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런 현실 속에서 담임교사가 소위 문제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학생들을 포기하고 외면할 수는 더욱 없다.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려고 애쓰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우선 그들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이해와 인내가 먼저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다른 학생들과는 차원과 방법이 같지 않다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 학생들이 더 이상 심각해지지 않도록 노력할 뿐인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들 스스로 안정을 찾아 바르게 성장해 간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온통 관심과 신경을 하늘이에게 쏟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을 못가서 문제는 또 발생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불법 영업을 하는 곳에서 최근 알게 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단속 나온 관할 경찰서 청소년 선도위원회에 적발되었다는 것이었다. 술 담배를 했음은 물론이고 여학생들까지 끼어 있었고, 여관에서 혼숙까지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야말로 설상가상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정말 걱정이었다.
유흥가 출입과 음주와 흡연, 미성년자 남녀 혼숙 등, 이번 일에 대해서는 그간 학교 분위기로 보아 쉽게 넘어갈 수 없다. 더욱이 학교사회란 곳이 소문은 참 빠르다. 이미 소문이 전체 학생들에까지 퍼져 있었다. 따라서 당시 어떤 형태로든 학생징계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 한 아이가 이렇게도 빨리 변하고 나빠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들른 생활지도부에서는 관련된 학생들이 진술서를 쓰고 있었다. 역시 주동은 하늘이었다. 순간 뻔뻔스럽게 고개를 쳐든 채 진술서 쓰기를 거부하는 하늘이를 보자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 마침 보이는 대걸레 자루로 다른 애들은 제쳐놓고 정신없이 엉덩짝을 내리쳤다. 요즘 같이 체벌이 금지되기 전이었다. 십여 대를 때렸을까 팔에 힘이 빠져 멈췄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진술서 작성이 끝내고 눈물을 쏟고 있는 하늘이의 바지를 내려놓고 보니까 시퍼렇게 허벅지가 피멍이 들어 있었다. 양호실로 데리고 가서 약을 발라주고 다시 생활지도부로 보냈다.
방과 후 가방을 챙겨 학교를 나오면서 차라리 때리지 말 걸 하고 후회가 되었다. 아이를 때려서 기분 좋은 선생님이 없다는 말이 어김없이 맞는가 싶었다. 게다가 여러 가지로 하늘이 자신의 고민과 갈등이 클 것인데 매까지 심하게 맞고 나면 더욱 문제아로 전락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스스로도 하늘이를 때려놓고 후회하던 바로 다음 날 아침 일찍 바로 하늘이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세상에 자식 귀하지 않은 부모 없다지만 어떻게 사람 되라고 가르치는 담임에게 협박조의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물론 체벌한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이후 여간 심란한 것이 아니었다. 동료 교사들의 시선도 시선이었지만, 당장 내 자존심이 무너질 때로 무너지는 것을 참기가 힘들었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하면서도 그토록 교단에 서기를 소망했던가. 사실 그때 나는 엄청난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 경찰서에 좀 나와 주셔야 되겠습니다…"
"K서 000형삽니다. 혹시 선생님 반에 박하늘 이라고 있지요?"
"예~"
"……"
가슴이 철렁했다. 3교시 끝나고 내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뭔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전기처럼 흘렀다.
그 날 점심시간이 채 되기 전에 K경찰서에서 좀 나와 달라는 연락이 왔다. 사정인즉 하늘이 아버지가 나를 고소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고 앞이 캄캄했다. 벌써 소문은 교무실 내를 파다하게 돌았고, 말 많은 일부 교사들은 학급의 문제아들은 생활지도부에 일임해 버리면 그만이지 뭣 때문에 나서서 저런 고초를 겪느냐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한 마디로 막막했다. 일단 경찰서에 가야 하기에 수업계에 보강을 부탁하고 책상 위를 정돈하고 있으려니 보다 못한 동료교사 최 선생님과 박 선생님이 따라 나섰다. 내 일이니까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하니까 동료 최 선생님과 박 선생님은 이럴 때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극구 따라 나섰다.
경찰서에서는 벌써 조서가 꾸며져 있었다. 처음 본 하늘이 아버지, 정확히 계부(繼父)인 하늘이 아버지는 담임인 나를 아예 외면하고 있었다. 담당 형사도 설마 담임이 무슨 개인감정이 있어서 그랬겠느냐고 하며 하늘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달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이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원칙대로 법대로 처리해 달라며 버티고 있었고 아예 담임인 나하고는 대화를 하려 들지 않았다. 대화가 되지 않자 박 선생님이 하늘이 아버지를 모시고 가까운 식당으로 갔고, 이윽고 하늘이 어머니와 일과를 끝낸 교감 선생님도 달려왔다.
하늘이 어머니는 오히려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고 했다. 하늘이가 많이 잘못하여 담임선생님께 많이 맞아 엉덩이와 허벅지에 피멍이 잔뜩 들었다고 하늘이 외할머니께 자신이 전화하는 것을, 최근 집에도 잘 들르지도 않던 하늘이 의붓아버지가 하루 와서 우연히 뒷이야기만 엿듣고는 그래도 자신이 아버지라고 전후사정은 알아보지도 않고 홧김에 오늘과 같은 일을 벌였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나 정말 담임교사로서 면목이 서지 않았다. 텔레비젼 화면으로나 보던 경찰서 내부를 난생 처음 직접 눈으로 둘러보니 더욱 내 자신이 기가 막혔다. 다른 학생도 아닌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 학생의 체벌 문제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나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했다. "아~이게 뭐란 말인가."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평소 학생문제는 되도록 조용히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과 동료교사들로부터 비록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학생들을 하나라도 더 구제하는 것이 교육자의 책무라고 믿고 있던 내 자신의 교직관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순간 그 동안 하늘이에게 쏟아 부은 정성을 생각하면 내가 미쳤구나 하는 생각도 얼핏 뇌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내가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교사임을 생각했다. 교사란 학생들에게 지식도 가르쳐 주지만 그들을 바람직한 인간이 되도록 인도해 주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그래 "나는 교사다. 나는 교사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다행히 하늘이 어머니와 평소 무던히 사람 좋고 인간적인 박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고소는 오후 늦게야 취하되었다. 경찰서 문을 나서며 평소 얼마의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경찰에 대한 불신감이 사라지고 끝까지 교사들 입장에 서 주었던 그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흔히 하는 말로 똑같다고 하지만 똑같은 것이 아닌 성 싶었다.
다음 날 술을 먹고 혼숙한 하늘이의 징계위원회는 방과 후에 열렸다. 대부분의 학생부 생활지도교사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이구동성이었다. 그런 아이는 앞으로도 다루기가 힘들고 구제의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징계위원회 담임교사의 소명 자리에서 담임인 나로서는 여전히 선처를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동료교사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그러느냐고 했다. 그리고 그날 퇴학과 사회봉사의 말까지 나왔으나 생활지도부장 오 선생님이 이런 경우에 자칫하면 감정으로 맞서 오히려 일을 잘못 그르칠 수가 있으니 일주일의 근신과 5일간 교내봉사의 처벌을 내리고 담임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자고 여러 징계위원들께 제안했다는 말을 들은 건 나중의 일이었다. 그리나 물의를 일으킨 이상 나는 이번 사안에 대한 경위서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하늘이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자기 때문에 애매한 담임선생님이 차마 말 못할 고초를 겪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징계도 생각보다 가볍게 내려왔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똑똑한 아이였다. 나는 서로가 마음 열어 놓은 대화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매일 방과 후면 만나고 대화했다.
그 이후 하늘이 어머니는 생각한 바 있어서인지 술집을 처분하고 화장품 가게를 열었고, 하늘이는 어머니 집에서 학교를 다녔고 나는 그전보다 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대해 주었다. 특히 내가 지금도 하늘이에게 고마워하는 것은 그때 우리 반에는 선천성 대사 이상으로 손이 많이 가는 희귀병인 PKU(페닐케톤뇨증)를 앓는 기원이가 있었다. 그날 이후 하늘이는 친구 기원이를 정성스럽게 챙겨주었다는 것이다. 당시 기원이는 병을 앓다 보니 성격도 폐쇄적이었고, 먹는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 학급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였다. 하늘이는 자신이 누구보다 아픔을 겪어보아서인지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기원이를 위해 기꺼이 함께 해주었다. 등하교와 쉬는 시간, 점심시간까지 담임으로서 미처 챙길 수 없는 일들을 하늘이가 대신 해주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하늘이는 더 이상 큰 문제없이 무사히 그해 3학년을 마쳤다. 그리고 둘은 그해 입시에서 나란히 서로 다른 지방 대학이지만 합격하는 기쁜 일도 찾아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