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하도겸의 ‘일본 속 우리 신불(神佛)을 찾아서’ <6>
오늘은 하비키노에 자리 잡은 백제(百済)의 귀수왕(貴須王)의 자손 가운데 하나인 갈정씨(葛井氏:후지이씨)가 오오사카부(大阪府)의 등정사시(藤井寺市:후지이데라시)에 세운 신국(辛国:가라쿠니) 신사에 모셔진 우리의 신불을 참배하러 가고자 한다.
가라쿠니신사(신국신사:辛國神社)주변에는 백제라는 이름이 붙여진 지명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곳이 멋 옛날 백제로부터 건너온 우리의 선조가 집단으로 살았던 곳이었음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백제의 남서부 즉 마한지역에도 상당수 발견되는 거대한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 6기(基)를 포함해 모두 123기나 산재하고 있는 고시고분군(古市古墳群)이 이 신국신사의 주변에 있다.
4세기후반부터 6세기중엽사이에 형성된 이 고분군은 구수왕의 자손들이 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거대 세력화하는 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근의 작은 전방후원분이 점점 거대화해 가는 과정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마한지역으로 교역을 위해 진출한 우리나라의 전방후원분 조영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신사참배’는 일본제국주의의 강요로 우리나라 식민지 경영의 하나로 이뤄졌다. 하지만 실제로 신사의 주신(主神)들은 대부분 우리의 신불이다. 따라서 식민지 지배가 끝난 지금에서는 이에 대한 재평가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잊힌 우리의 신불이 일본인의 숭배를 받았던 것이다. 또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선조가 일본에서 정착해 주요 지배세력으로 성장해 마침내 천황가의 한 축을 구성하게 됐다. 따라서 일본의 천황가와 신사를 우리 처지에서 재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신국신사라는 이름을 일본어로는 가라쿠니라고 한다. 이 용어가 오래된 기록들에는 한자가 신국이 아닌 한국(韓國) 또는 당국(唐國)이라는 글자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세 단어 신국·한국·당국 모두 일본어로 읽을 때에는 ‘가라쿠니’라고 한다. 일본에서 오래 살다 보면, 아니 일본인 학자들과 오래 교류하다보면 이들은 대륙이나 반도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도래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나아가 도래인의 실체를 물어보면, 대륙 즉 중국에서 넘어 사람들이라고들 말한다.
그게 맞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일본으로 직접 넘어올 수 있었나?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는 그들이 일본에 정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너무나 단순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다. 도래인 대부분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선조인데 왜 이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고 드는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큰 무당이나 유명한 명상 수련가들로부터 일본에는 잡신만 있고 실제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여기저기에 갖다 붙이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을 창작해대니 어느 신이 그냥 그대로 있을 수 있을까?
일본인들이 당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의 당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삼한의 한(韓)을 말한다. 즉, 일본 고대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카라’는 한반도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아가 음이 비슷하기 때문인지, 아래와 같이, 한반도 가운데서도 특히 가야와 관련되었다고 해석될 때도 적지 않다.
오늘은 하비키노에 자리 잡은 백제(百済)의 귀수왕(貴須王)의 자손 가운데 하나인 갈정씨(葛井氏:후지이씨)가 오오사카부(大阪府)의 등정사시(藤井寺市:후지이데라시)에 세운 신국(辛国:가라쿠니) 신사에 모셔진 우리의 신불을 참배하러 가고자 한다.
가라쿠니신사(신국신사:辛國神社)주변에는 백제라는 이름이 붙여진 지명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곳이 멋 옛날 백제로부터 건너온 우리의 선조가 집단으로 살았던 곳이었음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백제의 남서부 즉 마한지역에도 상당수 발견되는 거대한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 6기(基)를 포함해 모두 123기나 산재하고 있는 고시고분군(古市古墳群)이 이 신국신사의 주변에 있다.
4세기후반부터 6세기중엽사이에 형성된 이 고분군은 구수왕의 자손들이 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거대 세력화하는 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근의 작은 전방후원분이 점점 거대화해 가는 과정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마한지역으로 교역을 위해 진출한 우리나라의 전방후원분 조영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신사참배’는 일본제국주의의 강요로 우리나라 식민지 경영의 하나로 이뤄졌다. 하지만 실제로 신사의 주신(主神)들은 대부분 우리의 신불이다. 따라서 식민지 지배가 끝난 지금에서는 이에 대한 재평가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잊힌 우리의 신불이 일본인의 숭배를 받았던 것이다. 또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선조가 일본에서 정착해 주요 지배세력으로 성장해 마침내 천황가의 한 축을 구성하게 됐다. 따라서 일본의 천황가와 신사를 우리 처지에서 재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신국신사라는 이름을 일본어로는 가라쿠니라고 한다. 이 용어가 오래된 기록들에는 한자가 신국이 아닌 한국(韓國) 또는 당국(唐國)이라는 글자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세 단어 신국·한국·당국 모두 일본어로 읽을 때에는 ‘가라쿠니’라고 한다. 일본에서 오래 살다 보면, 아니 일본인 학자들과 오래 교류하다보면 이들은 대륙이나 반도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도래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나아가 도래인의 실체를 물어보면, 대륙 즉 중국에서 넘어 사람들이라고들 말한다.
그게 맞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일본으로 직접 넘어올 수 있었나?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는 그들이 일본에 정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너무나 단순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다. 도래인 대부분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선조인데 왜 이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고 드는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큰 무당이나 유명한 명상 수련가들로부터 일본에는 잡신만 있고 실제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여기저기에 갖다 붙이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을 창작해대니 어느 신이 그냥 그대로 있을 수 있을까?
일본인들이 당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의 당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삼한의 한(韓)을 말한다. 즉, 일본 고대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카라’는 한반도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아가 음이 비슷하기 때문인지, 아래와 같이, 한반도 가운데서도 특히 가야와 관련되었다고 해석될 때도 적지 않다.

카라〓신(辛)〓한(韓)〓당(唐)〓가라(加羅)〓가야(伽倻)〓가락(駕洛)
일본 씨족들의 유래를 자세하게 다룬 사료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에 의하면, 이 신사의 주변 지역의 씨족 가운데 하나인 오오카라씨(大賀良氏)는 신라의 낭자왕(郎子王 라우시오우)의 후예라고 한다. 비록 좀 한자가 다르지만 오오카라씨라고 한다면 커다란 카라->가라->대가라->대가야(大伽倻)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오오카라씨는 신라에 통합된 대가야의 후손이라는 뜻을 담게 된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이 바로 이 대가야 왕족의 후손이다. 신라 제42대 왕 흥덕대왕이 태대각간 김유신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한 사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보인다. 따라서 신국신사에는 오오카라씨도 신봉했을 것으로 보이는 대가야의 신들이 봉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신사는 후지이데라의 신궁사(神宮寺) 즉, 사찰과 짝하고 있는 신사로서 도래인인 갈정씨(葛井氏)의 씨신(氏神) 즉 조상신을 제사지내고 있는 것으로 더 알려졌다. 따라서 가야신 얘기는 틀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신사 관련 사료인 ‘고전문서(古田文書)’ 가운데 ‘대일본사신지지(大日本史神祗志)’에 의하면, 韓國連(한국련:카라쿠니노무라지)의 조상신을 제사하기 위해서 창건한 신사라 하고 있다. 따라서 백제나 가야의 신을 모신 신사라고 할 수 있다.
또 ‘신지보전(神祗寶典)’은 신라국의 신을 모신 신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김유신계이기에 후대에 가야가 멸망한 이후에 신라로 그 이름이 바뀐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신사에는 그 경내에 수많은 신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므로 한 신사에서 수많은 신을 모셨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이 틀린 것이 아니다. 대부분 시기에 따라 새롭게 모셔지게 된 신들이라 봐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제신(祭神)은 니기하야히노미코토(요속일명:饒速日命), 아메노코야네노미코토(천아옥근명:天兒屋根命), 스사노오노미코토(소전오명:素戔嗚命)의 3신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찾아보면 대개 천일창 등 신라의 신이지만 제신이나 그들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수 있다고 한다. 신사 경내에는 나가노신사(長野神社:長野神社)가 있다. 아마도 명치 초년에 신사들의 통폐합으로 주변에 있다가 합사된 신사로 보인다. 유서를 살펴보면 이 역시 백제계의 나가노노무라지(長野連:長野連)씨의 조상을 모신 곳이었다고 한다. 결국, 여기서도 한때 철천지원수였을지도 모르는 가야·신라·백제의 신이 사이좋게 화합하고 있는 것이다.(여성불교)
국립민속박물관 큐레이터 www.facebook.com/hadogyeom
일본 씨족들의 유래를 자세하게 다룬 사료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에 의하면, 이 신사의 주변 지역의 씨족 가운데 하나인 오오카라씨(大賀良氏)는 신라의 낭자왕(郎子王 라우시오우)의 후예라고 한다. 비록 좀 한자가 다르지만 오오카라씨라고 한다면 커다란 카라->가라->대가라->대가야(大伽倻)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오오카라씨는 신라에 통합된 대가야의 후손이라는 뜻을 담게 된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이 바로 이 대가야 왕족의 후손이다. 신라 제42대 왕 흥덕대왕이 태대각간 김유신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한 사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보인다. 따라서 신국신사에는 오오카라씨도 신봉했을 것으로 보이는 대가야의 신들이 봉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신사는 후지이데라의 신궁사(神宮寺) 즉, 사찰과 짝하고 있는 신사로서 도래인인 갈정씨(葛井氏)의 씨신(氏神) 즉 조상신을 제사지내고 있는 것으로 더 알려졌다. 따라서 가야신 얘기는 틀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신사 관련 사료인 ‘고전문서(古田文書)’ 가운데 ‘대일본사신지지(大日本史神祗志)’에 의하면, 韓國連(한국련:카라쿠니노무라지)의 조상신을 제사하기 위해서 창건한 신사라 하고 있다. 따라서 백제나 가야의 신을 모신 신사라고 할 수 있다.
또 ‘신지보전(神祗寶典)’은 신라국의 신을 모신 신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김유신계이기에 후대에 가야가 멸망한 이후에 신라로 그 이름이 바뀐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신사에는 그 경내에 수많은 신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므로 한 신사에서 수많은 신을 모셨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이 틀린 것이 아니다. 대부분 시기에 따라 새롭게 모셔지게 된 신들이라 봐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제신(祭神)은 니기하야히노미코토(요속일명:饒速日命), 아메노코야네노미코토(천아옥근명:天兒屋根命), 스사노오노미코토(소전오명:素戔嗚命)의 3신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찾아보면 대개 천일창 등 신라의 신이지만 제신이나 그들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수 있다고 한다. 신사 경내에는 나가노신사(長野神社:長野神社)가 있다. 아마도 명치 초년에 신사들의 통폐합으로 주변에 있다가 합사된 신사로 보인다. 유서를 살펴보면 이 역시 백제계의 나가노노무라지(長野連:長野連)씨의 조상을 모신 곳이었다고 한다. 결국, 여기서도 한때 철천지원수였을지도 모르는 가야·신라·백제의 신이 사이좋게 화합하고 있는 것이다.(여성불교)
국립민속박물관 큐레이터 www.facebook.com/hadogye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