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이야기⑧]중동신화 이끈 기상천외 '뗏목작전'

기사등록 2013/05/12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07:26:37

【서울=뉴시스】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1976년 6월 20세기 최대의 공사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건설공사를 따낸 후 사우디 나와프 왕자와 계약식을 가졌다. (제공=아산정주영닷컴 캡쳐)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1976년 6월 20세기 최대의 공사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건설공사를 따낸 후 사우디 나와프 왕자와 계약식을 가졌다. (제공=아산정주영닷컴 캡쳐)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정리/우은식 기자 = 현대건설은 발주처가 제시한 4개 공사를 내역으로 해서 주베일 산업항 건설을 9억3114만 달러로 투찰했다.

 모든 서류는 완벽했다. 특히 44개월의 공사 기간에서 아무런 조건없이 8개월을 단축시키겠다는 제의가 낙찰의 주요 원인이었다.

 20세기 최대공사로 불리는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현대가 따내는 순간이었다.

 낙찰을 받고서도 공사 계약서에 서명을 받는 데 다시 몇 달이 걸렸다. 발주처에서 현대가 OSTT(Open Sea Tanker Terminal, 해상유조선 정박시설) 공사 경험이 없다는 지적을 했던 것이다.

 OSTT공사란 30미터 바닷속 암반에 기초 공사를 12미터나 해야하는, 정인영 사장이 걱정했던 바로 그 공사였다.

 어려우면서도 경험이 많이 필요한 공사였다. 그래서 브라운앤드루트 사가 그 부문에만 9억여 달러로 응찰한 것이다.

 사실 현대는 견적도 제대로 뽑기 어려워 대충 육상공사 시공가격에 수중 공사비만 계산한 입찰 견적서를 냈다.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할지 고민하던 정주영 회장에게 브라운앤드루트 사의 사장인 깁슨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깁슨은 OSTT공사를 자신의 회사에 하창을 달라고 했다.

 "말도 안됩니다. 우리는 전체 응찰가가 9억3114만 달러요. 그쪽은 OSTT 부문에만 이 정도 금액을 써내지 않았소? 우리가 그만큼을 떼어주고 나면 나머지 공사는 어떻게 합니까?"

 "우리 견적이 조금 비쌌던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검토하면 좀 더 싸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검토해보고 연락을 주십시오." 자신이 도와주려는 걸 고맙게 생각하라는 듯 거만한 태도를 보이던 깁슨 사장을 뒤로 하고 정주영 회장은 서울로 돌아왔다.

 "발주처에서도 OSTT 시공 능력을 문제삼으니 우리로서도 나쁜 제안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고로 큰 회사 고새 숙이고 들어오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야. 생각해보게. 우리처럼 이윤없이 명성을 얻자고 덤빌 회사가 아니네. 우리 같은 작은 회사의 하청을 받아 공사를 한다고 해서 명성이 더 높아질 리도 없고 말이야. 그 이유를 찾아봐."

 정주영 회장을 뒤따라온 깁슨 사장의 태도가 그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줬다. 서울에 온 깁슨은 자신들 말고는 그런 시공을 할 능력이 없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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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비 임대료를 하루 7만 달러로 해줄테니 계약을 맺자고 했다. 하지만 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OSTT 시공할 능력이 있는 회사는 브라운앤드루트 사만이 아닙니다. 협조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는 산타페도 있고, 맥토머트도 있습니다. 또 그들이 협조해주지 않아도 나는 현대 혼자서라도 하게 할 생각입니다. 우리는 경험이 없는 분야에 도전해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곤 했으니 겁날 것이 없습니다."

 그제야 깁슨은 거만한 자세를 버렸다.

 정주영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브라운앤드루트 사는 호주와 뉴질랜드 해상구조물 공사에 투입했던 장비를 모두 바레인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그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하루 임대료만 5만 달러만 계속 손해를 보고 있었다.

 결국 정주영 회장은 깁슨이 처음 요구했던 임대료의 10분의 1 가격으로 일부 장비를 사용하기로 하고 계약을 마무리지었다.

 정주영은 브라운앤드루트 사를 하청 기술사로 참여시킨다는 협약서를 발주처에 가져다주었다. 그런데도 발주처에서는 이상하게 여겼다.

 "현대보다 훨씬 더 비싸게 써낸 세계적인 업체가 어떻게 훨씬 적게 써낸 현대의 하청사가 됩니까? 브라운앤드루트 사는 OSTT공사에만 9억444만달러를 써냈습니다."

 "그런 우리 문제지, 당신들이 고려할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협약서를 보십시오."

 정주영 회장은 건설 공사라는 것이 원래 순풍에 돛 단 것처럼 진행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더군다나 해외 공사에서 겪는 고초는 국내 공사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최초로 하는 해외의 대형 해양 공사인 만큼 각오를 더욱 단단히 했다.

 그래도 막상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백 배, 천 배 어려웠다. 설계상 '자켓'이라는 철 구조물이 있는데, 하나만 해도 무게가 550톤, 높이는 36미터로 10층 빌딩과 같았다. 제작비는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약 5억원이었다.

 그런 자켓이 모두 89개 필요했다. 10층 빌딩이 89개가 있어야 하는 셈이다. 또 자켓의 기둥 굵기는 직경이 2미터, 기둥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파일'이라는 쇠기둥은 하나가 직경 2미터, 길이 65미터 이상이어야 했다.

 정주영 회장을 더욱 괴롭게 한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바로 사우디 공사 발주처와 감독기관의 불신이었다. 여전히 현대건설의 능력을 완전히 믿지 않았고, 사사건건 감독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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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1975년대 20세기 최대의 공사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상황을 둘러보며 진두지휘하고 있다. (제공=아산정주영닷컴 캡쳐)  [email protected]
 건설업에 있어서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은 인력과 자재의 송출(물품, 전기, 전파, 정보 따위를 기계적으로 전달), 공사에 들어가는 물자를 제때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도 마찬가지였다.

 "계약된 공사 기간이 36개월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현대건설은 현대조선과 긴밀하게 협조해서 한 몸처럼 일해야 합니다." 정 회장은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모든 기자재는 울산 조선소에서 제작해서 수송했다. 그런데 가야할 길이 보통 길이 아니었다. 세계 최대의 태풍권인 필리핀 해양을 지나 동남아 해상, 몬순(계절풍)이 부는 인도양을 거쳐서 걸프만까지 가야했다.

 일명 대양 악천후 바닷길 수송 작전이었다. 아슬아슬한 수송 작전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공사 후반에 이르자 정주영 회장은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엄청난 모험을 하기로 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면 자재를 빨리 수송하는 방법밖에 없는 거 알고들 있지요? 내 구상을 말해보면…." 회의 석상의 모두가 침을 꼴깍 삼켰다.

 "철구조물 전부를 울산에서 제작해서 해상으로 운반하는 겁니다."

 "아, 안됩니다." 누가 먼저 외쳤는지 모르지만 듣는 직원들의 마음은 다 똑같았다. 울산에서 주베일까지는 1만2000㎞로 경부고속도로를 열 다섯번 왕복하는 거리다. 그것도 어떤 바람, 어떤 파도가 올 지 모를 바다 위를 가야 한다.

 단 한 사람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습니다. 모든 산업이 그렇지만 건설업은 즉각적인 결정이 중요합니다. 시간이 곧 돈이에요."

 "공학자들의 분석으로는 안된답니다."

 "나는 기업하는 사람이야. 공학자들은 돈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고, 기업하는 사람들은 시간과 돈에 쫓기는 사람이니 공학자들의 의견을 존중은 하되 무조건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육상의 탄탄한 길이 아닌 거친 풍랑이 곳곳에 잠복해 있는 바닷길로 12만톤 짜리 기자재를 뗏목과 같은 바지선(밑바닥이 평평한 화물 운반선)으로 끌고 가 시공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첫 번째 항해 준비를 지시했다. 사람들은 이 작전을 '뗏목 수송 작전'이라 불렀다.

 자켓을 나르기 위해 바지선으로 19회나 항해를 해야 했다. 한번 이라도 바지선이 전복되거나 충돌 사고를 겪게 되면 계획은 치명적인 실패로 끝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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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1975년대 20세기 최대의 공사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상황을 둘러보며 진두지휘하고 있다. (제공=아산정주영닷컴 캡쳐)  [email protected]
 정주영이 한 번 결정한 이상 참모들도 더 말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보험 가입을 권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보험 대신 태풍으로 해난 사고가 나더라도 대형 파이프 자켓이 바다 위에 떠 있도록 하는 공법을 찾아서 제작하라고 지시했다. 또 위험을 줄이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 장착시켰다.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바지선이 첫 번째 항해를 시작했다. 출발해서 도착까지 35일이 걸렸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매달 한번씩 바지선이 출발했고, 7차 항해까지는 아무 사고도 없었다. 다만 8차 항해에서 대만 국적의 배와 충돌해 자켓 중 한 개의 파이프가 구부러졌고, 또 한번은 태풍으로 바지선 1척을 잃어버렸다.

 다행히 나중에 대만 해안으로 떠밀려 나가 있는 것을 끌고 왔다. 열 아홉 번의 모험 치고는 사소한 사고였다.

 도전을 선택한 정주영 회장은 결국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현대의 급성장을 이끌었다.

 공사기일을 맞추기 위해 기상천외한 모험들이 펼쳐졌고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세기의 공사였던 주베일 산업항 공사의 경제적 효과는 한 기업을 넘어 국가적으로도 정말 대단했다.

 1975년 중동에 진출한 이후 1979년까지 현대건설이라는 하나의 회사가 무려 51억6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또 1977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 라스알가르 항만과 그해 6월 쿠웨이트 슈아이바 항만, 1978년 1월 두바이 발전소 수주까지, 중동 지역의 대형 공사를 연거푸 따낸 것도 현대건설이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동은 1년 내내 비가 안 오니까 쉬지 않고 일해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낮에는 더우니까 자고, 공사는 밤에 하면 됩니다. 공사할 땐 모래가 있어야 콘크리트 시멘트를 만드는데, 지천으로 깔린 게 모래니 좋고, 물은 유조선을 만들어 빈 탱크에 가득 실어 나르고, 돌아올 때는 석유를 담으면 됩니다."

 정 회장이 중동 건설 진출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같이 말했다. 정 회장의 이같은 긍정적 생각이 중동 신화를 이끌어낸 힘의 원천이 된 셈이다.

 현대는 이로써 건설, 자동차, 조선이라는 세 가지 주력 사업을 세계 시장에서 성공시켰고, 이것을 기반으로 이 사업들은 지금 한국 경제의 수출 선도 산업이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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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이야기⑧]중동신화 이끈 기상천외 '뗏목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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