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 록발라드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 노래방에서는 밴드 '스틸하트'의 '쉬스 건', 가수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등이 끊이지 않고 울렸다.
'음이 높게 올라간다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아니다'는 대중의 시선, 평론가의 잣대에도 당시 날카롭게 뻗는 고음은 매력적이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일반인이 소화하기 어려운 음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보컬에 대중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시절, 고음을 뽐내던 가수들은 어디로 갔을까.
록발라드는 아니지만 카랑카랑한 고음을 뽐낼 수 있는 곡으로 밴드 '스트라이퍼스'의 '투 헬 위드 더 데빌(To Hell with the Devil)'도 있었다. 내달리는 기타 사운드를 등에 업은 마이클 스위트의 날카로운 고음이 전율을 안기는 곡이다. 고음을 뽐내던 가수 김경현(31)은 "'투 헬 위드 더 데빌'은 2000번 넘게 부른 거 같다"고 말했다.
김경현이 연말 록발라드 '끝이래'를 발표했다. "솔직히 너무 슬프다. 눈물도 났다. 지금은 20대였을 때보다 소리가 안 나온다"는 김경현이 부른 '끝이래'에는 "안정적인 4옥타브 도"가 담겼다. 전성기 4옥타브 파# 음을 내던 그다.
"제2의 김경호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구하고 연습한 덕이다. '더 크로스' 시절 부른 '돈트 크라이(Don't cry)'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떠나가요, 떠나지 마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은 보컬 지망생들의 단골 연습곡이었다.
'음이 높게 올라간다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아니다'는 대중의 시선, 평론가의 잣대에도 당시 날카롭게 뻗는 고음은 매력적이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일반인이 소화하기 어려운 음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보컬에 대중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시절, 고음을 뽐내던 가수들은 어디로 갔을까.
록발라드는 아니지만 카랑카랑한 고음을 뽐낼 수 있는 곡으로 밴드 '스트라이퍼스'의 '투 헬 위드 더 데빌(To Hell with the Devil)'도 있었다. 내달리는 기타 사운드를 등에 업은 마이클 스위트의 날카로운 고음이 전율을 안기는 곡이다. 고음을 뽐내던 가수 김경현(31)은 "'투 헬 위드 더 데빌'은 2000번 넘게 부른 거 같다"고 말했다.
김경현이 연말 록발라드 '끝이래'를 발표했다. "솔직히 너무 슬프다. 눈물도 났다. 지금은 20대였을 때보다 소리가 안 나온다"는 김경현이 부른 '끝이래'에는 "안정적인 4옥타브 도"가 담겼다. 전성기 4옥타브 파# 음을 내던 그다.
"제2의 김경호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구하고 연습한 덕이다. '더 크로스' 시절 부른 '돈트 크라이(Don't cry)'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떠나가요, 떠나지 마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은 보컬 지망생들의 단골 연습곡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고음 가수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고 댄스그룹, R&B 보컬들이 그들을 대신했다. 김경호가 그룹 '핑클'의 '나우'를 리메이크하는 시절이었다. 김경현도 길을 잃었다.
"다른 장르 연습도 많이 해봤어요. R&B 같은 창법도 시도해봤죠. 하지만 제게 맞는 옷이 아니었어요. 제가 지금부터 연습한다고 나얼을 이기겠어요? 프라이머리 범키처럼 트렌디한 노래를 부른다고 제가 그 맛을 낼 수가 있겠어요?"
'음악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 탓만 하던 과거를 후회했다. "부와 명예는 자신이 노력해서 얻어지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내가 지금 잘 된 애들보다 노력한 걸까?'라고 생각하면 솔직히 아니에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미니홈피를 찾아와 응원하는 팬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그 사람들에게는 제가 아티스트였던 거죠. 경제적인 부분에 집착한 예전 모습이 팬들에게는 배신이었던 겁니다. 그분들을 위해 노래하고 싶습니다. 사비를 털어서 앨범을 내더라도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가수들이 팬이 한명뿐이라도 노래 부르고 싶다는 말이 이제는 이해가 가요."
"다른 장르 연습도 많이 해봤어요. R&B 같은 창법도 시도해봤죠. 하지만 제게 맞는 옷이 아니었어요. 제가 지금부터 연습한다고 나얼을 이기겠어요? 프라이머리 범키처럼 트렌디한 노래를 부른다고 제가 그 맛을 낼 수가 있겠어요?"
'음악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 탓만 하던 과거를 후회했다. "부와 명예는 자신이 노력해서 얻어지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내가 지금 잘 된 애들보다 노력한 걸까?'라고 생각하면 솔직히 아니에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미니홈피를 찾아와 응원하는 팬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그 사람들에게는 제가 아티스트였던 거죠. 경제적인 부분에 집착한 예전 모습이 팬들에게는 배신이었던 겁니다. 그분들을 위해 노래하고 싶습니다. 사비를 털어서 앨범을 내더라도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가수들이 팬이 한명뿐이라도 노래 부르고 싶다는 말이 이제는 이해가 가요."

"핵무기가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록이나 고음이 소총이라고 버릴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다시 고음을 갈고 닦았다. 홍보지원대에서 복무하며 무대 경험을 이어온 것도 도움이 됐다. "가수 박효신 이후로 노래만으로 앙코르를 이끌어 낸 첫 인물"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록 윌 네버 다이(Rock Will Never Die)'라며 인사를 건넨다. "김경현도 아직 안 죽었다"며 입꼬리를 올린다. "제 목이 다하기 전까지 보여드릴 수 있는 걸 다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지 못했던 게 아쉽거든요. 록음악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무대를 휘저을 자신이 있습니다."
[email protected]
'록 윌 네버 다이(Rock Will Never Die)'라며 인사를 건넨다. "김경현도 아직 안 죽었다"며 입꼬리를 올린다. "제 목이 다하기 전까지 보여드릴 수 있는 걸 다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지 못했던 게 아쉽거든요. 록음악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무대를 휘저을 자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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