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통신 수단 '봉수'…충북 20여 곳]

기사등록 2014/05/07 15:20:36

최종수정 2016/12/28 12:43:16

 【청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세월호 참사가 첨단 통신시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인재로 드러난 가운데 조선시대 신속한 통신 방법은 불과 연기를 이용한 봉수가 꼽힌다. 사진은 2009년 복원된 충북 청주의 것대산 봉수대. 2014.05.07.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청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세월호 참사가 첨단 통신시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인재로 드러난 가운데 조선시대 신속한 통신 방법은 불과 연기를 이용한 봉수가 꼽힌다. 사진은 2009년 복원된 충북 청주의 것대산 봉수대. 2014.05.07. (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청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비탄에 빠진 지 7일로 3주일이 됐다.

 이번 사고는 세월호 선원과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 등 통신에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첨단 시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인재(人災)라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식 우편과 전기통신이 창시되기 전 조선시대에는 국난 등 비상 상황에서 어떤 통신 방법으로 급히 연락을 주고받았을까.

 당시에는 인편(人便)이나 역마(驛馬)보다도 가장 신속하고 효용성을 발휘했던 것이 봉수(烽燧)였다.

 봉수는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올렸고 다섯 개로 봉수대를 구성했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고문헌을 보면 평상시에는 1거(炬)로, 적이 국경 부근에 나타나면 2거, 적이 국경 가까이 오면 3거, 국경을 넘어오면 4거, 적과 전투가 벌어지면 5거로 신호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충북지역에는 대략 20개 정도의 봉수대가 있었다.

 청주 것대산(巨叱大山) 봉수를 비롯해 청원 소이산(所伊山) 봉수, 충주 심항산(心項山) 봉수, 제천 오현(吾峴) 봉수, 단양 소이산(所伊山) 봉수, 보은 용산점(龍山岾) 봉수, 옥천 환산(環山) 봉수, 영동 박달라산(朴達羅山) 봉수, 진천 소을산(所乙山) 봉수, 음성 가섭산(迦葉山) 봉수 등이다.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산 107-2 것대산 봉수는 청원군 문의 소이산에서 받아 진천 소을산으로 전달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거질대산(것대산) 봉수는 고을 동쪽 11리에 있으며 남쪽으로 문의현 소이산 봉수와 대응하고 북쪽으로는 진천현 소을산 봉수와 대응한다"고 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해발 403m 산봉우리에 위치한 것대산 봉수대는 청주시가 2009년 문화재 보수사업으로 1억4000만원을 들여 복원했다.

 청주시는 앞서 2004년 충북에서 열린 79회 전국체전을 앞두고 1기의 봉수대를 재현했고 정월 대보름을 맞아서는 청주문화사랑모임이 것대산 봉화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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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통신 수단 '봉수'…충북 20여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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