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한파' 독일 연출가 국립극단과 손잡고 세계 초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독일 배우 출신 연출가 알렉시스 부흐(42·Alexis Bug)가 21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자신이 과거 유명 브랜드 레모네이드 CF에 출연했던 때를 떠올렸다.
이날 오전 자신이 연출하는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의 신작 연극 '더 파워(THE POWER)' 간담회 도중 의자에 앉아 있다 벌떡 일어서더니 일삭스런 표정과 과장된 목소리로 "레모네이드가 맛있다"며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레모네이드를 먹으면 얼마나 맛있고 상큼한 지를 표현했어요. 소비자를 유혹하는 듯 촬영했죠. 근데 지금 연기, 목소리는 제 원래 모습과 상관이 없어요. 광고를 찍는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요구했죠. '더 파워'는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억눌리고 있는가를 다룬 작품이에요. 경제라는 이름으로 얼마만큼의 폭력이 행사되고 있는가를 부각하려고 합니다."
'세상을 먹어 버린 남자'(2009)로 유럽 연극계의 신성으로 거듭난 니스 몸 스토크만(34)이 쓴 '더 파워'는 현대사회의 권력인 자본을 비판한다.
국립극단이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내건 주제인 '해방과 구속'에 맞춰 부흐·스토크만이 손잡고 선보이는 작품으로 이번이 초연이다. "올해가 한국이 일본 압제로부터 벗어난지 70년이 되는 해죠. 과거 일본의 압제는 곧 억압인데, 거기에 착안해서 만들었어요"라고 소개했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 논리를 세 가지 상황으로 보여준다. 전쟁이 없으면 급여·소비도 없다는 논리로 무장한 장군이 등장하는 1부 '성곽', 다국적 보험회사 사무실을 배경으로 상사와 직원의 권위 관계를 파헤치는 2부 '타워', 스스로 압박하면서 피곤에 항상 지쳐 있는 회사원 '나'가 엄마와 자유롭지 않은 관계를 그리는 3부 '구름'이 그것이다.
"독일은 2차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에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했죠. 한국도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기적을 이뤘어요. 이를 통해 부유함을 얻었으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자본의 억압이 커진 거죠. 특히 한국에서는 그게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독일 배우 출신 연출가 알렉시스 부흐(42·Alexis Bug)가 21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자신이 과거 유명 브랜드 레모네이드 CF에 출연했던 때를 떠올렸다.
이날 오전 자신이 연출하는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의 신작 연극 '더 파워(THE POWER)' 간담회 도중 의자에 앉아 있다 벌떡 일어서더니 일삭스런 표정과 과장된 목소리로 "레모네이드가 맛있다"며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레모네이드를 먹으면 얼마나 맛있고 상큼한 지를 표현했어요. 소비자를 유혹하는 듯 촬영했죠. 근데 지금 연기, 목소리는 제 원래 모습과 상관이 없어요. 광고를 찍는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요구했죠. '더 파워'는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억눌리고 있는가를 다룬 작품이에요. 경제라는 이름으로 얼마만큼의 폭력이 행사되고 있는가를 부각하려고 합니다."
'세상을 먹어 버린 남자'(2009)로 유럽 연극계의 신성으로 거듭난 니스 몸 스토크만(34)이 쓴 '더 파워'는 현대사회의 권력인 자본을 비판한다.
국립극단이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내건 주제인 '해방과 구속'에 맞춰 부흐·스토크만이 손잡고 선보이는 작품으로 이번이 초연이다. "올해가 한국이 일본 압제로부터 벗어난지 70년이 되는 해죠. 과거 일본의 압제는 곧 억압인데, 거기에 착안해서 만들었어요"라고 소개했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 논리를 세 가지 상황으로 보여준다. 전쟁이 없으면 급여·소비도 없다는 논리로 무장한 장군이 등장하는 1부 '성곽', 다국적 보험회사 사무실을 배경으로 상사와 직원의 권위 관계를 파헤치는 2부 '타워', 스스로 압박하면서 피곤에 항상 지쳐 있는 회사원 '나'가 엄마와 자유롭지 않은 관계를 그리는 3부 '구름'이 그것이다.
"독일은 2차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에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했죠. 한국도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기적을 이뤘어요. 이를 통해 부유함을 얻었으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자본의 억압이 커진 거죠. 특히 한국에서는 그게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부흐와 스토크만은 앞서 2주 동안 서울을 둘러봤다. "대한민국 서울 그것도 명동예술극장이 있는 이 명동이라는 곳은 가장 자본주의가 첨예하게 드러나죠. 이 곳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부흐는 지한파로 통한다. 이윤택 극단 연희단 거리패 예술감독이 2006년 독일에서 그의 연극 '쥐약과 낡은 레이스'를 보게 된 것을 계기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국내에서 이 감독과 2007년 '베를린 개똥이'를 함께 선보였고, 2011년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를 연출했다. 지난해 셰익스피어 37개 작품을 97분에 압축한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으로 특히 호평 받았다.
하지만 한국 사람도 파악하기 힘든 한국 사회를 온전히 알 수는 없는 법. 이날 자리에 동석한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도 "한국을 피상적으로 다루지 말아달라는 주문과 한국에서 왜 공연돼야 하는지 정당성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PD로 활약한 정명주 국립극단 홍보팀장은 "부흐가 한국에서 작업해온 만큼 현실에 대한 그림이 있어요"라면서 "사무실 장면에서 묘사된 팀장과 직원의 수직적인 관계는 드라마 '미생'을 떠올리게 하고 지하철에서 승객들이 모두 휴대폰을 보고 있는 모습 역시 전형적인 한국의 풍경이죠. 한국에서 오래 작업한 것이 이번 작업에 도움이 됐습니다"고 설명했다.
부흐는 "지금 독일이나 한국에서 당연한다고 여기는 자본주의의 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진실인지 아닌지, 관객에게 충격을 줄 지 안 줄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연극 연출가로서 꼭 던지고 싶었던 질문입니다."
부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원래 하고자 하는 대로 사회에서 행동하지 않고, 생각과 반대로 남들을 대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작품의 끝 부분에서 보여주고 있어요. 엄마로서 해야할 도리, 아들로서 해야할 도리를 제대로 하기가 힘들죠."
'더 파워'는 특히 형식 파괴가 눈길을 끈다. 작품과 일정 거리를 두게 만드는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비롯해 부조리하고 몽환적인 상황은 카프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하이네 뮐러의 영향도 느낄 수 있다.
부흐는 지한파로 통한다. 이윤택 극단 연희단 거리패 예술감독이 2006년 독일에서 그의 연극 '쥐약과 낡은 레이스'를 보게 된 것을 계기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국내에서 이 감독과 2007년 '베를린 개똥이'를 함께 선보였고, 2011년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를 연출했다. 지난해 셰익스피어 37개 작품을 97분에 압축한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으로 특히 호평 받았다.
하지만 한국 사람도 파악하기 힘든 한국 사회를 온전히 알 수는 없는 법. 이날 자리에 동석한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도 "한국을 피상적으로 다루지 말아달라는 주문과 한국에서 왜 공연돼야 하는지 정당성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PD로 활약한 정명주 국립극단 홍보팀장은 "부흐가 한국에서 작업해온 만큼 현실에 대한 그림이 있어요"라면서 "사무실 장면에서 묘사된 팀장과 직원의 수직적인 관계는 드라마 '미생'을 떠올리게 하고 지하철에서 승객들이 모두 휴대폰을 보고 있는 모습 역시 전형적인 한국의 풍경이죠. 한국에서 오래 작업한 것이 이번 작업에 도움이 됐습니다"고 설명했다.
부흐는 "지금 독일이나 한국에서 당연한다고 여기는 자본주의의 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진실인지 아닌지, 관객에게 충격을 줄 지 안 줄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연극 연출가로서 꼭 던지고 싶었던 질문입니다."
부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원래 하고자 하는 대로 사회에서 행동하지 않고, 생각과 반대로 남들을 대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작품의 끝 부분에서 보여주고 있어요. 엄마로서 해야할 도리, 아들로서 해야할 도리를 제대로 하기가 힘들죠."
'더 파워'는 특히 형식 파괴가 눈길을 끈다. 작품과 일정 거리를 두게 만드는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비롯해 부조리하고 몽환적인 상황은 카프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하이네 뮐러의 영향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최근 유럽에서 유행하는 흐름인 '포스트 드라마틱 시어터'(극적인 상황이 나열되는 드라마로부터 탈피한 연극)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연극평론가이기도 한 김윤철 예술감독은 "기존 연극 미학에서 벗어나 관객 앞에서 오줌을 싸는 등 충격적인 부분이 나와 불편할 수도 있다"면서 "이제 연극은 오락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관객에 불편함을 줘서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기능을 하는데 독일 연극이 그런 흐름의 선두에 있다"고 알렸다.
부흐는 "사실 이번 연극에서 진실이 무엇인지는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진실일 지 모른다는 것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어렵게 풀어내지는 않는다. 부흐가 배우 출신인 만큼 추상적인 언어가 육체적, 물리적으로 쉽게 구현될 거라는 게 김윤철 예술감독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한국 배우들과 수차례 작업을 한 만큼 "한국 배우들과 소통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흐는 한국에서 작업을 지속하면서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이 즐겁다"고 했다. '더 파워'에도 박윤희, 하성광, 유정민, 김승환 등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이 나온다. "한국 배우들은 표현력이 좋아요. 육체적으로 연기하는 기술도 뛰어나죠. 그래서 연극을 만들 때마다 한국 배우들을 원했고, 그게 이어져서 국립극단과 연이 닿게 됐네요(웃음)."
6월 5~21일 명동예술극장. 번역·드라마트루그 장은수, 윤색 윤성호, 무대디자인 여신동, 조명디자인 김창기, 음악 박소연. 2만~5만원. 국립극단. 1644-2003
[email protected]
부흐는 "사실 이번 연극에서 진실이 무엇인지는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진실일 지 모른다는 것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어렵게 풀어내지는 않는다. 부흐가 배우 출신인 만큼 추상적인 언어가 육체적, 물리적으로 쉽게 구현될 거라는 게 김윤철 예술감독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한국 배우들과 수차례 작업을 한 만큼 "한국 배우들과 소통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흐는 한국에서 작업을 지속하면서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이 즐겁다"고 했다. '더 파워'에도 박윤희, 하성광, 유정민, 김승환 등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이 나온다. "한국 배우들은 표현력이 좋아요. 육체적으로 연기하는 기술도 뛰어나죠. 그래서 연극을 만들 때마다 한국 배우들을 원했고, 그게 이어져서 국립극단과 연이 닿게 됐네요(웃음)."
6월 5~21일 명동예술극장. 번역·드라마트루그 장은수, 윤색 윤성호, 무대디자인 여신동, 조명디자인 김창기, 음악 박소연. 2만~5만원. 국립극단. 1644-2003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