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수행자, 메스를 든 외과의사와 같다

기사등록 2014/02/06 07:01:00

최종수정 2016/12/28 12:14:53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삶이야기 禪이야기’ <51>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영화와 소설에도 등장한 ‘화엄경’은 지혜와 덕으로 온 세상을 비추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Vairocana)의 화신인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에 그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설법한 경전이다. 정식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인데 이는 불법(佛法)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하여 모든 중생과 사물을 아우르고 있어서 마치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곧 화엄은 온갖 분별과 대립이 극복된 이상적인 불국토(佛國土)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화엄의 사상은 모든 존재와 현상이 서로 끊임없이 연관돼 있다는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과 있는 그대로가 바로 불성(佛性)의 드러남이라는 성기설(性起說)로 이해되고 있다. 법계연기설은 부처님 설법의 근간이 되는 연기다. 현상 세계의 모든 사물이 겉으로는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홀로 있거나 홀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어 다 같이 서로 원인이 되거나 결과가 되는 또는 파급이나 영향을 받는다는 무한한 그물망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견해다. 이러한 태도에서 화엄 사상은 영화 ‘삼총사’의 구호처럼 하나를 위한 모두이며 모두를 위한 하나이다. 이처럼 우주 만물뿐만 아니라 일체의 사건 등이 그물망 같은 인드라망이 돼 서로 원융(圓融)하여 무한하고 끝없는 조화를 이룬다.

 성기설이란 모든 존재를 부처의 성품이 발현된 것으로 보는 견해다. 따라서 이 현상계 밖에 따로 진리의 세계나 실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현상계를 절대적으로 긍정한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여래가 될 수 있는 부처의 씨앗을 가진 존재로 언젠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데서 더 나아가 지금 여기서 이 몸으로 바로 부처로 살게 하는 가르침을 여래 성기 줄여서 성기(性起)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의상(義湘)이 668년에 저술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가운데 ‘법성게’는 ‘화엄경’의 근본정신과 깨달음의 과정을 간결하게 시로 축약한 210자의 글이다. ‘화엄일승법계’란 ‘가지가지의 꽃으로 장엄한 일승의 진리로운 세계의 모습’을 의미한다. 유불선 3교에 회통했던 ‘오대산 사자’ 탄허 스님(1913∼1983)이 1977년 월정사에서 ‘신화엄경합론’을 백일 동안 법문을 한 것이 유명하다. 탄허 스님은 불전번역 즉 역경과 관련된 업적은 한국 불교사에 기념비로 남아있으며 그가 번역한 불전은 지금도 전국 승가대학 즉 전통강원 등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오대산 상원사에 주석하고 있던 조계종 초대종정 한암(漢岩·1876∼1951)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그는 1956년 월정사 경내에 유명한 오대산수도원을 만들어 후학양성에 전념했다. 1966년 동국역경원 개원식에서 “법당 100채를 짓는 것보다 스님들 공부시켜 인재 한 명 길러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 말은 지금도 쩌렁쩌렁하게 들리는 듯하다. 무릇 승려들은 이 말의 의미와 실천을 새겨야 한다. 6·25를 예언했던 당대 최고의 학승이었던 그는 화엄경을 읽다가 몰록 깨달음을 얻은 선지식이다.

 동국대 교수인 해주 스님은 2003년 탄허 스님의 ‘신화엄경역해서’ ‘현토역해 대방광불화엄경서’ ‘화엄요해’를 담아 첫 권으로 ‘탄허강설집Ⅰ’(불광출판사)을 내놓은 일에 주 역할을 담당했다. 화엄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해주 스님은 “화엄선은 지혜의 병인 ‘해애(解碍)’ 즉 알음알이의 장애로 인한 한계를 보인다고 알려졌지만, ‘본래 성불’을 말하는 연기와 예부터 부처라는 성기의 개념에서 화엄선과 간화선은 서로 연결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탄허 스님뿐만 아니라 보조국사 지눌도 그랬듯이 화두를 가진 사부대중은 누구나 뭘 하던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화엄경’에서 말했듯이 누구나 부처의 씨앗을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이 연관돼 있기에 오직 참선한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에 그렇다. 다만, 일자무식이 아니고서야 알음알이가 없는 이는 없다. 경전은 물론이고 책을 보지 않아도 선방에서 담선이나 법거량을 하다 보면 당연히 부처님 말씀인 경전이나 과학 등이 언급된다. 따라서 해애는 화엄선 뿐만 아니라 모든 참선의 장애일 뿐이니 경전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문제가 안 된다. 깨달음 이후에 어떤 행을 하는가? 즉 깨달음의 유지인 보림(補任)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해주 스님이 부암동 백사실 입구에 지은 현대식 사찰 북악산 ‘수미정사(須彌精舍)’에서는 인왕산과 북한산이 다 보인다. 밖에서 보면 작은 절에 지나지 않지만, 안에서 밖을 보면 경관이 뛰어나다. 조경에서 주변의 절경을 빌려오는 것을 말하는 차경(借景)이 명산의 전통사찰만큼 훌륭하다. 2년여 이후 퇴임 후에 도심 속에서의 화엄경 경학 수행을 위한 도량으로서 제격이다. 예전에는 “법당 크기만큼 신도가 모이고 부처님 배만큼 보시가 보인다”는 속설이 있어서 주위에서는 법당과 불상을 크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찾아올 사람도 별로 없으니 20여명 정도 철야 기도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그냥 힘 따라 조그마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수술실에서 외과 의사들은 정확한 진단과 MRI 등 근거에 따라 메스를 사람의 몸에 댄다. ‘법등명 자등명(法燈明自燈明)’에 따라 승려들도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광명 즉 혜명(慧明)을 이어야 한다. 다만, 있는데 멈추지 않고 또 스스로 법이 돼 제자들과 대중들에게 부처님과 조사들 즉 불조(佛祖)의 혜명을 잇게 해야 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잘못해서 그들 지혜의 목숨을 끊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행원을 잘 세우고 자신에게 채찍질하며 밥값 하는 승려가 되도록 탁마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이 스님이야말로 큰스님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말 큰스님이십니다.”라고 하자 키도 작으니 큰스님 아니라고 한다. 큰스님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름만 큰스님이지 진정한 소위 ‘큰스님’이 적은 시기이다. 아무나 큰스님도 아니다. 역시 참되고 바르고 그래서 사부대중의 스승이 되는 스님을 크고 작은 걸로 따지지 말고, 그래서 큰스님이 아닌 ‘(존경하는) 어른 스님’이라는 말이 어떨까 싶다.

 행도 바르고 마음도 바르고 무슨 말을 하든지 막힘없이 숨김없이 법문하는 그분을 보고 같이 찾아뵀던 도반들이 모두 환희심을 느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다음 주까지 비구니 되기를 꿈꾸고 출가를 하기로 했다. 출가를 결심한 예비 행자는 중3 때 장선우 감독의 영화 ‘화엄경’을 보고 이미 부처님이 출가한 29세 전에 출가를 결심했었다. 올해가 마침 29세가 되는 해이다. 교구 본사 사찰에서 유아법회 선생도 했고 NGO에서 많은 국제 구호 활동도 한 재원이다. 해주 스님께는 3번째 상좌가 되는 아름다운 출가였다. 과거, 현재, 미래의 스승에게 드리는 9배를 해서 ‘9배 행자’라는 별명을 갖게 된 예비 행자는 “화엄경 인연으로 출가를 결심했는데 화엄학의 대가 스님께 출가하게 돼 꿈만 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몇 번이나 스님께 인사드린다. “열심히 해서 성불하라!”는 스님은 “세간일이 본인 없으면 안 될 것 같아도 결국 잘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정리하고 얼른 오라”고 당부한다. 2월 10일 출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절을 떠나는 예비 행자에게 “출가는 물의 흐름과 같은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류와 같은 큰 일로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해탈의 길이기에 큰 계기도 있어야 가능하고 까닭에 초발심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스님께 출가의 참뜻을 들었다.

 ※ 칼럼니스트 하도겸은 불교 신자이며 법사로서 말법시대 불교계의 자성과 쇄신을 촉구하는 입장에서 칼럼을 쓰고 있다. 칼럼 대부분은 인터뷰한 분의 글을 수정·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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