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김난영 기자 = 1987년 지하철범죄수사대로 처음 탄생한 지하철경찰대는 올해 어느덧 발족 28년이 됐다. 지하철범죄 단속 특성 상 얼굴이 많이 알려지면 용의자 검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현흥호 경위의 우려에 따라 인물 사진은 찍지 않았다. 2015.10.21. (사진=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서울=뉴시스】김난영 기자 = "가족이나 지인이 알면 얼굴도 못 들고 다닐 텐데, 잘못된 생각으로 남은 인생을 망치는 일이니 안타깝죠."
지하철경찰대 수사4대 4팀장 현흥호 경위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현 경위를 만나러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당산역 수사4대 사무실을 찾은 토요일 오후 2시, 그곳엔 이미 한 명의 '몰카범'이 검거돼 조사를 받고 있었다.
기자의 방문 직전 검거됐다는 이 남성은 쇼핑백 안에 휴대전화를 넣고 카메라에 휴대전화용 광각렌즈를 부착, 셀프카메라 기능으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 현장에서 적발됐다.
담당 형사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자 남성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현 경위는 잠시 남성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1987년 지하철범죄수사대로 처음 시작한 지하철경찰대가 든든한 '지하철 지킴이'로 역할한지 어느덧 28년, 현 경위가 지하철경찰대에 지원한지도 어느새 3년이 됐다.
처음엔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범죄자를 수색하는 게 민망하기도 했다는 그는 어느새 일부러 붐비는 시간대에 지하철 인파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베테랑이 됐다.
"첫 근무 당시엔 솔직히 민망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현행범을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어야 하니까요. 하도 집요하게 사람들을 쳐다보니 오히려 변태 취급을 받고 신고가 들어온 적도 있습니다."
현 경위는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범죄가 몰래카메라나 성추행 등 성 관련 범죄라고 설명했다. 시민의 인식 역시 이에 맞춰져 있다 보니, 수사 형사가 오히려 변태로 몰리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한 번은 한 지하철역 환승 통로에 서 있는데 지하철 직원과 역무원이 다가와 '지금 뭘 하시는거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경찰관이라고 이야길 했지만 신분증을 보여주니 그제야 믿더군요. 변태로 몰릴 때가 종종 있다 보니 창피하고 민망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쉴 틈 없는 경계가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지하철 이용을 책임진다고 생각하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게 현 경위의 설명이다.
"출근시간은 7시30분이지만, 수사대에 도착하지 않더라도 지하철을 타는 그 순간부터 업무가 시작된다고 보면 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남들처럼 지하철에서 졸 수가 없습니다. 일터가 지하철이니 출퇴근길에도 혹시 내가 있는 공간에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쉴 새 없이 주변을 둘러보곤 하죠."
실제로 출근길에 범행을 목격하고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한 사례도 있다.
"출근길에 한 남성이 졸고 있는 여성의 옆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일부러 손가락으로 여성의 팔과 옆구리를 더듬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다음날 출근길에 목격했을 때도 역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범행임을 확신하고 현장에서 검거했습니다. 피의자는 범행 사실을 부인했지만 미리 채증을 한 덕에 범행을 입증할 수 있었죠."
이처럼 출퇴근 구분도 없이 매 순간 긴장을 늦추지 않는 현 경위지만,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피해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수사가 어려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졸다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처럼 피해자도 피해 사실을 모르는 경우엔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다른 신고 없이 넘어가는 피해자들도 많아요. 출근길에 바빠서 그럴 수도 있고 겁을 먹어서 그럴 수도 있죠. 그러나 그렇게 피해를 당하고도 그냥 넘어간다면 범죄자에게 '죄를 지어도 처벌을 받지 않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특히 피해를 당하고 시간이 지나 뒤늦게 신고가 이뤄질 경우, 현장에서 신고가 이뤄졌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현 경위의 설명이다.
"피해 발생 즉시 신고하면 용의자를 검거하는 게 훨씬 수월합니다. 하지만 뒤늦게 신고를 하게 되면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장소를 특정해 몇 번이고 인력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검거가 쉽진 않죠. 경찰에 신고하는 행위 자체를 꺼리는 시민들도 많은데, 간단히 문자만으로도 신고가 가능합니다. 무슨 역, 몇째 칸인지와 용의자의 인상착의 정도를 문자로 남겨주면 다음 역에서 지하철경찰대가 바로 대기하다 용의자를 검거하죠."
피해자의 경찰 조사 협조 역시 지하철경찰대에겐 피의자 처벌 근거를 마련할 소중한 증거가 된다. 현 경위는 피해자로서 경찰 조사에 협조하는 일이 결코 어렵거나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바쁜 출근길에 피해를 당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피해자 조사는 피의자 조사처럼 피해 직후 강제로 경찰서에 가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간단히 현장에서 연락처만 알려준다면, 수사대가 피해자의 편의에 맞춰 피해자가 원하는 시각에 피해자와 가까운 지하철 경찰센터로 찾아가죠. 조사 시간 역시 10분 내외로, 사건 개요와 처벌 의사만 밝히면 됩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다고 해서 막연히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있지만, 잠깐의 협조가 지하철 범죄를 단속하고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1997년 처음 경찰 생활을 시작한 현 경위는 어릴 때부터 제복을 입는 강인한 남성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체육관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지킬 수 있도록 강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옛 바람대로 매일 '시민의 발'인 지하철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3년 동안 지하철을 뛰어다니며 목감기와 호흡기 질환 등 각종 '지하철 병'을 앓게 됐지만 현 경위에겐 특히 업무를 게을리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올해 수험생이 된 첫딸과 고등학교에 진학한 둘째딸이 있어요. 딸들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지하철 성범죄에 더욱 단호하게 대처하게 됩니다."
가족을 생각하면 힘들다가도 다시 뛸 수밖에 없다는 그는 지하철 범죄자들에게도 잘못된 판단으로 가족에게 아픔을 남기지 말 것을 거듭 당부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입니다. 평범하게 부모가 있거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죠. 지하철 범죄를 저질러 잡혀온 사람들에게 항상 묻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이 당신의 엄마, 누나, 딸이라면 어떻겠느냐고. 그러면 백이면 백 모든 피의자가 고개를 숙입니다. 조금 더 일찍 역지사지 했다면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서민의 발을 책임지기 위한 현 경위의 하루는 오늘도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에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하는 일이 잦아도, 답답한 공기로 잔기침을 하더라도 누군가의 엄마, 누나,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거침없이 붐비는 지하철로 뛰어든다. 독자들이 지하철에 서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철경찰대 소속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살아가면서 가족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마음을 먹는다면 언젠가는 지하철 범죄도 근절될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서민들의 범죄 없는 안전한 지하철 이용을 지키기 위해 최일선에서 활동한다는 큰 자부심을 늘 품고 있습니다."
[email protected]
지하철경찰대 수사4대 4팀장 현흥호 경위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현 경위를 만나러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당산역 수사4대 사무실을 찾은 토요일 오후 2시, 그곳엔 이미 한 명의 '몰카범'이 검거돼 조사를 받고 있었다.
기자의 방문 직전 검거됐다는 이 남성은 쇼핑백 안에 휴대전화를 넣고 카메라에 휴대전화용 광각렌즈를 부착, 셀프카메라 기능으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 현장에서 적발됐다.
담당 형사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자 남성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현 경위는 잠시 남성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1987년 지하철범죄수사대로 처음 시작한 지하철경찰대가 든든한 '지하철 지킴이'로 역할한지 어느덧 28년, 현 경위가 지하철경찰대에 지원한지도 어느새 3년이 됐다.
처음엔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범죄자를 수색하는 게 민망하기도 했다는 그는 어느새 일부러 붐비는 시간대에 지하철 인파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베테랑이 됐다.
"첫 근무 당시엔 솔직히 민망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현행범을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어야 하니까요. 하도 집요하게 사람들을 쳐다보니 오히려 변태 취급을 받고 신고가 들어온 적도 있습니다."
현 경위는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범죄가 몰래카메라나 성추행 등 성 관련 범죄라고 설명했다. 시민의 인식 역시 이에 맞춰져 있다 보니, 수사 형사가 오히려 변태로 몰리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한 번은 한 지하철역 환승 통로에 서 있는데 지하철 직원과 역무원이 다가와 '지금 뭘 하시는거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경찰관이라고 이야길 했지만 신분증을 보여주니 그제야 믿더군요. 변태로 몰릴 때가 종종 있다 보니 창피하고 민망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쉴 틈 없는 경계가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지하철 이용을 책임진다고 생각하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게 현 경위의 설명이다.
"출근시간은 7시30분이지만, 수사대에 도착하지 않더라도 지하철을 타는 그 순간부터 업무가 시작된다고 보면 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남들처럼 지하철에서 졸 수가 없습니다. 일터가 지하철이니 출퇴근길에도 혹시 내가 있는 공간에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쉴 새 없이 주변을 둘러보곤 하죠."
실제로 출근길에 범행을 목격하고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한 사례도 있다.
"출근길에 한 남성이 졸고 있는 여성의 옆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일부러 손가락으로 여성의 팔과 옆구리를 더듬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다음날 출근길에 목격했을 때도 역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범행임을 확신하고 현장에서 검거했습니다. 피의자는 범행 사실을 부인했지만 미리 채증을 한 덕에 범행을 입증할 수 있었죠."
이처럼 출퇴근 구분도 없이 매 순간 긴장을 늦추지 않는 현 경위지만,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피해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수사가 어려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졸다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처럼 피해자도 피해 사실을 모르는 경우엔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다른 신고 없이 넘어가는 피해자들도 많아요. 출근길에 바빠서 그럴 수도 있고 겁을 먹어서 그럴 수도 있죠. 그러나 그렇게 피해를 당하고도 그냥 넘어간다면 범죄자에게 '죄를 지어도 처벌을 받지 않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특히 피해를 당하고 시간이 지나 뒤늦게 신고가 이뤄질 경우, 현장에서 신고가 이뤄졌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현 경위의 설명이다.
"피해 발생 즉시 신고하면 용의자를 검거하는 게 훨씬 수월합니다. 하지만 뒤늦게 신고를 하게 되면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장소를 특정해 몇 번이고 인력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검거가 쉽진 않죠. 경찰에 신고하는 행위 자체를 꺼리는 시민들도 많은데, 간단히 문자만으로도 신고가 가능합니다. 무슨 역, 몇째 칸인지와 용의자의 인상착의 정도를 문자로 남겨주면 다음 역에서 지하철경찰대가 바로 대기하다 용의자를 검거하죠."
피해자의 경찰 조사 협조 역시 지하철경찰대에겐 피의자 처벌 근거를 마련할 소중한 증거가 된다. 현 경위는 피해자로서 경찰 조사에 협조하는 일이 결코 어렵거나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바쁜 출근길에 피해를 당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피해자 조사는 피의자 조사처럼 피해 직후 강제로 경찰서에 가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간단히 현장에서 연락처만 알려준다면, 수사대가 피해자의 편의에 맞춰 피해자가 원하는 시각에 피해자와 가까운 지하철 경찰센터로 찾아가죠. 조사 시간 역시 10분 내외로, 사건 개요와 처벌 의사만 밝히면 됩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다고 해서 막연히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있지만, 잠깐의 협조가 지하철 범죄를 단속하고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1997년 처음 경찰 생활을 시작한 현 경위는 어릴 때부터 제복을 입는 강인한 남성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체육관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지킬 수 있도록 강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옛 바람대로 매일 '시민의 발'인 지하철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3년 동안 지하철을 뛰어다니며 목감기와 호흡기 질환 등 각종 '지하철 병'을 앓게 됐지만 현 경위에겐 특히 업무를 게을리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올해 수험생이 된 첫딸과 고등학교에 진학한 둘째딸이 있어요. 딸들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지하철 성범죄에 더욱 단호하게 대처하게 됩니다."
가족을 생각하면 힘들다가도 다시 뛸 수밖에 없다는 그는 지하철 범죄자들에게도 잘못된 판단으로 가족에게 아픔을 남기지 말 것을 거듭 당부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입니다. 평범하게 부모가 있거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죠. 지하철 범죄를 저질러 잡혀온 사람들에게 항상 묻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이 당신의 엄마, 누나, 딸이라면 어떻겠느냐고. 그러면 백이면 백 모든 피의자가 고개를 숙입니다. 조금 더 일찍 역지사지 했다면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서민의 발을 책임지기 위한 현 경위의 하루는 오늘도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에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하는 일이 잦아도, 답답한 공기로 잔기침을 하더라도 누군가의 엄마, 누나,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거침없이 붐비는 지하철로 뛰어든다. 독자들이 지하철에 서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철경찰대 소속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살아가면서 가족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마음을 먹는다면 언젠가는 지하철 범죄도 근절될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서민들의 범죄 없는 안전한 지하철 이용을 지키기 위해 최일선에서 활동한다는 큰 자부심을 늘 품고 있습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