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 지내고 아들 얻고…' 연풍현감 김홍도]

기사등록 2015/06/20 11:01:19

최종수정 2016/12/28 15:11:02

【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는 지금의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장연면에 해당하는 연풍현에서 현감을 지내면서 1792년 공정산 상암사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1872년 제작된 연풍현지도에 상암사(점선 원안)가 수옥폭포 부근에 표기돼 있다. 2015.06.20. (사진=서울대 규장각 소장 지도)   photo@newsis.com
【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는 지금의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장연면에 해당하는 연풍현에서 현감을 지내면서 1792년 공정산 상암사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1872년 제작된 연풍현지도에 상암사(점선 원안)가 수옥폭포 부근에 표기돼 있다. 2015.06.20. (사진=서울대 규장각 소장 지도)  [email protected]
【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1806)는 지금의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장연면에 해당하는 연풍현에서 현감을 지내는 동안 해마다 가뭄에 민심을 살펴야 했다.

 1791년 12월22일부터 1795년 1월7일까지 3년가량 연풍현감을 지낸 김홍도는 1792년(정조 16) 가뭄이 심하게 들자 공정산(公靜山·현 조령산) 상암사(上菴寺)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김홍도는 기우제와 함께 치성을 드려 48세 때 아들(김양기)을 얻었다. '연풍군 공정산 상암사 중수기'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임자년(1792)에 태수 김홍도가 (연풍현에) 부임해 왔다가 가뭄으로 비를 빌기 위해 이 암자(상암사)에 올라 이르기를 "암자의 정결함이 고을 안에서 제일가니 마땅히 그 치성 드릴 곳으로 삼아야겠다"고 하면서 녹봉을 던져 시주를 베풀었다.'

 김홍도는 상암사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이 절에서 불공을 드린 뒤에 아들을 얻었다.

 중수기는 김홍도가 연풍현감에서 물러난 지 한 달 뒤 상암사 계순대사(戒順大師)의 부탁을 받은 풍계거사(楓溪居士)가 지은 글이다. 풍계거사는 김홍도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이 상암사는 6·25전쟁 당시 이곳에 숨은 인민군을 국군이 포격하면서 지금은 절터만 남았다.

 김홍도는 정조의 어진도사(御眞圖寫·임금이 생존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린 그림) 작업 공로로 연풍현감에 제수됐다.

 정조가 김홍도를 연풍현감에 제수한 데는 제2의 외금강으로 일컬어진 단양의 절경을 화폭에 담으라는 뜻도 깔려 있었다고 한다.

 김홍도는 1794년에 연풍현이 가뭄으로 기근이 심했을 때 호서위유사(湖西慰諭使)로 파견된 홍대협(1750~1801)이 올린 부정적인 보고서로 현감직에서 물러났다.

 괴산군은 김홍도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기 위해 3억5000만원(도비 1억5000만원, 군비 2억원)을 들여 2013년 12월 연풍면 삼풍리 연풍초등학교에서 천주교 연풍성지까지 길이 220m, 높이 1.6m의 전통 토담을 설치했다.

 이 토담을 따라 조성한 길 위에는 16점의 아트 타일과 4점의 동판을 세웠다.

 연·풍·연·가를 주제로 생활풍경, 농촌풍경, 놀이풍경, 산수풍경을 배치했다.

 동판은 가로·세로 36㎝×75㎝ 2점과 68㎝×75㎝ 2점이고 아트 타일은 1m×1.2m 크기다.

 호귀응렵도(豪貴鷹獵圖)를 비롯해 씨름, 산행, 빨래터, 길쌈, 활쏘기, 자리 짜기, 행상 등 그의 대표 작품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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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 지내고 아들 얻고…' 연풍현감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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