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40>
어제 체크인할때 묵을 건물 위치 알려주는 것조차 윽박지르듯 하는 곳인데,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다. 플롬 캠핑&유스호스텔은 숙박객에게 조금도 에누리가 없는 곳이다. 오전 11시까지 체크아웃을 해야하는데, 원고정리를 좀 하려고 페리 시간까지 리빙룸에서 좀 기다리면 안되느냐고 물어봤더니 칼같이 자른다. 호텔 로비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괜히 물어봐 이들이 동양인을 싫어하는 구실만 더 만들어준 것 같아 후회가 됐다. 너른 들판에 깨끗하고 잘 꾸며놓은 공간이지만 왠지 정이 떨어진다.
플롬에 도착하자마자 관광안내소에서 확인해봤는데 플롬에서 베르겐으로 가는 익스프레스 보트는 하루 두차례 운영된다. 5월1일~9월30일 매일 오후 3시30분 출발해 오후 8시40분 도착하는 것 한 편, 6월18일~8월17일 평일에만 오후 6시 출발해 Balestrand에서 한번 갈아타고 밤 11시40분 도착하는 편이 하나 더 있다. 피오르드1에서 여름철만 관광용으로 베르겐과 플롬 사이를 운행한다. 7월14일은 토요일이니 오후 출발 편을 타는 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관광안내소가 있는 건물 대기실에 노트북을 올려놓기 편한 데스크와 의자가 있지만 바로 옆 카페에서 풍겨나오는 기름진 음식냄새를 견디기 힘들다. 흐린 날이라 서양음식의 느끼한 냄새가 더 역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 항구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글을 좀 썼더니 기분이 금세 상쾌해진다. 비가 내리진 않지만 이 분지 같은 예쁜 마을을 둘러싼 병풍같은 바위산 꼭대기에서는 뭉게뭉게 비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 10단계의 하이킹 코스를 안내받았던 것이 생각나, 가장 짧은 1단계 루트를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작은 바이킹 기념품점을 지나 Fretheim 호텔에서 시작해 언덕을 올라 생태농장을 지나 어제 지났던 내륙 강쪽으로 내려와 플롬스바나 철도 일부를 거쳐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40여분이 걸리는 코스다.
산위에 오르니 크루즈가 떠있는 항구와 마을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런게 산을 오르게 하는 이유중 하나일테다. 대여해주는 집 주변과 너른 농장은 모두 ‘프라이빗’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아 들어가볼 수 없게 돼있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다. 근 한달을 노르웨이에 머물렀다. 이젠 노르웨이 시골 풍경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는데 아름다운 자연과 절제된 건축양식의 예쁜 집들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니 기분도 따라 고양된다.
어제 체크인할때 묵을 건물 위치 알려주는 것조차 윽박지르듯 하는 곳인데,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다. 플롬 캠핑&유스호스텔은 숙박객에게 조금도 에누리가 없는 곳이다. 오전 11시까지 체크아웃을 해야하는데, 원고정리를 좀 하려고 페리 시간까지 리빙룸에서 좀 기다리면 안되느냐고 물어봤더니 칼같이 자른다. 호텔 로비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괜히 물어봐 이들이 동양인을 싫어하는 구실만 더 만들어준 것 같아 후회가 됐다. 너른 들판에 깨끗하고 잘 꾸며놓은 공간이지만 왠지 정이 떨어진다.
플롬에 도착하자마자 관광안내소에서 확인해봤는데 플롬에서 베르겐으로 가는 익스프레스 보트는 하루 두차례 운영된다. 5월1일~9월30일 매일 오후 3시30분 출발해 오후 8시40분 도착하는 것 한 편, 6월18일~8월17일 평일에만 오후 6시 출발해 Balestrand에서 한번 갈아타고 밤 11시40분 도착하는 편이 하나 더 있다. 피오르드1에서 여름철만 관광용으로 베르겐과 플롬 사이를 운행한다. 7월14일은 토요일이니 오후 출발 편을 타는 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관광안내소가 있는 건물 대기실에 노트북을 올려놓기 편한 데스크와 의자가 있지만 바로 옆 카페에서 풍겨나오는 기름진 음식냄새를 견디기 힘들다. 흐린 날이라 서양음식의 느끼한 냄새가 더 역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 항구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글을 좀 썼더니 기분이 금세 상쾌해진다. 비가 내리진 않지만 이 분지 같은 예쁜 마을을 둘러싼 병풍같은 바위산 꼭대기에서는 뭉게뭉게 비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 10단계의 하이킹 코스를 안내받았던 것이 생각나, 가장 짧은 1단계 루트를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작은 바이킹 기념품점을 지나 Fretheim 호텔에서 시작해 언덕을 올라 생태농장을 지나 어제 지났던 내륙 강쪽으로 내려와 플롬스바나 철도 일부를 거쳐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40여분이 걸리는 코스다.
산위에 오르니 크루즈가 떠있는 항구와 마을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런게 산을 오르게 하는 이유중 하나일테다. 대여해주는 집 주변과 너른 농장은 모두 ‘프라이빗’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아 들어가볼 수 없게 돼있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다. 근 한달을 노르웨이에 머물렀다. 이젠 노르웨이 시골 풍경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는데 아름다운 자연과 절제된 건축양식의 예쁜 집들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니 기분도 따라 고양된다.

플롬에서 베르겐까지는 버스를 타면 3시간50분이면 간다. 5시간이 넘게 걸리는 배를 타는 것은 노르웨이 최장의 협만인 송네피오르드를 쭉 따라 돌아보며 구경한다는 의미도 크다. 출발시간이 아직 멀었는데도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나무 갑판위에 미리부터 줄을 선다. 관광안내소에서도 티켓을 판다는 안내판이 있어 물어보니 이제는 배를 탈 때만 구입할 수 있다며 잘못된 안내라고 사과를 한다. 성수기인지라 혹시라도 표를 구하지 못할까봐 걱정돼 나도 재빨리 짐을 이끌고 가서 줄에 붙었다.
내 앞쪽에는 20대 동양인 처녀 둘이 서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둘다 자그마한 체구에 귀염성 넘치는 얼굴인데 싱가포르에서 일하며 만났다는 말레이시안과 일본인이다. 휴가를 맞아 ‘노르웨이 인어넛셀’(간략하게 피오르드 탐험을 할 수 있는 여행상품) 티켓으로 관람을 하고 있단다. 노년기에 접어든 이 페리 차장은 이 아가씨들을 보더니 반색을 하며 어디서 왔는지 일일이 물어본다. 노르웨이에서는 노인들이 젊은 태국여자를 데려와 사는 것이 대유행인데 그래서 저렇게 동남아계 처녀들을 보며 좋아 죽는걸까. 그 모습을 보며 선입견에 괜히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키큰 나에게는 다시 떨떠름한 표정이 되는 것이 관광객들을 많이 접하니 같은 동양인이라도 동남아계와 비동남아계를 분명 구분하는 것 같다.
나중에 페리 안을 돌아다니다가 이 처자들을 다시 만나 좀 더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내가 영어를 좀 더 잘했더라면 나도 너희들처럼 해외취업을 시도해봤을텐데 정말 부럽다, 해외까지 나올 정도니 좋은 직업들을 가졌겠구나”했더니 “그리 좋은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겸손해들 한다.
이 페리에는 타자마자 티켓부스가 따로 마련돼있는 것이 특이하다. 뱃삯은 무려 710크로네(약 14만원) 바로 옆에는 큰 짐을 놓고 들어갈 수 있는 선반이 있고, 승객석은 2층으로 구분돼있다. 나는 1층의 창가 6인석 자리에 홀로 앉았다. 바닷물과 빗물이 튀긴 창을 잘 닦지 않아서 제대로 창밖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흠이다.
◇젊은 태국여인과 결혼한 노인과 동석
내 앞쪽에는 20대 동양인 처녀 둘이 서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둘다 자그마한 체구에 귀염성 넘치는 얼굴인데 싱가포르에서 일하며 만났다는 말레이시안과 일본인이다. 휴가를 맞아 ‘노르웨이 인어넛셀’(간략하게 피오르드 탐험을 할 수 있는 여행상품) 티켓으로 관람을 하고 있단다. 노년기에 접어든 이 페리 차장은 이 아가씨들을 보더니 반색을 하며 어디서 왔는지 일일이 물어본다. 노르웨이에서는 노인들이 젊은 태국여자를 데려와 사는 것이 대유행인데 그래서 저렇게 동남아계 처녀들을 보며 좋아 죽는걸까. 그 모습을 보며 선입견에 괜히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키큰 나에게는 다시 떨떠름한 표정이 되는 것이 관광객들을 많이 접하니 같은 동양인이라도 동남아계와 비동남아계를 분명 구분하는 것 같다.
나중에 페리 안을 돌아다니다가 이 처자들을 다시 만나 좀 더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내가 영어를 좀 더 잘했더라면 나도 너희들처럼 해외취업을 시도해봤을텐데 정말 부럽다, 해외까지 나올 정도니 좋은 직업들을 가졌겠구나”했더니 “그리 좋은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겸손해들 한다.
이 페리에는 타자마자 티켓부스가 따로 마련돼있는 것이 특이하다. 뱃삯은 무려 710크로네(약 14만원) 바로 옆에는 큰 짐을 놓고 들어갈 수 있는 선반이 있고, 승객석은 2층으로 구분돼있다. 나는 1층의 창가 6인석 자리에 홀로 앉았다. 바닷물과 빗물이 튀긴 창을 잘 닦지 않아서 제대로 창밖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흠이다.
◇젊은 태국여인과 결혼한 노인과 동석

보트 출발 직전 두쌍의 부부가 오더니 동석해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한쌍은 30대로 보이는 젊은 부부이고, 다른 한쌍은 나이든 노르웨이 남자와 젊은 태국 여자다. 재작년 겨울 결혼해 노르웨이로 왔다는 이 태국여인에게 국내 관광을 시켜주러 온 듯, 그 여인에게 창가쪽 자리에 앉도록 한다. 확실히 동양인 동행이있어 동양인에 대한 낯섦이 덜한지 나에게도 친절하게 말을 시키고 계속 먹을 것을 권한다. 아무래도 아시아 출신 여인과 살고 어울리다 보니 아시아 문화에도 익숙해진 듯싶다. 먹을 것을 나눠먹자는 유럽인은 여기서 처음 만나봤다. 이들 덕분에 다소 지루하리라 염려됐던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오슬로 인근 한동네에 산다는데, 울슨이라는 노르웨이에서 굉장히 흔한 성을 가졌다는 젊은 커플 중 남편은 무척 장난기가 넘치는 개구쟁이 같은 생김새이고 부인은 책을 손에 쥐고 놓지 않는 다소 과묵하고 지성적인 스타일이다. 내가 노르카프에 갔었다고 하자, 남편이 자기 아내도 노르카프 출신이라며 오슬로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는 얘기까지 들려준다. 워낙 노르웨이의 교통비가 비싸 웬만한 노르웨이인들도 국내여행에 겁을 낸다는 얘길 들었는데, 내가 노르웨이 전역을 여행하고 있다고 밝히자 “너 엄청 부자구나” 한다.
그래서 사실은 여행기를 쓰기 위해 취재중이라고 하자 “아, 저널리스트라 낯선 이들과도 이렇게 얘기하기를 좋아하는거냐”고 한다. 울슨씨는 나에게 계속 농담을 건네고, 두 남자는 자신들 모두 현대차를 탄다며 한국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다 들춰낸다. 외국인들이 흔히 그렇듯이 내가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자, 노스냐 사우스냐 되묻는다. 노스코리안들은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자, 노인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이름을 기억해내 그들이 정말 불행하다고 맞장구를 친다. 노인이 88서울올림픽을 언급하자 울슨씨가 “그는 정말 나이가 많아 저런 것까지 다 안다, 넌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겠지만” 하길래 “나 그때 고등학생이었어”하니 깜짝 놀란다. 동양인 나이 구분 못하는거야 알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어려보인다니 기분은 꽤 좋다.
나는 이렇게 멀고 추운 나라에 와서 사는 태국인 부인 K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외로움과 쓸쓸한 감정이 내 마음까지 전해져왔다. 오죽 삶이 팍팍했으면 말도, 음식도, 기후도 아무것도 익숙하지 않는 나라의 낯선 노인에게 팔려오듯 여기까지 살러왔을까 싶어 그녀의 처지에 괜히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손자까지 뒀다는 나이든 남자는 젊은 새아내를 무척 아끼는 듯 보여 다행이었다. 여행지에서 산 트롤 인형 두개를 창틀에 놔주며 큰 인형은 자기고, 작은 인형은 K라면서 애정을 보였다.
노르웨이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들은 영어 대화에 막힘이 없었는데 K는 노르웨이어는 물론 영어도 서툴러서 그런지, 내가 자꾸 말을 붙여도 창밖을 내다보고 창틀의 먼지를 휴지로 닦는 등 딴청을 피웠다. 그 모습을 보고 울슨 부인이 웃는데, 그녀가 구차하게 느껴졌을까. 하지만 나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하는 짓과 비슷해서 역시 아시아 여자들은 어쩔 수 없구나 싶어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들은 모두 오슬로 인근 한동네에 산다는데, 울슨이라는 노르웨이에서 굉장히 흔한 성을 가졌다는 젊은 커플 중 남편은 무척 장난기가 넘치는 개구쟁이 같은 생김새이고 부인은 책을 손에 쥐고 놓지 않는 다소 과묵하고 지성적인 스타일이다. 내가 노르카프에 갔었다고 하자, 남편이 자기 아내도 노르카프 출신이라며 오슬로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는 얘기까지 들려준다. 워낙 노르웨이의 교통비가 비싸 웬만한 노르웨이인들도 국내여행에 겁을 낸다는 얘길 들었는데, 내가 노르웨이 전역을 여행하고 있다고 밝히자 “너 엄청 부자구나” 한다.
그래서 사실은 여행기를 쓰기 위해 취재중이라고 하자 “아, 저널리스트라 낯선 이들과도 이렇게 얘기하기를 좋아하는거냐”고 한다. 울슨씨는 나에게 계속 농담을 건네고, 두 남자는 자신들 모두 현대차를 탄다며 한국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다 들춰낸다. 외국인들이 흔히 그렇듯이 내가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자, 노스냐 사우스냐 되묻는다. 노스코리안들은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자, 노인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이름을 기억해내 그들이 정말 불행하다고 맞장구를 친다. 노인이 88서울올림픽을 언급하자 울슨씨가 “그는 정말 나이가 많아 저런 것까지 다 안다, 넌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겠지만” 하길래 “나 그때 고등학생이었어”하니 깜짝 놀란다. 동양인 나이 구분 못하는거야 알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어려보인다니 기분은 꽤 좋다.
나는 이렇게 멀고 추운 나라에 와서 사는 태국인 부인 K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외로움과 쓸쓸한 감정이 내 마음까지 전해져왔다. 오죽 삶이 팍팍했으면 말도, 음식도, 기후도 아무것도 익숙하지 않는 나라의 낯선 노인에게 팔려오듯 여기까지 살러왔을까 싶어 그녀의 처지에 괜히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손자까지 뒀다는 나이든 남자는 젊은 새아내를 무척 아끼는 듯 보여 다행이었다. 여행지에서 산 트롤 인형 두개를 창틀에 놔주며 큰 인형은 자기고, 작은 인형은 K라면서 애정을 보였다.
노르웨이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들은 영어 대화에 막힘이 없었는데 K는 노르웨이어는 물론 영어도 서툴러서 그런지, 내가 자꾸 말을 붙여도 창밖을 내다보고 창틀의 먼지를 휴지로 닦는 등 딴청을 피웠다. 그 모습을 보고 울슨 부인이 웃는데, 그녀가 구차하게 느껴졌을까. 하지만 나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하는 짓과 비슷해서 역시 아시아 여자들은 어쩔 수 없구나 싶어 친근감이 느껴졌다.

K의 남편이 스키장에서 찍은 K의 사진을 보여주며 내게 자랑을 하는데 얼굴은 기미가 퍼져 고생에 찌든 티가 나고 표정도 밝지 않았지만 키도 크고 몸매가 멋졌다. 그렇게 칭찬해주자 노인은 “아내가 해주는 태국식 똠양꿍 수프를 좋아한다”고 자랑을 곁들이며 무척 흐뭇해한다. 울슨씨의 말로는 노인이 한 때 술배가 잔뜩 불러 살이 쪘었는데 K와 결혼 뒤에 살도 빠지고 건강해졌다고 한다. 확실히 활력이 넘쳐보였는데, 필요에 의해 돈이 매개가 된 결혼이지만 서로 잘만 살 수 있다면 만남의 과정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했다. 우리도 조건없이 사랑만으로 결혼한다고 할 수 있나. 다만 K의 마음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노인은 나를 위해 맥주까지 사가지고 왔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노르웨이식으로 “스콜”을 외치며 건배를 나눴다. 나에게 초콜릿도 권하는데 왠지 처음 본 외국인에게 폐가 되는 것 같아 자꾸 거절하게 된다. 섭섭해 하는 것을 보니 괜히 미안해진다. 노르웨이인들은 이국인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풍습이 없다고 들었다. 그만큼 폐쇄적인데 국제결혼이 이들 일행을 좀 더 개방적으로 만든 듯싶다.
◇유난히 친절한 베르겐의 첫인상
쾌속으로 달리던 페리는 베르겐 쪽에 다가서자 서행하며 바닷가 풍경을 풍요롭게 보여준다. 날씨도 어느새 개어서 구름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비춘다. 작은 섬들 사이로 구불구불 뱃길을 잘도 나아간다. 서서히 돌아가는 필름을 보듯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섬과 해안가 위 작은 등대와 예쁜 집들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예정보다 15분쯤 늦게 베르겐에 도착했다. 나는 하선 준비를 하며 태국 여인과 사는 노인에게 “그녀를 행복하게 해줘, 그녀는 고향을 너무 멀리 떠나왔어”라고 당부했다. 일시적이지만 역시 같은 아시아인 모국에서 멀리와 있는 내 처지와 겹치기 때문인지 그녀에게 자꾸만 마음이 쏠렸다.
이시간 핫뉴스
심지어 노인은 나를 위해 맥주까지 사가지고 왔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노르웨이식으로 “스콜”을 외치며 건배를 나눴다. 나에게 초콜릿도 권하는데 왠지 처음 본 외국인에게 폐가 되는 것 같아 자꾸 거절하게 된다. 섭섭해 하는 것을 보니 괜히 미안해진다. 노르웨이인들은 이국인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풍습이 없다고 들었다. 그만큼 폐쇄적인데 국제결혼이 이들 일행을 좀 더 개방적으로 만든 듯싶다.
◇유난히 친절한 베르겐의 첫인상
쾌속으로 달리던 페리는 베르겐 쪽에 다가서자 서행하며 바닷가 풍경을 풍요롭게 보여준다. 날씨도 어느새 개어서 구름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비춘다. 작은 섬들 사이로 구불구불 뱃길을 잘도 나아간다. 서서히 돌아가는 필름을 보듯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섬과 해안가 위 작은 등대와 예쁜 집들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예정보다 15분쯤 늦게 베르겐에 도착했다. 나는 하선 준비를 하며 태국 여인과 사는 노인에게 “그녀를 행복하게 해줘, 그녀는 고향을 너무 멀리 떠나왔어”라고 당부했다. 일시적이지만 역시 같은 아시아인 모국에서 멀리와 있는 내 처지와 겹치기 때문인지 그녀에게 자꾸만 마음이 쏠렸다.

밤 9시 즈음이지만 백야현상으로 여전히 밝은 베르겐은 놀랍게도 맑게 갠 얼굴로 나를 맞아줬다. 연평균 275일 비가 내린다는데 오늘은 놀랍게도 선명하고 깨끗한 날씨다. 내가 타고온 보트가 정박한 항구, 짙푸른 바닷물 건너로 베르겐의 상징물인 브뤼겐 역사지구의 나란한 집들이 보인다. 12세기에 지어진 뾰족지붕 목재가옥들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있다. 도시를 둘러싼 낮은 산에는 짙푸른 나무가 그득하고 고급 가옥들이 층층이 들어차있다.
12, 13세기 노르웨이의 수도였다는 베르겐은 현 수도 오슬로에 이어 노르웨이 제2의 도시다. 베르겐 출신들의 자부심이 크다고 했는데, 그것이 느껴지는 행동은 ‘친절’이었다. 온갖 사람들이 내가 지도를 들고 멈춰서있기만 해도 “도움이 필요하느냐”고 먼저 물어왔다. 노르웨이 다른 지역에서 겪여보지 못한 적극성이었다. 다른 관광객 1명, 현지인 1명, 여기 산지 조금 됐다며 현지인 남자와 함께 걸어가던 남방계 중국 여인 1명, (그녀는 내가 같은 중국인인지도 궁금해했다), 그리고 길가에 그저 앉아있던 중년남자 등 묻지도 않았는데 길을 알려주는 4명의 도움을 받아 쉽게 숙소를 찾아왔다. 친절도 전염되는 것이 확실했다.
북유럽 지방도시에도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식당이 하나씩은 있었는데, 이곳은 화교들이 꽤 큰 경제집단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도시가 큰 만큼 중국식당도 여러 곳 보이고 ‘許氏集團’(허씨집단, 후이그룹)이라고 한자로 쓰여진 중국계 기업 간판도 보인다.
마르켄 게스트하우스는 오래된 건물의 4층에 벌집처럼 만들어놓은 숙소다. 이름은 게스트하우스지만 호스텔급이라는 게 맞을 듯. 내가 묵는 14인용 도미터리까지 찾아가려면 복도를 한참을 돌아야한다. 골목골목 방을 만들어놓았다. 노르웨이 어디나 그렇듯 깨끗하긴 한데 불이라도 나면 제대로 대피를 할 수 있을지 좀 걱정되는 구조다. 이곳의 명물인 1934년 설치됐다는 등록서가 액자로 붙어있는,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골동품 엘리베이터. 여전히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잘 작동하는데 내부에 승객용 의자가 있는 것도 신기하다. 손으로 일일이 철제 안전문을 열고 닫아야한다. 이 중간문을 꽉 닫아야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내리거나 탈 때는 바깥쪽의 나무문을 직접 밀거나 당겨서 열어야 한다. 새로 오는 이들은 모두 다 이 낯선 엘리베이터에 당황해하게 마련이라 이용방법을 전달해줘야한다.
숙소까지 찾아오고 체크인을 하고 샤워까지 하니 꽤 늦은 시간이다. 베르겐은 여자 여행객들에게 특히 호평받는 감성 깊은 관광지다. 10인실 10개 침대가 젊은 여자 여행객들로 꽉 찼다. 이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도 얼른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7월14일 플롬→베르겐>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12, 13세기 노르웨이의 수도였다는 베르겐은 현 수도 오슬로에 이어 노르웨이 제2의 도시다. 베르겐 출신들의 자부심이 크다고 했는데, 그것이 느껴지는 행동은 ‘친절’이었다. 온갖 사람들이 내가 지도를 들고 멈춰서있기만 해도 “도움이 필요하느냐”고 먼저 물어왔다. 노르웨이 다른 지역에서 겪여보지 못한 적극성이었다. 다른 관광객 1명, 현지인 1명, 여기 산지 조금 됐다며 현지인 남자와 함께 걸어가던 남방계 중국 여인 1명, (그녀는 내가 같은 중국인인지도 궁금해했다), 그리고 길가에 그저 앉아있던 중년남자 등 묻지도 않았는데 길을 알려주는 4명의 도움을 받아 쉽게 숙소를 찾아왔다. 친절도 전염되는 것이 확실했다.
북유럽 지방도시에도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식당이 하나씩은 있었는데, 이곳은 화교들이 꽤 큰 경제집단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도시가 큰 만큼 중국식당도 여러 곳 보이고 ‘許氏集團’(허씨집단, 후이그룹)이라고 한자로 쓰여진 중국계 기업 간판도 보인다.
마르켄 게스트하우스는 오래된 건물의 4층에 벌집처럼 만들어놓은 숙소다. 이름은 게스트하우스지만 호스텔급이라는 게 맞을 듯. 내가 묵는 14인용 도미터리까지 찾아가려면 복도를 한참을 돌아야한다. 골목골목 방을 만들어놓았다. 노르웨이 어디나 그렇듯 깨끗하긴 한데 불이라도 나면 제대로 대피를 할 수 있을지 좀 걱정되는 구조다. 이곳의 명물인 1934년 설치됐다는 등록서가 액자로 붙어있는,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골동품 엘리베이터. 여전히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잘 작동하는데 내부에 승객용 의자가 있는 것도 신기하다. 손으로 일일이 철제 안전문을 열고 닫아야한다. 이 중간문을 꽉 닫아야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내리거나 탈 때는 바깥쪽의 나무문을 직접 밀거나 당겨서 열어야 한다. 새로 오는 이들은 모두 다 이 낯선 엘리베이터에 당황해하게 마련이라 이용방법을 전달해줘야한다.
숙소까지 찾아오고 체크인을 하고 샤워까지 하니 꽤 늦은 시간이다. 베르겐은 여자 여행객들에게 특히 호평받는 감성 깊은 관광지다. 10인실 10개 침대가 젊은 여자 여행객들로 꽉 찼다. 이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도 얼른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7월14일 플롬→베르겐>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