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과 아편' 로베르 르파주 "개인생각 담을수록 더 큰 치유"

기사등록 2015/09/03 09:09:09

최종수정 2016/12/28 15:33:11

로베르 르파주, 캐나다 연출가(사진=LG아트센터)
로베르 르파주, 캐나다 연출가(사진=LG아트센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무대 위의 마법사'로 통하는 캐나다 출신의 천재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68·로베르 르빠주)가 자신의 대표작 '바늘과 아편'으로 8년만에 한국 관객을 만난다.

 '달의 저편'(2003), '안데르센 프로젝트'(2007) 등 지난 2번의 내한공연을 통해 '이미지 연극의 대가'로서 진면목을 과시하며 한국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주인공이다.

 1991년 초연된 '바늘과 아편'은 당시 연극계에 혁신을 불러 일으킨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프랑스 영화감독 겸 극작가인 장 콕토, 미국의 거장 재즈 트럼피터 마일스 데이비스, 캐나다 출신의 배우 로베르 등 사랑을 잃은 세 남자가 중독된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에 중독돼 가는 아이러니를 그린다.

 상실, 불안, 고독 등의 정서가 주다. 르파주 미장센의 무기라 할 수 있는 영상과 테크놀로지가 유려하게 사용됐다.

 초연 당시, 실연에 빠져 있던 르파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의 희곡은 물론 연기, 연출까지 도맡았다.

 이 작품으로 캐나다 공연예술계의 최고 영예인 샤머스상을 받았다. 영국 공연예술계의 최고 권위상인 로렌스 올리비에상의 '아웃스탠딩 어치브먼트'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르파주 스타일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20여 년 만에 리바이벌된 까닭은 캐나다를 대표하는 유명 배우이자,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은 마크 라브래시의 권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르파주는 공연기획사 LG아트센터와 인터뷰에서 "사실 나는 리바이벌 공연을 잘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라브래시가 적극적으로 재공연을 제안했다. 그래서 대본과 비디오를 봤는데 내 생각보다 작품이 훨씬 좋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전과 비교해 그가 의도한 가장 큰 차이는 "단순히 무대를 바꾸는 게 아니라 좀더 성숙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초연과 특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림자 등으로 처리됐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이번엔 실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25년 전에는 내가 장 콕토, 로베르, 마일스 데이비스 모두를 연기했다"며 "백인이 흑인(마일스 데이비스)을 연기하는 것은 약간 민감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림자로 이 부분을 연기했는데 이게 사실 무척 불공평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데이비스의 부분이 적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버전에선 '분신'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웨슬리를 초청했다. 애크러바틱이 가능한 댄서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으며 그래서 데이비스의 장면에 살을 더 붙일 수 있었다."

 극 중 로베르에게 유일한 마음의 연고가 되는 것은 "데이비스의 음악과 장 콕토의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라는 대사가 있다.

 "이 작품에 대한 내 첫 아이디어는 장 콕토의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짧은 책에서 시작됐다. 작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데이비스와의 역사적인 동시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1949년 이른 봄, 두 사람에겐 우연의 일치가 많았다. 유럽인은 미국을, 미국인은 유럽을 첫 방문하게 됐다. 그 방문은 그들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장 콕토는 아편에, 데이비스는 헤로인에 중독됐다.

 "또 둘 다 실연으로 인해 약을 하게 됐다는 것도 똑같았다. 그리고 그 작업을 할 때 나 역시도 이별을 겪고 매우 괴로운 상태였다. 불현듯 이 이야기의 가닥들이 서로 일치함을 느꼈고, 중독이라는 주제가 약에 대한 중독을 넘어 사랑에 대한 중독과 같은 더 넓은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두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세 캐릭터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쨌든, 모든 것의 시작은 장 콕토였다."  

 르파주는 자신의 창작활동은 스스로를 치유해가는 과정이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는 아티스트가 작품 속에 개인적인 생각을 더 담을수록 그 작품이 더 큰 치유의 힘을 지닌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심리학자나 치료사를 찾는 것보다 연극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나 모순, 역설적인 상황을 늘어놓아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들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저 심리학자나 치료사 앞에 앉아 있을 때보다 작품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예술적인 창조활동이 치유의 힘을 일정 부분 지닌다고 생각한다."

 르파주 작품의 백미는 특히 이야기를 놀라운 비주얼 시퀀스로 풀어놓는 데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큐빅이 회전하며 뉴욕의 거리, 파리의 재즈 클럽,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로 눈깜짝할 사이에 변신을 거듭한다.

 연극의 역할은 사람들을 한 데 모으는 것(gathering)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기술은 그저 새로운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여겼다.

 "새로운 재료를 발견한 미술가와 같은 상황일 뿐이다. 새로운 글쓰기 방법이자 한 종류의 펜이고, 한 종류의 붓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술을 위한 기술은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이용할 수 있기에 기술을 사용할 뿐이다. 그리고 테크놀로지를 공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을 활용하면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테크놀로지를 회피할 것이 아니라 포용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촛불로 극장을 밝혔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어느 날 전기가 발명되자 잠시 놀랐지만 금방 또 잊어버렸다. 그것을 이미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비디오, 영상, 멀티미디어 등은 그런 의미다."

 LG아트센터 관계자는 "꿈 같은 이미지들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르파주의 마법은 관객들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며 "공연 내내 흐르는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는 르파주 마법에 빠져들게 한다"고 전했다. 17~19일 역삼동 LG아트센터. 러닝타임 1시간 35분(휴식 없음). 4만~8만원. LG아트센터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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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아편' 로베르 르파주 "개인생각 담을수록 더 큰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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