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안성수·제자 정영두, 무용으로 음악 품다…투오넬라의 백조 & 푸가

기사등록 2015/10/07 10:42:51

최종수정 2016/12/28 15:43:05

【서울=뉴시스】안성수(왼쪽)·정영두, 안무가
【서울=뉴시스】안성수(왼쪽)·정영두, 안무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안무가 안성수(안성수 픽업그룹 대표)와 정영두(두 댄스 씨어터 대표)는 무대 위 건축가다. 일정한 구획 안에서 예술적 노동으로 차곡차곡 빛(조명)과 벽돌(동작)을 쌓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모던한 안성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미니멀리즘, 공간을 중요시하는 정영두는 정기용의 공공 건축을 떠오르게 한다.

 한국 현대무용의 간판으로 사제지간인 안성수·정영두가 나란히 클래식 음악을 건축의 뼈대로 삼는다. 본래 견고한 건축물들을 만들어온 두 사람인만큼 음악이 집 안에 단단히 깃들어 하나가 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안성수의 철골은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네 개의 전설' 중 공연명과 같은 제 3곡 '투오넬라의 백조'가 기본이며, 정영두의 벽돌은 바흐의 '푸가'다.  

 6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안성수와 정영두는 "무용과 음악이 한덩어리가 돼 가고 있다"며 눈을 빛냈다.

 안성수는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어렵지 않다"며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즐길 부분이 분명 있다"고 강조했다. '투오넬라의 백조'가 기본이지만 시벨리우스의 피아노·첼로 곡을 모티브로 새롭게 작곡된 곡이 함께 연주된다. 시벨리우스가 그려낸 서늘하고도 우아한 백조의 심상이 무용수와 현대음악가들에 의해 시청각적으로 변주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함께 하는 피아니스트 하우시카, 유럽 최고의 퍼커셔니스트 사물리 코스미넨, 첼리스트 마커스 하티가 안무 창작자만큼 중요하다.  

 일반적인 극장 무대에서는 무대 아래 위치한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하거나, 녹음된 음악을 사용한다. '투오넬라의 백조'는 그러나 무대 위에 이들이 3인 밴드로 함께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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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영두, 안무가
 시벨리우스의 작품에서 얻은 모티브로 펼치는 즉흥 연주는 현이나 해머 옆에 물건 등을 설치해 음향을 변질시킨 피아노인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비롯해 전자음향, 첼로, 드럼 등을 통해 빚어진다.

 안성수는 "이번 작품의 연출 쪽은 비주얼 장면이 많다. 무용 신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며 "나는 항상 음악에 수학적으로 접근해왔는데 시벨리우스는 수학적으로 (박자를) 세기가 힘들어서 만들 때부터 '언제 들어갈 지'에 대한 타이밍에 대한 개념을 떠나서 작업했다"고 소개했다.

 부채를 오브제로 사용하는데, 이를 담은 영상을 통해 부채 소리가 음악으로 만들어졌고 부채로 만든 음악을 다시 안무로 만드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가 지속됐다. 라이브 밴드의 즉흥 연주가 가능하게 된 셈이다. 안성수는 "그래서 무용수들이 새로운 음악이 나와도 동작에 들어갈 수 있는 타이밍을 한다"고 전했다.  

 LG아트센터·안산문화예술의전당과 손잡고 이번에 초연하는 정영두의 작품은 다성음악인 '푸가'를 테마로 한다. 푸가는 하나의 주제가 성부 또는 악기에 지속적으로 모방 반복되면서 특정한 법칙이 만들어지는 악곡이다. 반복과 변화가 마지막에 가서 하나의 커다란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정영두가 택한 바흐의 푸가는 특히 푸가 형식의 음악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정영두가 푸가를 춤으로 옮기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음악에서 화성적으로 만나거나 대위법적으로 만들어지는 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일종의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다. "화성으로 치면 음의 높낮이를 어떻게 움직임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삼각형 모양이면 대위법처럼 거기에 맞는 동작을 만들어야 하는 고민이다. 특히 숨어 있는 것에 대해 공부 중이다. 현악 사중주인데 3명이 나오는 트리오 안무를 짠다거나 음으로 따지면 성부 자체가 달라지는 그런 실험 말이다. 곡의 형식을 덩어리보다는 흐름으로 파악해서 옮겨보고 있다. 음악을 100% 똑같이 안무로 전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 해석을 목적으로 풀고 있다."

 안성수 안무의 '투오넬라의 백조'는 라이브지만 정영두 안무의 '푸가'는 반주 음악을 쓴다. 무대마다 생생한 라이브 음악이 무조건 어울릴 거라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음악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무용에 집중하기 위해서 반주음악을 쓰는 경우도 왕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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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안성수, 안무가
 정영두는 "춤 공연에서 라이브 음악을 사용하면 좋은데 걱정되는 것은 충분히 시간을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이번에는 바흐 음악 자체도 중요하지만 녹음된 곡을 연주해준 연주자들이 어떤 감정으로 연주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려 한다"고 전했다.

 공연계 화두는 융합인데, 안성수 픽업그룹과 예술의전당이 공동제작하는 '투오넬라의 백조' 역시 그 한가운데 있다. 핀란드 컨템포러리 서커스의 개척자이자 비주얼시어터 컴퍼니 WHS의 창시자 빌레 왈로가 협업한 이 작품은 현대무용에 폴 댄스, 저글링 등 현대 서커스의 요소를 덧입힌다.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라이브 연주에 영상까지, 다양한 영역 간 협업을 통한 극장 경험을 선사한다.

 안성수는 "이번에는 '지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방점을 찍었다"고 고백했다. "공연 시간 70분은 음악이 없을 때를 가정하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음악이 있으니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을 음악이 대체해준다"고 알렸다. "제임스 전(서울발레시어터의 상임안무가) 선생님이 무용 볼 때 눈을 감고 음악만 들어도 좋다고 말씀하기도 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발레에 기반을 뒀으나 새로운 도전에 거리낌이 없는 김지영·엄재용·윤전일, 국립현대무용단 출신 무용수 최용승, 정영두 안무가가 이끄는 두 댄스 씨어터의 핵심 무용수인 김지혜와 하미라,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활약한 도황주 등 다양한 장르의 무용수들이 출연하고 발레와 현대무용의 여러 요소가 섞인 춤을 선보이는 만큼 '푸가'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융복합이다.  

 정영두는 "발래처럼 보이는 동작이든 현대 무용처럼 보이는 동작이든 사전 검열을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안무를 했다"고 전했다. "기준을 하나였다. 전체 흐름에서 음악과 어울리는 춤을 만들자는 것이다. 스스로 사전 검열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동작들도 있는데 반반 씩 섞여서 오히려 신선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99년. 연극판에 몸담고 있던 정영두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뒤늦게 입학했을 때 안성수가 교수로 있었다. 정영두의 졸업 작품도 안성수가 지도했다.  

 안성수는 정영두에 대해 "늘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는 걸 보고 있다"면서 "졸업생이 잘하고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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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안성수(왼쪽)·정영두, 안무가
 정영두는 안성수에 대해 "안무가에 대한 이미지를 내게 남겨주신 분이라 선생님 영향이 크다"며 "계속 여전히 실험하고 공부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화답했다.

 '푸가'에 참여한 두댄스씨어터 단원 김지혜도 이날 자리에 함께 했는데 그녀도 한예종 무용원 출신이다. "안 선생님에게 조금 더 잘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며 "지금은 정 선생님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두 분이 계셔서 후배 무용수들이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인사했다.

 안성수와 정영두는 예전보다 현대무용을 펼치기에 주변 환경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어떻게 발전시켜나가야 할 지 고민하는 것이 숙제"(안성수), "김지혜 같은 젊은 무용수들을 언론 등에서 계속 발굴했으면 한다"(정영두)고 짚기도 했다.  

 안성수와 정영두는 본래 다른 공부를 하다 무용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출신인 안성수는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현대무용을 배우게 됐고, 정영두는 극단 현장에서 노동극 또는 마당극에 참여하다 몸에 대한 관심으로 무용을 공부하게 됐다.

 이전 발자취로 간혹 편견에 사로잡힌 대중도 있을 수 있으나 두 사람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안성수는 "내가 하는 건 엔터테인먼트라서 어떤 장르를 해도 상관이 없다"는 판단이다. 융복합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전부터 다양한 장르와 협업을 선보인 그는 특히 한국무용 기반의 국립무용단과 작업을 통해 파격을 선보이며 호평 받았다. "국립무용단과 작업하면서 한국무용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래서 정통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영두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선입견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때로는 일부러 연극적 장치를 안 하려고 피하기도 했는데 바라보는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 작업을 꾸준히 보는 분들이 다양함을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푸가'는 9~11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한 뒤 14일 통영국제음악당, 23~24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다. 3만~6만원. LG아트센터. 02-2005-0114. '투오넬라의 백조'는 23~25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4만~6만원. 예술의전당 SAC티켓.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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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안성수·제자 정영두, 무용으로 음악 품다…투오넬라의 백조 & 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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