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은 누구?…'기업가에서 종교인으로'

기사등록 2014/08/31 14:46:05

최종수정 2016/12/28 13:18:01

【안성=뉴시스】이승호 김도란 기자 =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창시자로 신도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31일 유가족과 신도 수천명의 애도 속에 장례를 마치고 영면했다. 

 고인은 세월호의 실 소유주로 지목돼 검찰 수사 한 달만에 숨진채 발견될 때까지 33년동안 구원파를 이끌었다.

 고인이 구원파를 만든 것은 1981년. 장인인 고 권신찬 목사와 함께 구원파를 조직하기 전까지는 완구업체 등을 운영하는 기업가였다.

 기업가에서 종교인으로 변신하기까지 고인의 삶에는 항상 권 목사가 있었다.

 고인은 194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5살 때 한국으로 건너왔다. 대구에서 자랄 때 다니던 교회에서 권 목사를 만났다.

 1966년 권 목사의 딸 권윤자(71)씨와 결혼하면서는 장인과 사위의 관계를 넘어 인생의 동지적 관계를 맺는다.  

 고인은 결혼 10년만인 1976년 봉제완구 제조·수출업체인 삼우무역(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하면서 기업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오대양 사건'으로 전국을 뜨겁게 달군 주식회사 세모를 1979년 세웠다.

 권 목사는 고인의 자금과 인맥관리 등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세모는 건강식품과 선박제조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강 유람선 독점운항 사업권을 따내는 등 호황을 누리던 시기인 1987년 세모그룹의 '오대양사건'이 터졌다.

 오대양 사건은 장인인 권 목사와 구원파를 조직한지 6년만에 발생한 사건으로, 170억원의 사채를 빌려쓰고 사라졌던 공예품 제조업체 '오대양' 대표와 그 가족 등 32명이 모두 용인에서 숨진채 발견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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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 고인은 오대양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수사를 받았다.

 최종 무혐의 처분됐지만,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인 1982부터 구원파 신도들에게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징역 4년의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했다.

 그가 옥살이 하는 동안 세모그룹은 경영이 악화돼 1997년 결국 부도처리 됐다. 부도 이후 1999년 3월 고인의 장남 대균씨와 차남 혁기씨는 해운사업을 승계받아 청해진해운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유 전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아해'라는 이름의 사진작가로 활동했지만 검찰은 세월호 사고 후 고인이 청해진해운 조직도에 '회장'의 직함을 갖고 있었으며, 매달 1000만원의 급여와 자문료를 받은 것을 확인했다.

 검찰의 출석요구에 불응하고 잠적했던 그는 6월12일 전남 순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DNA 분석 등을 통해 시신이 유 전 회장인 것을 확인한 경찰은 지난 25일 시신을 가족에게 인계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구원파의 본거지로 알려진 경기 안성 금수원에서 시신발견 두달 보름여 만에 치러졌다.

 시신은 금수원 뒷산에 안장됐다. 이 산에는 고인의 장인이자 인생의 동지인 고 권 목사도 안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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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은 누구?…'기업가에서 종교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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