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영화감독, 제작자 겸 배급자로 활약한 곽정환(83) 서울극장 회장이 8일 오전 0시께 성남 금곡동 보바스 기념병원에서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곽 회장은 서울극장을 운영하며 1960년대부터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기기 전인 2000년대 이전까지 한국 영화계의 실력자로 배급과 제작의 중심에 섰다.
1930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1946년 만주 용정에 있는 은진중학교를 거쳐 1959년 성균관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합동 영화사 대표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1978년 서울극장을 시작으로 부산 아카데미, 은하극장, 세기 극장 등 전국에 10여개 극장을 소유하며 가장 큰 영화배급망을 갖췄다.
워너브라더스픽처스 등 직배영화 배급대행으로 큰 이득을 보면서 1990년대 한국영화산업의 큰손으로 자리잡았다. 강우석 감독, 신철 신씨네 대표 등 젊은 기획제작자들과 함께 한국영화 제작과 배급에 힘썼다. '투캅스2'(1996) '초록물고기'(1997) '넘버3'(1997) '편지'(1997) 등의 히트작을 남겼다.
'주유천하'(1963) '김마리라는 부인'(1983) '이브의 체험'(1985) '깜보'(1986) '변강쇠'(1986)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1993)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1993) '삘구'(1995) 등을 제작했다.
'쥐띠부인'(1972) '가고파'(1984) '이브의 체험'(1985) '무거운 새'(1994) 등은 직접 연출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곽 회장이 참여한 영화는 300여편에 이른다.
부인인 배우 고은아(67) 서울극장 사장과 아들 곽승남 서울극장 부사장, 딸을 남겼다.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1호, 발인 11일 오전 8시.
[email protected]
곽 회장은 서울극장을 운영하며 1960년대부터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기기 전인 2000년대 이전까지 한국 영화계의 실력자로 배급과 제작의 중심에 섰다.
1930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1946년 만주 용정에 있는 은진중학교를 거쳐 1959년 성균관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합동 영화사 대표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1978년 서울극장을 시작으로 부산 아카데미, 은하극장, 세기 극장 등 전국에 10여개 극장을 소유하며 가장 큰 영화배급망을 갖췄다.
워너브라더스픽처스 등 직배영화 배급대행으로 큰 이득을 보면서 1990년대 한국영화산업의 큰손으로 자리잡았다. 강우석 감독, 신철 신씨네 대표 등 젊은 기획제작자들과 함께 한국영화 제작과 배급에 힘썼다. '투캅스2'(1996) '초록물고기'(1997) '넘버3'(1997) '편지'(1997) 등의 히트작을 남겼다.
'주유천하'(1963) '김마리라는 부인'(1983) '이브의 체험'(1985) '깜보'(1986) '변강쇠'(1986)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1993)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1993) '삘구'(1995) 등을 제작했다.
'쥐띠부인'(1972) '가고파'(1984) '이브의 체험'(1985) '무거운 새'(1994) 등은 직접 연출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곽 회장이 참여한 영화는 300여편에 이른다.
부인인 배우 고은아(67) 서울극장 사장과 아들 곽승남 서울극장 부사장, 딸을 남겼다.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1호, 발인 11일 오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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