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불교의 자성과 쇄신’ <3>
밥을 먹으러 갑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드시면 됩니다. 허겁지겁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꼭꼭 씹어 먹는 게 잘 먹는 것이고 보약입니다. 그런데 우동을 먹겠다거나 고기를 먹겠다거나, 생선이 없으면 아예 안 먹겠다고 따지는 사람이 요즘 점점 많아졌습니다. 웰빙 때문인지 재료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따집니다. 밥 한 그릇 비우면 허기도 사라지고 사는 데 불편이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집착하는 게 많아진 것입니다. 승려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말은 도인인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도인이면 삶이 수행일 텐데 깨우쳤다면서 반찬 투정이 심하거나 굉장히 좋은 고급 음식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인사동 주변 거리를 활보하는 승려들의 옷을 보면 몇십만 원대가 아닌 몇백만 원 이상의 것도 있습니다. 옷만 그런 게 아니라 시계나 자동차도 대단하고 심지어 금목걸이를 하신 분도 보입니다. 누구 돈으로 그렇게 호화스럽게 사치하고 돌아다니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안타깝게도 앞으로 종교시설 부근에 콧구멍 없는 소로 태어날 성직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당신이 도인이거나 수행하는 성직자라면 당신을 지적하는 우리를 문제 삼지 말고 스스로 행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어쭙잖게 동료들을 두둔하지 마시고 그 동료들의 도박, 성매매, 사찰토지매매 등을 하지 않게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불법(不法)을 써서 비록 세상의 법으로는 무죄가 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지엄한 부처님 법인 불법(佛法)에서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곁에 오신 부처님 같으신 성철스님은 선방에서 조는 선객이 있으면 “밥값 내놔라!”며 멱살잡이까지 했다는 즉 밥값 못하면 먹지도 못하게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일상의 노동을 수행의 중요한 도구로 삼은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처럼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그 날은 밥을 먹지 않은 선승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뭘 그리 반찬을 따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단 우리 불교의 일부 승려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어느덧 우리 주변의 성직자들이 참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해지고 자신을 높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게 됐습니다. 신도들이 낸 보시라는 돈으로 연명하는 성직자들인데 언제부턴가 막대한 자본을 모아서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듯 오히려 신도들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구원파’뿐만 아니라 정말 적지 않은 성직자 등이 신도들의 신앙 위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는 듯하다는 불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른 수행자와 바른 성직자들은 더는 그러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찰 공양 간에 가면 어디에나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는 공양 발원문이 있습니다. 지금 식사를 하고 있다면, 지금 여기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오직 자신을 돌아보세요. 정말 수행을 위해 연명하기 위해서 먹는 공양인가요? 아니면 식도락 등의 집착인가요? 뭐에 왜 집착하고 있는 거죠? 뭐가 그리 채워지지 않았기에 허기졌는지 왜 그리 따지는지 받아들임이 없는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신 앞에 차려진 밥상은 부처님께서 주신 선물이나 그걸 잘 챙겨 드시기 바랍니다. 편식하지도 마시고요. 값비싼 한정식집이나 고깃집, 비싸고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더는 당신들을 안 봤으면 합니다. 그냥 절의 공양간(식당)에서 조용히 식사하시고 바로 수행에 정진해 주세요. 팔정도의 길을 가주세요. 설마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출가한 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혹시 부와 권력을 정말 원하세요? 원해서 얻으면 뭘 하실 건가요? 수행자가 그걸 얻으면 어떻게 될지, 설마 모르는 건 아닐 테죠? 출가 승려라면 우선 이걸 먼저 알고 알려줘야 합니다. 행자교육원 등에서 꼭 가르쳐 주세요. 몇 년 동안 우리나라 전 국토를 돌며 만행을 해도, 몇 년 동안 아무리 야단법석을 떨어도 다 소용없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수행자로서 떳떳하고 깨끗한지만 바라봐주세요. 부와 권력과 무관한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본래 면목을 찾지 않아도 좋으니 아니 지금 상태로는 찾기 어려운 분도 있을 테니, 우선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보세요.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회광반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모르면서 법회 때 신도들한테 무소유해야 한다며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 따위에 집착하지 말라니 다 버리라는 식의 가식적인 말은 하지도 마세요. 부탁합니다.
깨끗하지 않다면 함부로 남들에게 말하거나 원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불보살이나 신장들은 모른 채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요행일 뿐이며 더 큰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을 뿐입니다. 부처님의 연기법이라는 그물망은 너무나도 촘촘해서 바늘구멍 같은 예외는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안 걸렸다면 그건 정말 전생의 선업을 깎아 먹고 있거나 내세의 악업을 세운 것에 불과합니다. 부디 요행이라는 연기법의 낚시질에 걸리지 마세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세계를 만든 음흉한 프로메테우스들조차도 인과응보라는 연기법으로 불량한 성직자들을 반드시 기억합니다. 일부일지는 몰라도 애써 찾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는 그들은 이 세계에 실존하며 대단한 힘도 가지고 있다고도 합니다. 출가 승려로서 그것조차 모른다면 그게 진짜 무명이고 무지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들켜서 혼나는 게 좋습니다. 신장들이 더 촘촘하게 만들어놓은 윤회라는 더 큰 수렁 즉 참회 프로그램에서 지금 당장 벗어나는 게 좋습니다. 벌써 한발을 들이셨다면 얼른 빼세요. 먼저 맞는 매가 덜 아픕니다.
무명을 밝히는 등으로 스스로 빛이 되고 싶어 출가한 거 아닌가요? 돈도 모이고 신도가 많고 지금 본사 주지를 하거나 이제는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니 세상이 너무 만만한가요? 실의에 젖어 도를 찾아 윤회를 벗어버리겠다는 그 대장부의 영원한 자유의 길은 정말 잃으신 건가요? 그냥 겉으로 눈부셔서 가까이 갈 수 없는 빛이 아니라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있으면서 곁에 가면 맑고 밝아지는 그런 빛이 되어 주세요. ‘노자(老子)’에 나오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처럼, 자신의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우리 재가불자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된 자아를 보여주세요.
미국의 유명한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께서 한 음성이 기억납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의 꿈에는 지금의 부와 권력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프란체스카 교황이 존경을 받는 이유, 달라이라마 존자가 숭배를 받는 이유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행이 맑고 밝은지 보세요. 그래서 그 행 뒤에 몸을 숨길 수 있는지 보세요. 숨길 수 있다면 당신은 위대한 성직자로 수행자입니다. 숭고한 사람은 없고 숭고한 행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빨리 참회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삼보였던 성철스님께서는 백일법문 가운데 임제대사를 인용해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부처란 마음이 청정함이요, 법이란 마음이 광명함이요, 도(僧)란 어디에서나 청정과 광명이 걸림이 없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승이란 본래 화합을 뜻하니 서로서로 합심해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을 말하지만, 근본은 청정과 광명이 걸림 없음을 증득한 사람만이 승이라는 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중도를 깨치지 못하면 승이 아니니 모든 차별․변견에 집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중도를 깨치면 재가든 출가든 모두 승이 될 수 있습니다. 어쭙잖게 밥값도 못하면서 자신을 삼보로 올리지 마세요. 하심 하세요. 재가가 지적하면 참된 수행자답게 참회하고 고쳐서 재가로부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존경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멀리 유마거사나 소성거사를 찾을 필요도 없이 일제의 고문에도 변절하지 않은 민족의 지도자인 만해 한용운 시인이 보여준 무애행의 진정한 의미라도 먼저 찾아봐 주세요. 재가들이 우러러 3배 드리고 싶은 진정한 삼보정재가 돼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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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으러 갑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드시면 됩니다. 허겁지겁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꼭꼭 씹어 먹는 게 잘 먹는 것이고 보약입니다. 그런데 우동을 먹겠다거나 고기를 먹겠다거나, 생선이 없으면 아예 안 먹겠다고 따지는 사람이 요즘 점점 많아졌습니다. 웰빙 때문인지 재료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따집니다. 밥 한 그릇 비우면 허기도 사라지고 사는 데 불편이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집착하는 게 많아진 것입니다. 승려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말은 도인인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도인이면 삶이 수행일 텐데 깨우쳤다면서 반찬 투정이 심하거나 굉장히 좋은 고급 음식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인사동 주변 거리를 활보하는 승려들의 옷을 보면 몇십만 원대가 아닌 몇백만 원 이상의 것도 있습니다. 옷만 그런 게 아니라 시계나 자동차도 대단하고 심지어 금목걸이를 하신 분도 보입니다. 누구 돈으로 그렇게 호화스럽게 사치하고 돌아다니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안타깝게도 앞으로 종교시설 부근에 콧구멍 없는 소로 태어날 성직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당신이 도인이거나 수행하는 성직자라면 당신을 지적하는 우리를 문제 삼지 말고 스스로 행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어쭙잖게 동료들을 두둔하지 마시고 그 동료들의 도박, 성매매, 사찰토지매매 등을 하지 않게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불법(不法)을 써서 비록 세상의 법으로는 무죄가 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지엄한 부처님 법인 불법(佛法)에서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곁에 오신 부처님 같으신 성철스님은 선방에서 조는 선객이 있으면 “밥값 내놔라!”며 멱살잡이까지 했다는 즉 밥값 못하면 먹지도 못하게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일상의 노동을 수행의 중요한 도구로 삼은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처럼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그 날은 밥을 먹지 않은 선승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뭘 그리 반찬을 따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단 우리 불교의 일부 승려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어느덧 우리 주변의 성직자들이 참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해지고 자신을 높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게 됐습니다. 신도들이 낸 보시라는 돈으로 연명하는 성직자들인데 언제부턴가 막대한 자본을 모아서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듯 오히려 신도들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구원파’뿐만 아니라 정말 적지 않은 성직자 등이 신도들의 신앙 위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는 듯하다는 불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른 수행자와 바른 성직자들은 더는 그러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찰 공양 간에 가면 어디에나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는 공양 발원문이 있습니다. 지금 식사를 하고 있다면, 지금 여기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오직 자신을 돌아보세요. 정말 수행을 위해 연명하기 위해서 먹는 공양인가요? 아니면 식도락 등의 집착인가요? 뭐에 왜 집착하고 있는 거죠? 뭐가 그리 채워지지 않았기에 허기졌는지 왜 그리 따지는지 받아들임이 없는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신 앞에 차려진 밥상은 부처님께서 주신 선물이나 그걸 잘 챙겨 드시기 바랍니다. 편식하지도 마시고요. 값비싼 한정식집이나 고깃집, 비싸고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더는 당신들을 안 봤으면 합니다. 그냥 절의 공양간(식당)에서 조용히 식사하시고 바로 수행에 정진해 주세요. 팔정도의 길을 가주세요. 설마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출가한 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혹시 부와 권력을 정말 원하세요? 원해서 얻으면 뭘 하실 건가요? 수행자가 그걸 얻으면 어떻게 될지, 설마 모르는 건 아닐 테죠? 출가 승려라면 우선 이걸 먼저 알고 알려줘야 합니다. 행자교육원 등에서 꼭 가르쳐 주세요. 몇 년 동안 우리나라 전 국토를 돌며 만행을 해도, 몇 년 동안 아무리 야단법석을 떨어도 다 소용없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수행자로서 떳떳하고 깨끗한지만 바라봐주세요. 부와 권력과 무관한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본래 면목을 찾지 않아도 좋으니 아니 지금 상태로는 찾기 어려운 분도 있을 테니, 우선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보세요.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회광반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모르면서 법회 때 신도들한테 무소유해야 한다며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 따위에 집착하지 말라니 다 버리라는 식의 가식적인 말은 하지도 마세요. 부탁합니다.
깨끗하지 않다면 함부로 남들에게 말하거나 원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불보살이나 신장들은 모른 채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요행일 뿐이며 더 큰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을 뿐입니다. 부처님의 연기법이라는 그물망은 너무나도 촘촘해서 바늘구멍 같은 예외는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안 걸렸다면 그건 정말 전생의 선업을 깎아 먹고 있거나 내세의 악업을 세운 것에 불과합니다. 부디 요행이라는 연기법의 낚시질에 걸리지 마세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세계를 만든 음흉한 프로메테우스들조차도 인과응보라는 연기법으로 불량한 성직자들을 반드시 기억합니다. 일부일지는 몰라도 애써 찾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는 그들은 이 세계에 실존하며 대단한 힘도 가지고 있다고도 합니다. 출가 승려로서 그것조차 모른다면 그게 진짜 무명이고 무지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들켜서 혼나는 게 좋습니다. 신장들이 더 촘촘하게 만들어놓은 윤회라는 더 큰 수렁 즉 참회 프로그램에서 지금 당장 벗어나는 게 좋습니다. 벌써 한발을 들이셨다면 얼른 빼세요. 먼저 맞는 매가 덜 아픕니다.
무명을 밝히는 등으로 스스로 빛이 되고 싶어 출가한 거 아닌가요? 돈도 모이고 신도가 많고 지금 본사 주지를 하거나 이제는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니 세상이 너무 만만한가요? 실의에 젖어 도를 찾아 윤회를 벗어버리겠다는 그 대장부의 영원한 자유의 길은 정말 잃으신 건가요? 그냥 겉으로 눈부셔서 가까이 갈 수 없는 빛이 아니라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있으면서 곁에 가면 맑고 밝아지는 그런 빛이 되어 주세요. ‘노자(老子)’에 나오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처럼, 자신의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우리 재가불자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된 자아를 보여주세요.
미국의 유명한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께서 한 음성이 기억납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의 꿈에는 지금의 부와 권력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프란체스카 교황이 존경을 받는 이유, 달라이라마 존자가 숭배를 받는 이유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행이 맑고 밝은지 보세요. 그래서 그 행 뒤에 몸을 숨길 수 있는지 보세요. 숨길 수 있다면 당신은 위대한 성직자로 수행자입니다. 숭고한 사람은 없고 숭고한 행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빨리 참회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삼보였던 성철스님께서는 백일법문 가운데 임제대사를 인용해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부처란 마음이 청정함이요, 법이란 마음이 광명함이요, 도(僧)란 어디에서나 청정과 광명이 걸림이 없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승이란 본래 화합을 뜻하니 서로서로 합심해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을 말하지만, 근본은 청정과 광명이 걸림 없음을 증득한 사람만이 승이라는 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중도를 깨치지 못하면 승이 아니니 모든 차별․변견에 집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중도를 깨치면 재가든 출가든 모두 승이 될 수 있습니다. 어쭙잖게 밥값도 못하면서 자신을 삼보로 올리지 마세요. 하심 하세요. 재가가 지적하면 참된 수행자답게 참회하고 고쳐서 재가로부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존경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멀리 유마거사나 소성거사를 찾을 필요도 없이 일제의 고문에도 변절하지 않은 민족의 지도자인 만해 한용운 시인이 보여준 무애행의 진정한 의미라도 먼저 찾아봐 주세요. 재가들이 우러러 3배 드리고 싶은 진정한 삼보정재가 돼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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