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뉴시스】홍춘봉 기자 = 강원도 폐광지역의 대체산업으로 유치된 강원랜드는 폐광지역의 구세주였다. 2000년 10월 28일 오전 스몰카지노 개장식에 참석한 김진선 도지사, 최연희, 김택기 국회의원, 김원창 정선군수, 김광식 강원랜드 사장 등 내빈들이 개장기념 테이프 커팅식을 갖고 있다. 2014.01.09. (사진=강원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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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뉴시스】홍춘봉 기자 = 스몰카지노 개장과 동시 개장 첫날 5000명이 넘는 고객이 몰리는 등 연일 대박이 터졌지만 강원랜드는 극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700명 수용규모에 맞춰 딜러, 보안, 호텔, 식음, 청소 등의 직원을 고용했지만 당초 예상보다 무려 4~5배가 넘는 고객들이 몰려와 개장과 동시 직원들은 초주검이 됐다. 하루 3교대 운영을 준비했던 딜러는 첫날부터 2교대 12시간으로 근무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살인적인 근무시간 연장이 이어지고 테이블마다 정원의 5배 이상 고객이 몰리며 난리가 났다.
특히 테이블에서 수십명의 고객과 실랑이를 하던 나이 어린 여성 딜러가 코피를 쏟거나 졸도하는 일도 다반사로 발생했다.
더구나 카지노 영업장의 환기 시스템도 700명 규모에 맞춰진 탓에 2000~3000명 이상 골초들이 모인 스몰카지노 내부는 담배연기로 인해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자연히 환기가 거의 안돼 여성 딜러들의 고통과 불편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스몰카지노에서 하루에 팔리는 담배만 2000갑이 넘었는데 정선군은 뜻밖의 지방세 수입 증대로 희색이 됐다. 그러나 딜러와 청소를 맡은 용역회사 직원들은 하루종일 담배연기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개장 초기에는 딜러들의 경우 여성 딜러들은 담배연기와 넘쳐 나는 고객들로 인해 12시간씩 며칠을 지내고 나면 몸살이 나 며칠을 쉬어야 했다. 그래서 여성 딜러보다 체력이 나은 남자 딜러들은 인력난으로 하루에 20시간을 근무하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딜러와 관리자들이 경영층에 딜러 채용을 건의했지만 '개장특수'로 판단한 관리자들은 정규직 대신 계약직으로 채용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살인적인 근무조건과 소통부재를 느낀 일부 직원들은 카지노 개장 열흘만인 11월 8일 노동조합을 암암리에 결성해 정선군에 신고하면서 기습적으로 노조가 탄생하기도 했다.
개장 초기에는 고객들의 '팁 인심'이 후해 딜러는 물론 카지노 영업장에서 청소를 하는 용역직원들도 고객들로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팁을 받는 일도 자주 있었다.
개장 1주일을 넘겨 다급해진 강원랜드 임원진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인력추가 채용계획을 세워야 했다.
긴급히 추가 인력을 채용해 급한 상황을 넘기려 했지만 최소 수개월 이상 실무교육이 필요한 딜러직은 예외였다.
개장 당시 오한동 총무부장(뒤에 카지노본부장을 거쳐 현재 삼척 스위치백리조트 사장)의 회고.
"스몰카지노 개장 전 일부에서는 카지노가 성공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 때문에 충
분한 인력을 뽑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장하자마자 당초 기대치보다 훨씬 많은 고객이 몰려드는 바람에 곧장 직원들을 추가로 채용해야 했다. 그렇지만 딜러직은 현장 투입이 지체돼 12시간 근무를 하느라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다.
특히 당시는 강원랜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아 신입사원 경쟁률도 2대 1 수준에 불과했다. 또 2층에 마련된 VIP룸에서도 험악한 고객들 때문에 보안직원과 딜러들이 애를 먹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개장 초기부터 그렇게 대박이 날 줄은 강원랜드 임직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시는 얼마나 바쁘고 혼잡스러운지 기쁘거나 즐거워할 여력도 없었다.
그러나 카지노 개장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보람과 희열을 느꼈다."
카지노에 대박이 터지자 주변 지역도 '어부지리' 효과를 보게 됐다.
특급 호텔인 강원랜드 스몰카지노 객실은 199실에 불과한 탓에 객실은 연일 만실이었고 고한 사북은 물론 인근 태백의 숙박업소도 동이 날 정도였다.
이때부터 고한 사북주민들은 빈 집을 개조해 욕실과 취사도구를 갖춘 민박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택시업계도 평소보다 3배 이상 고객이 늘어나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음식점과 고급 술집 등도 '카지노 특수'를 누리며 상인들은 카지노의 위력에 놀랐다. 특히 카지노 개장과 함께 카지노 입구 고한지역에는 전당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도로변에 다 쓰러져가던 슬레이트집을 한 달에 수백만원씩 주기로 하고 월세를 얻어 수리한 뒤 차린 전당포도 대박이 났다.
금반지 목걸이는 물론 명품시계와 다이아반지가 밤마다 담보로 제공됐고 하루에 1할 이자를 받고 사채를 빌려줬다.
승용차는 물론 심지어 공사장 포크레인도 담보로 잡혔다. 돈이 급한 사람들은 야간에 전당포에 찾아와 골프채, 노트북을 맡기고 수십만원을 빌리기도 했다.
돈이 몰리는 곳에는 주먹과 여자가 따라 다니는 것이 기본.
서울과 호남 및 부산의 내로라하는 사채업자들이 찾아왔다. 당연히 경찰에 비상이 걸렸고 유명 조폭의 진출설에 긴장이 감돌기도 했다. 초창기 30개가 넘던 전당포 98%는 대박을 노리고 외지에서 찾아온 '원정파' 들이었다.
탄광촌이 흥청거리던 시절 '지나가는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전설이 스몰카지노 개장 이후 재연되기 시작했다.
스몰카지노 개장으로 카지노 신화가 쓰여지자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서는 연일 '카지노 대박' '북새통' '카지노 동네 불야성'등의 보도가 쏟아졌다.
카지노 개장 1주일만에 입장객이 4만명을 넘고 카지노 안에서는 100만원 수표도 우습게 여기는 풍조가 생겼다. 반면에 수천만원을 잃고 패가망신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또 폐광지역을 위해 설립된 강원랜드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카지노 출입으로 인해 거액을 탕진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역주민들은 카지노 출입자제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정선군여성단체협의회(회장 손명자)는 11월 7일 군청 대회의실에서 300여 명의 여성들이 참석한 가운데 '카지노 출입 자제'를 결의하고 시가지를 돌면서 캠페인을 펼치며 피해예방에 나서기도 했다.
지역주민의 피해가 잇따르자 강원랜드는 11월 6일부터 지역주민의 입장을 금지시켰다. 대신 정선과 태백, 영월 상동읍, 삼척 도계지역 주민들은 매월 둘째주 화요일을 '주민의 날'로 정해 한 달에 하루만 출입을 허용했다.
그러나 카지노에 빠진 지역주민들은 주민등록을 다른 지역으로 위장 전입한 뒤 계속 강원랜드 카지노에 출입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강원도 첩첩산중의 폐광촌에서 카지노 개장 1주일만에 대박을 잡았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일본 마이니치신문 취재기자가 현지를 찾아왔다.
스몰카지노와 고한사북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일본으로 돌아가 3회에 걸쳐 강원랜드 설립배경과 성공스토리 및 부작용 등을 보도했다.
마이니치는 폐광대체산업으로 내국인 출입 카지노 개장과 경제활성화 기대감은 물론 도박중독으로 인한 부작용 등을 소개했다. 강원랜드의 성공신화가 일본에 소개된 뒤 홋카이도의 유바리시 등 폐광촌의 대안으로 카지노를 추진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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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명 수용규모에 맞춰 딜러, 보안, 호텔, 식음, 청소 등의 직원을 고용했지만 당초 예상보다 무려 4~5배가 넘는 고객들이 몰려와 개장과 동시 직원들은 초주검이 됐다. 하루 3교대 운영을 준비했던 딜러는 첫날부터 2교대 12시간으로 근무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살인적인 근무시간 연장이 이어지고 테이블마다 정원의 5배 이상 고객이 몰리며 난리가 났다.
특히 테이블에서 수십명의 고객과 실랑이를 하던 나이 어린 여성 딜러가 코피를 쏟거나 졸도하는 일도 다반사로 발생했다.
더구나 카지노 영업장의 환기 시스템도 700명 규모에 맞춰진 탓에 2000~3000명 이상 골초들이 모인 스몰카지노 내부는 담배연기로 인해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자연히 환기가 거의 안돼 여성 딜러들의 고통과 불편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스몰카지노에서 하루에 팔리는 담배만 2000갑이 넘었는데 정선군은 뜻밖의 지방세 수입 증대로 희색이 됐다. 그러나 딜러와 청소를 맡은 용역회사 직원들은 하루종일 담배연기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개장 초기에는 딜러들의 경우 여성 딜러들은 담배연기와 넘쳐 나는 고객들로 인해 12시간씩 며칠을 지내고 나면 몸살이 나 며칠을 쉬어야 했다. 그래서 여성 딜러보다 체력이 나은 남자 딜러들은 인력난으로 하루에 20시간을 근무하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딜러와 관리자들이 경영층에 딜러 채용을 건의했지만 '개장특수'로 판단한 관리자들은 정규직 대신 계약직으로 채용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살인적인 근무조건과 소통부재를 느낀 일부 직원들은 카지노 개장 열흘만인 11월 8일 노동조합을 암암리에 결성해 정선군에 신고하면서 기습적으로 노조가 탄생하기도 했다.
개장 초기에는 고객들의 '팁 인심'이 후해 딜러는 물론 카지노 영업장에서 청소를 하는 용역직원들도 고객들로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팁을 받는 일도 자주 있었다.
개장 1주일을 넘겨 다급해진 강원랜드 임원진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인력추가 채용계획을 세워야 했다.
긴급히 추가 인력을 채용해 급한 상황을 넘기려 했지만 최소 수개월 이상 실무교육이 필요한 딜러직은 예외였다.
개장 당시 오한동 총무부장(뒤에 카지노본부장을 거쳐 현재 삼척 스위치백리조트 사장)의 회고.
"스몰카지노 개장 전 일부에서는 카지노가 성공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 때문에 충
분한 인력을 뽑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장하자마자 당초 기대치보다 훨씬 많은 고객이 몰려드는 바람에 곧장 직원들을 추가로 채용해야 했다. 그렇지만 딜러직은 현장 투입이 지체돼 12시간 근무를 하느라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다.
특히 당시는 강원랜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아 신입사원 경쟁률도 2대 1 수준에 불과했다. 또 2층에 마련된 VIP룸에서도 험악한 고객들 때문에 보안직원과 딜러들이 애를 먹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개장 초기부터 그렇게 대박이 날 줄은 강원랜드 임직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시는 얼마나 바쁘고 혼잡스러운지 기쁘거나 즐거워할 여력도 없었다.
그러나 카지노 개장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보람과 희열을 느꼈다."
카지노에 대박이 터지자 주변 지역도 '어부지리' 효과를 보게 됐다.
특급 호텔인 강원랜드 스몰카지노 객실은 199실에 불과한 탓에 객실은 연일 만실이었고 고한 사북은 물론 인근 태백의 숙박업소도 동이 날 정도였다.
이때부터 고한 사북주민들은 빈 집을 개조해 욕실과 취사도구를 갖춘 민박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택시업계도 평소보다 3배 이상 고객이 늘어나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음식점과 고급 술집 등도 '카지노 특수'를 누리며 상인들은 카지노의 위력에 놀랐다. 특히 카지노 개장과 함께 카지노 입구 고한지역에는 전당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도로변에 다 쓰러져가던 슬레이트집을 한 달에 수백만원씩 주기로 하고 월세를 얻어 수리한 뒤 차린 전당포도 대박이 났다.
금반지 목걸이는 물론 명품시계와 다이아반지가 밤마다 담보로 제공됐고 하루에 1할 이자를 받고 사채를 빌려줬다.
승용차는 물론 심지어 공사장 포크레인도 담보로 잡혔다. 돈이 급한 사람들은 야간에 전당포에 찾아와 골프채, 노트북을 맡기고 수십만원을 빌리기도 했다.
돈이 몰리는 곳에는 주먹과 여자가 따라 다니는 것이 기본.
서울과 호남 및 부산의 내로라하는 사채업자들이 찾아왔다. 당연히 경찰에 비상이 걸렸고 유명 조폭의 진출설에 긴장이 감돌기도 했다. 초창기 30개가 넘던 전당포 98%는 대박을 노리고 외지에서 찾아온 '원정파' 들이었다.
탄광촌이 흥청거리던 시절 '지나가는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전설이 스몰카지노 개장 이후 재연되기 시작했다.
스몰카지노 개장으로 카지노 신화가 쓰여지자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서는 연일 '카지노 대박' '북새통' '카지노 동네 불야성'등의 보도가 쏟아졌다.
카지노 개장 1주일만에 입장객이 4만명을 넘고 카지노 안에서는 100만원 수표도 우습게 여기는 풍조가 생겼다. 반면에 수천만원을 잃고 패가망신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또 폐광지역을 위해 설립된 강원랜드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카지노 출입으로 인해 거액을 탕진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역주민들은 카지노 출입자제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정선군여성단체협의회(회장 손명자)는 11월 7일 군청 대회의실에서 300여 명의 여성들이 참석한 가운데 '카지노 출입 자제'를 결의하고 시가지를 돌면서 캠페인을 펼치며 피해예방에 나서기도 했다.
지역주민의 피해가 잇따르자 강원랜드는 11월 6일부터 지역주민의 입장을 금지시켰다. 대신 정선과 태백, 영월 상동읍, 삼척 도계지역 주민들은 매월 둘째주 화요일을 '주민의 날'로 정해 한 달에 하루만 출입을 허용했다.
그러나 카지노에 빠진 지역주민들은 주민등록을 다른 지역으로 위장 전입한 뒤 계속 강원랜드 카지노에 출입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강원도 첩첩산중의 폐광촌에서 카지노 개장 1주일만에 대박을 잡았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일본 마이니치신문 취재기자가 현지를 찾아왔다.
스몰카지노와 고한사북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일본으로 돌아가 3회에 걸쳐 강원랜드 설립배경과 성공스토리 및 부작용 등을 보도했다.
마이니치는 폐광대체산업으로 내국인 출입 카지노 개장과 경제활성화 기대감은 물론 도박중독으로 인한 부작용 등을 소개했다. 강원랜드의 성공신화가 일본에 소개된 뒤 홋카이도의 유바리시 등 폐광촌의 대안으로 카지노를 추진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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