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삶이야기 禪이야기’ <78>
작년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당시 관장 원학스님)이 삼국유사와 연계해 경북 군위 인각사의 면모를 조명하는 특별전을 연 적이 있다. ‘인각사와 삼국유사’ 기획전이다. 인각사와 삼국유사의 역사를 직·간접으로 증언하는 관련 유물 77건 195점을 선보였다. 이 중에는 보물 5건 7점, 시도유형문화재 3건 3점이 포함됐지만, 정작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스님의 현존하는 또 다른 저서 중편조동오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한 권도 없기 때문이다.
책 제목 가운데 ‘조동오위’란 중국의 동산양개(動産良介)가 제창한 편정오위설(偏正五位說)을 말한다. 정중편(正中偏)·편중정(偏中正)·정중래(正中來)·편중지(偏中至)·겸중도(兼中到) 등의 오위에 조산본적(曹山本寂)이 주(註)를 덧붙임으로써 조동종의 근본사상이 됐다. 일연스님은 이를 재편해서 이 오위에 각각 군신을 대비시켜 군신오위설(君臣五位說)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중편조동오위라고 하게 됐다.
보각국존 즉 국사로 활약했던 일연(1206~1289)스님의 저술은 10종 100여권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하지만 그의 현전 저술은 삼국유사(5권)와 중편조동오위(3권) 두 종뿐이다. 삼국유사는 국보로도 지정됐지만, 중편조동오위는 1984년 연세대학교의 사학자이자 서지학자인 고 민영규(閔泳珪) 선생이 일본 경도대학(京都大學) 인문대학의 도서관에서 찾아서 알려지게 됐다. 일본에서도 한권 밖에 보고되지 않은 귀한 책이다. 1680년 우리나라 조선 숙종 6년에 해당하는 연보 일본어로는 엔포(延寶) 8년간에 일본에서 간행됐다.
이 책은 민지(閔漬)가 쓴 일연스님의 비문에는 2권이었지만, 조동종전서 등에는 3권으로 실려 있다. 내용이 첨삭돼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편제가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연스님의 자인 회연(晦然)이 선명하게 보이므로 산술적으로 적어도 3분의 2 이상은 일연스님의 것이 맞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 책은 연세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인문과학(人文科學) 제31집과 동국대에서 간행한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제5책 수록돼 있다. 물론 근래 번역본도 나와 있어 도서관에 가면 누구나 참조할 수 있다.
조계종이 종조로 모시기 시작한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지눌의 수선사(修禪社)계통의 간화선(看話禪)과는 다르게 조동종의 묵조선(默照禪)에 대해서 어떤 이유였는지 일연은 관심을 뒀다. 그가 실제로 화두를 잡는 간화선을 했는지 묵조선을 했는지 아니면 간화선을 하기 위해 조동선을 했는지 그 반대인지는 판정할 수 없다. 사실 판정할 이유도 없다. 확실한 사실은 당시 고려에 유통되던 ‘조동오위’가 잘못된 부분이 적지 않아 두륜산 길상암에 머물던 일연스님이 1256년 새롭게 오·탈자 등의 내용을 수정하고 자신의 견해까지 보태서 ‘중편조동오위’를 낸 것이므로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일연스님이 어떤 참선을 했는지 알아 가면 될 것이다.
묵조선은 모든 생각과 분별을 뛰어넘은 절대의 심성인 ‘묵’에 일체 진리가 본래 완성돼 있다[本證自覺]고 한다. 따라서 좌선만 하면[只管他坐] 공안 즉 깨달음이 드러난다[現成公案]고 주장한다. 송나라 굉지정각(宏智正覺)의 묵조선은 고려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수미산파(須彌山派)의 진철이엄(眞澈利嚴)에 의해 본격화됐다. 다른 구산선문인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한 일연이 간화선을 했든 묵조선을 했던 깨달음의 길에 들어선 수행자로서는 어느 쪽이든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구산문사선(九山門四選)의 으뜸이 되고 승과의 선불장(選佛場)에 응시해 장원에 급제하기도 한 그에게서 묵조선이나 간화선은 그냥 세상 사람들의 알음알이에 따른 ‘분별’일 뿐이었을 것이다. ‘중편조동오위’를 짓고 3년도 안 돼 대선사(大禪師)에 제수받은 것도 그가 모든 선에 능통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 정도 경지에 오른 수행자에게 있어 어쩌면 간화선이니 묵조선이니 하는 구별도 무의미할 수 있다. 일연스님이 입적할 때 손으로 금강인(金剛印)을 맺은 것은 밀교의 마하무드라 수행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금보다 많이 경색돼 있을지도 모르지만, 깨달음의 길에는 국경은 없다. 하물며 같은 불교 안에서 참선 수행하는데 그게 무엇이든 어떤 문제가 있겠는가?
중편조동오위 서문에는 ‘해인(海印)이 빛을 잃으면 손가락을 만져도 묘한 일이 없다. 보는 바를 고집하는 미혹(迷惑)이 있게 된다. 이루어진 것이 하나가 못되며 주장을 고집해 잊지 않음은 양도(良導)의 우려(憂慮)하는 바이다’고 서술하고 있다. 마음이라는 게 물질이 아닌 비물질인데 여기에 새긴다는 것은 바다에 도장을 찍는 해인과도 비슷하다. 결국, 마음에 광명으로 새기는 것임을 말한다. 무명을 밝히는 작업이기에 그렇다. 참된 참선 수행을 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 특히 경전이나 선어록을 통해 말만 배운 이들에게는 어렵다.
조금 풀어보자면, 우리가 뭔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결국 무명에서 사는 중생이 마음으로 삶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건 멀리 숙세로부터 가까이는 이생에서 과거의 상처로 받아들인 것들이 제대로 치유나 치료도 안 돼, 제대로 아물지 않아 아직도 안타깝게도 아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픔이나 고통인지도 모르고 무지 속에서 사는 게 중생들이다. 이러한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어두운 마음에 빛을 들여 무명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과 그로 인해 조금씩 나아지게 하는 것이다. 훈제요리를 하듯 조금씩 자주 천천히 나아지게 하는 것을 훈습이라고 하며 훈증이 아닌 광명으로 마음을 밝혀가는 것이 해인이기도 하다. 밝히는 도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본래면목이며 그 방법을 우린 회광반조라고 한다. 이런 해인을 하는 사람은 걸리거나 집착하는 것이 없기에 옛것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연스님의 선지식으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고려 시대 일연스님이 쓴 이 책은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한 권도 없다. 그래서 전시조차 할 수 없다. 일본에서 간행된 것도 1권밖에 없는 이 책을 혜일스님은 1988년 일본의 칸다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샀다. 제주 정방사에서 본 이 책의 상태는 참으로 좋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에 문의한 결과,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인이 저술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고 외국에서 간행된 고서가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된 바는 없다. 외국에서는 다른 국가의 국보급 보물들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이 저술한 유일본 고서 등의 동산자료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다만, 담당자는 관련 학자·연구자들이 그 가치를 인정한다면 지방유형문화재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부언한다.
더 많은 조사와 연구를 위해서 스님은 동아시아고대학회(회장 이상준 인천대 교수)와 공동으로 7월 12일 ‘조동선과 일연의 중편조동오위’ 관련 한·중·일 국제학술대회를 한국불교태고종 법륜사 1층 대강당에서 연다. 중국 중앙민족대의 왕슈린(王秀林) 교수, 일본 츠루미대(鶴見大) 교수 및 요코쿠지(養國寺) 주지인 시모무로 가쿠도(下室覺道), 동국대 정영식 연구교수 등이 발표에 나선다.
* 혜일 스님은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서귀포 구룡사에서 출가해 덕암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71년 서울 법륜사에서 정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고 1975년 서울 봉원사에서 묵담스님을 계사로 대승계를 수지했다. 법륜사 강원에서 대교과 졸업한 후에 다시 1980년 선암사 불교전통강원을 졸업했다. 이후 만행을 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90년 다이쇼대학 불교대학원 수료했다. 1993년 불이성 법륜사의 주지로 취임했으며 1995년 이후 사단법인 대륜불교문화연구원의 이사·서울교도소 교화위원·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 재무부장·제주도 서귀포시 정방사 주지·제주교구종무원 포교위원장·제주교구 교육원장·사정원장,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 교류협력실장·특별사면복권위원회 위원·제주교구종무원 지방종회의원·총무원 법규위원회 법규위원 등을 거쳤다. 2007년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으로부터 종사법계 품수받았다. 2013년 한국불교태고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무대행)을 거쳐 현재 중앙강원장으로 수행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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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당시 관장 원학스님)이 삼국유사와 연계해 경북 군위 인각사의 면모를 조명하는 특별전을 연 적이 있다. ‘인각사와 삼국유사’ 기획전이다. 인각사와 삼국유사의 역사를 직·간접으로 증언하는 관련 유물 77건 195점을 선보였다. 이 중에는 보물 5건 7점, 시도유형문화재 3건 3점이 포함됐지만, 정작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스님의 현존하는 또 다른 저서 중편조동오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한 권도 없기 때문이다.
책 제목 가운데 ‘조동오위’란 중국의 동산양개(動産良介)가 제창한 편정오위설(偏正五位說)을 말한다. 정중편(正中偏)·편중정(偏中正)·정중래(正中來)·편중지(偏中至)·겸중도(兼中到) 등의 오위에 조산본적(曹山本寂)이 주(註)를 덧붙임으로써 조동종의 근본사상이 됐다. 일연스님은 이를 재편해서 이 오위에 각각 군신을 대비시켜 군신오위설(君臣五位說)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중편조동오위라고 하게 됐다.
보각국존 즉 국사로 활약했던 일연(1206~1289)스님의 저술은 10종 100여권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하지만 그의 현전 저술은 삼국유사(5권)와 중편조동오위(3권) 두 종뿐이다. 삼국유사는 국보로도 지정됐지만, 중편조동오위는 1984년 연세대학교의 사학자이자 서지학자인 고 민영규(閔泳珪) 선생이 일본 경도대학(京都大學) 인문대학의 도서관에서 찾아서 알려지게 됐다. 일본에서도 한권 밖에 보고되지 않은 귀한 책이다. 1680년 우리나라 조선 숙종 6년에 해당하는 연보 일본어로는 엔포(延寶) 8년간에 일본에서 간행됐다.
이 책은 민지(閔漬)가 쓴 일연스님의 비문에는 2권이었지만, 조동종전서 등에는 3권으로 실려 있다. 내용이 첨삭돼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편제가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연스님의 자인 회연(晦然)이 선명하게 보이므로 산술적으로 적어도 3분의 2 이상은 일연스님의 것이 맞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 책은 연세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인문과학(人文科學) 제31집과 동국대에서 간행한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제5책 수록돼 있다. 물론 근래 번역본도 나와 있어 도서관에 가면 누구나 참조할 수 있다.
조계종이 종조로 모시기 시작한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지눌의 수선사(修禪社)계통의 간화선(看話禪)과는 다르게 조동종의 묵조선(默照禪)에 대해서 어떤 이유였는지 일연은 관심을 뒀다. 그가 실제로 화두를 잡는 간화선을 했는지 묵조선을 했는지 아니면 간화선을 하기 위해 조동선을 했는지 그 반대인지는 판정할 수 없다. 사실 판정할 이유도 없다. 확실한 사실은 당시 고려에 유통되던 ‘조동오위’가 잘못된 부분이 적지 않아 두륜산 길상암에 머물던 일연스님이 1256년 새롭게 오·탈자 등의 내용을 수정하고 자신의 견해까지 보태서 ‘중편조동오위’를 낸 것이므로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일연스님이 어떤 참선을 했는지 알아 가면 될 것이다.
묵조선은 모든 생각과 분별을 뛰어넘은 절대의 심성인 ‘묵’에 일체 진리가 본래 완성돼 있다[本證自覺]고 한다. 따라서 좌선만 하면[只管他坐] 공안 즉 깨달음이 드러난다[現成公案]고 주장한다. 송나라 굉지정각(宏智正覺)의 묵조선은 고려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수미산파(須彌山派)의 진철이엄(眞澈利嚴)에 의해 본격화됐다. 다른 구산선문인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한 일연이 간화선을 했든 묵조선을 했던 깨달음의 길에 들어선 수행자로서는 어느 쪽이든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구산문사선(九山門四選)의 으뜸이 되고 승과의 선불장(選佛場)에 응시해 장원에 급제하기도 한 그에게서 묵조선이나 간화선은 그냥 세상 사람들의 알음알이에 따른 ‘분별’일 뿐이었을 것이다. ‘중편조동오위’를 짓고 3년도 안 돼 대선사(大禪師)에 제수받은 것도 그가 모든 선에 능통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 정도 경지에 오른 수행자에게 있어 어쩌면 간화선이니 묵조선이니 하는 구별도 무의미할 수 있다. 일연스님이 입적할 때 손으로 금강인(金剛印)을 맺은 것은 밀교의 마하무드라 수행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금보다 많이 경색돼 있을지도 모르지만, 깨달음의 길에는 국경은 없다. 하물며 같은 불교 안에서 참선 수행하는데 그게 무엇이든 어떤 문제가 있겠는가?
중편조동오위 서문에는 ‘해인(海印)이 빛을 잃으면 손가락을 만져도 묘한 일이 없다. 보는 바를 고집하는 미혹(迷惑)이 있게 된다. 이루어진 것이 하나가 못되며 주장을 고집해 잊지 않음은 양도(良導)의 우려(憂慮)하는 바이다’고 서술하고 있다. 마음이라는 게 물질이 아닌 비물질인데 여기에 새긴다는 것은 바다에 도장을 찍는 해인과도 비슷하다. 결국, 마음에 광명으로 새기는 것임을 말한다. 무명을 밝히는 작업이기에 그렇다. 참된 참선 수행을 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 특히 경전이나 선어록을 통해 말만 배운 이들에게는 어렵다.
조금 풀어보자면, 우리가 뭔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결국 무명에서 사는 중생이 마음으로 삶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건 멀리 숙세로부터 가까이는 이생에서 과거의 상처로 받아들인 것들이 제대로 치유나 치료도 안 돼, 제대로 아물지 않아 아직도 안타깝게도 아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픔이나 고통인지도 모르고 무지 속에서 사는 게 중생들이다. 이러한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어두운 마음에 빛을 들여 무명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과 그로 인해 조금씩 나아지게 하는 것이다. 훈제요리를 하듯 조금씩 자주 천천히 나아지게 하는 것을 훈습이라고 하며 훈증이 아닌 광명으로 마음을 밝혀가는 것이 해인이기도 하다. 밝히는 도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본래면목이며 그 방법을 우린 회광반조라고 한다. 이런 해인을 하는 사람은 걸리거나 집착하는 것이 없기에 옛것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연스님의 선지식으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고려 시대 일연스님이 쓴 이 책은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한 권도 없다. 그래서 전시조차 할 수 없다. 일본에서 간행된 것도 1권밖에 없는 이 책을 혜일스님은 1988년 일본의 칸다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샀다. 제주 정방사에서 본 이 책의 상태는 참으로 좋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에 문의한 결과,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인이 저술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고 외국에서 간행된 고서가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된 바는 없다. 외국에서는 다른 국가의 국보급 보물들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이 저술한 유일본 고서 등의 동산자료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다만, 담당자는 관련 학자·연구자들이 그 가치를 인정한다면 지방유형문화재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부언한다.
더 많은 조사와 연구를 위해서 스님은 동아시아고대학회(회장 이상준 인천대 교수)와 공동으로 7월 12일 ‘조동선과 일연의 중편조동오위’ 관련 한·중·일 국제학술대회를 한국불교태고종 법륜사 1층 대강당에서 연다. 중국 중앙민족대의 왕슈린(王秀林) 교수, 일본 츠루미대(鶴見大) 교수 및 요코쿠지(養國寺) 주지인 시모무로 가쿠도(下室覺道), 동국대 정영식 연구교수 등이 발표에 나선다.
* 혜일 스님은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서귀포 구룡사에서 출가해 덕암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71년 서울 법륜사에서 정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고 1975년 서울 봉원사에서 묵담스님을 계사로 대승계를 수지했다. 법륜사 강원에서 대교과 졸업한 후에 다시 1980년 선암사 불교전통강원을 졸업했다. 이후 만행을 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90년 다이쇼대학 불교대학원 수료했다. 1993년 불이성 법륜사의 주지로 취임했으며 1995년 이후 사단법인 대륜불교문화연구원의 이사·서울교도소 교화위원·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 재무부장·제주도 서귀포시 정방사 주지·제주교구종무원 포교위원장·제주교구 교육원장·사정원장,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 교류협력실장·특별사면복권위원회 위원·제주교구종무원 지방종회의원·총무원 법규위원회 법규위원 등을 거쳤다. 2007년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으로부터 종사법계 품수받았다. 2013년 한국불교태고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무대행)을 거쳐 현재 중앙강원장으로 수행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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