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처럼 이론과 실제에 능통한 피아니스트, 봤는가

기사등록 2015/12/04 16:12:38

최종수정 2016/12/28 16:01:18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건축가 김수근은 정의했다.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피아노 연주도 건축과 같다. 빛과 벽돌 대신 검은 건반과 흰 건반으로 짓는 시다. 피아노 연주자는 건축가 겸 시인이다.

 '젊은 거장'으로 통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27)은 이 수식에 가장 가닿는다. 피아노 소나타의 견고한 형식에 대한 표현을 골똘히 고민하면서 연주를 따듯하면서 서정적 승화시킨다.  

 김선욱은 4일 "(1600년 전후에 성립한 기악곡 또는 그 형식인) 소나타에 건축 요소가 많다. 형식적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차르트 소나타만 해도 형식적이었다. 3악장 구성이면,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3악장은 빠르게. 베토벤으로 오면서 진화한다. 4악장으로 넓게. 1악장 빠르게, 2악장 느리게, 3악장 스케르초, 4악장 피날레. 브람스로 가면 5악장으로 가고, 형식이 점점 진화한다. 소나타를 연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본적 틀 안 구성을 표현하는 것이 오래 걸린다. 그 안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점이 건축과 비슷하다고 했다. "철골을 깔고, 순서가 있고, 과정이 있고 끝까지 세공을 한다는 점이 건물 짓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짧은 소품을 치는 것보다 20분이 넘는 소나타를 많이 연주한다. 공부를 해오면서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있고."  

 최근 최근 독일 악첸투스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앨범에 실린 곡 역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두 곡이다. Op.53 '발트슈타인'과 Op.106 '하머클라비어'다. 김선욱 생애 첫 솔로앨범이다. 카라얀과 베를린필이 애용한 녹음장소로 유명한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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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2013년 서울 LG아트센터에서 32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사이클을 돈 그는 "연주가 아니라 곡 자체에서 감동을 가장 느끼는 곡을 하나 꼽으라면 발트슈타인이다. 두 번째로 감탄을 한 곡이 하머클라비어. 첫 솔로 음반은 답이 쉽게 나왔다. 두 곡으로 할 것이라는 생각."

 곡이 어려운 건 외적인 문제였다. "이 곡들을 치면서 온전히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을 담을 수가 있느냐가 중요했다"는 것이다. "이 곡들을 연주한 수많은 음반이 있고, 듣기도 했지만 나만의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

 수많은 호평이 쏟아지고 있지만 연주자 스스로는 항상 아쉬움이 남을 법하다. 김선욱은 그러나 "녹음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 중 하나가 후회하고 싶지 않은 녹음을 하기 위해 공을 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5, 10년 뒤에 베토벤 소나타를 다시 연주했을 때 어떤 관점일지 모르겠지만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것이고 후회는 없다"며 웃었다.

 한국에서는 베토벤을 비롯해 독일 작곡가들의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졌다. "어렸을 때부터 독일 작곡가가 이유 없이 좋았다. 지금도 좋아하고, 길을 찾고 있고, 연주하고 있고, 행복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베토벤을 자주 연주해서 너무 베토벤만 친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 인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베토벤을 잘 한다고 하면 좋은 건 사실이다.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

 그런데 진실은 베토벤 외 라흐마니노프 등 다른 작곡가들도 많이 연주한다는 것이다. "열풍인 쇼팽은 요즘 많이 안 친다. 하하. 나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지만 그 말에 위화감은 없다. 베토벤만 연주하면 안 되니 그래서 당연히 공부를 하고 있다. 음악가의 길은 멀고도 길다. 지금도 베토벤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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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진이 제17회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젊은 남성 피아노 연주자들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김선욱은 임동혁 등과 함께 이미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는 스타 피아니스트다. 조성진이 우승한 것에 대해 "나야 좋다"며 즐거워했다.  

 "성진이를 통해서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건 좋은 소식이다. 같은 클래식 애호가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이런 상황이 긍정적으로 발전해서 수많은 동료의 연주에 많은 분들이 와주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다."

 똑같은 곡을 5년 동안 연주했어도 지금 돌이켜보면 다른 곡처럼 느껴진다는 김선욱은 연주자에게 20대 후반이 제일 힘들면서 중요한 시기라고 짚었다. "취향, 주장이 확실해지고 아무래도 곡을 해석하는데 있어 나만의 색깔이 생기는 듯"하기 때문이다.

 김선욱이 원하는 소리는 복잡한 것이다. "예쁜 소리만 나면 안 되고, 거친 소리가 나도 안 되고. 중도에 있는 소리이면서도 각각의 소리가 균형이 맞아야 한다. 내가 생각해도 어려운 소리다. 한 곡을 연주하는 데 한 색깔만 들린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피아노 안에 다양한 소리와 색깔이 있으면 행복한데, 연주회를 다니면서 그런 피아노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피아노 앞에 앉을 때는 자신이 설득 당하지 않으면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청중들도 눈치 챈다. 청중을 기만하는 행위다. 많은 연주자들이 준비를 할 때 중압감이 있는데 자신이 한 연주에는 100%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연습할 때 이 해석이 말이 되는가 등의 고민과 고민이 있는데 선생님에게 배우면 해소가 된다. 백건우 선생님, 정명훈 선생님, 안드라스 시프 등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에게 여쭤보면 '평생 하는 거야'라는 답을 공통적으로 준다. 나는 아직 시작점이다. 갈고 닦으면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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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욱의 갈고 닦음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상반기 중 브람스 소나타 3번과 프랑크 '전주곡, 코랄과 푸가', 할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브람스 협주곡 1·2번 앨범이 발매될 예정이다. 하반기에 또 한 장의 베토벤 소나타 앨범도 계획 중이다.

 빠져 있는 것은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6·7·8번, 스크랴빈 소나타 등이다. "할 것이 많다. 드뷔시, 라벨 곡도 해야 하고. 드뷔시와 라벨은 소리를 내는 테크닉이 다르다. 공기가 조금 들어가는 고밀도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두 작곡가는 공기 90%, 소리 10%라고 해야 하나. 기존에 내가 연주한 작곡가와 접근 방법이 달라 미지의 세계다. 프렌치 음악이 그렇다. 현대 작곡가 곡도 해야 한다. 쿠르탁, 진은숙 선생님 곡도 해야 하고. 현대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음악가로서 볼 게 많고 칠 게 많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아직 만 27세이니 30~40년은 할 게 많다. 그러니 갈 길이 멀다."

 최근 결혼도 하고 아빠가 되기도 한 김선욱은 "연습을 끝내고 집에 가는 게 너무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들이)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안 시켰으면 한다. 세상이 즐겁고,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데 피아노 전공을 한다고 하면 진짜 싫을 것 같다."

 에스토니아 지휘자 파보 예르비(53)가 이끄는 독일의 명문 오케스트라 도이치 캄머필하모닉(DKP) 내한공연(16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슈만 피아노 협주곡 협연도 앞두고 있다.

 베토벤, 브람스, 슈만으로 이어지는 독일 정통 피아니즘 계열 협주곡의 명연으로 지휘자들의 찬사가 자자한 김선욱에게는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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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욱은 "작품의 주제를 정해놓는 대표적인 작곡가가 슈만"이라며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창의성, 상상력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봤다. "피아노는 오케스트라를 받쳐주는 곡이 많은데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둘이 공생,같이 만든다. 피아노 독주라기보다는 피아노가 한 파트가 되는 부분도 많이 나타난다."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가 대형 오케스트라가 아니라는 점이 그래서 마음에 든다. "고밀도의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오케스트라는 공기가 약간 들어가는, 고밀도 오케스트라다. 인원이 적으면 호흡이 쉬워 더 기대가 된다. 5년 전보다 원하는 색깔이 또렷해졌다. 피아노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걸 표현하는데 다양한 방법이 생겼다. 하나의 답을 찾아서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예르비와 김선욱의 협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협연은 긴장감이 넘치는데 중독된다. 즐거움이 크다. 사람이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오는 설렘이 있다. 연주에서 제일 중요한 건 템포다. 첫 템포를 잘 설정하면 흐름을 만들기 쉽다. 이번 템포가 어떨지 기대가 된다."  

 박제성 클래식음악 평론가는 김선욱에 대해 "피아니스트 연주가로서의 측면도 중요하지만, 피아노 음악의 해석가라고 할 수 있다"며 "서양 기준의 정신 세계를 자신의 관점으로 읽어내서 새롭게 느낄 수 있을만큼의 비전과 해석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굉장히 사려 깊은 연주자다. 화려한 기교의 비르투오소 계열이라기보다는 구조적으로 재해석해서 베토벤이라는 성을 쌓아가는 건축가로서 내면이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내한공연 5만~25만원(서울공연). 빈체로. 02-599-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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