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기대가 너무 컸나, 범작에 그친 뮤지컬 '태양왕'

기사등록 2014/04/15 07:21:00

최종수정 2016/12/28 12:36:58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뮤지컬 '태양왕'은 공연 제작사의 색깔이 극명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모차르트!'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등 중세 유럽풍의 대형 뮤지컬로 잇따라 흥행에 성공한 EMK뮤지컬컴퍼니(대표 엄홍현), 클래식 기획사 마스트미디어의 자매 회사로 '노트르담 드 파리' 등 프랑스 뮤지컬을 선보인 마스트엔터테인먼트(대표 김용관)가 의기투합했다. 두 회사는 지난해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라이선스 공연을 합작, 평균 객석점유율 90% 이상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17세기 프랑스 절대주의 시대의 대표적 전제 군주인 루이14세의 일대기를 담은 '태양왕' 역시 프랑스 뮤지컬이다. 이번이 국내 첫 라이선스로 '노트르담 드 파리'처럼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화려한 안무와 애크러배틱이 인상적이다. 총 70억원의 제작비와 360여벌의 의상에서 보듯 화려함이 또 다른 특징이다.

 베르사유 궁전 등 프랑스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대를 무대 위로 옮긴만큼 '태양왕'의 무대는 황홀하다. 무대디자이너 서숙진, 의상디자이너 한정임, 영상디자이너 송승규 등의 스태프는 빠른 전환의 무대와 사실감 있는 의상, 이질감이 없는 영상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파리의 근위대장인 '페뷔스'가 집시 '에스멜라다'와 약혼녀 사이에서 고뇌할 때 투명막 뒤에서 무용수들이 핀 조명을 받아 그의 감정을 대변하는 격렬한 춤사위를 선보이는 것처럼 '태양왕'에서도 등장 인물들의 감정을 대신하는 무용수들의 몸짓이 눈길을 끈다. 애크러배틱을 구사하는 무용수들은 수시로 와이어에 매달려 고난도 몸짓으로 볼거리를 풍성케 한다.  

 가요를 연상케 하는 곡들을 포함해 다양한 장르의 뮤지컬 넘버도 귓가에 맴돈다. 넘버를 담은 음반이 150만장 이상 판매된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왕이 되리라' '하늘과 땅이 사이' 등의 넘버는 들으면 한번에 귀에 꽂힐 정도로 친숙한 멜로디가 일품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이야기 전개가 헐거워 다소 맥이 빠진다. 루이14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세 여인과 사랑에 초점을 맞춘 부분은 로맨틱한 장르인 뮤지컬이므로 이해는 된다. 하지만 루이14세가 자신을 걱정하는 한 마디에 '프랑수아즈'와 사랑에 빠지는 등 그 사랑의 절실함을 느끼게 해줄 개연성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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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에 대한 부담과 금지된 사랑, 왕정의 비밀 등 태양왕으로 불린 루이14세가 절대 왕권을 구축하면서 느꼈을 고뇌와 고민이 마냥 뒷전으로 밀렸다. 이로 인해 긴장감이 떨어진다.

 루이14세가 성인이 되기까지 섭정을 하는 '마자랭 추기경'과의 대립 구조가 특히 뚜렷하지 않다. 루이14세의 심복인 '보포르 공작'은 마자랭의 음모로 감옥에 갇힌다. 추기경을 무너뜨리는 반전과 연결되는 장면인데,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설명이 없을 뿐더러 윤곽으로나마 맥락이 그려지지도 않는다.  

 '힘이 아닌 매력과 예술로 정권을 제압했던' 루이14세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와 의상을 보여준다는 제작사의 호언은 관객들의 눈을 현혹하는 데만 그친다.

 EMK뮤지컬컴퍼니는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 작품이 주를 이루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 유럽뮤지컬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게 재창조하는 점이 특징이다.

 '태양의 서커스'를 국내에 선보인 마스트엔터테인먼트와 손잡은 '태양왕'으로 기존 한국 뮤지컬 시장과 또 다른 풍의 작품을 선보이려는 시도는 신선했다. 그러나 루이14세를 평면적인 인물로 그리며 커다란 특징이 없는 작품에 그쳤다.  

 마자랭 추기경과 루이14세의 모친인 안느 대비가 루이14에게 강조한 것은 평범한 남자가 아니다. 루이14세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사랑을 부각하려는 점은 알겠으나 극적 긴장감 없는 전개로 루이14세뿐 아니라 작품 자체도 평범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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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스타 안재욱(43)이 루이14세로 변신했다.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가창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배역이다. 안재욱은 그런데 가창력보다는 안정된 연기력이 무기인 배우다. 맥락 없이 그려지는 루이14세를 분투하며 연기하지만, 몇몇 곡은 힘에 겨워 보인다. 한류스타답게 공연장 안은 일본·중국인 팬들의 환호로 뜨겁다. 지난해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출연 당시 지주막하출혈로 걱정을 산 그는 수술 뒤 회복했다. '태양왕'이 컴백작으로 건강에는 큰 무리가 없어보인다.

 루이14세의 동생으로 기품 있고 이지적인 인물인 '필립'을 연기하는 뮤지컬배우 정원영(29)은 물 만난 듯 무대에서 뛰어논다. 뮤지컬 '스트릿 라이프' '완득이' 등에 출연한 그는 대형뮤지컬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진지하게 흐를 수 있는 극에 리듬을 부여하는데 기여한다. '보로프 공작' 역의 조휘(33) 등 조연진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뒤를 받친다.

 SBS TV '별에서 온 그대'로 주가를 높인 뮤지컬배우 신성록이 안재욱과 함께 루이14세를 번갈아 연기한다. 방황하는 루이14세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그의 마지막 사랑 프랑수아즈 역에 뮤지컬배우 김소현과 윤공주가 더블 캐스팅됐다. 필립은 정원영과 뮤지컬배우 김승대가 나눠맡는다. 루이14세의 첫사랑 마리는 뮤지컬배우 임혜영과 정재은이 연기한다.

 연출 박인선, 음악감독 원미솔, 안무 정도영 등이 힘을 보탠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6월1일까지 볼 수 있다. 6만~13만원. EMK뮤지컬컴퍼니. 02-6391-6333

 역사상 가장 화려한 군주 루이14세, 평범한 남자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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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기대가 너무 컸나, 범작에 그친 뮤지컬 '태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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