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창=뉴시스】김종효 기자 = 12일 전북 고창향토문화연구회는 1840년 추사 김정희 선생(1786~1856)의 제주도 귀향길 중 고창 부안면 하오산마을과 아산면 반암마을 지나며 썼던 주련(柱聯·기둥이나 벽에 쓴 글) 등이 대거 발견됐다고 밝혔다.
반암마을 인촌 김성수 집안의 제실에 남아있는 주련 11점이다. 2015.08.12. (사진 = 고창향토문화연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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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뉴시스】김종효 기자 = 전북 고창에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년) 선생이 쓴 주련(柱聯·기둥이나 벽에 쓴 글) 등이 대거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고창향토문화연구회(회장 오강석)는 12일 고창군립도서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귀양길에 고창을 지나간 행로와 추사가 쓴 주련 편액 탁본 등을 공개했다.
연구회에 따르면 주련은 추사가 귀양길에 나선 심정을 적은 것이 다수여서 제주도 귀양길에 이곳을 지나가며 쓴 것으로 보인다.
고창에서 추사의 행적이 처음 나타나는 곳은 부안면 하오산마을이다.
추사가 1840년 9월20일께 하오산마을 전주이씨 이문술의 집에서 유숙하며 융숭한 대접에 대한 답례로 자신의 글을 병풍에 써넣었다는 일화가 소개됐다.
이 병풍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회는 "아직도 아산면 반암마을 인촌 김성수 집안의 제실에 추사 주련 11점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학자 김상휘 박사가 1975년 이 제실에서 직접 뜬 탁본 20점을 소장하고 있어 남아 있는 11점의 주련을 뺀 나머지 주련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라고 말했다.
고창향토문화연구회(회장 오강석)는 12일 고창군립도서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귀양길에 고창을 지나간 행로와 추사가 쓴 주련 편액 탁본 등을 공개했다.
연구회에 따르면 주련은 추사가 귀양길에 나선 심정을 적은 것이 다수여서 제주도 귀양길에 이곳을 지나가며 쓴 것으로 보인다.
고창에서 추사의 행적이 처음 나타나는 곳은 부안면 하오산마을이다.
추사가 1840년 9월20일께 하오산마을 전주이씨 이문술의 집에서 유숙하며 융숭한 대접에 대한 답례로 자신의 글을 병풍에 써넣었다는 일화가 소개됐다.
이 병풍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회는 "아직도 아산면 반암마을 인촌 김성수 집안의 제실에 추사 주련 11점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학자 김상휘 박사가 1975년 이 제실에서 직접 뜬 탁본 20점을 소장하고 있어 남아 있는 11점의 주련을 뺀 나머지 주련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라고 말했다.

【고창=뉴시스】김종효 기자 = 12일 전북 고창향토문화연구회는 1840년 추사 김정희 선생(1786~1856)의 제주도 귀향길 중 고창 부안면 하오산마을과 아산면 반암마을 지나며 썼던 주련(柱聯·기둥이나 벽에 쓴 글) 등이 대거 발견됐다고 밝혔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주련 11점이 남아 있는 고창군 아산면 반암마을의 인촌 김성수 집안 제실이다. 2015.08.12. (사진 = 고창향토문화연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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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금석문'을 연구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이용엽 사료조사위원은 "그동안 전북지역에서 거의 발견된 적이 없는 추사의 주련이 대거 발굴된 것은 추사 연구의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에 발굴된 추사 중기의 글들은 추사체의 변천 과정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평가했다.
연구회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추사의 전북지역 귀향길에 대해서도 관련 자료의 연구를 토대로 한 추정 경로를 제시했다.
제시된 추사의 귀향길 이동 경로는 ▲1840년 ▲9월2일 제주도 대정현 위리안치 명 ▲9월3일~4일 귀향길 출발 ▲일자불명-전주에서 창암 이삼만 선생과 만남 ▲9월20일께 현 고창군 내 흥덕현-하오산마을-반암마을(병바위)-선운사-무장현 ▲9월23일께 장성-비아-나주 ▲9월25일께 해남 대흥사(초의선사 만남) ▲9월27일 아침 완도에서 배를 탐 ▲9월27일 저녁 제주도 대정현 도착 등이다.
추사박물관 허홍범 학예사는 "벼슬을 했지만 죄인인 추사를 객사에 재울 수 없어 유배지까지 가는 동안 지방 수령들이 대부분 유숙할 곳을 마련해줬다"고 전했다.
공주대 백원철 교수는 "자첨문장세희유 적향강파동성두(子瞻文章世希有 謫向江波動星斗·소동파의 문장은 세상에 희귀한데, 귀양길은 강물이 하늘과 맞닿은 먼 곳이네)라, 도원 우집(虞集)의 시를 인용한 이 주련에 자신을 소동파에 견준 추사의 학문적 자부심과 멀리 귀양 가는 착잡한 심정이 다 들어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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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에 발굴된 추사 중기의 글들은 추사체의 변천 과정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평가했다.
연구회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추사의 전북지역 귀향길에 대해서도 관련 자료의 연구를 토대로 한 추정 경로를 제시했다.
제시된 추사의 귀향길 이동 경로는 ▲1840년 ▲9월2일 제주도 대정현 위리안치 명 ▲9월3일~4일 귀향길 출발 ▲일자불명-전주에서 창암 이삼만 선생과 만남 ▲9월20일께 현 고창군 내 흥덕현-하오산마을-반암마을(병바위)-선운사-무장현 ▲9월23일께 장성-비아-나주 ▲9월25일께 해남 대흥사(초의선사 만남) ▲9월27일 아침 완도에서 배를 탐 ▲9월27일 저녁 제주도 대정현 도착 등이다.
추사박물관 허홍범 학예사는 "벼슬을 했지만 죄인인 추사를 객사에 재울 수 없어 유배지까지 가는 동안 지방 수령들이 대부분 유숙할 곳을 마련해줬다"고 전했다.
공주대 백원철 교수는 "자첨문장세희유 적향강파동성두(子瞻文章世希有 謫向江波動星斗·소동파의 문장은 세상에 희귀한데, 귀양길은 강물이 하늘과 맞닿은 먼 곳이네)라, 도원 우집(虞集)의 시를 인용한 이 주련에 자신을 소동파에 견준 추사의 학문적 자부심과 멀리 귀양 가는 착잡한 심정이 다 들어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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