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서커스 직전 말들 전쟁 앞둔 병사처럼 긴장

기사등록 2014/09/25 17:26:51

최종수정 2016/12/28 13:25:19

【서울=뉴시스】로라 보브릿, 아트서커스 '카발리아' 라이더
【서울=뉴시스】로라 보브릿, 아트서커스 '카발리아' 라이더
【싱가포르=뉴시스】이재훈 기자 = 총성 없는 전쟁터 같다. 머리의 갈퀴를 댕기 따고 있는 말, 샤워하는 말, 먹이를 먹는 말. 숙련된 조련사에게 보살핌을 받는 50마리의 말은 겉으로 평온해보였다. 하지만 잔뜩 예민해진 상태다. 몇 시간 뒤 약 2000명 관중 앞에서 묘기를 선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숫놈만 드글거려 마초(macho)의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마치 군대나 다름 없다.

 아트서커스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실전무대이다. 자칫하면 라이더가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본능에 따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예민한 말의 특성 때문에 긴장감이 팽팽하다.  

 24일 오후 싱가포르 남쪽 끝 마리나베이 베이프론트 애비뉴 안에 세워진 화이트 시어터 텐트에서 만난 아트서커스 '카발리아(Cavalia)'의 라이더 로라 보브릿(28)은 "말이 공연 직전에는 예민하다. 조심해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공동설립자 중 한명인 노만 라투렐이 연출한 '카발리아'의 화룡점정은 승마곡예다. 잘 훈련된 50마리의 말과 30명의 아티스트 및 곡예사들이 협연한다.

 곡예사들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말 위에서 애크러바틱을 비롯한 로만 라이드(roman ride·말 등위에 두 발로 서서 타는 기술), 베어백 라이딩(bareback riding·안장 없이 타는 기술) 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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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아트서커스 '카발리아' 백스테이지
 말의 종류에 따라 공연에서 맡는 역이 달라진다. 화려한 기교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드레스아츠'와 빠르게 질주하는 '트랙라이딩'을 소화하는 말로 크게 구분한다. 특히 드레스아츠에는 거세하지 않은 다 자란 종마를 가리키는 '스탤리온(Stallion)'을 사용한다.

 '카발리아' 내에서 가장 큰 말의 이름은 10세인 '메를린'이다. 프랑스 출신의 페르슈롱(Percheron) 종이다. 땅을 가는 힘 좋은 말로, 키가 158㎝인 보르릿의 두 배 가까이 크다.

 반대로 가장 작은 말의 이름은 '트루버도(troubadour)'로 키가 90㎝에 불과하다. 보브릿은 "미니 사이즈의 말로 다 큰 말"이라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좋아 '슈퍼스타'로 통한다"고 알렸다. 무대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달리는 역이다.

 마굿간 내 말의 휴식 공간은 평균 10㎡, 텐트 안의 온도는 평균 20도대 안팎이다. 병균이 옮지 않도록 매일 샤워하는 건 필수다.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투어를 다니느라 말들 역시 피곤할 법한데, 익숙해졌단다. 보브릿은 "지금까지 비행기 안에서 보낸 가장 긴 시간은 미국에서 호주로 이동한 10시간"이라면서 "이동할 때마다 수의사 2명당 6~8마리 말을 관리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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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아트서커스 '카발리아' 백스테이지
 라이더들은 자기와 잘 맞는 말과 일종의 계약을 맺는다. 보브릿은 "라이더와 말은 최소 2년에서 최대 7년간 함께 지낸다"고 알렸다.

 '카발리아'에 입단하는 말의 나이는 보통 7~8세다. 말의 평균 수명이 35세 가량이니 사람 나이로 따지면 20살 안팎. 한창 혈기왕성한 시기이다. 말이 조숙하거나 건강하면 5세 때 들어오기도 한다.

 말 한마리당 평균 공연 연수는 최장 10년 안팎. 보브릿은 "말과 컨디션에 따르다"고 부연했다.  

 공연에서 은퇴하게 되면 상당수의 말은 입양된다. 보브릿은 "말을 키울만한 공간 등 입양자가 자격 조건을 갖췄을 경우 무료로 입양보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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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아트서커스 '카발리아' 백스테이지
 공연장 일대는 35m 안팎의 텐트가 여러개 설치된다. 약 2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무대 텐트를 중심으로 마굿간, 말들의 워밍업 텐트 등이 있다.  

 말들은 공연에 나서기 전 워밍업을 할 수 있는 텐트에서 몸을 푼다. 사람 몸 풀듯이 자신의 라이더와 함께 다리 근육은 물론 몸 근육, 곳곳을 푼다. 말 '주니어'와 라이더 줄리앙은 5년간 호흡을 맞춘 만큼 몸 푸는 것도 찰떡궁합이다. 마치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풀어주듯, 다리를 펴주고 목을 이리저리 돌려준다. 보브릿은 "말도 사람처럼 많이 쓰는 근육이 있는데, 몸을 풀어줄 때는 안 쓰는 근육을 많이 움직여준다"고 전했다.  

 말들의 워밍업 공간 옆에는 라이더와 곡예사들이 몸을 푸는 공간이 있다. '태양의 서커스' 때부터 라투렐과 호흡을 맞춘 안무가 겸 아트 디렉터 알랭 고티에가 지휘하는 곳이다.

 고티에는 "라이더와 말이 1분간 안무를 맞추기 위해서는 2시간이 걸린다"면서 "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전했다. "말은 사소한 변화에도 예민하기 때문에 안무가 조금만 바뀌어도 크게 당황한다"면서 "되도록이면 안무를 통일하고자 노력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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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아트서커스 '카발리아' 백스테이지
 말들은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예민해진다. 반대로 보브릿를 비롯한 라이더와 곡예사들은 평정심을 유지한다. 라이더는 달래고 말은 마음을 열면서 그렇게 동물과 사람은 하나가 된다.

 말의 등장, 퇴장과 공연 순서를 빼곡히 적은 타임테이블을 보고 있노라면 전쟁을 앞둔 군인처럼 바짝 긴장감이 든다. 그러나 백스테이지에서 일사분란함은 공연에 대한 믿음을 보장한다. 캐나다·프랑스·호주·모르코 출신의 말들, 캐나다·프랑스 출신의 라이더. 출신과 국적은 다양하지만 호흡이 척척 맞는다.

 암컷이 섞여 있으면 분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수컷으로만 팀을 꾸렸다. 보브릿은 "수컷만 있으면 '브라더후드'가 느껴진다"며 웃었다. 말들 사이의 끈끈한 관계, 말과 인간 사이의 신뢰는 한편의 아트서커스가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  

 말과 사람이 교감하는 현장은 11월5일부터 한국에서 볼 수 있다. 12월28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 내에서 만들어지는 화이트빅탑에서 국내 초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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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서커스 직전 말들 전쟁 앞둔 병사처럼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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