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뉴시스】박재원 기자 = 충청대학교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의 ‘굴렁쇠 소년’으로 알려진 윤태웅 교수가 대학 방송연예과에서 연기수업을 한다고 25일 밝혔다. (사진=충청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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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뉴시스】박세웅 기자 = 88서울올림픽 굴렁쇠 소년 윤태웅(33·경기도 일산)씨가 충북 청원에 있는 충청대학교에서 연기자가 꿈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윤 교수가 지난해 2학기부터 맡은 과목은 방송연예과 2학년의 '영화연기'다.
윤 교수는 1981년 9월3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날이 대한민국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날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81년 9월30일 독일(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총회를 열어 서울을 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했다.
올림픽조직위는 개막식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그날 태어난 어린이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통해 굴렁쇠 소년을 뽑게 됐고 그가 선발됐다.
윤 교수는 "당시 잠원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만의 관중과 TV를 통해 국민과 전 세계인이 지켜본다는 부담감에 무척 긴장했었다"고 회상했다.
서울올림픽이 끝난지 2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에게 항상 따라붙는 꼬리표는 '굴렁쇠 소년'이다.
그는 '굴렁쇠 소년'이란 이미지가 '영광'이자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라고 했다.
그는 "굴렁쇠 소년은 올림픽 개회식의 이벤트로 국민들에게 큰 추억을 선사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 주는 것은 큰 영광이지만 이제는 굴렁쇠 소년보다는 배우 윤태웅으로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교수의 부친은 축구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로 실력있는 운동선수였다. 부친을 닮아서인지 그도 운동을 좋아한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했고 태권도 공인 4단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단점을 "삶에 스펙트럼이 없었고 경험도 적었다"고 말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이다.
어린 나이에 인생의 큰 경험을 했지만 올림픽이 끝난 후에는 여느 또래와 같은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그가 배우의 길로 접어든 것은 연평도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뒤였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단조로운 생활을 한 것이 후회가 된 그는 연극 오디션에 도전했다.
연극 '19 그리고 80'의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배우를 '선택받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그는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배역의 비중을 떠나 모든 무대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연기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삶에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연기라고 말하는 윤 교수는 연기자의 꿈을 꾸고 있는 학생들에게 표현력을 높이고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연기자가 되길 주문한다.
윤 교수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틈만 나면 책을 읽는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국가의 힘은 문화에서 오며 문화의 뿌리는 책"이라고 강조하며 "대학에서 문화를 가르치고 보호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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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가 지난해 2학기부터 맡은 과목은 방송연예과 2학년의 '영화연기'다.
윤 교수는 1981년 9월3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날이 대한민국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날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81년 9월30일 독일(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총회를 열어 서울을 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했다.
올림픽조직위는 개막식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그날 태어난 어린이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통해 굴렁쇠 소년을 뽑게 됐고 그가 선발됐다.
윤 교수는 "당시 잠원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만의 관중과 TV를 통해 국민과 전 세계인이 지켜본다는 부담감에 무척 긴장했었다"고 회상했다.
서울올림픽이 끝난지 2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에게 항상 따라붙는 꼬리표는 '굴렁쇠 소년'이다.
그는 '굴렁쇠 소년'이란 이미지가 '영광'이자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라고 했다.
그는 "굴렁쇠 소년은 올림픽 개회식의 이벤트로 국민들에게 큰 추억을 선사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 주는 것은 큰 영광이지만 이제는 굴렁쇠 소년보다는 배우 윤태웅으로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교수의 부친은 축구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로 실력있는 운동선수였다. 부친을 닮아서인지 그도 운동을 좋아한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했고 태권도 공인 4단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단점을 "삶에 스펙트럼이 없었고 경험도 적었다"고 말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이다.
어린 나이에 인생의 큰 경험을 했지만 올림픽이 끝난 후에는 여느 또래와 같은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그가 배우의 길로 접어든 것은 연평도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뒤였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단조로운 생활을 한 것이 후회가 된 그는 연극 오디션에 도전했다.
연극 '19 그리고 80'의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배우를 '선택받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그는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배역의 비중을 떠나 모든 무대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연기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삶에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연기라고 말하는 윤 교수는 연기자의 꿈을 꾸고 있는 학생들에게 표현력을 높이고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연기자가 되길 주문한다.
윤 교수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틈만 나면 책을 읽는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국가의 힘은 문화에서 오며 문화의 뿌리는 책"이라고 강조하며 "대학에서 문화를 가르치고 보호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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