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아드레날린 퐁퐁,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기사등록 2014/01/08 07:11:00

최종수정 2016/12/28 12:06:31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와우! 3시간 내내 아드레날린이 샘솟는다. 넘쳐도 너무 넘쳐 익사할 지경이다.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심장박동 수가 마구 상승한다. 속도감이 지나치다보니 정작 영화관 밖으로 나오면 롤러코스터라에서 내려온 듯 어리어리하다. 극중 여배우의 배가 분명 불러있었는데 뱃속의 아이가 어느새 어디로 갔는지 헷갈릴 정도다.

 9일 개봉하는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일찍이 칸영화제까지 섭렵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72) 감독과 톱스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40)의 다섯 번째 만남으로도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갱스 오브 뉴욕’(2002), 디캐프리오에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안긴 ‘에비에이터’(2004),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디파티드’(2006), 3억 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낸 흥행성공작 ‘셔터 아일랜드’(2010) 등이 이 두 사람의 만남으로 탄생했으니 기대가 큰 것도 당연하다.

 주가조작과 사기, 돈세탁 혐의로 22개월간 수감됐던 주식브로커 출신으로 현재 동기부여 강사로 활동중인 조던 벨포트(52)라는 실존인물의 회고록을 근거로 만들어진 블랙코미디다. 영화 마지막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바탕으로 했지만 대사와 상황들은 모두 창작이다.

 만만치 않은 내공을 지닌 노장의 연출과 편집, 디캐프리오의 온몸을 던진 열연, TV시리즈 ‘보드워크 엠파이어’, ‘소프라노스’ 등의 각본을 쓴 테런스 윈터(54)의 꼼꼼한 조사에서 비롯된 유머 넘치는 속사포 대사가 쉴 새 없이 어우러지며 179분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이 중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이는 당연히 광기 어린 한 남자의 인생을 숨막히도록 빠른 리듬으로 그려낸 스코세이지 감독이다. 조던 벨포트의 미친 듯한 20년 간의 질주,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틈새를 파고들어 남의 돈을 굴려 떼부자가 돼 황제처럼 살고자했던 남자의 반생을 3시간으로 압축해 전달하는 신공을 발휘했다. 그 시대에 유행한 ‘글로리아’, ‘미시즈 로빈슨’과 같은 흥겨운 팝송을 배경으로 한 편의 소극을 보는 듯한 시퀀스들도 돋보인다.

associate_pic2
 배우들도 하나같이 그의 열의에 전염된 듯 호연을 보여줬다. 캐스팅도 세세히 신경 쓴 티가 나게 아주 절묘하다. 제작자로도 참여한 주인공 디캐프리오는 두 말할 나위없다. 흥행성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미남배우임을 증명한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약에 취해 클럽에서 공중전화를 걸고 차를 향해 기고 굴러가는 신, 직원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 신이다.

 환각상태에 빠지기 위해 금지된 약물인 레먼을 복용한 후 약의 효과로 거의 뇌성마비 상태가 돼 침을 질질 흘리고 버둥대며 슬랩스틱 코미디를 벌인다. 초기작 ‘길버트 그레이프’(1993)에서 정신지체가 있는 조니 뎁의 동생 역으로 10대의 나이에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후보에 올라 이미 저력을 보여준 바 있으니 새로울 것도 없다. 자신이 세운 스크래튼 오크먼트의 전 직원 앞에서 펼치는 연설 장면에서는 그의 열정에 모두가 휩쓸리도록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 외치다 외치다 결국 목이 쉬는 것은 실제인지 계산인지, 아주 사실적이다. 스피디하게 전개되던 영화는 이런 순간에는 디캐프리오의 열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서라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느린 흐름을 유지한다.

 촬영 한 번 하고나면 탈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열광적인 연기를 펼쳐보인 디캐프리오에게 이 역할은 연기경력의 정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실화나 고전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매력과 욕망, 추진력을 지닌 남자 주인공 역을 휩쓸만큼 휩쓸었으니 말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에비에이터’(2003), ‘제이 에드가’(2011), ‘위대한 개츠비’(2013) 등을 통해 동년배 중 이만한 큰 역할을 소화해낼 적수가 없음을 증명할만큼 증명했다. 이제 연기의 방향을 틀어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소 진력이 나는 면도 있다.

associate_pic2
 극중 조던 벨포트가 월스트리트 출근 첫날 만나게 되는 선임 브로커 마크 해나 역을 맡은 매튜 매커너히(45)도 짧은 출연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낮술을 마시며 가슴을 두드리면서 조언하는 그는 조던의 롤모델이 되는데, 점점 조증에라도 걸린 듯 변해가는 조던의 모습을 앞서 구현했다. 멍청하고 탐욕스러움을 시각화하기 위해 조던의 창업동료들은 하나같이 살을 찌웠다. 부사장 도니 애조프 역의 조나 힐(31), 중국계 체스터 밍 역의 케네스 최(43) 등은 조던의 아둔한 졸개 역을 아주 그럴듯하게 연기해낸다. 재미동포 2세인 케네스 최는 미국 ABC TV시리즈 ‘사무라이 걸’에서 역시 한국계 스타인 제이미 정(30)의 상대역을 맡으며 주연급으로 얼굴을 알렸다.

 조던의 두 번째 부인이 되는 나오미 역의 호주 배우 마고 로비(24)는 오금이 저릴 정도의 요염함을 보여준다. 금발에 푸른눈, 고양이상 얼굴에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갖춰 차세대 섹시스타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출연진은 아주 전형적인 선입견에 따라 선정되고 연기를 펼쳐 캐릭터를 쉽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도 있으나, 편견을 부추기기도 한다. 금발미녀인 나오미와는 대조되게 조강지처인 미용사 테레사(크리스틴 밀리오티)는 총명한 눈을 지닌 갈색머리다. 부정적 기사도 홍보가 된다는 것을 꿰뚫을 정도로 영리한 그녀는 중요한 순간마다 지지를 아끼지 않지만, 바람난 남편을 결국 떠난다.

 조던 벨포트는 스스로를 사자처럼 여겼지만 세상은 그를 이것저것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이리 정도로밖에 보지 않았고, 그것이 사실이었다. 스크래튼 오크먼트 사의 로고에 사자를 그렸지만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그를 ‘월 스트리트의 늑대’라고 부르며 까발렸다. 나스닥에도 등록 못하는 장외시장의 페니 스톡을 부풀리기 해서 푼돈이라도 굴리고파하는 노동자 계층의 등이나 처먹는 것이 그의 실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사는 그가 더 많은 돈을 버는 계기가 됐지만 말이다.

associate_pic2
 영화가 어떤 교훈이나 메시지를 줄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멋진 영화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가 사기꾼의 인생을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는 감출 수 없다. 마치 동물적 본능으로 그득한 남자가 원하는 모든 것, 즉 돈과 향응, 트로피 와이프뿐 아니라 이런저런 여자들과 섹스하는 권한을 모두 누리는 영웅처럼 조던 벨포트가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캐프리오는 이 역할에 이탈리아 감독 틴토 브라스(81)의 영화 ‘칼리굴라’(1980)을 참조했다고 하는데, 정신이상으로 난잡해진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 버금가는 난장판을 펼쳐보인다. 사무실 안에 침팬지나 난쟁이 광대를 들이는 것은 약과, 툭하면 스트리퍼들과 창녀들을 풀어놓고 질펀한 섹스파티를 벌인다. 수영장이 딸린 빌라맨션에 코코 샤넬이 소유했던 호화 요트와 헬기를 몰고 다니며 쿠알루드, 대마초, 코카인, 자낙스, 모르핀 등 온갖 마약과 약물, 알코올에 찌든 섹스중독자의 자기파괴적인 삶이 마치 신명나는 놀이처럼 그려진다. 돈놀음, 벗은 여자들, 섹스, 마약, 술의 도돌이표에 싫증이 날 즈음에야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래서 실제 인물인 조던 벨포트는 어떻게 됐을까. 미안하게도 천민자본주의의 표본인 이 뻔뻔하고 욕심많은 사내는 여전히 잘먹고 잘살고 있다. 두 권의 자서전은 40개국 18개 언어로 번역돼 팔렸고 전 세계를 돌며 동기부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했을 뿐더러 이번 영화에는 엑스트라이긴 하나 직접 출연까지 했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세계 최고의 세일즈 트레이너’로 포장된 조던 벨포트의 현란한 혀놀림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한 떼의 얼간이들을 비추면서, 그와 같은 인간을 존재케 하는 것은 우둔한 군중임을 상기시키고자 한 것 같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영 미국을 살아가는 그의 적나라한 현실인식이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리뷰]아드레날린 퐁퐁,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기사등록 2014/01/08 07:11:00 최초수정 2016/12/28 12:06:31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