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 잡부가 시집 속으로 끌어들인 바다, 성윤석 '멍게'

기사등록 2014/04/13 07:31:00

최종수정 2016/12/28 12:36:20

【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 멍게 (성윤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시인 성윤석(48)의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부둣가를 누비며 틈틈이 쓴 시를 추려 74편을 담았다.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 어물전에선/ 머리 따윈 필요 없어. 중도매인 박씨는 견습인 내 안경을 가리키고/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멍게’ 중)

 시인은 극장을 드나들던 소년(‘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1996)에서 묘지 관리인(‘공중 묘지’ 2007)을 거쳐 남쪽의 바닷가 도시 마산에 정착했다. 스스로를 ’잡부‘라 부르며 어시장에서 냉동 생선상자를 배달하거나 냉동생선을 손질하는 일을 했다.

 “저 바다 위 하늘에/ 공중의 시간과 구름에 구멍을 내어 내 팔뚝을 쑥 집어넣어/ 멀리 있는 그대의 손을 잡고 다시 악수할 수 있다면// 가거나 떠나거나, 바다의 일은 아니라// 그러니 둘이 여기까지 와서/ 괜히 바다에만 말 걸지 마라.”(‘바다傳’ 전문)

 시집 ‘멍게’는 바다다. 시를 잊고 지내던 시인이 어시장에서 일하며, 어시장 상인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를 쓴 까닭이다. 시집에는 멍게를 비롯해 문어, 상어, 해월(해파리), 사람이 된 생선(임연수), 빨간고기(적어), 호루래기(오징어의 새끼) 등 수산생물들이 팔딱거리고 있다. 비릿한 짠맛이 눈으로 읽힌다.

 “사람이 된 생선이 있다/ 임연수라는 바다 생선인데 함경북도에 사는 임연수라는/ 이가 잘 낚았다 해서 임연수라고 부른다 임연수가 임연수를/ 먹은 셈인데, 임연수는 참 맛있는 생선이라/ 손님들이 매일 불러 사람 이름을 얻었다.”(‘임연수’ 중)

 수산생물처럼 팔딱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시인은 넓은 눈으로 마주한 이야기들을 건져 올렸다. 시집에는 아내가 죽은 날 자꾸 엉뚱한 가게에 생선 궤짝을 부려놓는 용 문신을 한 짐꾼(‘바다 악장’), 매일같이 ‘한 번 만나고 안 만나주는 여자를 찾아’가는 사내(‘저 서평’) 등 사연 있는 인물들이 저마다의 맛을 내고 있다. 이는 시인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을 후려쳐 파출소 간 게 미안해서, 더 이상 술 얻어먹기 미안해서 헤어진 여자 곁에 사는 게 미안해서, 반월동 마산 바다 반달 하나를 팔뚝에 문신하고 원양선 타러 간 사내가 생갔났다. 나도 그 사내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다. 같이 간다고 해놓고 안 갔다.”(‘어부가 된 고양이’ 중)

 시인은 5월31일까지 경남 창원시립 마산박물관에서 ‘어시장 시 특별전‘울 연다. 시집에 수록된 시 50여편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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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 잡부가 시집 속으로 끌어들인 바다, 성윤석 '멍게'

기사등록 2014/04/13 07:31:00 최초수정 2016/12/28 12: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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