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날것 같은 정사신 넘어선 예술,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기사등록 2014/01/21 23:57:43

최종수정 2016/12/28 12:10:44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16일 개봉한 프랑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감독 압델라티프 케시시)는 2013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선입견에 압도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감동할 만한 영화다. 촘촘하게 직조된 영화는 볼 때마다 또 다른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179분 러닝타임이 전혀 지겹지 않은 흡인력을 자랑한다.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는 동시에 심장이 얼얼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여러 층위의 해석이 가능한데, 일단 진한 프랑스식 사랑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칸영화제 주최 측인 프랑스가 기꺼워할 만한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러브스토리다. 우연한 마주침으로 운명적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전 삶을 바쳐 열정적으로 연애하다가 헤어질 때는 미련을 뒤로하고 미소 지으며 돌아서는 그런 얘기 말이다. 문학수업 장면에서 연애감정의 세밀한 묘사가 장기인 18세기 프랑스 작가 마리보나 여러 번 영화로 제작된 동시대 작가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등이 언급되는 것도 ‘진정한 사랑’을 풀어놓겠다는 정교한 밑밥이다.

 이 영화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남녀가 아니라 동성이라는 점에서 퀴어 영화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대상의 성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에 빠져든 이라면 보편적 사랑의 방식을 느낄 수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짧은 머리의 레아 세이두(29)는 중성적 매력을 발산하는데 미소년처럼 보이는 그녀의 모습과 탁월한 연기는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을 상쇄시킨다.

 한편으로는 청춘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시행착오를 겪은 후 맞이한 한 때의 강렬한 사랑, 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상대방의 영향으로 성장하고 배우며 또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가는 젊은이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다. 프랑스 만화가 쥘리 마로(29)의 그래픽 소설 ‘파란색은 따뜻하다’를 원작으로 만들어졌으며 프랑스어 제목은 ‘아델의 이야기-1부와 2부’이다. 부제가 붙은 것은 전 인생이 10부 정도 된다고 봤을 때 영화는 1, 2부 정도밖에 보여주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열린 결말은 앞으로 아델의 인생에 또 다른 문이 열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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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는 이렇다. 열다섯 문학소녀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은 길을 가다 파란색으로 염모한 미대생 에마(레아 세이두)와 눈이 마주치게 되고,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클럽에서 재회하며 사랑에 빠져든다. 순수미술을 전공한 에마는 아델을 모델로 작품을 그리고 유치원 교사가 된 아델은 에마의 집에서 동거하게 된다. 에마는 아델에게 글을 써볼 것을 권하지만, 노동자계층 부모에게 실리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교육받아온 아델은 에마를 보조하는데 만족한다.

 하지만 철학자 사르트르를 추종하는 엘리트 화가 에마의 관심은 점차 다른 쪽으로 흐르게 되고 외로워진 아델은 바람을 피우다가 들켜 파국을 맞게 된다. 둘 사이의 계급 차가 분열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절대적 사랑을 잃은 아델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면서도 생활을 이어간다. 에마를 잊지 못해 격정을 내보이며 매달려도 보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영화는 사춘기 소녀에서 처녀로 자라나는 한 여성이 겪어 나가는 일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교육 민영화에 반대하는 학생시위에 이어 성적소수자들의 거리 시위에 참여하며 젊음의 혈기를 불태우는 아델, 잘 먹고 잘 자고 공부하는 아델, 성애에 눈뜨고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알아가는 아델, 여고생에서 직장인으로, 보모에서 교사로 한 단계씩 나아가는 아델…. 아델의 일상이 사실적으로 펼쳐지며 영화의 원제처럼 아델에게 온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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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는 아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아델의 모습을 숨 가쁘게 좇으며 관객이 아델의 호흡에 동화되도록 한다. 커다란 스크린을 가득 채운 1993년생 배우는 넋이 나간 듯한 눈동자로 들린 윗입술을 살짝 벌리고는 건강한 순수함을 뽐낸다. 젖살이 남아있는 통통한 볼살과 도톰한 아랫입술은 육감적이기보다는 그 또래가 가진 호기심과 그것이 충족되지 못해 생기는 백치미를 뿜어낸다.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리얼한 연기도 천부적이다.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가 된 레아 세이두의 분량은 아델 엑사르코풀로스(21)에게 밀리지만, 존재감만은 뒤지지 않는다. 프랑스 영화계의 귀족 혈통을 지닌 이 여우는 영화 ‘페어웰, 마이 퀸’(2012) 이어 또다시 동성애를 연기하며 극 중 인물에게 빙의라도 된 듯 온몸으로 연기를 펼쳐 보인다.

 여성기가 노출되는 장면이나 10여 분이 넘는 리얼한 베드신이 삭제나 블러 처리 없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국내 개봉되는 것도 화젯거리다. 가짜 성기를 덧씌우긴 했지만, 레즈비언 섹스신은 외설과 예술의 경계를 오간다. 이 정사신도 서너 대의 카메라를 돌려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촬영됐다고 하는데, 두 여배우가 이 신을 찍기 위한 고충을 토로하며 다시는 케시시 감독과 일하지 않겠다고 한 인터뷰가 미국 매체 ‘더 데일리 비스트’에 실리면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끔찍했다” “고문관 같았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레아 세이두는 프랑스에서 출연계약을 하면 미국과 달리 감독이 전권을 가지기에 영화가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고 덫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불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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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델라티프 케시시(54) 감독과 레아 세이두 사이의 불화설이 화제작의 이면을 뜨겁게 달궜다. 실제 감독은 높은 완성도를 위해 ‘무한 반복촬영’을 감행해 배우와 스태프들을 소진했다는 후문이다. 영화에서 획득된 자연스러움이 한 땀 한 땀 꿰어가는 치열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결과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극 중 두 주인공이 처음 마주치는 30초 정도의 신을 100번도 넘게 찍었다고 한다.

 솔직히 뒤엉켜 온갖 체위를 구사하는 두 여배우의 베드신은 섹시하기보다는 고통이 느껴진다. 앞서 미술관의 조각과 그림 속 아름다운 여체를 보여주며 두 사람의 나신이 예술작품으로 환치되도록 배려했지만, 너무 날것으로 그려지는 섹스는 보기에 편하지는 않다. 굳이 좋게 해석하자면 서로에게 파고들고 들어도 만족스럽지 않은 처절함과 연인과 하나가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섹스로 봐줄 수 있겠지만, 이 베드신을 위한 배우들의 고생이 더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 롱테이크 정사신은 미리 짜여진 안무도 없이 두 여배우에게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발휘해보라고 몰아부쳤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칸영화제는 사상 처음으로 감독과 함께 두 주연배우에게 황금종려상을 공동 수상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블루’가 가진 색채심리학적 의미를 섬세하게 시각화시킨 점도 돋보인다. 간간이 푸른색이 들어간 스카프 등을 매던 아델은 파란 머리의 에마에게 빠지기 시작하며 그녀처럼 청재킷 등 파란색 옷을 즐겨 입기 시작한다. 파랑은 절망, 이별의 우울한 색으로 종종 정의 내려지지만 희망, 내적 성장, 치유, 자립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른 뒤 아델은 푸른색 의상을 입고 에마를 찾아가지만 에마는 붉은색 화풍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미 금발로 돌아왔을 때 예견된 일이었다. 블루는 과거로 지나갔고, 레드가 그녀의 현재가 된 것이다. 빨강은 생명과 활력의 상징이며 에마가 이룬 가정이 주는 기쁨이기도 하다. 영화 내내 스크린을 지배했던 파란색이 갑자기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된다.

 한편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오늘날 프랑스 영화의 성취는 포용력 있는 다문화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파리는 본래 이국 출신의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했지만, 최근 영화계에서는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권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케시시 감독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 튀니지 출신이다. 알베르 카뮈가 태어난 알제리 옆에 있는 나라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만큼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는 아랍인과 아랍문화가 군데군데 끼어 있다. 아델 엑사르코풀로스는 그리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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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날것 같은 정사신 넘어선 예술,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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