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응답하라 3040,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기사등록 2014/01/01 19:31:15

최종수정 2016/12/28 12:04:47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31일 개봉한 벤 스틸러(48) 연출·주연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는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류라고 보면 된다. 내용은 뻔한데 타깃층이 솔깃해할 만한 것들을 곳곳에 심어놓고 그들이 열광하도록 만든다.

 ‘응답하라 1994’의 구성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하숙집 딸 나정의 신랑 정체를 두고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이어 붙이며 21회를 질질 끈다. 그런데 ‘고증 드라마’라고 할만큼 1990년대 중반을 생생하게 재현해내며 그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추억에 빠져들게 만든다. 웬만한 지상파 TV드라마 시청률이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린 이유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도 스토리는 딱히 새로울 것 없지만 30,40대 보통 직장인의 감성에 들어맞는 설정들로 꾸민 영리한 영화다. 주인공 월터는 유럽여행을 꿈꿨으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바로 직업전선으로 뛰어든 싱글남이다. 햄버거, 피자가게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16년 동안 사진잡지 ‘라이프’의 네거티브필름 담당으로 일하며 뉴욕 밖을 벗어난 본 적 없다. 요양원에 갈 예정인 어머니(셜리 맥클레인)와 뮤지컬배우를 꿈꾸는 철없는 여동생 오데사(캐서린 한)의 뒤치다꺼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구조조정 중인 직장에서 정리해고 대상 1순위다. 삶에 찌들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한국의 ‘3포세대’가 동일시 할 여지도 크다.

 게다가 시공간적 배경은 역사의 순간들을 기록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라이프 지가 폐간되는 편집국이다. 실제 1936년 창간된 라이프는 2007년 4월30일자를 마지막으로 인터넷잡지사로 전환됐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디지털 카메라시대에 여전히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며 휴대폰도 없이 방랑하는 사진가 숀 오코넬(숀 펜)의 등장, 구식 피아노와 노인이 된 주인이 운영하는 낡은 간판의 중고악기상 등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역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세태의 변화를 절감하는 언론인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요소이기도 하다.

 1939년 발표된 제임스 서버(1894~1961)의 소설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을 원작으로 하지만 소심한 중년남성 월터 미티가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고 공상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기본 테마만 가져왔을 뿐 모두 새롭게 창작됐다. 원작소설은 ‘뉴요커’에 발표된 것으로 단편보다도 짧은 콩트라 할 수 있다. 이후 ‘월터 미티’는 몽상가를 일컫는 대명사처럼 사용됐다.

associate_pic2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1947년 발표된 동명영화의 리메이크에 가깝다. 당시 영화 제작은 독립제작사를 선도하던 새뮤얼 골드윈(1879~1974)이 맡았고, 2013년 작에서는 그의 아들 새뮤얼 골드윈 주니어(87)와 손자 존 골드윈(55)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툭하면 상상에 빠져 ‘멍 때리기’를 잘하는 42세의 월터가 라이프의 마지막 표지를 장식할 숀 오코넬의 사진이 사라지자 이 사진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션을 찾으러 나서 공상 속에서만 벌여오던 모험을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짝사랑하는 동료여직원 셜리(크리스틴 위그)와 과연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한 축이 된다.

 ‘파랑새’의 결말처럼 가장 소중한 것은 가까이에 있다는 소극적 엔딩을 맺는 것은 좀 심심하다. 아무리 멀리 떠나 아무리 멋진 경험을 해도 어차피 언젠가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메시지는 지독히 소시민적이다. 현실의 긍정이라는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이라고 보면 되겠다.

 정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코미디의 귀재’ 벤 스틸러 연출답게 공항 전신스캐너 신과 같이 요소요소 깨알 같은 재미를 찾을 수 있지만 새로움은 그다지 없다. 전설적인 코미디언 부부 제리 스틸러(86)와 앤 메라(84)의 아들답게 생득적 유머감각이 넘치는 것은 인정해야한다. 연기는 딱 기대만큼이다. ‘미트 페어런츠’, ‘박물관이 살아있다’ 등 성공한 시리즈에서 보여준 소심하면서도 엉뚱한 캐릭터의 연장선에 그친다. 적당한 안정성이 대중이 그의 작품을 안심하고 선택하도록 하는 장점일 수도 있겠다. ‘마돈나의 남자’였던 숀 펜도 나이들수록 멋있어지긴 하지만 매력을 느끼기에는 역할이 너무 전형적이다. 연기에 힘이 너무 들어가 과해 보인다.

associate_pic2
 깔끔한 그래픽,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기 힘들도록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신에 사용된 첨단특수효과 등이 웰메이드 상업영화임을 툭툭 상기시킨다. 대도시 뉴욕과 대비되는 청정지역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분쟁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의 히말라야산맥 등을 배경으로 선택한 것도 상식적이지만 똑똑하다. 관객들에게 속시원하게 탁 트인 볼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흥행성을 높였다. 푸르른 아이슬란드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그린란드는 서로 이름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농담이 있을만큼 아이러니컬한 로케이션이다.

 외화 상영 시 뜻도 모를 외국어 타이틀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오랜만에 외화제목의 한글 의역이 잘 이뤄진 케이스이기도 하다. 극중에서도 순수한 사랑의 예시로 패러디되는 ‘벤저민 버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2008)처럼 번역 시 명사의 나열을 서술형으로 바꾸면서 똑 떨어지는 인상을 더한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리뷰]응답하라 3040,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기사등록 2014/01/01 19:31:15 최초수정 2016/12/28 12:04:47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