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티베트 망명정부, 인도남부로 옮겨라

기사등록 2013/09/11 06:01:00

최종수정 2016/12/28 08:02:36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 이야기’ <30>

 지난 5월 31일 칼럼 ‘달라이 라마 귀환 프로세스’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는 아니 달라이라마는 귀환을 위해서 어떠한 이유에서든 중국정부에 협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수행하는 종교인 특히, 관법에 뛰어난 티베트의 금강승 라마들은 명상과 신탁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을 미리 볼 수 있다. 아마 달라이라마도 수많은 문제가 있는 중국의 가까운 미래를 보았을 것이기에 귀환을 서두르는 것으로 안다.

 아울러 중국 정부치하에서 분신으로 저항하고 있는 티베트 국민의 아픔을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중국정부가 어떠한 조건을 내걸든 간에 고령의 달라이라마는 혼자서라도 귀환을 해야 한다. 그 길만이 가까운 미래를 오래된 미래로 바꾸면서 티베트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불교 특히, 밀교를 포함한 티베트전통 문화의 계승에도 이바지할 수 있기에 더 그렇다. 우리나라에 달라이라마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불교 지도자로 방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8월 25일 타임스오브인디아(The Times of India)는 라빈데르 싱 라브 전 장관의 말을 빌려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주 다람살라의 맥그로드간지에 머물고 있는 달라이라마가 거처를 남부 카르나타카주의 마이소르로 옮길 것이라는 소식을 보도했다. 정작 티베트 망명정부는 공식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지 않다. 이 보도대로라면 계속 밀려오는 티베트 망명인들을 수용하기에는 좁아터진 다람살라를 포기하고 벵갈루루가 주도인 카르나타카주로 옮길 것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들이 인도 정부 등 관계자와 여론에 의향을 흘려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8월 이후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 주도인 벵갈루루에선 아삼 출신 도시민들이 모슬렘 공격설’에 귀향 러시를 이루고 있다. 8월 15일 아삼주 출신 주민 7000여 명이 떠났고 16일에는 6000여 명이 고향으로 출발했다. 이들 주민은 인근 도시 마이소르에서 14일 티베트인 대학생 한 명이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일어나자 더욱 자극받게 됐다고 한다. 인도 카르나타카주 주정부 처지에서 보면 수만 명에 이르는 아삼주 출신 주민의 귀향과 수많은 종교 갈등을 종식하고 평화와 함께 새로운 활력을 줄 달라이라마의 거주와 그를 따르는 티베트인과 관광객 등 수많은 인구의 유입을 원하는 한 측일 수 있다.

 구(舊) 마이소르 번왕국(藩王國)의 수도였던 마이소르는 주도(州都)인 벵갈루루 남서쪽 138㎞, 해발 830m에 위치하기 때문에 저위도이면서 덥지 않다. 이 지역은 영국인들의 피서지였던 다람살라와 마찬가지로 인도인들의 여름 피서지이기도 하다. 고산지역에 살던 티베트인들이 살기에도 매우 적합하다. 다람살라에는 4000여 명의 티베트 망명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나, 인도 전역에 10만 명 정도 가운데 약 50%에 해당하는 5만여 명 이상이 마이소르에서 약 80㎞ 떨어진 빌라쿠페 지역 등에 정착해 살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티베트 승려만 9000명이 넘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라 사원(Sera monastery) 등의 커다란 사원 여럿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인도 안의 작은 티베트가 다람살라이라고 하면 커다란 티베트가 바로 여기 마이소르이다.

 2004년 10월 타시 양천(24)은 런던 휴런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던 중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열린 미인대회에 참석해 미스 티베트에 선발됐다. 2005년 2월 짐바브웨에서 열린 미인대회에 ‘미스 티베트’ 자격으로 참가하려던 그녀는 현지 중국대사관의 압력으로 결국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2005년 7월 12일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미스 관광’ 미인대회에 참가하려다 이 또한 제지당했다. 이처럼 미스 티베트 경연대회는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행사로 알려졌으며 외부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수영복 심사까지 도입하는 등 애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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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5회 미스 티베트 경연대회에서 미스 티베트에 뽑힌 체링 충탁(21)은 11대 판첸 라마인 치에키 니마를 석방하라는 당선 소감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3년 10월 2회 대회에는 애초 열 명이 참가 신청을 했지만, 대회 당일 처링 키(21)만 모습을 나타내 미스 티베트로 선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올해 티베트 미인 선발대회는 남인도 마이소르에 있는 티베트인 망명자 거주 지역 빌라쿠페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출전자가 전혀 없자 결국 행사장소를 벵갈루루로 옮기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14대 달라이라마의 어머니는 디끼 체링, 아버지는 최쿙 체링이다. 어머니 디끼 체링은 티베트말로는 행복과 장수라는 뜻이다. 이 분의 다른 이름은 걀윰 첸모로 달라이라마에게 자비와 동정에 대한 깊은 영향을 남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이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축구대회가 바로 걀윰 첸모 기념 골드컵(GCMGC : Gyalyum Chenmo Memorial Gold Cup)이다. 1981년 시작된 이 대회에는 매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망명 티베트인 축구팀들이 참가하고 있다. 2003년부터는 이 대회를 주관하고 있는 티베트 국가 체육회(TNSA : National Sports Association)는 2009년 다람살라에서 2010년 남인도 마이소르에서 개최한 바 있다.

 1998년 4월 10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소년이 700여 년 전인 1250년에 죽은 승려 걀라 로레파(Galwa Lorepa)의 환생한 승려라고 2009년에 주장해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미국 보스턴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했던 평범한 티베트인 부모 밑에 성장한 지그메 왕추크는 2007년부터 보통 아이들처럼 놀지 않고 특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가족과 인도 마이소르를 찾았을 때는 선정에 빠졌다가 나와서는 자신이 기알와 로레파라고 하며 전생의 삶을 매우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현재의 기알왕 드룩파(Gyalwang Drukpa)에 의해 인가를 받아 린포치(rinpoche)가 된 그는 여동생과 함께 인도 다르질링(Darjeeling) 동부에 있는 드룩파 산각 초엘링(Druk Thubten Sangag Choeling)사원에서 3년간 Gyalwang Drukpa Jigme Pema Wangchen의 지도를 받았다. 최근에는 부탄 팀푸에 있는 드룩파 불교 연구소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와 드룩파 카규파에는 마이소르는 각성과 전생의 기억을 찾은 성지가 되는 셈이다.

 불자는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잘못을 묻는다. 물론 외도를 향해서 어쩔 수 없이 남 탓도 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안다. 하지만 티베트의 독립이나 완전한 자치를 푸는 열쇠는 중국이 아닌 달라이라마와 티베트망명정부가 쥐고 있다. 따라서 달라이라마의 거처뿐만 아니라 망명정부 역시 나라 잃은 국민이 가장 많은 인도 남부 마이소르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인도 전역에 퍼져 있는 티베트인을 모아 훌륭한 티베트의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훗날을 대비해야 한다. 새로운 정착지인 그곳에서 머지않아 티베트망명인 출신의 의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지도자들을 육성해서 실질적인 티베트 자치시도 만들어 가야 한다. 새로운 터전을 잡게 하는 정치적인 소명은 티베트망명정부에 일임하고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본토로 귀환해 훌륭한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를 위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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