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이국현 기자 = 14일 새누리당 최고위원에 선출된 이인제 의원은 충남 논산·계룡·금산을 지역구로 둔 6선 의원이다.
이 의원은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대전지법 판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며 노동계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1987년 통일민주당의 중심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3대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해 1988년 국회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위 청문위원으로 당시 노무현 의원과 함께 일약 국감 스타로 떠올랐다. 1993년 문민정부출범과 함께 최연소 노동부 장관, 민선 경기지사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의 정치인생의 분기점은 1997년 대선. 신한국당 대선후보로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한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동교동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출마했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자민련, 국민중심당을 거쳐 2007년 민주당에 복당한 이 의원은 제17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 당내 경선에서 승리해 후보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가 무소속으로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대선 패배를 경험했다.
이후 무소속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1년 통합 자유선진당에 입당, 2012년 4·11 총선에서 6선에 성공했다. 각종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끝내 국회에 입성하면서 '피닉제'(불사조를 의미하는 피닉스와 이인제의 합성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탈당, 입당, 복당으로 10차례 당적 변경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1948년 충남 논산 ▲경복고 ▲서울대 행정학과 ▲대전지법 판사 ▲노동부 장관 ▲경기도지사 ▲제15·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제13·14·16·17·18·19대 국회의원 ▲자유선진당 비상대책위원장
[email protected]
이 의원은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대전지법 판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며 노동계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1987년 통일민주당의 중심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3대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해 1988년 국회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위 청문위원으로 당시 노무현 의원과 함께 일약 국감 스타로 떠올랐다. 1993년 문민정부출범과 함께 최연소 노동부 장관, 민선 경기지사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의 정치인생의 분기점은 1997년 대선. 신한국당 대선후보로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한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동교동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출마했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자민련, 국민중심당을 거쳐 2007년 민주당에 복당한 이 의원은 제17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 당내 경선에서 승리해 후보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가 무소속으로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대선 패배를 경험했다.
이후 무소속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1년 통합 자유선진당에 입당, 2012년 4·11 총선에서 6선에 성공했다. 각종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끝내 국회에 입성하면서 '피닉제'(불사조를 의미하는 피닉스와 이인제의 합성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탈당, 입당, 복당으로 10차례 당적 변경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1948년 충남 논산 ▲경복고 ▲서울대 행정학과 ▲대전지법 판사 ▲노동부 장관 ▲경기도지사 ▲제15·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제13·14·16·17·18·19대 국회의원 ▲자유선진당 비상대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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