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표절 폭로' 이응준 "알만한 사람 다 알면서 모른척"

기사등록 2015/06/18 17:46:39

최종수정 2016/12/28 15:10:40

"신경숙 표절의혹 밝힌건 고발 아닌 기록
 문학적 도덕 안지키면 작가는 자유 잃어
 나나 신 작가 죽고나서도 문제될 사안"

【서울=뉴시스】신진아 기자= “고발이 아니라 기록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신경숙(52)의 표절사실을 지적하며 한국문단의 자성을 촉구한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45)은 18일 뉴시스와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응준은 지난 16일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1996)의 한 대목이 일본의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우국, 연회는 끝나고’(주우 세계문학 전집 제20권)에서 단편 '우국'의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하면서 “신경숙은 원래 표절시비가 매우 잦은 작가였다”라고 지적했다.

 이응준은 “제가 쓴 글에 있는 모든 일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며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그저 흩어져있던, 희미해져가던, 왜곡되고 오염됐던 정보들 그리고 전업문인이 아니라 아마추어들이 흐지부지 써내려갔던 정보들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문인으로서 확실한 입장을 밝히고, 문인의 언어로 정식으로 가지런하게 정렬시키고 재조립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신경숙 개인에 대한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라 한 사람의 문인이자 인간으로서 한국문학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글을 쓰게 됐다고 했다. 이어 “제 인생의 숙제였고, 언젠가 죽으면서 나는, 내가 용기 없는 문인이었다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글 속의 진심을 봐달라고 당부했다.

- 만약 표절이 사실이라면 일종의 ‘내부고발자’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먼저 이 글의 취지는 세상이 생각하는 고발이 아니라 기록임을 알아 달라. 저는 결코 한 개인에 대한 미움이나 증오로 쓴 게 아니다. 제게는 인생의 숙제였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데 저나 신경숙 모두 흙이 되었을 때, 백번을 양보해도, 이 사안이 우리가 죽고 나면 끝날 문제였다면 결코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죽고 나서 문제가 될 사안이라 쓴 것이다.”

 이응준은 앞서 발표한 글에서 “표절을 저질러도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이 한국문단”이며 문학계가 표절을 묵인함으로써 “악행이 고질화, 체질화돼 한국문학의 참담한 타락을 가져왔다”고 썼다. 더불어 문인이 범죄자일 수도 있으나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범죄자여선 안 된다며 ‘예술에 대한 도덕’을 강조했다.  

- 최근 한국문학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사라지는 등 ‘한국문학의 위기’라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한국문학이 점점 작아지고 왜소해지고 있지만 한국어가 세상에 있는 한 한국문학은 존재할 것이다. 지금의 국악처럼 남아있을 것이다. 한국문학을 읽는 독자도 소수지만 존재할 것이고 무엇보다 한국문학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문학적 도덕이 지켜지지 않으면 작가들은 자유를 잃게 된다. 한국문학이 계속 반성하지 않는다면 너무 끔찍하더라. 문학에게 미안하더라. 이건 정말 진심이다.”

- 당신의 주장에 동의하는 작가들이나 문학계 사람들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제가 발표한 글에 있는 모든 일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신경숙 주변 사람들, 다 알고도 모른척했다고 본다. 제가 어디 가서 새로운, 무슨 금강석을 캐내서 깜짝 놀랄 걸 보여준 게 아니다. 다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 정식으로 쓰지 않아서 문제가 됐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가 써야겠다. 그래서 앞서 밝혔듯 이 글의 키워드는 기록이다. 한국문학이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기여하고 싶었다. 그것이 제 공적인 목적이었다.”

 이응준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고심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10년 전에 제 블로그 ‘전장에서’라는 코너에 ‘김수영의 박인환 증오’라는 글을 썼다”고 했다. 그 글이 바로 “지금 이 사태를 상상하면서 쓴 것"이란다.

 1995년 1월에 올린 이 글은 시인 김수영(1921~1968)이 친구였던 시인 박인환(1926~1956) 사후에 박인환을 경멸한다는 요지의 글을 발표했는데 이응준은 이를 김수영이 박인환을 문학의 공적(公敵)으로 결론 내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더불어 이응준은 이 글의 마지막에 “2004년은 내게 김수영과 박인환 사이의 미스터리를 풀게 해주었고, 인정할 수 없는 것들과 늠름하게 투쟁해 나가야한다는 차분한 결론을 긴 분노의 터널 끝에서 선물해주었다.(중략) 2004년에 관한 어두운 몇 편의 글들을 쓰게 될 것만 같아 두렵다”라고 썼다.

 이응준은 이 글에서 김수영에 대한 깊은 애정 드러냈다. 만약 저승갈 때 책 한권을 들고 갈 수 있다면 ‘김수영 전집2’(산문)’를 고를 것이며 이 책을 무려 100번은 읽었다고 적고 있다.

 이응준이 앞서 발표한 글에 따르면 신경숙을 둘러싼 다양한 표절시비가 2000년 가을 즈음부터 나왔다. 만약 그가 2005년 1월에 지난 16일 발표한 신경숙 표절문제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라면 무려 10년간 이 문제를 고심한 셈이다.  

 “6월16일부로 한국문단과 저의 관계는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이미 8년 이상 이곳을 떠나있기도 했다. 한국 문단에 속해있으면서 이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가 컸다. 솔직히 주변의 지인들은 제 글이 거짓이 아닌지 다 안다. 제가 10년 전부터 얘기했으니까. 그러다보니 제게 짜증내고, 제 걱정도 많이 했다.

 글을 발표하기로 마음먹은 그날 아침. 새벽에 잠이 안와서 책상 앞에 앉았는데 바로 시인 김수영의 기일이더라. 6월 16일. 약간 등골이 오싹했다.”

- 창비에서는 신경숙의 ‘전설’과 일본작가의 ‘우국’은 전혀 다른 주제의식의 글이라면서 표절을 부인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히려 질문하고 싶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에 창비의 대응에 실망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하자 그는 “17일 발표한 성명으로 답변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이응준은 17일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신경숙과 창비의 성명서에 대한 나, 이응준의 대답"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독자 분들께서 추상같은 판단을 내려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다만, 한 사람의 문인으로서 제 모국어의 독자 분들께 기어이 반성하지 못하는 문단이 너무도 치욕스러워 그저 죄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 글 발표 이후 파장이 크고 신경숙 팬들도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솔직히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솔직히 흐지부지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로선 온 마음을 담아서 그 글 안에 제 뜻을 담았으니 그게 세상 속에서 뭘 하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만약 제가 더해야 하는 게 있다면, 그때 가서 판단해 할 것이고 만약 마무리를 해야 한다면 마무리할 것이다. 그저 건강하게 이 사건이 마무리되길 바란다. 한국문학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한국문단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응준은 생활인의 한 사람으로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이 해야 할 노동에 몰입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가 지난 2008년 각본과 감독을 맡은 영화 ‘레몬 트리( Lemon Tree)'(40분)는 뉴욕아시안아메리칸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파리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받은 바 있다.

 이응준은 “현재 감독 준비 중”이라며 “영화는 문학에 회의를 느낀 제게 탈출구였고, 이제는 꿈이 됐다”고 했다.

 한편 이응준은 한양대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외 9편의 시로 등단했다. 소설가 데뷔는 1994년 계간 ‘상상’가을호를 통해서며 단편소설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를 발표했다.

 문학과 지성사, 작가정신, 문학동네, 민음사 등에서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소설집, 1996),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장편소설, 2001)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소설집, 1999) ‘국가의 사생활’(장편소설, 2009) 등을 출간했다. 2012년 민음사에서 나온 ‘내 연애의 모든 것’은 2013년 SBS 16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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