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민숙영 기자 = 최근 한국산 화장품의 선전과 한류영향 등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제품의 인기가 어느 때 보다 높다. 국내 기업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이런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불과 10∼20년전만 해도 낮은 수준의 저가 제품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았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몇 년 사이 화장품과 패션 등 일부 국산제품은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제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높다. 패션 종주국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진입 장벽은 현실적으로 너무 높다.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태어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들의 발자취를 통해 한국산 명품 브랜드가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시간에는 세계적인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을 재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서울=뉴시스】민숙영 기자 = "나의 증조부 조르주 비통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여행 시 최적의 편리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시작은 '여행'이었다. 루이비통은 여행 수단의 변화와 함께 변해왔고 고객의 편안한 여행을 위한 끝없이 고민했다.
1821년 루이 비통은 스위스 근처의 프랑쉐 콤테(Franche-Comte)에서 가구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서 막대패와 긴 대패를 손질하는 기술을 전수받았고 14살이 되던 해 1837년 포장용 상자 제조사에서 수습생으로 일했다.
루이 비통은 작업장 부근에 최초의 철도선인 파리 생 제르맹(Paris-Sant-Germain)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여행을 생각했고 상류층의 여행짐을 꾸리는 일을 하며 편안한 여행에 대해 고민했다.
루이 비통은 1854년 루 노브 데 카푸친느(Rue Neuve-des-Capucines)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매장을 열었다.
【서울=뉴시스】민숙영 기자 = "나의 증조부 조르주 비통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여행 시 최적의 편리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시작은 '여행'이었다. 루이비통은 여행 수단의 변화와 함께 변해왔고 고객의 편안한 여행을 위한 끝없이 고민했다.
1821년 루이 비통은 스위스 근처의 프랑쉐 콤테(Franche-Comte)에서 가구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서 막대패와 긴 대패를 손질하는 기술을 전수받았고 14살이 되던 해 1837년 포장용 상자 제조사에서 수습생으로 일했다.
루이 비통은 작업장 부근에 최초의 철도선인 파리 생 제르맹(Paris-Sant-Germain)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여행을 생각했고 상류층의 여행짐을 꾸리는 일을 하며 편안한 여행에 대해 고민했다.
루이 비통은 1854년 루 노브 데 카푸친느(Rue Neuve-des-Capucines)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매장을 열었다.

당시 프랑스 상류층은 마차를 타고 여행 다니는 것을 즐겼다. 아울러 프랑스 귀부인 사이에서는 패티코트 위에 천을 길에 늘어뜨린 드레스가 유행했는데 여행을 떠날 때도 드레스를 넣은 수십 개의 트렁크를 마차에 싣고 다녔다.
그러나 부피가 큰 드레스를 잘 보관하기 위해 반원형으로 만들진 트렁크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데다 쌓아둘 수도 없었다.
이에 루이 비통은 1858년 철로 윗면에 띠를 두른 평평한 플랫 트렁크를 최초로 선보였다. 쥐색 트리아농 캔버스로 제작된 이 트렁크는 큰 성공을 거뒀다.
평평한 사각형으로 만들어져 트렁크 여러 개를 차곡차곡 쌓아 둘 수 있었다. 내부는 칸막이 상자로 공간을 나눠 소지품을 수납하기 편리했다.
여행용 가방으로 성공한 루이 비통의 브랜드명은 프랑스에서 곧 여행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인식될 정도였다.
럭셔리 크루즈 여행이 전성기를 이뤘을 때는 스티머 백(The steamer bag)을 내놨다. 스티머 백은 납작하게 접을 수 있어 크루즈 여행처럼 장기간 여행을 다닐 때 세탁물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그러나 부피가 큰 드레스를 잘 보관하기 위해 반원형으로 만들진 트렁크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데다 쌓아둘 수도 없었다.
이에 루이 비통은 1858년 철로 윗면에 띠를 두른 평평한 플랫 트렁크를 최초로 선보였다. 쥐색 트리아농 캔버스로 제작된 이 트렁크는 큰 성공을 거뒀다.
평평한 사각형으로 만들어져 트렁크 여러 개를 차곡차곡 쌓아 둘 수 있었다. 내부는 칸막이 상자로 공간을 나눠 소지품을 수납하기 편리했다.
여행용 가방으로 성공한 루이 비통의 브랜드명은 프랑스에서 곧 여행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인식될 정도였다.
럭셔리 크루즈 여행이 전성기를 이뤘을 때는 스티머 백(The steamer bag)을 내놨다. 스티머 백은 납작하게 접을 수 있어 크루즈 여행처럼 장기간 여행을 다닐 때 세탁물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마치 옷장을 작게 줄인 듯 옷을 세워서 보관할 수 있는 워드로브 트렁크(Wardrobe)도 인기였다.
선박 객실 침대 밑에 보관할 수 있도록 33㎝ 높이로 제작된 모노그램 캔버스 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항공 여행을 위해서는 플레인 캔버스로 만들어진 키폴(Keepall)의 초기 모델이 만들어졌다.
루이비통의 3대손인 가스통 비통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이 여행가방은 평평한 트렁크를 접어서 보관했던 세컨드 백 개념이었다.
프랑스 디자이너 마르트 슈날의 철도 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로마(Roma)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받았던 것은 자동차 여행을 위한 가방이었다.
선박 객실 침대 밑에 보관할 수 있도록 33㎝ 높이로 제작된 모노그램 캔버스 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항공 여행을 위해서는 플레인 캔버스로 만들어진 키폴(Keepall)의 초기 모델이 만들어졌다.
루이비통의 3대손인 가스통 비통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이 여행가방은 평평한 트렁크를 접어서 보관했던 세컨드 백 개념이었다.
프랑스 디자이너 마르트 슈날의 철도 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로마(Roma)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받았던 것은 자동차 여행을 위한 가방이었다.

당시 프랑스 최고의 자동차 생산업체들은 루이비통의 작업실인 아니에르(Asnieres) 근처에 몰려 있었다. 자동차를 구입한 고객은 루이비통에 들러 트렁크를 주문하곤 했다.
트렁크가 없던 1920년대 자동차에 수납공간을 만들기 위해 제작된 엑셀스키(Excelski)와 액셀시어(Excelsior)가 만들어졌다.
예비 타이어의 가운데에 끼워 보관할 수 있도록 원형으로 만들어진 드라이버 백(Driver bag)도 선보였다.
여행용 트렁크와 가방 위주의 루이비통이 처음 핸드백을 선보인 것은 1930년대 쯤이었다.
노에(Noe)라 이름 붙은 이 핸드백은 샴페인 주조업자가 샴페인을 넣어다니기 위해 편리하게 만들어진 가방이었다. 노에라는 이름은 아라랏한 포도주를 맛보고 싶은 유혹에 빠진 노아의 모습에서 이름을 이용한 것이다.
이후 코코샤넬이 의뢰해 만들어진 알마(Alma), 바쁘게 움직이는 여성을 주제로 한 루이비통의 베스트 셀러 스피디(Speedy), 루이비통만의 자물쇠를 적용한 '락킷(Lockit) 등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트렁크가 없던 1920년대 자동차에 수납공간을 만들기 위해 제작된 엑셀스키(Excelski)와 액셀시어(Excelsior)가 만들어졌다.
예비 타이어의 가운데에 끼워 보관할 수 있도록 원형으로 만들어진 드라이버 백(Driver bag)도 선보였다.
여행용 트렁크와 가방 위주의 루이비통이 처음 핸드백을 선보인 것은 1930년대 쯤이었다.
노에(Noe)라 이름 붙은 이 핸드백은 샴페인 주조업자가 샴페인을 넣어다니기 위해 편리하게 만들어진 가방이었다. 노에라는 이름은 아라랏한 포도주를 맛보고 싶은 유혹에 빠진 노아의 모습에서 이름을 이용한 것이다.
이후 코코샤넬이 의뢰해 만들어진 알마(Alma), 바쁘게 움직이는 여성을 주제로 한 루이비통의 베스트 셀러 스피디(Speedy), 루이비통만의 자물쇠를 적용한 '락킷(Lockit) 등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한편 루이비통의 상징인 모노그램은 루이 비통의 아들 조르주 비통이 루이비통의 인기에 생겨나는 모조품을 막기 위해 1896년 고안한 것이다.
조르주 비통은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을 받아 네 개의 꽃잎이 있는 꽃을 원이 둘러싼 문양과 별이 담긴 볼록한 마름모꼴, 그리고 루이 비통을 상징하는 L.V로 이뤄진 모노그램을 만들었다.
이 모노그램 캔버스가 만들어지면서 접을 수 있는 소프트 가방을 만들기가 쉬워졌다. 유연하며 튼튼하고 동시에 방수성이 뛰어난 가방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루이비통의 모노그램은 1997년 미국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영입 이후 변화의 시기를 맞이한다. 마크 제이콥스는 1998년 모노그램 베르니(Monogram Vernis) 컬렉션을 시작으로 매년 독창적인 모노그램을 컬렉션을 내놨다.
마크 제이콥스는 유명 예술가와의 협업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일본 유명 디자이너 무라카미 타카시와의 공동 작품인 '모노그램 멀티컬러(Monogram Multicolor)다. 모노그램 색상을 바꾸고 무라카미의 심볼 마크를 이용한 제품이다.
조르주 비통은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을 받아 네 개의 꽃잎이 있는 꽃을 원이 둘러싼 문양과 별이 담긴 볼록한 마름모꼴, 그리고 루이 비통을 상징하는 L.V로 이뤄진 모노그램을 만들었다.
이 모노그램 캔버스가 만들어지면서 접을 수 있는 소프트 가방을 만들기가 쉬워졌다. 유연하며 튼튼하고 동시에 방수성이 뛰어난 가방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루이비통의 모노그램은 1997년 미국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영입 이후 변화의 시기를 맞이한다. 마크 제이콥스는 1998년 모노그램 베르니(Monogram Vernis) 컬렉션을 시작으로 매년 독창적인 모노그램을 컬렉션을 내놨다.
마크 제이콥스는 유명 예술가와의 협업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일본 유명 디자이너 무라카미 타카시와의 공동 작품인 '모노그램 멀티컬러(Monogram Multicolor)다. 모노그램 색상을 바꾸고 무라카미의 심볼 마크를 이용한 제품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이 컬렉션을 두고 "모노그램을 더욱 신선하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올해에도 일본의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와 공동 작업해 음각된 모노그램과 쿠사마 야요이의 상징인 물방울 무늬를 담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마크 제이콥스를 영입한 뒤부터 루이비통은 전문 분야를 기성복과 신발, 시계, 액세서리 등으로 확대해 60개가 넘는 국가에 매장을 두고 있다.
루이비통의 첫 작업실이었던 아니에르(Asnieres) 워크숍에서는 180여 명의 장인(匠人)이 루이비통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아니에르 워크숍은 현재 루이비통의 특별 주문 제품과 특수 가죽 제품, 패션쇼를 위한 한정 백 등을 만드는 곳이다.
특히 특별 주문 제품은 비통 가문의 5대손 명장 파트릭 루이 비통의 지도 아래 제작된다. 여행자 개인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일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고객의 어떠한 요구도 최대한 만족시킨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루이비통은 5대째 내려오는 장인 정신과 시대를 내다보는 안목, 끊임없는 혁신 등을 통해 현재 60개가 넘는 나라의 고객에게 여행 예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email protected]
올해에도 일본의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와 공동 작업해 음각된 모노그램과 쿠사마 야요이의 상징인 물방울 무늬를 담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마크 제이콥스를 영입한 뒤부터 루이비통은 전문 분야를 기성복과 신발, 시계, 액세서리 등으로 확대해 60개가 넘는 국가에 매장을 두고 있다.
루이비통의 첫 작업실이었던 아니에르(Asnieres) 워크숍에서는 180여 명의 장인(匠人)이 루이비통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아니에르 워크숍은 현재 루이비통의 특별 주문 제품과 특수 가죽 제품, 패션쇼를 위한 한정 백 등을 만드는 곳이다.
특히 특별 주문 제품은 비통 가문의 5대손 명장 파트릭 루이 비통의 지도 아래 제작된다. 여행자 개인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일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고객의 어떠한 요구도 최대한 만족시킨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루이비통은 5대째 내려오는 장인 정신과 시대를 내다보는 안목, 끊임없는 혁신 등을 통해 현재 60개가 넘는 나라의 고객에게 여행 예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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