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민숙영 기자 = 최근 한국산 화장품의 선전과 한류영향 등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제품의 인기가 어느 때 보다 높다. 국내 기업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이런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불과 10∼20년전만 해도 낮은 수준의 저가 제품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았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몇 년 사이 화장품과 패션 등 일부 국산제품은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제품으로 떠올랐다. 특히 한국 화장품은 가격과 품질 면에서 세계인들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게 최근의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 화장품은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제품력도 인정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100개 기업 최고 경영자가 최근 한국산 명품 창출을 위한 '명품창출포럼'을 만드는 등 세계인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한국패션협회는 지난 11일 미국 뉴욕에서 'K-패션 센세이션(K-fashion Sensation)' 행사를 개최하고 한국 패션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높다. 패션 종주국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진입 장벽은 현실적으로 너무 높다.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태어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들의 발자취를 통해 한국산 명품 브랜드가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시간에는 세계적인 브랜드 '불가리(BVLGARI)'를 재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불가리'의 시작은 '은'이었다.
불가리 창립자 소티리오 불가리(Sotirio Bulgari)는 대대로 은을 세공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고대 그리스의 에피루스란 작은 마을에서 은세공업을 해왔고 소티리오 역시 은으로 장식품을 만들었다.
그러던 소티리오는 1879년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했다. 핀치오(Pincio)에 있는 프랑스 아카데미 앞에서 노점으로 시작해 한 그리스 상인의 매장 진열대 한편에 자신의 상품을 놓고 팔았다.
소티리오의 은 장식품은 입소문을 타고 1884년 로마의 시스티나(Rome Sistina) 거리에 최초 매장을 열었다.
불가리의 초기 제품은 은으로 만든 장신구가 주를 이뤘다. 나뭇잎과 조개, 사자 등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세공품이 많았고 회화적인 요소가 강했다.
1970년께 만들어진 팔찌는 헬레닉 전통의 보석 제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을 띄고 있다. 7개 사자 머리모양의 장식판에 각각 원형 펜던트가 달려 있다.
1870년에서 1880년 사이에 만들어진 은 소재 버클은 나뭇잎에서 영감을 얻어 돋을 새김했다.
실제로 한국 화장품은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제품력도 인정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100개 기업 최고 경영자가 최근 한국산 명품 창출을 위한 '명품창출포럼'을 만드는 등 세계인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한국패션협회는 지난 11일 미국 뉴욕에서 'K-패션 센세이션(K-fashion Sensation)' 행사를 개최하고 한국 패션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높다. 패션 종주국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진입 장벽은 현실적으로 너무 높다.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태어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들의 발자취를 통해 한국산 명품 브랜드가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시간에는 세계적인 브랜드 '불가리(BVLGARI)'를 재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불가리'의 시작은 '은'이었다.
불가리 창립자 소티리오 불가리(Sotirio Bulgari)는 대대로 은을 세공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고대 그리스의 에피루스란 작은 마을에서 은세공업을 해왔고 소티리오 역시 은으로 장식품을 만들었다.
그러던 소티리오는 1879년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했다. 핀치오(Pincio)에 있는 프랑스 아카데미 앞에서 노점으로 시작해 한 그리스 상인의 매장 진열대 한편에 자신의 상품을 놓고 팔았다.
소티리오의 은 장식품은 입소문을 타고 1884년 로마의 시스티나(Rome Sistina) 거리에 최초 매장을 열었다.
불가리의 초기 제품은 은으로 만든 장신구가 주를 이뤘다. 나뭇잎과 조개, 사자 등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세공품이 많았고 회화적인 요소가 강했다.
1970년께 만들어진 팔찌는 헬레닉 전통의 보석 제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을 띄고 있다. 7개 사자 머리모양의 장식판에 각각 원형 펜던트가 달려 있다.
1870년에서 1880년 사이에 만들어진 은 소재 버클은 나뭇잎에서 영감을 얻어 돋을 새김했다.

화염 도금 처리된 조개모양 버클도 눈에 띈다. 중앙에 있는 카르투슈 모양의 파란색과 빨간색의 납유리 장식이 특징이다. 네오 헬레닉 시대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1877년에서 189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목걸이는 중앙에 3개의 고대 선박이 새겨진 원형 은판을 이어 만든 제품이다. 네오 헬레닉 전통 방식을 따른 것으로 팍소수, 레프카스, 케팔로니아, 잔테 등을 상징하는 문양이 모조 금박이 된 금속에 새겨져 있다.
이후 사업이 번창하며 1905년에는 로마의 중심지인 콘도티 10번가로 상점을 옮겼다. 이 상점은 훗날 불가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로마 비아 콘도티 플래그십 스토어'가 됐다.
당시 매장의 영어 이름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제목인 '골동품상점(Old Curiosity Shop)'이었다. 이는 찰스 디킨스 소설 제목을 인용해 브랜드에 귀족적인 이미지를 부여해 부유한 영국·미국 관광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였다.
소티리오는 로마 콘도티 상점을 연 뒤 더욱 다양한 종류의 보석과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소티리오의 뒤를 이은 두 아들 콘스탄티노(Constantino)와 조르지오(Giorgio)는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33년 비아 콘도티 매장을 확장하고 원석과 보석, 시계 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1934년 아버지인 소르티오가 사망한 지 2년 후 콘도티 본점을 개장해 새로운 매장을 열었다.
불가리 보석과 액세서리의 특징은 원석의 부피감과 수채화같이 맑은 느낌이다. 불가리 제품은 그리스의 고전미와 이탈리아의 우아함을 동시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40년대부터는 시계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본래 불가리의 시계는 주요 고객에게 선물로 주던 사은품의 성격을 띤 제품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 이후 판매를 위한 제품을 만들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직후는 불가리의 역사적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시기다.
콘스탄티노와 조르지오는 프랑스의 골드 스미스 스쿨의 원칙주의적 기법에서 벗어나 이탈리아와 르네상스,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 19세기 금세공 업계의 대표 격인 로만 스쿨 등 다양한 시대와 기법에 영향을 받은 제품을 내놨다.
1877년에서 189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목걸이는 중앙에 3개의 고대 선박이 새겨진 원형 은판을 이어 만든 제품이다. 네오 헬레닉 전통 방식을 따른 것으로 팍소수, 레프카스, 케팔로니아, 잔테 등을 상징하는 문양이 모조 금박이 된 금속에 새겨져 있다.
이후 사업이 번창하며 1905년에는 로마의 중심지인 콘도티 10번가로 상점을 옮겼다. 이 상점은 훗날 불가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로마 비아 콘도티 플래그십 스토어'가 됐다.
당시 매장의 영어 이름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제목인 '골동품상점(Old Curiosity Shop)'이었다. 이는 찰스 디킨스 소설 제목을 인용해 브랜드에 귀족적인 이미지를 부여해 부유한 영국·미국 관광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였다.
소티리오는 로마 콘도티 상점을 연 뒤 더욱 다양한 종류의 보석과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소티리오의 뒤를 이은 두 아들 콘스탄티노(Constantino)와 조르지오(Giorgio)는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33년 비아 콘도티 매장을 확장하고 원석과 보석, 시계 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1934년 아버지인 소르티오가 사망한 지 2년 후 콘도티 본점을 개장해 새로운 매장을 열었다.
불가리 보석과 액세서리의 특징은 원석의 부피감과 수채화같이 맑은 느낌이다. 불가리 제품은 그리스의 고전미와 이탈리아의 우아함을 동시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40년대부터는 시계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본래 불가리의 시계는 주요 고객에게 선물로 주던 사은품의 성격을 띤 제품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 이후 판매를 위한 제품을 만들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직후는 불가리의 역사적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시기다.
콘스탄티노와 조르지오는 프랑스의 골드 스미스 스쿨의 원칙주의적 기법에서 벗어나 이탈리아와 르네상스,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 19세기 금세공 업계의 대표 격인 로만 스쿨 등 다양한 시대와 기법에 영향을 받은 제품을 내놨다.

1940년대 후반에는 뱀을 주제로 한 세르펜티(Serpenti) 팔찌와 손목시계 등을 선보였다. 세르펜티는 이탈리아어로 뱀을 의미한다. 불가리는 뱀을 통해 풍요와 부활, 불멸을 상징했다.
뱀의 머리 모양에서 따온 팔찌나 시계 앞머리 부분은 동그란 모양과 정사각형, 8각형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뱀의 비늘 모양에서 착안한 개별 부속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뱀이 손목을 휘감는 듯한 모양으로 제작됐다.
세르펜티 제품은 해를 거듭하며 디자인과 소재 등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올해는 흑색의 젯 블랙이나 아이보리 화이트 에나멜 비늘에 블리언트컷 다이아몬드를 박은 팔찌와 핑크 골드를 이용한 새로운 제품 등을 출시했다. 기존 시계와 팔찌 등에서 더 나아가 귀고리와 목걸이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다.
1950년대 이후부터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영화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카를로폰티와 로베르토 롯셀리니는 아내인 소피아 로렌과 잉그리트 버그만을 위해 불가리 제품을 자주 샀다.
특히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불가리 애호가였다.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는 불가리의 뱀 모양의 장신구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수많은 남성이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불가리 제품을 구매했다.
리처드 버튼은 로마에서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촬영하며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위해 불가리 매장에 종종 방문해 브로치와 목걸이, 귀걸이 등을 샀다. 그는 "나는 그녀에게 맥주를 소개했고 그녀는 내게 불가리를 소개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외 게리 쿠퍼와 오드리 헵번 등도 불가리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했다. 현재도 불가리는 많은 배우와 유명 인사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후 콘스탄티노와 조르지오는 1970년대에는 미국 뉴욕에 최초의 국외 매장을 열고 이어 프랑스 파리, 스위스 제네파 등에 속속 진출했다. 우리나라에는 1998년 처음 진출했다.
뱀의 머리 모양에서 따온 팔찌나 시계 앞머리 부분은 동그란 모양과 정사각형, 8각형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뱀의 비늘 모양에서 착안한 개별 부속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뱀이 손목을 휘감는 듯한 모양으로 제작됐다.
세르펜티 제품은 해를 거듭하며 디자인과 소재 등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올해는 흑색의 젯 블랙이나 아이보리 화이트 에나멜 비늘에 블리언트컷 다이아몬드를 박은 팔찌와 핑크 골드를 이용한 새로운 제품 등을 출시했다. 기존 시계와 팔찌 등에서 더 나아가 귀고리와 목걸이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다.
1950년대 이후부터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영화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카를로폰티와 로베르토 롯셀리니는 아내인 소피아 로렌과 잉그리트 버그만을 위해 불가리 제품을 자주 샀다.
특히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불가리 애호가였다.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는 불가리의 뱀 모양의 장신구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수많은 남성이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불가리 제품을 구매했다.
리처드 버튼은 로마에서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촬영하며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위해 불가리 매장에 종종 방문해 브로치와 목걸이, 귀걸이 등을 샀다. 그는 "나는 그녀에게 맥주를 소개했고 그녀는 내게 불가리를 소개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외 게리 쿠퍼와 오드리 헵번 등도 불가리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했다. 현재도 불가리는 많은 배우와 유명 인사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후 콘스탄티노와 조르지오는 1970년대에는 미국 뉴욕에 최초의 국외 매장을 열고 이어 프랑스 파리, 스위스 제네파 등에 속속 진출했다. 우리나라에는 1998년 처음 진출했다.

1977년부터는 불가리-불가리 시계 라인을 출시하며 시계 부문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1982년에는 스위스 뉴샤텔에 불가리 타임(Bulgari Times)을 설립하고 시계 제품 디자인과 제작에 신경 썼다.
1984년 조르지오 불가리의 두 아들인 파울로(Paolo)와 니콜라(Nicola) 불가리 형제가 불가리의 회장과 부회장이 됐다. 사촌인 프란체스코 트라파니(Francesco Trapani)는 회사의 최고 경영자(CEO)로 취임했다.
1990년대부터는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
1992년 첫 번째 향수인 오떼베르(Eau Parfumee au The Vert) 라인 출시를 시작으로 10개의 향수 제품을 선보였다. 이듬해 스위스 뉴샤텔에 불가리 퍼퓸(Bulgari Parfums)을 설립했다.
1996년에는 실크 스카프와 가죽 액세서리 제품 등을 내세운 액세서리 분야 제품을 개발했다. 2001년에는 매리어트 호텔과 협력해 불가리 호텔&리조트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2006년 인도네시아 발리에 불가리 호텔&리조트를 열었다.
이후 합병을 통해 사업 규모를 키워왔던 불가리는 2009년 창립 125주년을 기념해 불가리의 가치를 제품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인 활동으로 확대했다.
은은 색상이 변하고 제품은 그 디자인과 소재가 변하지만 불가리의 정신과 사회적 공헌 활동은 변하지 않을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불가리는 2009년부터 국제아동 권리 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과 협력해 분쟁지역 어린이를 위한 아동교육 지원 캠페인을 후원하고 있다.
특히 세이브더칠드런 링을 제작해 판매수익금의 20%를 세이브더칠드런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반지는 블랙 세라믹과 은 소재로 제작됐다. 안쪽에는 세이브더칠드런 로고가 음각됐고 불가리·불가리 더블 로고가 새겨졌다.
불가리는 반지 판매 수익금을 통해 올해까지 약 1200만 유로(172억원) 이상의 기금을 마련해 전 세계 35만 명 정도의 어린이를 도왔다. 내년 말까지 반지 판매를 연장해 추가로 약 300만 유로(44억 원)을 더 모을 계획이다.
니콜라 불가리(Nicola Bulgari) 불가리 이사회 부회장은 "과거의 영광만으로 살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라며 "성공하려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계속>
[email protected]
1984년 조르지오 불가리의 두 아들인 파울로(Paolo)와 니콜라(Nicola) 불가리 형제가 불가리의 회장과 부회장이 됐다. 사촌인 프란체스코 트라파니(Francesco Trapani)는 회사의 최고 경영자(CEO)로 취임했다.
1990년대부터는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
1992년 첫 번째 향수인 오떼베르(Eau Parfumee au The Vert) 라인 출시를 시작으로 10개의 향수 제품을 선보였다. 이듬해 스위스 뉴샤텔에 불가리 퍼퓸(Bulgari Parfums)을 설립했다.
1996년에는 실크 스카프와 가죽 액세서리 제품 등을 내세운 액세서리 분야 제품을 개발했다. 2001년에는 매리어트 호텔과 협력해 불가리 호텔&리조트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2006년 인도네시아 발리에 불가리 호텔&리조트를 열었다.
이후 합병을 통해 사업 규모를 키워왔던 불가리는 2009년 창립 125주년을 기념해 불가리의 가치를 제품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인 활동으로 확대했다.
은은 색상이 변하고 제품은 그 디자인과 소재가 변하지만 불가리의 정신과 사회적 공헌 활동은 변하지 않을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불가리는 2009년부터 국제아동 권리 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과 협력해 분쟁지역 어린이를 위한 아동교육 지원 캠페인을 후원하고 있다.
특히 세이브더칠드런 링을 제작해 판매수익금의 20%를 세이브더칠드런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반지는 블랙 세라믹과 은 소재로 제작됐다. 안쪽에는 세이브더칠드런 로고가 음각됐고 불가리·불가리 더블 로고가 새겨졌다.
불가리는 반지 판매 수익금을 통해 올해까지 약 1200만 유로(172억원) 이상의 기금을 마련해 전 세계 35만 명 정도의 어린이를 도왔다. 내년 말까지 반지 판매를 연장해 추가로 약 300만 유로(44억 원)을 더 모을 계획이다.
니콜라 불가리(Nicola Bulgari) 불가리 이사회 부회장은 "과거의 영광만으로 살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라며 "성공하려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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