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그런데 월가 애널리스트…신순규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기사등록 2015/10/27 14:56:20

최종수정 2016/12/28 15:48:38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경험이 남달라 가치관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이번에 삶의 큰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신순규(48)씨는 27일 에세이집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출간 간담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눈으로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어떤 때는 해가 되기도 한다"며 "겉으로만 다른 사람을 보고 판단하기도 한다. 또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고 주름살을 걱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애널리스트로서 일해온 신씨의 주요 업무는 쏟아지는 정보를 가려 증권의 가치를 분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각장애라는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꼭 필요한 정보나 프라이머리 소스를 가려서 취하는 능력을 길러야 했다.

 "내가 애널리스트 일을 한다고 하면 차트와 숫자가 많으니까 힘들겠다고 하는데, 사실 따라가야 할 숫자나 차트는 그렇게 많지 않다"며 "홍수처럼 매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나 루머 때문에 자기가 내린 분석에 자신이 없어지다보니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긴다. 시장을 흔들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나 권고 등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작 소중한 것을 잊고 살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며 "가끔 눈을 감으면 마음으로 듣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소중한 것들을 다시 기억할 수 있다.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안 된다는 생각, 안 되겠다는 의견 때문에 우리를 꽉 가둬놓고 있는 테두리에서 탈피해 꿈을 갖고 이를 계속 추구해나가는 것,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계속 사랑하는 것, 이를 통해서 나의 사랑을 이루는 것 등을 책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신씨는 녹내장과 망막박리로 9세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익혔고, 13세에 떠난 미국 순회공연 중 오버브룩 맹학교의 초청을 받아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15세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 뒤로 그의 삶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오버브룩 맹학교를 다니던 중 음악에 대한 역량이 모자란다고 스스로 판단해 일반 고등학교로 진로를 바꾼 뒤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하버드, 프린스턴, MIT, 펜실베이니아 등 명문 대에 동시 합격했고, 그 중 하버드와 펜실베이니아에서는 합격생 중에서도 톱에 속하는 각각 '전국 장학생'(National Scholar)과 '벤저민 프랭클린 장학생'으로 뽑혔다.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MIT에서는 경영학과 조직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장애인에게 장벽이 있는 직업을 연구하다가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에 대한 전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교수의 길을 포기했다. 투자은행 JP모건에 들어가 신용 애널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금융 분야의 최종 자격증'이라 불리는 CFA를 취득했다. 현재까지 여러 나라의 대표적인 금융 기관들과 미국 재력가들이 투자고객으로 찾는다는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에서 증권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또 자신이 세상에서 받은 것들을 다시 돌려주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시각장애와 난독증 학생들에게 녹음교과서를 제작해 제공하는 러닝 앨라이(Learning Ally) 이사, 플라잉 해피니스(Flying Happiness)와 미국 유학프로그램 등을 통해 한국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을 돕는 YANA 선교회의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내 삶은 계속 재탄생했던 것 같다"며 "처음에는 물리학자를 꿈궜다가 의사로 장래희망을 바꿨다. 이어 교수를 꿈꾸다 애널리스트의 삶을 살게 됐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보다 현재의 일이 재미있는 것 같다. 자산운용업에 종사하는 애널리스트는 따지고 보면 시각장애인한테는 이상적인 직업이다. 나를 합쳐서 이런 일을 하는 분이 다섯 명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중 일하는 사람의 90% 정도는 안마나 침술로 살고 있고, 나머지 5%는 시각장애인들을 지원하는 단체에 다니고 있다"며 "5%는 교수, 공무원, 방송인, 교사 등의 직업을 갖고 있는데 사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장벽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상이 불공평한 게 맞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봐도 그 정도가 다를 뿐 불공평은 항상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불공평을 줄이는 쪽으로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노벨상을 탄 분은 불공평을 공부해서 상을 받았을 정도다. 나눔을 통해 사회의 불공평을 줄여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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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그런데 월가 애널리스트…신순규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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