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남용 멍드는 한글②]국내 도심 간판 '셋 중 하나는 외국문자'

기사등록 2014/10/09 12:00:00

최종수정 2016/12/28 13:29:19

【서울=뉴시스】강지혜 기자 =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도로 양옆에 늘어선 건물에는 간판이 빼곡히 자리 잡았다.

 이들 간판 중 상당수는 로마자 등 외국 문자로 표기돼 있었다. 한글과 함께 쓴 것도 있지만 로마자나 한자로만 내건 간판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거리에서 만난 안세환(24)씨는 "외국어로 된 간판을 보는 것이 익숙하다"며 "어느 곳에 시선을 둬도 한글이 아닌 간판이 눈에 걸린다. 조금 더 심했더라면 외국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외국 문자로 제작한 간판이 지나치게 많아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9일 한글문화연대가 서울과 경기, 부산 등 도심 13곳의 간판 3만9566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글과 로마자·한자 등 외국 문자를 함께 적은 간판이 35%, 1만4035개나 됐다. 간판 3개중 1개는 순 한글 간판이 아닌 셈이다.

 한글로만 된 간판은 46%, 1만8229개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상호 등 간판의 주요 내용을 외국 문자만으로 표기한 간판 9797개 중 로마자 비율이 95%(9314개)로 압도적이었다. 한자가 3%(301개)로 그 뒤를 이었다.

 외국 문자로 된 간판 중에는 우리말을 로마자로 표기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이브자리'나 '아리따움'을 각각 'evezary', 'ARITAUM'으로 쓴 것이 그 예다.

 외국 문자로만 된 간판 비율이 높은 지역은 서울(33%), 광주(28%), 성남(26%), 안양(24%), 부산(23%) 순서로 조사됐다.

 한글과 외국 문자를 함께 표기한 병기 간판은 안양(12%), 부산(9%), 성남(9%), 서울(8%), 대전(8%) 순서로 많았다.

 간판에 외국 문자를 사용한 비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화장품'으로 나타났다. 화장품은 조사 대상인 전체 317개 간판 중 265개(84%)에서 외국 문자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글 간판은 43개(14%), 병기 간판은 9개(3%)였다.

 이 외에도 의류와 카페, 주점, 슈퍼 등 업종에서 외국 문자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서울 시내에서는 젊은 층이 많은 가로수길과 압구정, 강남대로, 홍대, 신촌 등 지역에서 외국 문자로 된 간판이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한글 간판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 당국이 규정을 두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원 97%는 현행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의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로 표시해야 하며,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사유'의 범위와 이를 판단하는 주체는 밝히지 않았다. 자치구에서 광고를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상표법에 등록된 상표가 외국 문자면 한글과 병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간판 등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을 써야 한다는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려면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글문화연대는 한글과 외국 문자를 병기할 경우 반드시 한글이 차지하는 공간이 더 넓어야 하고, 외국 문자만으로 표기할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등 세부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담당 공무원 10명 중 8명도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하고 관리 감독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간판 개선 사업을 하다 보면 간판에 한글을 넣는 것을 거부하고 규제를 많이 한다고만 여긴다"며 "상표가 외국어로 등록돼 있으니 간판도 외국 문자로 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어로 상표 등록이 돼 있어도 간판은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온 적이 있다"며 "이 때문에 한글과 병기하는 사업주도 있지만 귀퉁이에 조그맣게 넣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또 "상호 자체가 한국어가 아닐 경우, 예를 들면 'KT'를 '케이티'로 쓰는 수준에 그친다"며 "한글로 된 상호를 먼저 써서 간판 문화가 따라오게 하는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정인환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은 "간판은 가장 눈에 많이 띄는 문자 정보이자 도시의 미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며 "외국 문자가 돋보이는 간판이 길거리를 장악하며 도시 경관과 문화 정체성을 해친다"고 비판했다.

 정 위원은 "프랑스에서는 공공게시물뿐만 아니라 상업 간판에 대해서도 반드시 프랑스어로 적어야 하고, 외국어를 함께 적더라도 프랑스어보다 돋보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며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법 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거리 간판에서 판글과 한국어가 설 자리가 좁아지면 언어문화를 뒤죽박죽으로 만들 위험이 크다"며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외국 문자보다 한글이 돋보이게 하는 간판 표기 원칙을 넣는 등 관련 조항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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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남용 멍드는 한글②]국내 도심 간판 '셋 중 하나는 외국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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