭한, 심지어 전통적인 가치도 담고 있는 대안이다. 바로 옥상에 한옥의 마당 같은 상황을 만드는 일이다."(119쪽)
책에서 제시한 무지개떡 건축 실제 사례가 8건이다. 현대 배구단의 독특한 훈련합숙시설로 잘 알려진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가 그 중 하나다. 배구단의 높은 코트 주변으로 숙소가 배치된다. 1층에는 비행기 격납고 문을 달아서 다공성을 펼쳐냈다. 낮에는 단순한 큐브로 보이지만, 밤이 되어 조명이 켜지면 벽의 공극 사이로 복합 기능이 드러난다.
저자가 살고 있는 '목련원'의 1층은 저자의 건축사무소와 다른 회사의 사무 공간, 2층은 저자의 주거 공간이다. 마당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직주근접 삶의 장단점을 체험 중이다. 무지개떡 건축지수도 개발했다. 밀도와 복합성 등 10개 항목으로 평가한다. 카사밀라 94점, 한강맨션은 다공성 등이 부족해 80점에 그친다.
한옥을 오래 연구했던 저자는 중첩된 기하학에 주목한다. "비정형이 거친 돌 위에 가지런한 목재 기둥, 그 위와 연결되는 공포와 처마. 서로 다른 기하학은 각 공간 안에서의 건축적 경험을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
"'아파트 단지'라는 개념을 완전히 해체한다. 물리적으로는 담장을 걷어내서 주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게 한다. 그러면 주변 지역에도 숨통이 트인다. 그리고 단지 내 통로를 모두 법적으로 보행자 도로화한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의 각 동 사이사이로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오갈 것이다. 신축의 경우 통로가 아닌 도로로 인정받으면 도로 사선제한 때문에 인근 동의 높이에 영향을 줬는데 이제 도로 사선제한은 폐지되었으므로 앞으로는 이런 상상이 꽤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그 다음은 저층부, 특히 1층의 주거를 용도 변경한다. 어차피 주거로서의 인기도 상대적으로 낮고 게다가 보안을 위해 창살이나 방범창 등으로 살벌하게 해놓은 경우가 많은데 아예 그럴 이유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상점, 카페 등 일반적인 상업시설뿐 아니라 유치원, 탁아소, 도서관, 세탁장, 관리사무소 등 공공시설들이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일반 사무실들도 들어갈 수 있다. 다만 대부분 벽식 구조이기 때문에 각각의 공간이 그리 넓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구조를 적절히 보강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155쪽)
"전체 밀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다공성만 적절히 주어도 가로의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이런 공간들은 건물 내부에서 보면 실내와 인접된 외부이므로 접근이 쉬워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도로폭과 건물 높이의 비가 낮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너무 낮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도로는 그냥 차가 쌩쌩 달리는 이동 동선으로서의 성격이 더 커진다. 보행자 위주의 도로는 사실 그리 넓을 필요가 없다. 도로폭과 주변 건물의 높이 비를 기본적인 범위 내에서 잘 맞추고 세부적으로는 다공성의 개념으로 조절한다면 매우 쾌적한 거리를 만들 수 있다."(87쪽)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 건축의 대안을 제안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아파트의 시대는 갔다고. 아파트는 필요악일 뿐이었고, 이제 그 개념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획일적인 외관은 도시를 삭막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익성마저 예전같지 않다고. 대한민국 주택난 해소의 일등공신이었고, 수많은 사람이 힘든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 쉬는 정답고 포근한 집이며, 종종 재산의 일부이기도 한 아파트는 이제 온갖 사회적 문제의 주범이 된 듯 하다."
그는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좀 다르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아파트는 지어지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할 것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각종 매체는 수도권 일대에서 대규모의 주택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그 중 3분의 2가 아파트다. 아파트의 시대가 갔다면서, 이제 아파트는 안된다면서, 왜 아직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파트만 한 대안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밀도다. 주어진 땅에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262쪽, 1만5000원, 메디치미디어
[email protected]
"내가 건축가로서 우리 사회에 대해 가장 미안하고 또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문제다. 해외의 유명한 건축상을 못 받아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대다수 사람이 살아가기에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종합적인 제안이나 효과적인 건축 유형에 대한 고민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별로 싹트지 못하고 있다. 일견 그럴 듯하게 보이는 생각들도 대부분 '일단 나만 피하고 보자'는 개인적 차원의 자구책에 불과하다. 부분과 전체, 개인과 사회 간의 길항관계를 아우르는 생각이 필요하다."(51쪽)
건축가 황두진(52)이 '무지개떡 건축'을 펴냈다. 도시 역사나 사회학 등 인문적 지식과 건축공학, 개인체험을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한국 도시만의 해법을 찾는다. 한옥 연구도 '다공성', '중첩된 기하학'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한옥은 문과 창의 개폐방식이 유난히 다양하다. 대청마루의 들어열개문이 절정이다. 저자는 이를 '다공성 밸브'라고 이름 짓는다. 다공성은 외부와 내부가 만나는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난방비도 절감되고, 같은 공간이지만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 한반도 사람들이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답답한, 다공성이 현저히 낮은 건물을 짓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93쪽)
"그런데 무지개떡 건축에서는 단순한 옥상정원으로는 불충분하다. 옥상정원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바로 옆에 사람의 생활공간이 붙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면 그냥 평지붕에 조경을 해놓은 정도의 옥상정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주변의 경우를 살펴보면 된다. 다행히 여기에는 대안이 있다. 그것도 매우 훌륭한, 심지어 전통적인 가치도 담고 있는 대안이다. 바로 옥상에 한옥의 마당 같은 상황을 만드는 일이다."(119쪽)
책에서 제시한 무지개떡 건축 실제 사례가 8건이다. 현대 배구단의 독특한 훈련합숙시설로 잘 알려진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가 그 중 하나다. 배구단의 높은 코트 주변으로 숙소가 배치된다. 1층에는 비행기 격납고 문을 달아서 다공성을 펼쳐냈다. 낮에는 단순한 큐브로 보이지만, 밤이 되어 조명이 켜지면 벽의 공극 사이로 복합 기능이 드러난다.
저자가 살고 있는 '목련원'의 1층은 저자의 건축사무소와 다른 회사의 사무 공간, 2층은 저자의 주거 공간이다. 마당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직주근접 삶의 장단점을 체험 중이다. 무지개떡 건축지수도 개발했다. 밀도와 복합성 등 10개 항목으로 평가한다. 카사밀라 94점, 한강맨션은 다공성 등이 부족해 80점에 그친다.
한옥을 오래 연구했던 저자는 중첩된 기하학에 주목한다. "비정형이 거친 돌 위에 가지런한 목재 기둥, 그 위와 연결되는 공포와 처마. 서로 다른 기하학은 각 공간 안에서의 건축적 경험을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
"'아파트 단지'라는 개념을 완전히 해체한다. 물리적으로는 담장을 걷어내서 주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게 한다. 그러면 주변 지역에도 숨통이 트인다. 그리고 단지 내 통로를 모두 법적으로 보행자 도로화한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의 각 동 사이사이로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오갈 것이다. 신축의 경우 통로가 아닌 도로로 인정받으면 도로 사선제한 때문에 인근 동의 높이에 영향을 줬는데 이제 도로 사선제한은 폐지되었으므로 앞으로는 이런 상상이 꽤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그 다음은 저층부, 특히 1층의 주거를 용도 변경한다. 어차피 주거로서의 인기도 상대적으로 낮고 게다가 보안을 위해 창살이나 방범창 등으로 살벌하게 해놓은 경우가 많은데 아예 그럴 이유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상점, 카페 등 일반적인 상업시설뿐 아니라 유치원, 탁아소, 도서관, 세탁장, 관리사무소 등 공공시설들이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일반 사무실들도 들어갈 수 있다. 다만 대부분 벽식 구조이기 때문에 각각의 공간이 그리 넓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구조를 적절히 보강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155쪽)
"전체 밀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다공성만 적절히 주어도 가로의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이런 공간들은 건물 내부에서 보면 실내와 인접된 외부이므로 접근이 쉬워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도로폭과 건물 높이의 비가 낮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너무 낮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도로는 그냥 차가 쌩쌩 달리는 이동 동선으로서의 성격이 더 커진다. 보행자 위주의 도로는 사실 그리 넓을 필요가 없다. 도로폭과 주변 건물의 높이 비를 기본적인 범위 내에서 잘 맞추고 세부적으로는 다공성의 개념으로 조절한다면 매우 쾌적한 거리를 만들 수 있다."(87쪽)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 건축의 대안을 제안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아파트의 시대는 갔다고. 아파트는 필요악일 뿐이었고, 이제 그 개념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획일적인 외관은 도시를 삭막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익성마저 예전같지 않다고. 대한민국 주택난 해소의 일등공신이었고, 수많은 사람이 힘든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 쉬는 정답고 포근한 집이며, 종종 재산의 일부이기도 한 아파트는 이제 온갖 사회적 문제의 주범이 된 듯 하다."
그는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좀 다르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아파트는 지어지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할 것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각종 매체는 수도권 일대에서 대규모의 주택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그 중 3분의 2가 아파트다. 아파트의 시대가 갔다면서, 이제 아파트는 안된다면서, 왜 아직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파트만 한 대안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밀도다. 주어진 땅에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262쪽, 1만5000원,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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