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하도겸의 ‘일본의 우리 신불 神佛을 찾아서’ <1>
우리에게 있어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된다. 일본은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하는데 10년 가까이 일본에 살았어도 사실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매우 다양한 얼굴을 가진 나라가 바로 일본이기에 일본인을 알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 한 과학자가 일본인의 유전자를 널리 조사한 내용이 NHK를 통해 방송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현대 일본인들의 유전자에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피가 70%나 흐르고 있다는 결론 때문이다. 일본이 그토록 괴롭히고 차별했던 한국과 중국인이 과학적 조사로 그들의 조상이라고 하니 어찌 안 놀랄 수 있겠는가? 이 결과는 일본으로 넘어간 우리 선조도 오늘날 일본의 조상이 됐다는 말이 된다. 일본인들이 흔히 말하는 도래인(渡來人), 즉 바다를 넘어온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삼국시대의 고구려·백제·신라인이다.
한국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중국과 일본 두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굳이 대륙과 섬을 잇는 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성을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조상은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일본에 전달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켜 수출했다.
우리가 일본으로 전파한 문화 가운데는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았지만, 일본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신(神)과 불(佛)이 아닐까 싶다. 당시의 문화교류는 단순히 물건만 무역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물건들도 직접 다 짊어지고 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물뿐만 아니라 제작기술과 사용방법 그리고 거기에 담긴 생활이나 종교·민속·문화 상징까지 함께 이동했다. 삼국시대 선조의 대규모 이주 사실은 일본 쪽 기록들에 상당수 남아 그 생생한 역사를 전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된다. 일본은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하는데 10년 가까이 일본에 살았어도 사실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매우 다양한 얼굴을 가진 나라가 바로 일본이기에 일본인을 알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 한 과학자가 일본인의 유전자를 널리 조사한 내용이 NHK를 통해 방송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현대 일본인들의 유전자에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피가 70%나 흐르고 있다는 결론 때문이다. 일본이 그토록 괴롭히고 차별했던 한국과 중국인이 과학적 조사로 그들의 조상이라고 하니 어찌 안 놀랄 수 있겠는가? 이 결과는 일본으로 넘어간 우리 선조도 오늘날 일본의 조상이 됐다는 말이 된다. 일본인들이 흔히 말하는 도래인(渡來人), 즉 바다를 넘어온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삼국시대의 고구려·백제·신라인이다.
한국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중국과 일본 두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굳이 대륙과 섬을 잇는 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성을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조상은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일본에 전달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켜 수출했다.
우리가 일본으로 전파한 문화 가운데는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았지만, 일본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신(神)과 불(佛)이 아닐까 싶다. 당시의 문화교류는 단순히 물건만 무역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물건들도 직접 다 짊어지고 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물뿐만 아니라 제작기술과 사용방법 그리고 거기에 담긴 생활이나 종교·민속·문화 상징까지 함께 이동했다. 삼국시대 선조의 대규모 이주 사실은 일본 쪽 기록들에 상당수 남아 그 생생한 역사를 전하고 있다.

일본의 불교사원(寺院)이나 신도(神道)의 신사(神社)들에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신체(神體)나 불상(佛像)·불구(佛具) 등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이는 오늘날 일본의 국보나 중요문화재 등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대개 한반도에서부터 우리 선조가 모시고 섬겼던 신들로 일본으로 건너온 신과 부처님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오늘은 이 가운데 일본의 옛 수도 교토(京都)에 소재하고 있는 오사케신사(大酒神社)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교토는 메이지유신이 있기 전까지 오랫동안 일본의 천황이 살았던 옛 수도였다. 우리 경주와 마찬가지로 도시 대부분이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그 교토의 서쪽에는 재일교포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우즈마사(太秦)라는 곳이 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일본 국보 제1호인 목조 ‘보관미륵보살반가사유상(宝冠弥勒菩薩半跏思惟像)’으로 유명한 고류지(広隆寺)가 있다. 고류지 정문에서 일본의 전통사무라이 영화를 주로 찍는 스튜디오로 유명한 영화촌 쪽으로 수십 미터만 가다 보면 왼쪽에 작은 신사가 보인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날 만큼 아주 자그마한 신사로 바로 대주신사다. 원래 이 신사는 광융사 경내에 있었다. 하지만 메이지유신(1868)때 신불분리(神佛分離) 즉 신사와 사원을 나누라는 정책에 의해서 이곳으로 이전됐다.
일본의 고대 신들의 이름을 적은 책 ‘연희식신명장(延喜式神名帳)’에 적힌 이 신사의 신의 원래 이름은 오오사케(大辟)신이다. 한자는 조금 다르지만, 악령과 전염병을 퇴치하는 신으로 옛날부터 매우 유명했다. 그런데 대벽신은 한 명이 아니다. 진시황제(秦始皇帝祖神)와 그의 손자 유즈키노키미(宮月君), 그리고 하타노사케키미(秦酒公) 등 세 명이나 된다. 그러나 진시황은 일본인들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사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이다. 궁월군도 도래인으로 하타씨(秦氏)의 시조며, 진주공은 이 궁월군의 손자다. 결국, 이 대주신사는 진씨의 시조신을 모신 신사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이 가운데 일본의 옛 수도 교토(京都)에 소재하고 있는 오사케신사(大酒神社)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교토는 메이지유신이 있기 전까지 오랫동안 일본의 천황이 살았던 옛 수도였다. 우리 경주와 마찬가지로 도시 대부분이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그 교토의 서쪽에는 재일교포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우즈마사(太秦)라는 곳이 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일본 국보 제1호인 목조 ‘보관미륵보살반가사유상(宝冠弥勒菩薩半跏思惟像)’으로 유명한 고류지(広隆寺)가 있다. 고류지 정문에서 일본의 전통사무라이 영화를 주로 찍는 스튜디오로 유명한 영화촌 쪽으로 수십 미터만 가다 보면 왼쪽에 작은 신사가 보인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날 만큼 아주 자그마한 신사로 바로 대주신사다. 원래 이 신사는 광융사 경내에 있었다. 하지만 메이지유신(1868)때 신불분리(神佛分離) 즉 신사와 사원을 나누라는 정책에 의해서 이곳으로 이전됐다.
일본의 고대 신들의 이름을 적은 책 ‘연희식신명장(延喜式神名帳)’에 적힌 이 신사의 신의 원래 이름은 오오사케(大辟)신이다. 한자는 조금 다르지만, 악령과 전염병을 퇴치하는 신으로 옛날부터 매우 유명했다. 그런데 대벽신은 한 명이 아니다. 진시황제(秦始皇帝祖神)와 그의 손자 유즈키노키미(宮月君), 그리고 하타노사케키미(秦酒公) 등 세 명이나 된다. 그러나 진시황은 일본인들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사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이다. 궁월군도 도래인으로 하타씨(秦氏)의 시조며, 진주공은 이 궁월군의 손자다. 결국, 이 대주신사는 진씨의 시조신을 모신 신사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진씨들을 경상북도 울진에서 온 신라계 도래인으로 보고 있다. 이 신사와 관련된 연기 설화를 보면 진주공이 양봉을 해서 꿀을 만들었고 오복녀(呉服女)와 한직녀(漢織女)는 비단과 면 등을 짜서 천황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것들이 궁궐에 산더미처럼 쌓이자 천황이 기뻐한 나머지 이들에게 큰 구덩이를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다는 뜻의 ‘매익’(埋益)이란 한자의 일본어 표기인 우즈마사(禹豆麻佐)라는 성(姓)을 하사했다. 이 성이 바로 이 신사와 광융사의 지명인 우주마사(泰秦)가 된 것이다. 이 주변은 천황에게 하사받은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셈이다.
진주공은 하타노카와카츠(秦川勝) 또는 진하승(秦河勝)이라고도 한다. 진천승은 경도 광융사의 창건(603)자로서 진씨 일족의 수장이었다. 이가 죽은 후 후예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신사를 세우고 오복과 한직의 신령도 이 신사 옆에 별도의 신전을 세워 모셨다. 그러나 이것들이 파괴되자 최근에 함께 모시게 됐다. 여기서 오복녀는 오직(吳織 : 쿠레하토리)이라고도 하는 고구려계로, 한직녀는 줄여서 한직(漢織 : 아야하토리)이라고도 하며 백제계로 보고 있다.
결국, 이 신사 건립의 주최는 신라계인 진씨이지만, 백제계인 한씨와 고구려계인 오씨를 함께 제사지낸 것이 된다. 한반도에서 삼국이 통일도 하기 전, 아니 한반도에서 전쟁 중이었던 시기가 7세기 초다. 이미 이때 일본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 사람이 당시 국가개념을 뛰어넘어 한 민족으로서 평화롭게 화합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화합을 이룬 이들은 모두 대주신사뿐만 아니라 광융사의 가람(伽藍)신으로도 숭앙 됐다.
경도 3대 기제(奇祭) 가운데 하나로 매년 10월10일에 수많은 일본인이 참여하는 우시마쓰리(牛祭)가 바로 이들을 제사지내는 행사다. 우리 조상신을 모시는 축제에 경도 시민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큐레이터 [email protected]
진주공은 하타노카와카츠(秦川勝) 또는 진하승(秦河勝)이라고도 한다. 진천승은 경도 광융사의 창건(603)자로서 진씨 일족의 수장이었다. 이가 죽은 후 후예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신사를 세우고 오복과 한직의 신령도 이 신사 옆에 별도의 신전을 세워 모셨다. 그러나 이것들이 파괴되자 최근에 함께 모시게 됐다. 여기서 오복녀는 오직(吳織 : 쿠레하토리)이라고도 하는 고구려계로, 한직녀는 줄여서 한직(漢織 : 아야하토리)이라고도 하며 백제계로 보고 있다.
결국, 이 신사 건립의 주최는 신라계인 진씨이지만, 백제계인 한씨와 고구려계인 오씨를 함께 제사지낸 것이 된다. 한반도에서 삼국이 통일도 하기 전, 아니 한반도에서 전쟁 중이었던 시기가 7세기 초다. 이미 이때 일본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 사람이 당시 국가개념을 뛰어넘어 한 민족으로서 평화롭게 화합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화합을 이룬 이들은 모두 대주신사뿐만 아니라 광융사의 가람(伽藍)신으로도 숭앙 됐다.
경도 3대 기제(奇祭) 가운데 하나로 매년 10월10일에 수많은 일본인이 참여하는 우시마쓰리(牛祭)가 바로 이들을 제사지내는 행사다. 우리 조상신을 모시는 축제에 경도 시민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큐레이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