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년만에 '새로보는 방약합편'…임상례 4800건

기사등록 2012/04/09 08:01:00

최종수정 2016/12/28 00:29:31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조선 말기 고종 22년(1885) 간행된 황도연의 '방약합편'은 지금까지 임상가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한의학 편람서다. 주로 '동의보감'의 처방 가운데 치료율과 사용빈도가 높은 처방을 간추린 임상 한의서다.

 '새로보는 방약합편'은 기존의 '방약합편'에서 간명하게 기록한 부분을 현재의 시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실제로 처방을 활용한 사례를 수록해 마치 도제식 교육을 받는 느낌이 들도록 돼 있다.

 전4권으로 제1권 상통(上統)은 주로 보(補)하는 처방 123종, 제2권 중통(中統)은 주로 화(和)하는 처방 181종, 제3권 하통(下統)은 주로 공(功)하는 처방 163종과 증보방을 실었다. 제4권은 활투침선(活套鍼線) 병증도표(病症圖表) 손익본초(損益本草) 한의약서(韓醫藥書)로 구성돼 있다.

 서양의학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이전까지는 주로 한약과 침으로 병을 치료했다. '방약합편'이 저술된 조선 말기는 안동 김씨와 민비 일가의 전횡으로 인해 왕조가 심하게 부패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시기였다. 백성은 굶주려 피폐했고, 천연두나 콜레라, 홍역 같은 돌림병(전염병)이 창궐해 수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사조가 벼슬을 하는 것이 일생의 목표가 되는 시기라 의사로서 이름이 나면 서자 출신이라도 벼슬자리로 옮기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서자 출신인 황도연은 한양에 살았으면서도 벼슬을 하지 않고 배오개에서 찬화당약방을 열어 평생 동안 백성을 치료해 왔고, 그 임상경험을 토대로 '방약합편'이 저술된 것이다.

 당시는 책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의서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나라에서 간행된 '동의보감'도 30부 정도였는데, 내의원이나 혜민서, 각 도의 관청, 오대산이나 적상사 같은 사대서고에 비축해놓고 나면 일반 의사들에게 전해질 책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필사본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모두 붓으로 필사하다 보니 분량이 많아서 활용하는 데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한 '동의보감' 시대에는 없었던 양매창(매독) 같은 질병에 적합한 처방도 시급했기에 새로운 의서의 출현이 필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말엽까지 111종의 한의학 서적이 간행됐고, 107종의 중국 서적이 번역해 출판됐다. 이 중에서 조선시대 세종 이전의 400여 의약서를 집결해 정리한 책이 '의방유취'다. 또한 이를 계승하고 '의학입문'이나 '만병회춘' 등을 인용해 효과가 좋은 처방을 정리한 것이 '동의보감'이다. 이처럼 '동의보감'은 매우 훌륭한 책이지만 내용이 방대해 임상활동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처방을 정리한 책이 주명신의 '의문보감'이며, 강명길이 '동의보감'을 30여 년간 연구하고 자신의 경험을 더해 정리한 책이 '제중신편'이다.

 이후 고종 때 황도연이 '동의보감'과 '제중신편'을 비롯해 무려 106권의 책을 정리하고, 찬화당약방을 운영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저술한 책이 '의종손익'이다. 그러나 '의종손익'에도 수록 처방이 많아 초학자들은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용빈도에 따라 처방을 선별해 간편하고 쉽게 편람할 수 있도록 한 책이 '의방활투'고, 여기에 약성가(藥性歌)로 된 '손익본초'를 더한 것이 '방약합편'이다.

 따라서 '방약합편'은 '향약집성방'→'의방유취'→동의보감'→'의문보감'→제중신편'→'의종손익'→'의방활투'→'방약합편'의 순으로, 수백 년간 조상들의 지혜와 숨결이 집약되고 계승돼 온 우리 의학체계의 핵심이며, 임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처방들로 구성된 요약편이라 할 수 있다.

 한방서적은 많다. 그러나 대부분 경험적 집약으로 서술돼 경험자가 아니면 이해가 쉽지 않다. 거기다 증상과 질환은 하나인데, 치료법과 처방은 매우 다양해 혼란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오랜 기간 치료를 통해 스스로 체득하기 전에는 치료기준이 간략하게 기록된 '동의보감'이나 '방약합편' 등의 고전 의학서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전통적인 도제교육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한의학을 이해하고 습득하자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였다. 도제교육은 전통적인 개인별 장기간 인턴십인데, 한의대 설립 이후 점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발행된 한방임상 서적은 제한적이기는 하나 한의학의 초학자가 이해하기 쉬웠다. 임상 치험사례들은 간접경험에 충분했고 무엇보다도 구체적이고 자세한 기록은 한약으로 질병이 치료된다는 사실을 확인해 줬다.

 우리나라에도 임상사례 위주의 서적이 한두 권은 있었으나 미약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치료된 사례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특히 100년 동안 한의학 임상가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방약합편'이 중심이 됐다.

 1980년대 말부터 저자는 한약방을 하면서 환자를 보는 틈틈이 치료한 사실의 결과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이 모이면서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1990년 한약방 인근에 별도로 연구소를 만들어 여러 명의 연구원들이 기록한 임상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면서 통계를 내는 작업을 병행했다. 그러면서 하나씩 재검토하고 점검해 활용사례에 대한 기준틀을 만들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만으로는 다양한 질환과 치료법을 모두 알기는 어려워서 주말에는 경험이 많은 고령의 한약방 회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치료 경험담을 녹취하는 '고령자 채록사업'에 착수했다. 초기에는 90세 이상의 고령회원 위주로 채록을 했으나, 소수를 제외하고는 기억력이 격감해 그분들이 가진 평생의 경험을 제대로 기록할 수가 없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이후로는 70세 이상에서 60대까지 고령자로 선정해 지역별로 릴레이 녹취를 했다.

 고령자 채록의 대상자들은 대부분 도제식으로 공부한 후, 한약방 자격시험에 합격해 개업한 분들이라 스승이나 선대로부터 많은 경험을 전승받은 경우가 많았다. 또한 여기에 자신의 평생 경험이 녹아 겹쳐 있어서 귀중한 내용이 많았다. 이런 많은 분들의 다양한 치료 경험기록인 고령자 채록들을 쌓아가고 정리하는 과정은 저자에게 많은 공부가 됐을 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히고 실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저자에게는 고령자 채록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스승이었다.

 치료기록을 수십 년 간 모으다 보니 각 처방이나 질환, 증상마다 많은 사례가 쌓였다. 그 결과 증상마다 사용되는 처방의 유형을 구분할 수가 있었고, 또한 비슷한 처방마다 비교하거나 감별할 수 있는 안목과 구체적인 방법이 돌출됐다. 이렇게 해 하나씩 각 처방의 기준틀을 넓혀나갔다. 기존의 한의서적에는 처방의 기준은 있었으나 제한적이거나 허술한 측면이 많아서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치료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면서 '방약합편' 등 선현들이 남겨준 의학서에 기재된 증상이나 질환들을 하나씩 직접 확인했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오랜 역사 속에서 남겨진 귀중한 의학 자산의 내용을 입증할 수가 있었다. 예를 들면 흑두즙(黑豆汁)이라고 하는 검은색 설사의 치료 기준은 '허약이 심하여 상부 소화관의 미세출혈로 생긴 것'으로 보며, 이런 경우 위풍탕(胃風湯-중통106)을 사용하면 실제 치료도 잘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알레르기, 기관지천식, 갑상선기능항진증 및 저하증, 치질, 탈항 등 수없이 많았다.

 저자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 질환과 증상, 증후마다 주요 내용과 사용기준을 설정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경험과 지혜가 담겨있는 선현들의 한의서적에 포함된 귀중한 의학 자산들이 현대인에게 이해되고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나갈 수 있었고, 고전의 현대적 해석에 필요한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치료 사례들이 많이 모이자, 그 내용들 중 함께 나눌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임상사례를 선별 게재하기 위해 '태극'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국 한약방 1천800명 회원들에게 무료로 보내 줬다. 구체적인 임상기록이 부족한 현실에서 경험을 함께 나눠 가지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 '태극'지는 통권 23호까지 발행됐다.

 저자는 여러 해 동안 환자를 보살피면서 채록사업과 자료 정리 등을 병행했고, 이에 과로가 누적돼 건강을 많이 해치게 됐다. 그래서 한약방의 문을 닫았고, 미진한 자료 정리가 마무리되면 연구소마저 정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에 한의사 한 명이 찾아왔다. "이론 공부는 많이 했으나 임상 경험이 많이 부족합니다. 선생님께 임상을 배우고 싶습니다."

 배우겠다는 사람을 내치기가 어려워 수락했다. 한약방 문을 다시 열고, 옆에서 배우도록 했다. 그러자 이번엔 한의대생들이 임상경험을 배우겠다고 찾아왔다. 그들은 대부분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다시 한의대에 입학한 예비 한의사들이었다.

 이런 사실이 한의대생들 사이에 소문나면서 그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결국 한약방에서는 장소가 비좁아서 강의실을 옮겨가며 임상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한의대별로 시작된 강의는 전국 단위로 확대됐고 방학 때면 1주일 정도 합숙훈련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전국 한의대를 중심으로 한 '상태의학회'와 한약학과를 중심으로 한 '태극한약학회'가 결성됐다.

 초창기에는 저자 혼자 주로 강의를 맡았으나, 우수한 한의사와 한약사가 본격 배출된 현재는 그들과 강의를 분담하고 있다. 저자에게서 배운 많은 학생들이 졸업 후 한의사와 한약사로 배출돼 개업 등을 했는데, 의미 있는 사실은 그들도 자신들의 임상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또 다른 경험사례가 됐고, 신뢰할 수 있는 임상사례의 기록들이 크게 늘어났다. 이런 과정에서 "이제는 임상사례들이 제법 모양새를 갖추어졌다. 그러니 임상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고 활용되는 '방약합편'을 중심으로 저술하자"는 요청이 계속됐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누구에게나 쉽고 이해가 가능하며 확실한 기준이 되는 임상서적이 필요하고, 그것이 '방약합편'이 된다면 전통도 이어갈 수 있고 임상의 실용성도 매우 높일 수 있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그래서 그동안의 치험례들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수없이 한 끝에 허술하긴 하나 어느 정도 '방약합편'의 편술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러면서 연구원들과 검토하고 상의한 끝에 '새로운 시각'으로 '방약합편'을 만들어보기로 결정했다.

 가장 힘든 부분이 처방설명에 대한 문안작성이었다. 이 부분은 연구원들의 노력이 매우 컸다. 물론 30여 년에 걸친 저자의 임상기록이 있었고, 고령자 채록사업이나 학회 세미나, 학회회원들의 치험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는 연구원들과 4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자체 출판사에서 2006년 '새로보는 방약합편'을 출간했다. 이는 저자가 17년간 개인연구소를 운영하면서 20억 원이 넘는 사재를 들인 결과물이기도 했다. 다시 2012년 초판본을 일부 보완해 정식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해 황도연의 '방약합편'이 출간된 지 127년 만에 '새로보는 방약합편'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새로보는 방약합편'은 '방약합편'을 요약하고 한정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방약합편'이 의방유취-동의보감-제중신편-의종손익을 잇는 한국 한의학의 정통성을 가진 핵심본이라면, '새로보는 방약합편'은 고대 한의학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정리한 우리의 대표적 한의학 서적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한국 한의학의 핵심을 재정리한 것이다.

 2. 한의약의 실제 효능과 활용을 입증시켰다.

 3. 현대의학에 접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편저자 감천(甘泉) 이종대씨는 1946년 김천 출생이다. 한약업사, 대종한의원, 대원한약방, 할아버지한약방 원장(1984~2000), 동의학연구소, 한방학술지 '태극' 발행인, 고령자채록사업 단장, 사상의약학회장, 고방의약학회장, 한방학술 태극학회 고문, 상태의학회 학술고문, 아메리칸 스테이츠 유니버시티를 지냈다. 저서로는 '한방임상비방집(태극지합본)'(전3권), '감기의 한약치료'(전2권), '새로보는 빈용101처방', '새로보는 빈용202처방', '30처방으로 보는 한방병리', '흔한 통증 증후군 한방요법' 등이 있다.

 총 3400쪽, 각권 8만원, 제1권 상통(912쪽),  제2권 중통(912쪽), 제3권 하통(840쪽), 제4권 활투침선, 병증도표, 손익본초, 한의약서(736쪽), 도서출판 청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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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년만에 '새로보는 방약합편'…임상례 480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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