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젠 대학교수" 20년 꿈 이룬 '천재 김웅용'

기사등록 2014/01/14 09:54:22

최종수정 2016/12/28 1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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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뉴시스】이병찬 기자 = 13일 충북개발공사 김웅용(51) 사업처장이 청주시 오동동 충북개발공사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IQ 210 '천재소년'으로 유명한 그는 14일 신한대 교양학부 교수 겸 경기북부개발원 부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2014.01.13.   bclee@newsis.com
【청주=뉴시스】이병찬 기자 = 13일 충북개발공사 김웅용(51) 사업처장이 청주시 오동동 충북개발공사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IQ 210 '천재소년'으로 유명한 그는 14일 신한대 교양학부 교수 겸 경기북부개발원 부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2014.01.13.  [email protected]
【청주=뉴시스】연종영 기자 = 충북에 터전을 잡고 있던 '세계적 천재'가 20년이나 가슴에 품었던 대학교수의 꿈을 이뤘다.

 신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겸 경기북부개발연구원 부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김웅용(51) 충북개발공사 사업처장.

 김 교수는 13일 고락을 함께했던 공사 직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눈 뒤 그의 새 일터 경기도로 떠났다.

 그는 지능지수만큼이나 많은 이력사항에 '현직 경력'을 3∼4줄 더 써넣게 됐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교수가 됐다는 점이다.

 3월 새 학기부터 신한대 부교수로서 공업수학 과목을 가르친다. 이 대학 미래창조위원회 책임연구원으로도 활동한다.

  경기북부개발연구원의 부원장을 겸직하게 된 그는 경기북부지역의 개발사업을 찾아내고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헤드' 역할도 맡는다. 5월엔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양강좌 강사로서 '과학적 사고'란 주제의 강연도 한다.

 김 교수의 공식 IQ는 괴테의 190, 아인슈타인의 180을 훌쩍 뛰어넘는 210이다.

 한글을 이틀만에 뗐고 3살 땐 글과 그림을 모아 책을 펴냈다. 5살 땐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일본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했고 6살 때엔 일본 후지TV에 출연해 미적분을 풀었다.

 그의 천재성을 인정한 미항공우주국(NASA)은 1973년 그를 선임·책임연구원으로 초빙하기도 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원으로 일할 당시 두 달 동안 독학으로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뒤 이탈리아어로 논문을 발표하고 이탈리아어로 답변한 일화는 '전설'로 남아있다.

 후지TV는 그를 '인류의 보물'이라 칭했고 스페인 언론은 '3살짜리 피타고라스'라고 극찬했다. 이때부터 그는 세계 10대 천재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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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뉴시스】이병찬 기자 = 13일 충북개발공사 김웅용(51·가운데) 사업처장이 청주시 오동동 충북개발공사 사옥 앞에서 동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IQ210 '천재소년'으로 유명한 그는 14일 신한대 교양학부 교수 겸 경기북부개발원 부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2014.01.13.  [email protected]
 하지만 그 이후론 잊혀져가는 천재였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천재에게 걸맞은 일감을 조국은 주지 않았다.

 한동안 방황했던 그는 1993년부터 한밭대 시간강사를 맡으면서 교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2007년까지 경기대·대전대·상명대·영동대·우송대·충주대·한국교원대·충청대 등 10여 개 대학에서 시간강사나 겸임교수로 일했다.

 14년 동안 그가 강의한 과목은 공업영어, 공업수학, 유체역학, 측량학, 적산학, 구조역학, 교량공학 등 30여 개에 달한다.

 그야말로 대학이 시키는대로 가르쳤고 닥치는대로 배우고 또 가르쳤다.

 1998년 충북대 대학원에서 토목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2006년 충북개발공사 창사멤버로 들어와 8년 동안 충북도와 공사가 추진하는 개발사업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토목 전문가이면서 물(水) 전문가다. 교수의 꿈을 이룬 그가 다시 품은 더 큰 꿈은 대한민국에서 '물 공학'을 가장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강교식 (충북개발공사)사장과 임직원들이 더 큰 무대로 나가 꿈을 펼쳐보라며 격려해줬다. 이분들의 고마운 뜻 잊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으로 보답할 생각"이라며 "미력이지만 경기도 발전을 위해 신한대학교 발전을 위해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워보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와 작별인사를 나눈 공사 직원은 "충북이 큰 인재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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