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에리 북유럽80일]눈길부르는 노출, 이거야원…

기사등록 2012/12/25 07:51:00

최종수정 2016/12/28 01:44:50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43>

 원고를 쓰느라 몇시간이나 잤을까, 제대로 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짐을 싸들고 베르겐 역으로 향했다. 공동으로 쓰는 호스텔 방이니 짐을 싸느라 부스럭대는 소음을 낸 것이 몹시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역시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예비해온 1회용 우비를 뒤집어쓰고 짐도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잘 싸서 메고 끌고 나섰다. 캐리어를 끌고 가기 편하게 포석을 깐 울퉁불퉁한 길이 아닌 아스팔트길을 찾는답시고 잠결에 딴 길로 들어섰다. 내 방향감각을 지나치게 과신한 탓에 어제 예행한 것이 말짱 헛일이 됐다.

 베르겐은 풍광과 문화가 모두 아름답기도 했지만, 친절 때문에 떠나는 것이 더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베르겐은 친절했다. 이곳의 오래된 기차역들은 입구 앞에 세단 정도의 계단만 있고 짐을 끌고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가 없는 경우가 많다. 걸터앉아있던 한 여자가 “도와줄까”하고 몸을 일으키며 물어보는 것이다. 같은 나라라도 지역에 따라서 참 풍토가 다르다.

 열차예약서를 티켓으로 바꾸는 부스를 찾아 헤매고, 타야할 열차칸이 헷갈려 왔다갔다 거리다가 겨우 오전 7시58분 출발하는 열차에 올랐다. 이럴 때마다 십년감수, 가슴이 오그라든다. 짐을 잔뜩 지고 있는데도 도와줄 생각도 없이 길을 막고 있는 차장 아저씨가 원망이 된다. 무조건 짐과 함께 올라야한다는 일념으로 “익스큐스 미”를 외치며 가까스로 출발직전 3호칸에 탈 수 있었다. 근데 늦게 탄만큼 짐을 놓는 곳이 다들 차버려 내 커다란 캐리어를 놓을 자리가 없어 빈 자리를 찾아 또 짐을 끌고 열차 안을 한참 돌아다녔다.

 너무 지치고 정신도 없어 카페인이 고팠다. 카페테리아 칸으로 가니 담당 여직원이 그제서야 영업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커피를 기다리며 기운 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본 흰수염의 친절한 차장이 지나가다가 자신이 일도 아닌데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따라준다.

 근 한달간 노르웨이의 자연에 놀랄 만큼 놀랐고 이젠 덤덤해질 때도 됐지만 노르웨이 2대 도시인 오슬로와 베르겐 사이를 운행하는 베르겐 익스프레스는 또다른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7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구간은 삼림, 호수, 빙하, 피오르드 등 변화무쌍한 풍경을 만끽하게 해준다는 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최북단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왔는데, 더이상 스타방에르 쪽으로 더 내려가지 않고 오슬로행을 선택한 건 이 열차를 꼭 한번 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남으로 가면 할리우드 스타 메릴린 먼로 의 부계 조상이 살았다는 헤우게순이라는 어촌마을에 메릴린 먼로 동상이 있고, 뤼세 피오르드와 여자들이 좋아할만큼 예쁜 마을을 이루고 있다는 스타방에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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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노르웨이를 세계최대 부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원전개발의 중심지로, 석유박물관도 꼭 가봐야한다는 권유도 받았지만 아직 덴마크와 스웨덴 등 갈 길이 멀어 여기서 수도인 오슬로로 빠지기로 했다. 무엇보다 감명깊게 본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O Horten’)의 주인공이 베르겐 익스프레스를 몰았기 때문에라도 이 기차를 타고 싶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오트 호텐(Odd Horten)은 40년동안 베르겐 익스프레스 노선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사는데, 은퇴식을 한 후 일이 꼬이면서 마지막 열차운행을 하지 못한다. 자괴감에 빠진 그가 오슬로의 겨울밤을 헤매며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담았다. 2007년작으로 칸영화제 등 해외유수영화제에 초청받았었고 2011년에야 국내 개봉해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호평 받았다. 이렇게 먼 곳에 사는 이들과도 정서적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던 영화다.

 기찻길 옆 소박한 집에 홀로 살면서 작은 새를 키우고 양철도시락에 점심을 싸 정해진 시간에 기차에 오르는 삶은 우리네 서민의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눈이 쌓인 베르겐 변두리 뒷골목 언덕길에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베르겐에 갈 때마다 숙박하는 하숙집 늙은 여주인과 은근한 정을 나누면서도 마음 표현은 하지 못한다. 세계 최고의 여권신장국인 노르웨이에서도 한 두 세대 전만해도 여성차별이 극심했음을 알려주는 호텐 어머니의 에피소드도 가슴을 뜨겁게 한다.

 양로병원에 있는 노령의 어머니는 스키점프선수였지만 오슬로에 있는 홀멘콜렌 스키점프대에 여자라서 오르지 못했다. 발에 스키를 달고 태어난다는 노르웨이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는 달리 스키를 타지 못할만큼 겁많고 소심하던 호텐은 결국 스키점프에 성공한다. 그리고 가방을 싸들고 하숙집 여주인이 기다리고 있는 베르겐으로, 이제는 동료가 운전하는 열차를 얻어타고 노년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이 긴 여운을 남긴다.

 ◇열차 홈피에서 실시간 운행정보

 베르겐 익스프레스는 일종의 산악열차다. 그만큼 터널이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등장한다. 플롬과 뮈르달을 잇는 플롬바나는 유레일패스가 있으면 30%할인이 되는데도 타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가 이 노선이 뮈르달을 지나기 때문이다. 열차는 보스를 거쳐 9시50분께 뮈르달을 지난다. 이 노선의 가장 높은 곳(1222m)에 있는 핀세 역 주변으로는 7월중순인데도 황록색의 툰드라를 배경으로 여전히 녹지 않은 만년설이 그득하다. 날은 흐리고 빗방울이 차창에 지그재그 흔적을 남긴다. 재밌는 것은 에어컨디셔너의 찬바람이 나오다가 높은 지대로 이동하자 히터를 틀어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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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내에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데 NSB 접속화면에서 운행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줘 굉장히 유익하다.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다음 역까지 몇시간이나 남았는지, 운행지연시간 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예정보다 8분정도 늦게 핀세 역에 도착했는데, 이 꼭대기에 나무집으로 된 뮤지엄이 보인다. 이 높은 곳에 너른 호수들도 군데군데 나타나는데 분명 지난 겨울 내린 눈이 만든 거대한 웅덩이들이리라.

 하이당에르비다 고원 일대, 10시55분께 예일로(Geilo) 등을 거치는데 오슬로 인근 예일로는 플롬에서 베르겐으로 오는 익스프레스 보트 안에서 동석했던 노르웨이인들이 스키점프대가 있다고 꼭 챙겨보라고 한 곳이다.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에 따르면 기차에서 내려 바로 리프트에 오를 수 있다고. 눈은 다 녹아 없지만 산을 가로지르는 급경사의 스키루트들이 보인다.

  스키점프대를 잘 보기 위해 여기저기 창밖을 내다보다가 단체로 여행중인 일본인들을 만났다. 동양여행객들은 단체여행을 하면 주로 버스를 대절해 이동하는데, 일본인들은 단체로 움직이면서도 기차를 많이 이용하는 것이 흥미롭다. 좀 더 가면 골짜기 사이로 예쁜 마을들이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낸다. 높은 지대에도 눈이 워낙 많이 내리기 때문인지 호수와 계곡이 종종 보인다. 암석 때문인지 물빛은 검다. 돌에 걸려 흰색의 잔물결을 무성하게 만들어내는 강줄기도 볼거리다.

 내 옆에는 보스 역에서 탄 고운 얼굴의 스웨덴 부인네가 앉았는데, 다른 창가 쪽에 앉은 키큰 10대소년 둘이 아들이란다. 확실히 북유럽인들 중에서 스웨덴인의 생김새는 선이 곱고, 언행도 더 부드럽다. 남편 직장을 따라 노르웨이로 이주해왔는데, 친정부모가 있는 예테보르그에 가는 중이란다. 그녀는 내가 노트북에 입력하는 한글에 큰 관심을 보인다. 근데 그녀가 보기에는 받침체계가 무척 신기한가보다. 왜 (알파벳처럼) 일렬로 그냥 쓰지 않고 받침을 사용하는지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한글이 과학적인 글자임을 설파하던 나도 거기서는 말문이 막힌다. 글쎄요?

 이 노선은 본래 오슬로에서 89.5㎞ 지점인 요네포스까지라고 한다. 그래도 오슬로까지 철도가 이어져있는데, 마침 오슬로-요네포스 구간은 여름을 맞아 보수공사중이라 버스로 갈아타야한다. 가지고 있는 표를 보니 오후 1시3분에 요네포스에 도착, 5분 내로 버스로 갈아타고 오후 2시23분 오슬로S역에 도착하게 돼있다.

 기차가 종점에 다다르기 한참 전부터 사람들이 급히 버스를 갈아타야한다는 맘이 급했는지 미리 일어서서 부지런히 짐을 챙기기에 나도 일어섰다. 근데 입맛도 없고 피곤하기도 해서 카페테리아로 가서 점심도 챙겨먹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약간의 멀미까지 더해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들고있던 노트북컴퓨터를 요란하게 떨어뜨렸다. 제발 고장나지 말아야할텐데. 캐리어를 붙들고 서있는데, 기운이 없어서 티가 날 정도로 휘청거리게 된다. 다들 버스를 놓치지 않아야한다는 일념으로 잔뜩 긴장해있는 가운데 내 모습이 부족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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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네포스 역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대기중이다. 뒤처졌더니 역시니 버스짐칸에 내 짐을 넣을 공간이 없다. 겨우 버스 출입문 반대편에서 짐칸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 뚱뚱한 여기사가 모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정도 안내도 안 해주는 기사가 야속하다. 게다가 속이 비어있으니 누군가의 요란한 향수냄새 때문에 속이 더 울렁거린다. 샤넬 귀걸이, 불가리 선글라스 등 명품 브랜드를 잘 모르는 나까지 알아볼 정도로 요란하게 꾸민 자그마한 동양 여자애가 뿌린 것인가 했더니, 백인 노부인이 ‘범인’이다. 자리를 좀 옮길까 해도 여기사는 어찌나 버스를 터프하게 모는지 하도 흔들리는 통에 움직일 수가 없다. 여행중에는 더욱 더 끼니를 잘 챙겨야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슬럼화돼가는 오슬로 거리 호스텔

 예보와 달리 오슬로 인근의 날씨는 맑다. 바다처럼 푸르른 하늘이 선명한 색을 뽐낸다. 도시로 들어서는 항구변에는 개인요트가 끝도 없이 늘어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확실히 ‘부티’다. 오슬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오페라하우스가 보이고, 여기저기 공사중인 기중기가 보이는 것이 대도시의 풍모가 확연히 드러난다. 기대감에 울렁거리면서도 엄청 이동해 다녀야하겠구나 하는 우려가 바로 든다.

 버스는 기차역 인근에 서고, 내려서 오슬로 중앙역 광장에 있는 시계탑 1층 관광안내소(트라피칸텐)에 들러 교통카드를 한 장 샀다. 8장짜리 회수권 묶음(Flexikort)이 있다고 해서 그걸 살까 했더니 올해 1월1일부로 없어졌다고 한다. 남방 중국계인 것같은 친절한 여직원이 “24시간권은 75크로네, 1주일권은 220크로네”라며 “4박을 하려면 1주일권이 훨씬 싸게 먹힌다”고 추천을 한다. 이 카드로 버스, 트램, 페리, 지하철(T-bane)까지 다 탈 수 있는데, 1회 탑승권은 30크로네다. 도보 이동을 많이 할 것 같긴 하지만 매번 잔돈을 챙기기도 귀찮고 어찌저찌 8번 정도만 타면 본전치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1주간 사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 카드를 구입했다.

 버스를 타니 확실히 대도시에 온 티가 난다. 깨끗한 노르웨이 다른 지역에서 맡을 수 없던 역한 냄새가 풍기고 창밖으로는 부랑자 같은 이들도 눈에 띈다. 오슬로에서 목격한 ‘냉정’해보이는 젊은이들에 대한 묘사를 미국인 저널리스트가 쓴 여행기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눈부시게 반짝이는 금발을 한 늘씬한 노르웨이 청년 몇몇은 마치 무비스타라도 된양 도도한 모습이다. 오슬로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유색인종 이민자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사이에서 자신이 눈길을 끈다는 것을 알고 선글라스를 끼고 앞만 보며 걸어가는 것이 딱 연예인들이 하는 행동이다.

 숙소는 버스로 두 정거장 가면 있는 앙케르 호스텔. 앙케르 STI라는 구역안에 있는데, 호텔, 김나지움(인문계 고교), 유치원, 학생 기숙사 등이 함께 운영되고 있는 대형 호스텔이다. 4박에 900크로네(약 18만원)를 내고 8인실을 이용하게 됐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호텔과 달리 낮은 가격의 숙박을 고른다면 큰 곳보다는 소형으로 운영되는 곳이 낫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치인 직원들이 친절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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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크인으로 하고 방으로 짐까지 올려다놓으니 꽤 늦은 시간, 관광을 나가기도 애매한 시간이고 피곤하기도 해서 밀린 빨래를 하기로 했다. 종이컵에 세제를 덜어주긴 하지만 세탁기 한번 이용하는데 무려 60크로네. 가진 옷을 다 빨아야했기에 할 수 없이 챙겨왔지만 한 번도 입지 않은 반바지 트레이닝복을 꺼내 입고 빨래거리를 챙겨 내려갔다. 확실히 국내에서도 생전 하지 않던 노출을 하니 온갖 남자들의 눈길을 다 받고 있다. 어느나라에서 왔는지 궁금해하는 질문도 받고, 유례없는 관심을 받고 있다. 이래서 노출을 하나본데, 쾌락주의자라면 이를 무척 즐겼을테지만 ‘그래서 어쩌라고?’식의 회의론자에 가까운 나는 이런 관심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체질상 금욕적인 4D족(술, 담배, 드럭, 무분별한 섹스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쾌락주의자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다면 자신의 선택, 자신의 가치관대로 사는 것이다. 무엇보다 짧은 옷차림으로 다니기엔 북유럽의 날씨가 나에겐 너무 서늘하다.

 그나저나 호스텔 리셉션 직원의 성의없는 설명에 지하 차고에 있다는 론드리룸을 찾지 못하고 앙케르 STI 구역내 다른 건물에 있는 세탁실에 갔더니, 직원이 준 카드로 문이 열리지 않는다. 호텔 리셉션을 거쳐 다시 호스텔 리셉션에 돌아오니, 한 남자직원이 저간의 사정을 듣고 직접 호스텔 론드리룸으로 데려다준다. 정말 바보라도 된 듯 무시당하는 느낌이라 창피해 죽겠다. 그런데 그 직원도 차고 내 여러개 문중에서 세탁실을 잘 찾지 못한다. 괜히 나의 잘못이 아닌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여행중이니 언어도 잘 안통하고 이러한 일 정도는 다반사라며 넘기는 이들도 있는데, 내 자존심이 쓸데없이 세긴 센 모양이다.

 세탁기를 돌리고 있는데 한국인 처녀 L도 빨래를 하러 왔길래 인사를 나누게 됐다. 여럿이 방을 나눠쓰는 호스텔이 체질에 맞지 않아 호텔로 옮겨 머무르고 있다는데 유레일패스를 가지고 전 유럽을 ‘맘대로’ 이동중이다. 록음악 마니아로 콘서트를 찾아 이 도시 저 도시 돌아다니고 있단다. L이 오슬로가 참 작은 도시라 만났던 사람 또 만나기 십상이겠다는 말을 하는데, 새삼 내가 꽤나 도시에서 멀어져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 코스모폴리탄인 서울 출신인데 북유럽의 자연에 40여일간 빠져있다보니 상대적으로 오슬로가 엄청 크고 피로도가 높은 대도시처럼 느껴진다.

 빨래를 드라이어에 넣어놓고 L과 함께 먹을 것을 사러 슈퍼마켓으로 한참을 걸어갔다. 호스텔이 있는 주변 거리는 상당히 지저분하고 이민자들이 많이 보여 도시 한구석이 슬럼화돼가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빨래를 거둬 방으로 돌아와 뭔가 좀 만들어 먹을까 했더니 방안에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식탁만 있지 냄비 등 요리도구가 하나도 없다. 보통 구비돼있게 마련이어서 마침 방에 있던 동양계 여자애에게 물어보니 그런 도구들은 리셉션에서 디포짓을 내고 빌려야한단다. 미처 이 호스텔 규정을 다 읽어보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대도시이고 호스텔 규모도 크고 방안에 싱크대가 있다보니 분실이 많아 그런가보다.

 영어로 한참 얘기를 나누고 났는데 뒤늦게 알고보니 이 여자애도 한국인이다. 이제 갓 스물의 대학 1학년생. 첫사랑에 성공했더라면 딸 뻘쯤 되려나, 어린 나이에 홀로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이 기특하고 부럽다. 상당히 지친 터라 또 리셉션까지 내려가서 줄서서 기다려 무언가 빌려와야하는 절차가 번거롭다. 사가지고 온 크래커와 야채, 과일 등으로 배를 채우고 일찌감치 휴식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7월17일 베르겐에서 오슬로행 기차를>

 문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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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눈길부르는 노출, 이거야원…

기사등록 2012/12/25 07:51:00 최초수정 2016/12/28 01: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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