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백일법문⑤ 부처, 중도·연기 바로 깨쳐 팔정도 가는 사람

기사등록 2014/06/27 06:11:00

최종수정 2016/12/28 12:58:26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삶이야기 禪이야기’ <132>

 열심히 참선 수행정진해서 설사 열반(涅槃)을 성취했다 해도 열반의 낙에 머물면 그것도 병이 된다. 중도가 아닌 게 된다. 머문다는 것은 물이 고이는 것이고 그러면 썩게 된다. 물은 흐르며 도도 그렇다. 고(苦)와 낙(樂)을 떠난다는 것은 세간·출세간의 고(苦)·낙(樂)이라는 모든 집착을 완전히 떠난 경계로 이게 중도다. 이렇게 양변을 버리고 중도를 완전히 바르게 깨우쳤다는 초전법륜을 중도대선언(中道大宣言)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주상(無住相)은 중도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나보다.

 팔정도(八正道)는 원시불교의 중요 교리로서 출가 수행자나 세속인이 바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켜야 할 지침이다. 글자 그대로 ‘여덟 가지의 바른길’이란 뜻으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바른길을 뜻하는 중도사상이 드러나 있다. 부처님은 확실하게 팔정도는 곧 중도라고 단언했다. 정견은 바른 견해, 즉 올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으로 불교의 진리인 십이연기(緣起)와 고집멸도의 사성제(四聖諦)나 중도에 대한 지혜를 갖추는 것이다. 바른 견해를 가지면 모든 법을 바로 보게 돼 바른 마음가짐인 올바른 사유(정사유正思惟), 올바른 언어(정어·正語)와 신체적 행위(정업·正業)를 하게 된다.

 이처럼 정견 즉 바른 견해를 얻어 모든 법을 바로 보기 전에는 올바른 일상의 생활로 분수를 넘어서는 행동이나 불규칙한 생활 등을 시정해 도리에 맞게 생활을 유지하는 정명, 악을 소멸하고 선을 증대시키는 올바른 노력인 정정진, 올바른 생각으로 바른 진리와 지혜를 잃지 않고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하는 정념, 일상생활에서 정신을 집중해 노력하고 지속하는 올바른 선정인 정정 등 팔정도의 나머지가 하나도 성립될 수 없다. 정견은 바로 부처님이 깨치신 진리, 즉 중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이 성도해 깨달으신 것이 중도이고 그 중도의 내용이 다름 아닌 팔정도(八正道)다. 궁극적으로 중도를 바로 깨친 그 사람이 부처이므로 중도의 내용인 팔정도는 목적론적 의미를 내포하는 바른 삶의 방향의 지침이다.

 십이연기설은 사성제·중도 등과 함께 부처님이 처음부터 말씀하신 근본불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다. 부처님이 중도를 깨달아서 정각자가 됐듯이, 부처님이 발견한 십이연기설 역시 중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12연기 가운데 무명은 지혜인 명(明)이 없음을 말하며 이는 곧 불교의 진리인 연기나 무아의 도리를 알지 못함을 의미한다. 행은 제법을 지어나가는 행위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특히 무명, 무지로 인해 행한 행위의 형성력을 뜻한다. 무지하게 저지른 악행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연기법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시기 전에도 본래 있었으며 부처님이 나신 뒤에도 연기법은 그대로 고정되고 정해져 있음을 말한다. 연기는 서로 의지해 있는데 삶(生)은 죽음(死)에 의지하고 죽음(死)은 삶(生)에 의지하고, 무명은 행(行)을 의지하고 행은 무명을 의지한다. 여래는 연기를 깨치고 도달해서 이것을 널리 알리고 말해 주고 자세히 설하고 분별해 명료히 한다. 허망하지 않고 우리의 본래 면목이나 성품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에서 진여성(眞如性)·불허망성(不虛妄性)·불이여성(不異如性)을 띠고 있는 것이 바로 연기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듯이 모든 것은 입체적인 그물망에서 하나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 몰라서 특별하고 우연이라고 하는 것이지 연기법을 알게 되면 세상의 모든 일이 인과법칙에 따른 필연이라는 것을 알라는 뜻이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 인연법이고 이 인연에 따라 생기는 것을 연생법이라고 한다. 무명(無明)이 있기에 행(行)이 있고 행이 있기에 식(識)이 있다. 이렇고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리가 모이느니라. 이렇게 무명으로 인해 행이 있어서 노(老)·병(病)·사(死)와 우(憂)·비(悲)·뇌(惱)·고(苦)가 생긴다. 이들 모든 법은 연기에 존재해 머무르며(法住), 연기한 모든 법은 공하며(法空), 일체만법은 진실해 여여하며(法如), 진여법 그대로 그러하다(法爾). 다른 건 다 변해도 연기법은 그대로다. 결국, 그냥 그러한 것으로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이게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임을 알아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도리는 바로 십이연기다. 괴로움과 번뇌가 생기는 과정을 일컫는다. 이를 순관(順觀) 또는 유전연기(流轉緣起), 유전문(流轉門)이라고 하며 생사윤회의 고뇌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역관(逆觀), 또는 환멸연기(還滅緣起), 환멸문(還滅門)이라고 한다. 역관의 환멸문에서는 ‘무명이 멸하므로 행이 멸하고 내지 생이 멸하므로 노사가 멸한다’고 한다. 결국,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12연기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 무명으로 인한 모든 중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인 중도, 사성제, 연기법. 그걸 깨우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준 가장 커다란 선물이며 가르침이다.

 ※ 이 글은 ‘백일법문 (성철스님법어집)’(장경각·1992)을 정리한 불교닷컴의 ‘뜻으로 간추린 백일법문’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풀었다.

 ※ 하도겸은 NGO나마스떼코리아(www.namastekorea.org) 도반들과 함께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마음명상마당을 자원봉사로 운영하면서 자신을 바로 보는 방법을 찾고 있다. 또 칼럼을 연재하며 사회와 문화예술 종교계의 자성과 쇄신을 바라는 처지에서 더 맑고 밝은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hadogyeo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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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백일법문⑤ 부처, 중도·연기 바로 깨쳐 팔정도 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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