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36)함양군 축구계의 버팀목 김창한씨

기사등록 2012/11/26 13:16:41

최종수정 2016/12/28 01:36:36

【함양=뉴시스】노상봉 기자 = 26일 경남 함양군체육회 김창한사무차장이 함양 축구발전을 위한 앞으로의 계획을  진지하게 제시하고 있다.  nosa@newsis.com
【함양=뉴시스】노상봉 기자 = 26일 경남 함양군체육회 김창한사무차장이 함양 축구발전을 위한 앞으로의 계획을  진지하게 제시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함양=뉴시스】노상봉 기자 = 오늘도 그는 출근과 동시에 함양 고운체육관, 공설운동장, 스포츠파크를 한 바퀴 휑하니 둘러보고 시설들이 밤새 별 일 없었음을 확인한 후 업무를 시작한다.

 아담한 체구, 당당하고 반듯한 모습, 자신감이 넘치고 활발한 성격을 지닌 김창한(42·함양군청 청원경찰)씨는 함양군청 체육시설관리담당 청원경찰이자 함양군 체육회 사무차장을 역임하고 있는 사람이다.

◇유년기와 선수시절

 1983년 우리나라 프로축구 K리그가 탄생하면서 축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고조될 시기에 작은 체구의 꼬맹이 창한은 경남 함양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 시절 누구에게나 그렇게 넉넉하지 못한 가난의 시기였지만 운동을 하던 창한씨는 그때를 회상하면 '마음이 되게 시리다'고 표현을 한다. 

 운동복, 유니폼, 축구화, 주변여건 등 제대로 된 것이 하나 없는 상태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겨울엔 숙소에 나무로 불을 지펴 언 몸을 녹이고 운동을 시작했고 도시락이 식어 찬밥에 끓인 물을 부어 김치에 한 숟가락 말아먹고 운동을 하다보면 운동도 마치기 전에 허기가 찾아오곤 했던 생각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런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고 당시 국내 최고 고교팀인 거제고등학교로 진학해 우리나라 대표 팀 최고 공격수인 서정원과 당시 내로라하는 정정수, 박철 등과 선수생활을 같이 했다.

 1989년 국내 고교대회 중 가장 권위있는 대통령배 전국 고교축구대회에서 거제고가 우승하고 창한씨는 대학 진학을 한다.

 대학 4학년 때 팀 주장을 맡아 광주에서 개최된 전국체전에서 대구대가 우승을 하며 그 해 대한축구협회가 뽑은 최우수 대학선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프로팀과 실업팀을 놓고 진로를 고민하다 안정적인 실업팀으로 결정, 제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지만 팀이 1996년 해체되면서 일반 은행원으로 제일은행 성남지점에서 근무를 했다.

 그러는 와중에 한일생명이 축구부를 창단하면서 전력보강을 위해 러브콜을 보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생팀으로 이적해 1997년과 98년 실업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을 받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팀마저 해체되면서 에이전트의 권유로 중국 심천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1999년 고향 함양으로 돌아와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면서 함양축구와 인연을 맺게 된다.

◇함양축구의 체계화

 평생 축구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고향이라고 와보니 축구협회도 없고 조기회나 직장 축구대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축구 인프라라고는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축구 불모지나 같았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함양군은 도민체전에서 우승을 하는 등 경남 축구의 중심에 있었다.

 그랬던 함양축구가 퇴보하기 시작해 도민체전 선수구성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재원이 사라진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창한씨는 나서지 않으려는 선배들을 설득해 축구협회를 구성하고 자비로 유소년축구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한편으로 직장팀과 조기회팀 활성화를 위해 클럽대회를 개최하는 등 함양축구 재건을 위해 나름대로 동부서주하며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도 했다. 그때 모교인 대구대에서 코치제의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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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뉴시스】노상봉 기자 = 26일 경남 함양군 체육회 김창한 사무차장이 과거 선수생활을 얘기하며 웃음을 짓고 있다.  [email protected]
 이 소식을 들은 당시 천사령군수와 김재웅군의장(현 함양농협조합장)이 고향의 축구발전을 위해 함양에 남아 있길 원하며 부탁을 해오자 2004년 4월 함양군청 청원경찰로 입사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유소년 클럽 활성화에 몰입해 어린이 축구교실을 운영한다.

 이때 시작한 아이들 중 올림픽 대표로 선발됐던 명지대 이재민군을 비롯해 현재 7~8명의 중고등학교 선수들이 지금도 자신들의 꿈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현재 창한씨는 두 가지 아름다운 꿈이 있다.

 그 꿈이 실현될 때까지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하나는 함양중학교의 축구부 창단이며 또 하나는 함양 스포츠 파크 시설과 규모를 확대해 함양을 동계훈련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창한씨는 “유소년 및 중학교 축구부 없이는 지역 스포츠 발전을 꾀할 수 없다” 며 “꼭 엘리트 스포츠가 아닌 방과 후 클럽 축구체제로 임시 운영을 하더라도 많은 어린이들이 축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여건을 제공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또 2007년부터 초중고및 대학팀 동계전지훈련을 받고 있는데 사통팔달 잘 뚫린 도로망과 함양의 훈련조건 및 행정,주민들의 지지로 많은 팀들이 함양을 최상의 훈련지로 꼽고 있다.       

 하지만 운동장 면 부족과 숙소 등 체육 인프라 부족으로 10여 개 팀 이상을 받기 어려워 창한씨는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 해 대비 한 해 평균 25개 팀 정도가 함양군으로 합숙훈련을 다녀가는데, 이 팀들이 함양지역에 4억5000만원에서 5억원 정도 경제효과를 유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운동장, 숙소 등 열악한 환경으로는 인근 시군으로 전지훈련 팀을 모두 빼앗기게 될 처지다.

 따라서 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스포츠파크를 신속히 완공해 연중 40~50개 팀이 동시에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운동장을 확충하고 상림 인근에 유스호스텔 등을 건립해 전국 초중고 대회도 유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창한씨는 “함양군이 축구의 메카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행정과 주민, 축구인들이 하나로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 이라며 “축구의 자리매김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함양 발전의 튼튼한 디딤돌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영원한 축구인으로 기억되길 원하며 박지성 같은 훌륭한 축구선수가 함양군에서 배출되길 소망한다는 김창한 씨가 함양축구의 든든한 버팀목, 함양 축구의 불쏘시개라는 사실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함양군이 배출한 역대 축구선수로는 최대식 월드컵 대표(현 경민공고 감독), 하석주 국가대표(현 전남감독),송재규(거제고 감독), 정명호(함양군체육회사무국장)등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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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36)함양군 축구계의 버팀목 김창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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