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왜 마이클 샌델에 열광하는가…연세대 강연 현장

기사등록 2012/06/11 17:02:08

최종수정 2016/12/28 00:47:52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최근 출간한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최근 출간한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득수 기자 = 수퍼 베스트 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는 하버드대 교수(정치철학)인 마이클 샌델의 강연회가 1일 저녁 7시부터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이날 샌델 교수의 강연은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아산연구소가 공동주최한 것으로 샌델 교수의 신작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한국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120만부나 팔린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사회 지성계에 새로운 담론을 제공하며 ‘정의’에 대한 사색에 몰입케 했고 샌델 교수 열풍을 일으켰다. 한국이 일본보다도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샌델 교수는 지난 1월 동아일보사의 종편 A채널 개국 기념으로 초청해 한국에서 첫 강연을 열어 열띤 토론을 벌인 바 있다.

 샌델의 높은 인기도를 반영하듯 이날 신촌로터리에서 연세대로 향하는 연도에는 저녁 6시 무렵부터 강연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 밀려들어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연대 정문에서 본관을 거쳐 노천극장에 이르는 메인 교내 도로는 입장객들이 2~3열로 수백m 줄을 서야 했다. 강연장엔 시작 1시간 전부터 이미 좌석 대부분이 들어찼으며 예정시각인 7시가 한참 넘어서야 입장이 완료됐다.

 식전 행사로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 손범수 아나운서가 나와 강연 개요를 설명하며 기다리는 청중들의 지루함을 달랬고,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학장은 시작 전 무대에 올라 주최 배경을 설명했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인사말에서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직접 만나서 눈을 마주보며 감정을 느끼고 언어를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연세대 노천극장은 원래 1만 명 정도가 들어오면 쾌적한 행사 공간인데 샌델 교수의 인기도를 감안해 입장권을 1만2000장을 발행해 5월4~6일 3일간 1~3차에 걸쳐 판매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5월4일 1차 판매 당일 1만5000명이 신청해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고 밝혔다. 강연을 주최한 연세대 경영대학원장 박상용 원장의 얘기에 따르면 “IT강국답게 입장권이 인터넷 벼룩시장 등에서 암표로 나돌아 3~4만원씩에 팔렸다”고 한다. 샌델 교수의 높은 인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샌델 교수가 등장하자 장내는 마치 아이돌 스타의 공연장을 방불케 할 만큼 박수와 함성이 초여름 밤 하늘에 메아리쳤다. 강연장이라기보다 대중스타의 공연장 같았다.

 “여러분, 사랑해요!” 엄청난 청중이 운집한 데 대한 놀라움을 표하며 한국말 멘트로 말문을 연 샌델 교수는 “다들 토론에 참여할 준비가 되셨나요?”라고 묻고는 곧바로 돈과 시장의 문제를 지적하는 2시간 반 동안의 강연을 시작했다.

 샌델은 “오늘 강연은 가장 많은 사람이 참석한 철학 강의일 것”이라며 “민주주의적 담론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노천극장과 그 주변까지 메운 청중들에게 인사했다.  

 샌델은 그의 2012년 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 돈, 시장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물었다. 돈이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시장경제 체제가 시장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인데, 그 둘의 차이는 ‘시장경제’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부유하게 해주었지만, ‘시장사회’는 모든 것이 매매의 대상이 되고 돈과 시장이 삶을 모두 지배하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이것이 옳은 것인지 공적인 논의를 필요로 하며, 시장의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로 교수가 제시한 논제는 ‘암표’였다. “오늘 강연에 암표를 사서 들어온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하고는 이어 레이디가가 공연티켓, 그가 중국에서 봤다는 의사진찰권 암표 등에 각각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중에서 지명해 각자의 주장을 발표하게 했다.

 샌델은 익히 알려진 바대로 토론식 강의의 진수를 보여줬다. 찬반 의견자의 견해를 듣고 나서 양쪽을 서로 반박하고 이유를 묻게 하는 토론을 벌이게 한다. 이 토론의 내용을 기반으로 샌델이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참석자들에게 문제의 핵심을 인식케 해주는 방식이다.

 대원외고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한 여학생은 유창한 영어로 샌델 교수의 질문에 답변하고, 상대방 토론자에게도 질문하고 답변했다. “레이디가가의 공연을 보기 위해 암표를 사는 건 찬성한다, 그러나 진찰권을 돈 주고 사는 것은 반대한다”는 이 고교생은 왜 그런가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레이디 가가공연은 엔터테인먼트이므로 원하면 더 주고라도 가는 게 무슨 문제인가, 그러나 진찰권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므로 부도덕하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폈다.

 샌델의 “대학입학 정원의 10%를 기부입학제로 학생을 선발하는 건 어떠냐”는 질문을 통해 대중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논의가 진행 중인 기여(기부)입학제에 대한 찬반성향을 읽을 수 있었다. 반대한다고 손을 든 사람들이 거의 90%를 넘는 것으로 보였다. 반대하는 사람 중에 손을 들어 교수에 의해 발표자로 지명된 학생은 고려대 여학생, 찬성자 중에 선정된 발표자는 연세대 남학생이었다. 우연하게 남녀 연고전이 토론에서 벌이지게 돼 함성과 박수가 터졌다.

 반대 여학생은 “교육기관인 대학이 돈을 벌기 위해 부유층의 자녀를 입학시키는 것은 안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고, 찬성 남학생은 “정원의 10% 정도면 괜찮다고 본다. 그 돈으로 더 나은 교육을 베풀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어서 “가령 박주영이나 가수 비처럼 스포츠 연예스타가 한국과 같은 징병제가 실시되는 나라에서 국가에 돈을 내고(예를 들어 연봉, 연 수입의 절반을) 군대를 안 가거나 대리근무를 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교수의 질문에 대해 의외로 90% 이상이 반대했다.

 우연찮게도 샌델 강연회 자리에서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의 걱정과는 달리 안보관이 바르고, 군복무, 즉 국방의 의무 수행에 대해서도 확고한 의식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찬성자가 “그 돈으로 국방력을 강화하는데 사용하면 좋지 않겠느냐”라고 찬성의 이유를 밝히자 반대론자는 “돈 내고 군대 빠진다면 군대 간 사람들은 ‘난 돈이 없어 군대 끌려왔다’고 생각해 사기가 떨어지고, 국방력이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재용씨(이건희 삼성회장 아들인)가 군 면제 대가로 수백 억 원짜리 전투기를 한 대 사준다고 한들 그것이 국방력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샌델은 아이가 책을 읽으면 용돈을 주는 ‘인센티브 방식’에 대해서도 찬반의견을 물었는데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찬성 발언자는 건국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었다. 책을 읽으면 스티커를 받았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처음엔 스티커를 받기 위해 책을 읽었는데, 그러다 보니 나중엔 정말 책 읽기의 재미를 알게 됐으며, 덕분에 지난해엔 건대 도서관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이 됐다”고 말했다. 반대자는 “독서에 대가를 제공하는 행위가 아이들로 하여금 독서를 일종의 노동으로 여기게 한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토론이 종반으로 접어들 무렵 샌델 교수는 “스위스의 한 마을이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선정된 후 여론조사를 했는데 처음엔 51%가 찬성했다. 두 번째로 마을에 6000만유로를 주겠다고 한 후 다시 조사해보니 찬성이 25%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라고 화두를 던졌다. 그는 “처음엔 주민들이 순수한 희생정신으로 찬성했는데, 댓가를 받고 핵폐기물 처리장이라는 위험에 노출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보상만 많이 해주면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핵폐기장을 유치에 나서는 한국 사회의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어 이스라엘 유치원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시간에 늦는 부모들 때문에 교사들이 제시간에 마칠 수 없게 되어 벌금을 부과했더니 오히려 늦는 부모가 더 늘어났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벌금 내기 전에는 미안함이 있었지만, 벌금을 내면서 부모들은 그것을 유치원이 시간외 보육의 비용으로 여기고 ‘돈만 내면 된다’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 한국에서 실시했더라면 아마도 반대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한국은 서구보다도 돈을 중시하는 사회,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토론이 무르익어 가면서 청중들은 자연스레 ‘돈으로 살 수 없고’,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샌델 교수의 강의가 명강의라는 칭송을 받는 미덕이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날 토론의 내용과 결론이 대체로 샌델 교수가 책에서 언급한 것과 일치돼 가는 방향으로 수렴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야외라는 장소적 문제와 불특정 지원자가 벌이는 각본없는 토론인 만큼 정교하게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토론자들은 시종 활기차게 의견을 개진하며 재미있게 논리 공방을 펼쳤다. 너무 사람이 많아 잘 보이지는 않지만(무대배경 화면에는 중계됨) 객석에서 마이크를 잡은 토론자들의 주장을 들으며 청중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생각하며 핵심에 몰입해 갈 수 있었다.

 교수는 줄곧 발언을 신청한 토론 참가자들에게 찬반 양론을 유도한 후 새로운 조건을 덧붙이고 다시 이에 대한 견해를 묻는 것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심화시켜 나갔고, 청중들이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제의 본질에 한걸음씩 다가가도록 도와줬다.

 젊은 참가자들은 자기주장을 드러내는데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영어가 안 되면 그냥 한국말을 사용하면서 전혀 주눅 들지 않았고, 일반적인 학교차는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일 뿐 여기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영어를 못해도, 학교가 유명하지 않아도, 논리가 좀 부실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거리낌 없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 발표했다. 이런 모습이 오히려 청중들의 박수를 더 많이 받았다. 가다가 자기주장이 코너에 몰리면 “미안합니다. 저의 논리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라고 흔쾌히 인정하고 웃으며 물러서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복합대학원장의 부산 청춘콘서트에 학생들이 몰려들어 강연장 복도까지 들어찼는데 젊은 학생들은 묻고 답하기를 즐기고 이 과정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답을 얻으며 열광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토론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중스타의 공연처럼 재미있게 이끌어 가는 스타일이 인기에 한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샌델 교수도 이런 면에서 무대를 장악하고 청중을 의도한대로 이끌어 가는 대단한 수준의 엔터네이너라고 할 수 있다.

 샌델은 그의 저서에서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우려했다. 그 이유는 불평등과 부패를 낳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인 사회에서 생활하기는 재산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힘들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부유한지 가난한지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또 시장이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독서 인센티브나 대학 기여입학제처럼 그것의 본질적 가치를 오염시킬 수 있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은 우리 젊은 세대의 당당함과 자기주장을 거리낌 없이 펼치는 모습들에서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힘이 느끼게 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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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81호(6월18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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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아이즈]왜 마이클 샌델에 열광하는가…연세대 강연 현장

기사등록 2012/06/11 17:02:08 최초수정 2016/12/28 00: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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