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샹파울로(브라질)=AP/뉴시스】브라질의 최전방 공격수 차베스 프레드(31·플루미넨세)가 네이마르(22·FC바르셀로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반란'을 노린다.
사진은 지난 7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에스타디우 시세루 폼페우 제 톨레두에서 열린 세르비아와의 평가전(1-0 승)에서 후반 13분 선제 결승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는 프레드.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대회는 지난 4년 동안 소속팀에서 팀의 우승과 개인 타이틀을 위해 칼날을 벼르고, 창 끝을 다듬어온 각국의 골잡이들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할 모처럼의 기회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어떤 골잡이들이 얼마나 거대한 '골 태풍'으로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어 놓을까.
아르헨티나의 '축구천재' 리오넬 메시(27·FC바르셀로나)와 포르투갈의 '득점머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레알 마드리드)라는 양대 '슈퍼스타'와 '개최국 브라질' 출신이라는 후광효과까지 더해진 '신성' 네이마르(22·FC바르셀로나)에게 먼저 기대가 쏠린다.
그러나 그들 뿐만 아니다. 이름 값에서는 그들보다 떨어질 지 모르지만, 지난 2010남아공월드컵의 MVP를 당시 이미 '신계(神界)'에 속했던 메시나 호날두가 아닌 우루과이의 디에고 포를란(35·세레소 오사카)이 차지했던 것처럼 브라질월드컵의 진짜 주인공을 꿈꾸는 골잡이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 중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2~2004·잉글랜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먹튀' 논란을 빚다가 퇴출된 후 비야레알(2004~2007)·아틀레티코 마드리드(2007~2011·이상 스페인)를 거치며 재기, 남아공에서 만개했던 포를란처럼 남다른 스토리를 가진 선수들을 꼽아봤다.
▲차베스 프레드(브라질)
개최국 브라질은 195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2002한일월드컵에 이어 12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려고 한다.
1950브라질월드컵에서 브라질은 결승리그(당시에는 토너먼트가 아니었음)에서 스웨덴(7-1 승)과 스페인(6-1 승)을 모두 대파하며 우승을 노렸지만, 우루과이에 1-2로 역전패해 우승을 놓쳤다. 그러나 당시에도 브라질은 MVP(지지뉴)와 득점왕(아데미르·8골)을 차지할 정도로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을 꿈꿀 수 있는 것은 네이마르가 있어서다. 하지만, 자국 출신 차세대 톱 스트라이커 디에고 코스타(26·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스페인에 빼앗긴 만큼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프레드(31·플루미넨세)가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망상일지도 모른다.
프레드는 발이 빠르거나 활동 반경이 폭넓지는 않다. 하지만 페널티박스 안에서 공을 잡으면 좀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위치 선정 능력이 좋고,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어떤 상황에서도 슈팅을 시도한다. 네이마르가 화려한 발기술·폭발적인 돌파력·천부적인 득점감각을 바탕으로 측면에서 박스 안쪽으로 파고들며 골을 작렬하는 것과 180도 다른 플레이 스타일이다. 즉, '화살' 네이마르와 '도끼' 프레드의 상호보완적 플레이가 브라질의 승리를 이끌어낸다는 얘기다.
프레드는 지난해 A매치 11경기에서 9골을 터뜨렸다. 최다 득점자 네이마르가 19경기에서 10골을 넣은 것과 비교해 8경기나 적게 출전하고도 1골 밖에 뒤지지 않는다.
A매치 통산 기록만 봐도 현 브라질대표팀에서 네이마르(49경기·31골)에 이어 2위(33경기·17골)다.
지난 2002년 브라질 리그의 명문구단 미네이루에서 프로 데뷔한 프레드는 크루제이루(2004~2005년)를 거쳐 이적료 1500만 유로(약 209억원)에 2005년 프랑스 리그앙의 명문 올림피크 리옹으로 옮겼다. 첫 시즌이었던 2005~2006시즌 리그 득점 2위(14골)에 오르는 등 2009년까지 총 5시즌 동안 88경기에서 34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3회 우승(2005~2006·2006~2007·2007~2008시즌)과 컵대회 우승(2008년)을 이끌었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지 않고 2005년 곧바로 브라질 성인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2006독일월드컵에 출전했으나 슈퍼스타급 선배들에게 밀려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2007년 코파아메리카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소집 훈련 중 입은 부상이 그의 축구 인생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프레드는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뒤 2011년까지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소속팀에서도 부상의 여파로 제대로 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해 유스 출신 카림 벤제마(27·레알 마드리드)에게 주전 자리를 내줘야 했다. 결국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진출을 포기한 채 2009년 만 26세라는 한창 나이에 자국 리그의 플루미넨세로 돌아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계 축구계가 그를 잊고 있는 동안 프레드는 와신상담했다. 마침내 2011년 브라질 리그에서 득점 2위(25경기·22골)에 오르며 부활포를 쐈다. 브라질 대표팀이 다시 그에게 러브콜을 했고 2011 코파아메리카대회를 앞두고 다시 대표팀에 승선했다. 2012년에는 리그 득점왕(20골)에 올라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66) 감독의 체제의 대표팀에서도 대표 자리를 굳혔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어떤 골잡이들이 얼마나 거대한 '골 태풍'으로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어 놓을까.
아르헨티나의 '축구천재' 리오넬 메시(27·FC바르셀로나)와 포르투갈의 '득점머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레알 마드리드)라는 양대 '슈퍼스타'와 '개최국 브라질' 출신이라는 후광효과까지 더해진 '신성' 네이마르(22·FC바르셀로나)에게 먼저 기대가 쏠린다.
그러나 그들 뿐만 아니다. 이름 값에서는 그들보다 떨어질 지 모르지만, 지난 2010남아공월드컵의 MVP를 당시 이미 '신계(神界)'에 속했던 메시나 호날두가 아닌 우루과이의 디에고 포를란(35·세레소 오사카)이 차지했던 것처럼 브라질월드컵의 진짜 주인공을 꿈꾸는 골잡이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 중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2~2004·잉글랜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먹튀' 논란을 빚다가 퇴출된 후 비야레알(2004~2007)·아틀레티코 마드리드(2007~2011·이상 스페인)를 거치며 재기, 남아공에서 만개했던 포를란처럼 남다른 스토리를 가진 선수들을 꼽아봤다.
▲차베스 프레드(브라질)
개최국 브라질은 195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2002한일월드컵에 이어 12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려고 한다.
1950브라질월드컵에서 브라질은 결승리그(당시에는 토너먼트가 아니었음)에서 스웨덴(7-1 승)과 스페인(6-1 승)을 모두 대파하며 우승을 노렸지만, 우루과이에 1-2로 역전패해 우승을 놓쳤다. 그러나 당시에도 브라질은 MVP(지지뉴)와 득점왕(아데미르·8골)을 차지할 정도로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을 꿈꿀 수 있는 것은 네이마르가 있어서다. 하지만, 자국 출신 차세대 톱 스트라이커 디에고 코스타(26·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스페인에 빼앗긴 만큼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프레드(31·플루미넨세)가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망상일지도 모른다.
프레드는 발이 빠르거나 활동 반경이 폭넓지는 않다. 하지만 페널티박스 안에서 공을 잡으면 좀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위치 선정 능력이 좋고,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어떤 상황에서도 슈팅을 시도한다. 네이마르가 화려한 발기술·폭발적인 돌파력·천부적인 득점감각을 바탕으로 측면에서 박스 안쪽으로 파고들며 골을 작렬하는 것과 180도 다른 플레이 스타일이다. 즉, '화살' 네이마르와 '도끼' 프레드의 상호보완적 플레이가 브라질의 승리를 이끌어낸다는 얘기다.
프레드는 지난해 A매치 11경기에서 9골을 터뜨렸다. 최다 득점자 네이마르가 19경기에서 10골을 넣은 것과 비교해 8경기나 적게 출전하고도 1골 밖에 뒤지지 않는다.
A매치 통산 기록만 봐도 현 브라질대표팀에서 네이마르(49경기·31골)에 이어 2위(33경기·17골)다.
지난 2002년 브라질 리그의 명문구단 미네이루에서 프로 데뷔한 프레드는 크루제이루(2004~2005년)를 거쳐 이적료 1500만 유로(약 209억원)에 2005년 프랑스 리그앙의 명문 올림피크 리옹으로 옮겼다. 첫 시즌이었던 2005~2006시즌 리그 득점 2위(14골)에 오르는 등 2009년까지 총 5시즌 동안 88경기에서 34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3회 우승(2005~2006·2006~2007·2007~2008시즌)과 컵대회 우승(2008년)을 이끌었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지 않고 2005년 곧바로 브라질 성인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2006독일월드컵에 출전했으나 슈퍼스타급 선배들에게 밀려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2007년 코파아메리카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소집 훈련 중 입은 부상이 그의 축구 인생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프레드는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뒤 2011년까지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소속팀에서도 부상의 여파로 제대로 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해 유스 출신 카림 벤제마(27·레알 마드리드)에게 주전 자리를 내줘야 했다. 결국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진출을 포기한 채 2009년 만 26세라는 한창 나이에 자국 리그의 플루미넨세로 돌아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계 축구계가 그를 잊고 있는 동안 프레드는 와신상담했다. 마침내 2011년 브라질 리그에서 득점 2위(25경기·22골)에 오르며 부활포를 쐈다. 브라질 대표팀이 다시 그에게 러브콜을 했고 2011 코파아메리카대회를 앞두고 다시 대표팀에 승선했다. 2012년에는 리그 득점왕(20골)에 올라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66) 감독의 체제의 대표팀에서도 대표 자리를 굳혔다.

【랜드로버(미국)=AP/뉴시스】디에고 코스타(26·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부상을 딛고 옛 조국 브라질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새 조국 스페인의 2연패를 이끌 각오다.
사진은 8일(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랜드로버에서 열린 스페인과 엘살바도르와의 평가전(2-0 승)에 선발 출전한 코스타(오른쪽)가 엘살바도르 선수와 공 다툼을 하는 모습.
특히 프레드는 월드컵 전초전이었던 지난해 FIFA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총 5골로 최다득점자가 되며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7월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 최강' 스페인과의 결승전(3-0 승)에서의 멀티골로 가공할 공격력을 가늠하게 했다.
프레드는 컨페더레이션스컵 이후 지난해 8월 스위스전(1-0 승)·3월 남아공전(5-0 승)에 이어 지난 4일 파나마전(4-0 승)까지 잇따른 평가전에서 득점포가 계속 침묵해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지난 7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에스타디우 시세루 폼페우 제 톨레두에서 열린 '가상의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와의 평가전(1-0 승)에서 오랜만에 골맛을 보며 독일월드컵에 이은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이자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에서의 대활약을 예고했다.
▲ 디에고 코스타(스페인)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우승컵을 빼앗긴 스페인이 정말로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0-3 참패였다.
2011년 9월 이후 FIFA 랭킹 1위를 줄곧 지켜오며 2010남아공에 이은 월드컵 2연패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던 비센테 델 보스케(64) 스페인대표팀 감독은 결국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내놓았다.
'브라질로 브라질을 잡겠다'는 그 전략을 실현할 수 있게 한 선수가 바로 브라질 태생의 코스타다
브라질 대표 발탁이 불확실했던 코스타는 지난해 10월 '키워준 나라' 스페인 대표가 돼 '낳아준 나라' 브라질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코스타는 그간의 선수 생활 자체가 드라마틱했다.
브라질 동부 세르지피에서 태어난 코스타는 만 18세이던 2006년 SC브라가(포르투갈)에서 프로 데뷔했다. 2부 리그인 뻬냐피엘 임대를 거쳐 200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로 이적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세르히오 아구에로(26·맨체스터 시티)·디에고 포를란(35·세레소 오사카) 등 걸출한 특급 골잡이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결국 코스타는 스페인 2부 리그의 셀타 비고와 알바세테 등에서 임대를 전전하다가 2009년 레알 바야돌리드로 이적했다.
레알 바야돌리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그는 2010년 바이백 조항에 의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되돌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2012년 1월 라요 바예카노로 다시 임대됐다. 라요 바예카노에서 2011~2012시즌 후반기 16경기에서 17골을 몰아넣는 맹활약을 펼친 그는 2012~2013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복귀했다.
2012~2013시즌 주포 라다멜 팔카오(28·AS모나코)가 41경기에서 34골 1도움을 올리도록 충실히 보좌하는 틈틈이 코스타 자신도 44경기에서 20골 8도움을 기록했다. 팔카오가 AS모나코로 떠난 2013~2014시즌 마침내 팀의 주포를 계승한 그는 올 시즌 리그 득점 3위(35경기·27골)에 오르는 대활약으로 18시즌 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코스타는 지난 5월18일 FC바르셀로나와의 스페인 프리메라리그 38라운드 최종전(1-1 무)에서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 부상을 입었다. 회복에 통상 3~6주 걸리지만 그는 말 태반 치료를 받으면서까지 지난 5월25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와의 올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1-4 패)에 출전했다. 팀이 1974년 준우승에 그친 이후 40년 만에 다시 꿈꾸게 된 챔스 우승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반 9분 만에 부상이 재발돼 교체아웃되면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교체카드 한 장을 허공에 날리게 됐고, 이는 후반 추가시간에 1-1 동점골 허용으로 이어지는 패전의 빌미로 작용했다.
'꿈의 무대'에서 악몽을 꾸고 말았던 코스타는 또 다른 꿈의 무대에서 한을 풀고 더 큰 꽃을 피우려고 한다. 비록 그 무대가 한때의 조국이었던 브라질이라도 상관 없다.
먼저 대표팀 합류를 제안하고, 부상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던 자신을 최종 엔트리 23명에서 빼놓지 않았던 '의리'의 델 보스케 감독과 스페인 축구계를 위해 2014~2015시즌 첼시(잉글랜드)로 떠날지도 모르는 자신이 남겨줄 선물이다. 동시에 재정이 여유롭지 않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부유한 첼시로부터 좀 더 많은 이적료를 받아낼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
프레드는 컨페더레이션스컵 이후 지난해 8월 스위스전(1-0 승)·3월 남아공전(5-0 승)에 이어 지난 4일 파나마전(4-0 승)까지 잇따른 평가전에서 득점포가 계속 침묵해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지난 7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에스타디우 시세루 폼페우 제 톨레두에서 열린 '가상의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와의 평가전(1-0 승)에서 오랜만에 골맛을 보며 독일월드컵에 이은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이자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에서의 대활약을 예고했다.
▲ 디에고 코스타(스페인)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우승컵을 빼앗긴 스페인이 정말로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0-3 참패였다.
2011년 9월 이후 FIFA 랭킹 1위를 줄곧 지켜오며 2010남아공에 이은 월드컵 2연패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던 비센테 델 보스케(64) 스페인대표팀 감독은 결국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내놓았다.
'브라질로 브라질을 잡겠다'는 그 전략을 실현할 수 있게 한 선수가 바로 브라질 태생의 코스타다
브라질 대표 발탁이 불확실했던 코스타는 지난해 10월 '키워준 나라' 스페인 대표가 돼 '낳아준 나라' 브라질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코스타는 그간의 선수 생활 자체가 드라마틱했다.
브라질 동부 세르지피에서 태어난 코스타는 만 18세이던 2006년 SC브라가(포르투갈)에서 프로 데뷔했다. 2부 리그인 뻬냐피엘 임대를 거쳐 200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로 이적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세르히오 아구에로(26·맨체스터 시티)·디에고 포를란(35·세레소 오사카) 등 걸출한 특급 골잡이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결국 코스타는 스페인 2부 리그의 셀타 비고와 알바세테 등에서 임대를 전전하다가 2009년 레알 바야돌리드로 이적했다.
레알 바야돌리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그는 2010년 바이백 조항에 의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되돌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2012년 1월 라요 바예카노로 다시 임대됐다. 라요 바예카노에서 2011~2012시즌 후반기 16경기에서 17골을 몰아넣는 맹활약을 펼친 그는 2012~2013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복귀했다.
2012~2013시즌 주포 라다멜 팔카오(28·AS모나코)가 41경기에서 34골 1도움을 올리도록 충실히 보좌하는 틈틈이 코스타 자신도 44경기에서 20골 8도움을 기록했다. 팔카오가 AS모나코로 떠난 2013~2014시즌 마침내 팀의 주포를 계승한 그는 올 시즌 리그 득점 3위(35경기·27골)에 오르는 대활약으로 18시즌 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코스타는 지난 5월18일 FC바르셀로나와의 스페인 프리메라리그 38라운드 최종전(1-1 무)에서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 부상을 입었다. 회복에 통상 3~6주 걸리지만 그는 말 태반 치료를 받으면서까지 지난 5월25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와의 올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1-4 패)에 출전했다. 팀이 1974년 준우승에 그친 이후 40년 만에 다시 꿈꾸게 된 챔스 우승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반 9분 만에 부상이 재발돼 교체아웃되면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교체카드 한 장을 허공에 날리게 됐고, 이는 후반 추가시간에 1-1 동점골 허용으로 이어지는 패전의 빌미로 작용했다.
'꿈의 무대'에서 악몽을 꾸고 말았던 코스타는 또 다른 꿈의 무대에서 한을 풀고 더 큰 꽃을 피우려고 한다. 비록 그 무대가 한때의 조국이었던 브라질이라도 상관 없다.
먼저 대표팀 합류를 제안하고, 부상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던 자신을 최종 엔트리 23명에서 빼놓지 않았던 '의리'의 델 보스케 감독과 스페인 축구계를 위해 2014~2015시즌 첼시(잉글랜드)로 떠날지도 모르는 자신이 남겨줄 선물이다. 동시에 재정이 여유롭지 않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부유한 첼시로부터 좀 더 많은 이적료를 받아낼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

【몬테비데오(우루과이)=AP/뉴시스】우루과이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27·리버풀)가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신계' 진입을 꿈꾼다.
사진은 지난해 10월16일(한국시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2014 브라질월드컵 남미예선 최종전(3-2 승)에서 공을 몰고 있는 수아레스(앞)의 모습.
지난 2010년 7월3일(한국시간)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스타디움. 우루과이와 가나의 남아공월드컵 8강전에서 양국이 1-1로 팽팽하게 맞서며 맞은 연장 후반 막판. 루이스 수아레스(27·리버풀)의 '신의 손' 사건이 일어났다.
수아레스는 가나의 도미니카 아디이아(25·카르시야카)의 헤딩슛을 손으로 막아냈다. 팀의 패배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고 해도 지나칠 정도로 비신사적인 행위였다. 결국 수아레스는 핸드볼 파울로 퇴장을 당했고, 가나에는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그러나 키커로 나선 아사모아 기안(29·알 아인)이 실축해 두 나라는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우루과이가 4-2로 가나를 누르고 4강에 진출했다.
4강전에서 우루과이는 네덜란드와 접전을 벌인 끝에 2-3로 통한의 패배를 떠안으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만약에 가나전 퇴장으로 이날 출전하지 못했던 수아레스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조별리그 A조 멕시코전(1골)·16강 한국전(2골) 등 3골을 기록한 그가 있었다면 최소한 포를란 홀로 외롭게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고, 알바로 페레이라(29·상파울루)의 후반 추가시간 후속골보다 먼저 골이 나와 네덜란드를 눌렀을 지도 모른다.
역사에 '만약에'가 있을 수 없다면 새로운 기회에서 더 잘하면 된다. 수아레즈는 그런 마음으로 4년을 별러왔다.
2013~2014시즌 리버풀(승점 84)이 EPL 우승 문턱에서 맨체스터 시티(승점 86)에 아깝게 패한 것은 그의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단련했을지도 모른다. 올 시즌 기행으로 인한 공백 없이 정상적으로 소속팀에서 활약하며 EPL 33경기에서 31골로 득점왕, 12도움으로 도움 2위에 오른 그로서는 더욱 안타까운 시즌이었을 듯 하다.
만 18세였던 2005년 자국 리그의 클럽 나시오날에서 프로 데뷔한 수아레스는 첫 시즌인 2005~2006시즌 리그 27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해 팀의 우승을 견인했다 .
2006년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흐로닝언으로 이적한 그는 2007년 명문구단 아약스로 옮겨 빅리거의 꿈을 키워갔다. 2008~2009시즌 소속팀의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그는 2009~2010시즌, 만 22세에 주장을 맡긴 팀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리그 33경기에서 무려 35골을 기록, 득점왕·에레디비지에 올해의 선수상을 독식했다.
수아레스는 2011년 이적료 2650만 유로(약 369억원)에 리버풀로 향했다. 수아레스의 가세로 1월 중순까지 EPL 12위였던 리버풀은 6위로 2010~2011시즌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수아레스는 2011~2012 EPL 31경기에서 11골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득점왕 경쟁에 나서 2012~2013시즌 33경기에서 22골로 2위에 오른 뒤 2013~2014시즌 마침내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 2011년 10월 세네갈 출신 수비수 파트리스 에브라(3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으로 인한 8경기 출장정지. 2013년 4월 수비수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30·첼시)의 팔을 깨무는 폭력 행사에 따른 10경기 출전정지 등을 당한 것 등이 아니었다면 더욱 빨리 득점왕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수아레스는 2010남아공월드컵에서의 아쉬움을 2011년 코파아메리카대회에서 우루과이가 우승하는 것으로 조금 덜어냈다. 수아레스는 4골을 기록하며 MVP를 차지했다 .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도 11골을 넣어 메시(10골)까지 누르고 남미 지역 선수 중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스피드·드리블·슈팅·연계 플레이·승부욕 등 축구선수로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수아레스는 지난해 9월 아들을 얻은 뒤에는 부족했던 '인성'까지 채웠다. 그가 징계를 받지 않게 되자 득점왕도, 팀의 리그 선두권 도약도 모두 이룰 수 있었다.
수아레스는 브라질월드컵에서 우루과이의 우승을 꿈꾸고 있다. 동시에 남아공월드컵에서 포를란이 차지했던 골든볼을 이어받겠다는 각오다. 이를 통해 호불호가 엇갈리지 않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신계의 슈퍼스타'로 거듭 나고자 한다. 지난 5월 대표팀 훈련과정에서 입은 왼무릎 연골 부상 쯤은 거뜬히 이겨낼 것이다. '인간승리'가 그를 신계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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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레스는 가나의 도미니카 아디이아(25·카르시야카)의 헤딩슛을 손으로 막아냈다. 팀의 패배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고 해도 지나칠 정도로 비신사적인 행위였다. 결국 수아레스는 핸드볼 파울로 퇴장을 당했고, 가나에는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그러나 키커로 나선 아사모아 기안(29·알 아인)이 실축해 두 나라는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우루과이가 4-2로 가나를 누르고 4강에 진출했다.
4강전에서 우루과이는 네덜란드와 접전을 벌인 끝에 2-3로 통한의 패배를 떠안으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만약에 가나전 퇴장으로 이날 출전하지 못했던 수아레스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조별리그 A조 멕시코전(1골)·16강 한국전(2골) 등 3골을 기록한 그가 있었다면 최소한 포를란 홀로 외롭게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고, 알바로 페레이라(29·상파울루)의 후반 추가시간 후속골보다 먼저 골이 나와 네덜란드를 눌렀을 지도 모른다.
역사에 '만약에'가 있을 수 없다면 새로운 기회에서 더 잘하면 된다. 수아레즈는 그런 마음으로 4년을 별러왔다.
2013~2014시즌 리버풀(승점 84)이 EPL 우승 문턱에서 맨체스터 시티(승점 86)에 아깝게 패한 것은 그의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단련했을지도 모른다. 올 시즌 기행으로 인한 공백 없이 정상적으로 소속팀에서 활약하며 EPL 33경기에서 31골로 득점왕, 12도움으로 도움 2위에 오른 그로서는 더욱 안타까운 시즌이었을 듯 하다.
만 18세였던 2005년 자국 리그의 클럽 나시오날에서 프로 데뷔한 수아레스는 첫 시즌인 2005~2006시즌 리그 27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해 팀의 우승을 견인했다 .
2006년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흐로닝언으로 이적한 그는 2007년 명문구단 아약스로 옮겨 빅리거의 꿈을 키워갔다. 2008~2009시즌 소속팀의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그는 2009~2010시즌, 만 22세에 주장을 맡긴 팀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리그 33경기에서 무려 35골을 기록, 득점왕·에레디비지에 올해의 선수상을 독식했다.
수아레스는 2011년 이적료 2650만 유로(약 369억원)에 리버풀로 향했다. 수아레스의 가세로 1월 중순까지 EPL 12위였던 리버풀은 6위로 2010~2011시즌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수아레스는 2011~2012 EPL 31경기에서 11골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득점왕 경쟁에 나서 2012~2013시즌 33경기에서 22골로 2위에 오른 뒤 2013~2014시즌 마침내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 2011년 10월 세네갈 출신 수비수 파트리스 에브라(3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으로 인한 8경기 출장정지. 2013년 4월 수비수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30·첼시)의 팔을 깨무는 폭력 행사에 따른 10경기 출전정지 등을 당한 것 등이 아니었다면 더욱 빨리 득점왕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수아레스는 2010남아공월드컵에서의 아쉬움을 2011년 코파아메리카대회에서 우루과이가 우승하는 것으로 조금 덜어냈다. 수아레스는 4골을 기록하며 MVP를 차지했다 .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도 11골을 넣어 메시(10골)까지 누르고 남미 지역 선수 중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스피드·드리블·슈팅·연계 플레이·승부욕 등 축구선수로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수아레스는 지난해 9월 아들을 얻은 뒤에는 부족했던 '인성'까지 채웠다. 그가 징계를 받지 않게 되자 득점왕도, 팀의 리그 선두권 도약도 모두 이룰 수 있었다.
수아레스는 브라질월드컵에서 우루과이의 우승을 꿈꾸고 있다. 동시에 남아공월드컵에서 포를란이 차지했던 골든볼을 이어받겠다는 각오다. 이를 통해 호불호가 엇갈리지 않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신계의 슈퍼스타'로 거듭 나고자 한다. 지난 5월 대표팀 훈련과정에서 입은 왼무릎 연골 부상 쯤은 거뜬히 이겨낼 것이다. '인간승리'가 그를 신계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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