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 비평’
가수 박지윤의 ‘과거 고백’이 꾸준히 미디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4일 tvN ‘오페라스타2’ 3라운드 경연 무대에 오른 박지윤은 “가수로서 얻었던 이미지가 섹시한 이미지가 굉장히 많았었기 때문에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며 무대에서 흘린 눈물에 대해서도 “이 곡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냐’고 고백하는 가사다. 옛날 했던 그런 고백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론 2005년경 연예인 X파일 관련 루머로 상처받은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론 그런 루머의 원인이 자신의 섹시 이미지 때문이었단 자평이다. 물론 그 섹시 이미지에 대한 책임은 ‘성인식’으로 대표되는 박지윤 노선을 만들어낸 JYP엔터테인먼트에 있다.
한편 박지윤은 비슷한 얘기를 지난 7일 방영된 스토리온 ‘이미숙의 배드신’에선 조금 다른 식으로 풀었다. 2003년 6집을 끝으로 계약이 끝난 JYP와의 관계에 대해 박지윤은 “그쪽에서 별로 나를 원하지 않았다”며 “너무 열심히 뛰어왔는데 식구처럼 생각하지 않고 내버려둔 게 있어 개인적으로 섭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JYP가 밉고 기억을 지우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식’과 JYP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인식’ 박지윤도 아무나 만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많은 부분 자신은 ‘성인식’의 섹시 이미지에 갇혀 힘들었는데, 그를 유도한 JYP 측은 자신을 식구로 생각하지 않고 내쳐버렸단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지점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지윤과 JYP와의 계약기간은 2000년 1월부터 2003년 2월말까지였다. 그런데 6집 ‘우~ 투웬티원’이 발매된 시점은 2003년 2월27일이었다. 박지윤 말에 따르자면, JYP 측은 6집의 성과 자체와 관계없이 이미 5집 상황만으로도 박지윤에 추가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계약연장에 회의적이었단 얘기가 된다.
왜 그랬을까. 섹시 콘셉트가 불과 3~4년짜리 보따리장사가 아니란 건 이미 10여 년째 장수하고 있는 이효리 등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효리도 몇 번 부침이 있긴 했지만 전광석화처럼 히트 싱글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박을 낸 4집, 그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웠던 5집 정도로 계약연장까지 망설였다는 건 너무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당시 박지윤이 ‘뜬 이유’를 곰곰이 돌아보면 더더욱 그렇다. 박지윤이 대중음악계에 처음 등장한 건 1997년 1집 ‘박지윤’을 들고 나왔을 때다. 수록곡 ‘하늘색 꿈’이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며 즉각 화제에 올랐다. 그때가 그녀 나이 16살 때다. 그런데 당시 화제가 된 건 독특한 보이스컬러나 가창력 외에도 더 있었다. 16살 소녀가 ‘너무 지나치게’ 성숙하단 얘기가 돌며 즉각 이슈메이커화 됐다. 박지윤 본인도 ‘이미숙의 배드신’에서 “(16살에 데뷔했지만) 당시 26살로까지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절대동안을 추구하는 요즘 분위기에선 언뜻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엔 이처럼 ‘성숙한 외모의 소녀’란 콘셉트가 상당한 상품적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소녀와 성인여성 사이 애매한 지점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선정적 관점은 지금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런 갭이 10대 연예인으로서 최대 셀링포인트 중 하나였다.
사회가 이미 그런 변화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국민식생활이 개선되자 1990년대 청소년들은 일제히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발육을 보여줬다. 어른 같은데도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지금이야 그런 상황이 일상화돼 무감각해졌지만, 당시 일시적으로나마 기성세대가 느꼈던 이질감, 괴리감은 대단했다. 그러니 이 같은 분위기를 대변하는 상품이 핫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당시 같은 콘셉트로 화제를 모은 10대 연예인은 박지윤만이 아니었다. 배우 김소연도 비슷한 맥락에서 주목받았다. 그 과정을 가장 자세하게 다룬 것이 기자 블로그 ‘송원섭의 스핑크스’ 2009년 11월14일자 포스트 ‘16년차 배우 김소연, 천재 소녀의 부활’이다.
포스트는 “김소연의 데뷔는 1994년, 만 14세 때의 일입니다. 이때 김소연은 중3이었습니다. 당시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중3인데 얼굴은 20대인 애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죠”라면서 “그리고나서 오래지 않아 김소연을 실물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 놀랍더군요. 정말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콘셉트 연예인들을 ‘파는 방식’은 사실상 매한가지였다. 아직 10대일 때 성인 같은 외모를 십분 활용, 성인적인 역할을 맡겨버리는 것이었다. 실제 신분은 10대지만 드라마 속 역할이나 무대 퍼포먼스는 성인여성적인 면모로 나아가 대중의 퇴폐적 흥미를 자극하는 식이다. 결국 19살 박지윤의 ‘성인식’은 18살 김소연의 MBC드라마 ‘예스터데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상업적 발상이었단 얘기다. 김소연은 당시 ‘예스터데이’에서 여고생 신분으로 키스 씬을 펼쳐 천인공노(?)할 일로서 화제에 오른 바 있다.
가수 박지윤의 ‘과거 고백’이 꾸준히 미디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4일 tvN ‘오페라스타2’ 3라운드 경연 무대에 오른 박지윤은 “가수로서 얻었던 이미지가 섹시한 이미지가 굉장히 많았었기 때문에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며 무대에서 흘린 눈물에 대해서도 “이 곡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냐’고 고백하는 가사다. 옛날 했던 그런 고백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론 2005년경 연예인 X파일 관련 루머로 상처받은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론 그런 루머의 원인이 자신의 섹시 이미지 때문이었단 자평이다. 물론 그 섹시 이미지에 대한 책임은 ‘성인식’으로 대표되는 박지윤 노선을 만들어낸 JYP엔터테인먼트에 있다.
한편 박지윤은 비슷한 얘기를 지난 7일 방영된 스토리온 ‘이미숙의 배드신’에선 조금 다른 식으로 풀었다. 2003년 6집을 끝으로 계약이 끝난 JYP와의 관계에 대해 박지윤은 “그쪽에서 별로 나를 원하지 않았다”며 “너무 열심히 뛰어왔는데 식구처럼 생각하지 않고 내버려둔 게 있어 개인적으로 섭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JYP가 밉고 기억을 지우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식’과 JYP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인식’ 박지윤도 아무나 만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많은 부분 자신은 ‘성인식’의 섹시 이미지에 갇혀 힘들었는데, 그를 유도한 JYP 측은 자신을 식구로 생각하지 않고 내쳐버렸단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지점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지윤과 JYP와의 계약기간은 2000년 1월부터 2003년 2월말까지였다. 그런데 6집 ‘우~ 투웬티원’이 발매된 시점은 2003년 2월27일이었다. 박지윤 말에 따르자면, JYP 측은 6집의 성과 자체와 관계없이 이미 5집 상황만으로도 박지윤에 추가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계약연장에 회의적이었단 얘기가 된다.
왜 그랬을까. 섹시 콘셉트가 불과 3~4년짜리 보따리장사가 아니란 건 이미 10여 년째 장수하고 있는 이효리 등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효리도 몇 번 부침이 있긴 했지만 전광석화처럼 히트 싱글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박을 낸 4집, 그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웠던 5집 정도로 계약연장까지 망설였다는 건 너무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당시 박지윤이 ‘뜬 이유’를 곰곰이 돌아보면 더더욱 그렇다. 박지윤이 대중음악계에 처음 등장한 건 1997년 1집 ‘박지윤’을 들고 나왔을 때다. 수록곡 ‘하늘색 꿈’이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며 즉각 화제에 올랐다. 그때가 그녀 나이 16살 때다. 그런데 당시 화제가 된 건 독특한 보이스컬러나 가창력 외에도 더 있었다. 16살 소녀가 ‘너무 지나치게’ 성숙하단 얘기가 돌며 즉각 이슈메이커화 됐다. 박지윤 본인도 ‘이미숙의 배드신’에서 “(16살에 데뷔했지만) 당시 26살로까지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절대동안을 추구하는 요즘 분위기에선 언뜻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엔 이처럼 ‘성숙한 외모의 소녀’란 콘셉트가 상당한 상품적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소녀와 성인여성 사이 애매한 지점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선정적 관점은 지금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런 갭이 10대 연예인으로서 최대 셀링포인트 중 하나였다.
사회가 이미 그런 변화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국민식생활이 개선되자 1990년대 청소년들은 일제히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발육을 보여줬다. 어른 같은데도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지금이야 그런 상황이 일상화돼 무감각해졌지만, 당시 일시적으로나마 기성세대가 느꼈던 이질감, 괴리감은 대단했다. 그러니 이 같은 분위기를 대변하는 상품이 핫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당시 같은 콘셉트로 화제를 모은 10대 연예인은 박지윤만이 아니었다. 배우 김소연도 비슷한 맥락에서 주목받았다. 그 과정을 가장 자세하게 다룬 것이 기자 블로그 ‘송원섭의 스핑크스’ 2009년 11월14일자 포스트 ‘16년차 배우 김소연, 천재 소녀의 부활’이다.
포스트는 “김소연의 데뷔는 1994년, 만 14세 때의 일입니다. 이때 김소연은 중3이었습니다. 당시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중3인데 얼굴은 20대인 애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죠”라면서 “그리고나서 오래지 않아 김소연을 실물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 놀랍더군요. 정말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콘셉트 연예인들을 ‘파는 방식’은 사실상 매한가지였다. 아직 10대일 때 성인 같은 외모를 십분 활용, 성인적인 역할을 맡겨버리는 것이었다. 실제 신분은 10대지만 드라마 속 역할이나 무대 퍼포먼스는 성인여성적인 면모로 나아가 대중의 퇴폐적 흥미를 자극하는 식이다. 결국 19살 박지윤의 ‘성인식’은 18살 김소연의 MBC드라마 ‘예스터데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상업적 발상이었단 얘기다. 김소연은 당시 ‘예스터데이’에서 여고생 신분으로 키스 씬을 펼쳐 천인공노(?)할 일로서 화제에 오른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콘셉트의 한계는 그 어느 분야에서나 뚜렷했다. ‘성인여성의 외모를 한 10대 소녀’가 실제로 성인여성이 돼버리면 효용가치가 끝나버린다. 그럼 그냥 평범한 20대 성인여성에 불과해지기 때문이다. 10대 언저리에서 딱 20세 나이 직전까지 팔고 난 뒤 폐기처분시키는, 한국대중문화산업이 낳은 대표적인 시한부 전략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2000년대 이후의 김소연과 2003년 이후의 박지윤이었다. 김소연은 2003년 이후 점점 드라마 출연이 줄다 2005년 MBC드라마 ‘가을소나기’ 이후론 내리 3년을 쉬었다. 다시 드라마로 복귀한 SBS ‘식객’에서도 작은 역할만 맡게 됐다. 박지윤의 경우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2003년 이후 내리 6년을 쉬다 돌아왔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2003년, 아직 박지윤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던 시점임에도 JYP 측이 가차 없이 계약을 종료시킨 건 바로 이 같은 속성을 간파한 탓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박지윤을 마지막으로 팔 수 있었던 시점이 바로 2000년 ‘성인식’ 당시였고, JYP 측은 그 시점을 전에 없던 섹시 콘셉트로 더욱 부풀려 터뜨림으로써 소위 마지막 축포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 박지윤에게 5집 ‘맨’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준 뒤, 이미 성인여성이 돼버린 박지윤에겐 추가적 가능성이 없으리라 판단, 6집의 성패와는 관련 없이 계약을 종료시켜버린 것일 수 있다. 한 마디로, 박지윤이 ‘팔리게 된 이유’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처럼 단호한 계약종료를 취할 수 있었으리란 것.
이제 다시 박지윤의 ‘현실’로 돌아가 보자. 흥미롭게도 박지윤이 ‘오페라스타2’ 등을 통해 서서히 대중적 관심을 다시 모아가고 있는 현 시점은, 김소연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시점과도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김소연은 2009년 KBS2 ‘아이리스’ 조역으로 다시 주목받은 뒤 2010년 SBS ‘검사 프린세스’와 ‘아테나: 전쟁의 여신’을 거쳐 곧 개봉될 영화 ‘가비’에선 1997년작 ‘체인지’ 이후 무려 15년 만에 영화주연급으로 돌아오게 됐다.
김소연의 부활에는 물론 여러 호재가 작용하긴 했겠지만, 사실상 보다 원론적인 부분에서 원인을 찾을 필요도 있다. 콘텐츠가 없던 ‘쉬는 기간’ 동안 김소연은 연기자로서 실제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김소연은 그동안 가만히만 있었던 게 아니다. 대중 노출도는 크게 떨어지지만 진지한 작업들을 해왔다. 한 마디로 ‘백 투 더 베이직’이란 명제 하에서 부활의 기미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더 재밌는 점은, 박지윤도 현재 비슷한 방식으로 부활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복잡한 전략들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지닌 가수로서 본래 역량을 평가받으려 애쓰고 있다. 2009년 7집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유를 TV예능프로그램과의 스킨십 부족으로 파악, 그중에서도 자기 노래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오페라스타2’를 선택했다. 괜찮은 판단이다. 적어도 같은 입장에 놓였던 김소연에겐 먹혔던 전략이다.
그런데 지금, 김소연과 박지윤의 행보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김소연은 자신이 ‘못 나가던’ 시절에 대해 딱히 애기하질 않고 있다. 그러나 박지윤은 2009년 7집 홍보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JYP, 성인식, 섹시 콘셉트, 루머 등을 되풀이 얘기하며 6~7년간 공백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그만큼 ‘맺힌 게’ 많아서인 듯하긴 한데, 엄밀히 말해 김소연 식 부활전략으론 별로 좋지 않은 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가면 영원히 대중은 ‘지금의 박지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계속 과거만 떠올리며 비교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악의 자기홍보 전략에 속한다. 거기다 그나마 설명의 포인트도 잘못돼있다. 시한부 전략의 한계가 문제였던 것이지, 섹시 콘셉트니 루머니 하는 문제가 박지윤 앞날을 가로막았던 건 아니다. 문제는 연예인으로서 자기 본질 그 자체에 있었다는 얘기다.
기왕 성공사례가 존재하는 좋은 방향을 선택해놓고, 별 의미 없는 과거사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지윤의 진정한 부활을 고대하는 마음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과거의 문제를 명확히 파악했다면, 그 다음부턴 그저 앞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게 그 어느 업계에서건 가장 현명한 자세다. 건투를 빈다.
대중문화평론가 [email protected]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2000년대 이후의 김소연과 2003년 이후의 박지윤이었다. 김소연은 2003년 이후 점점 드라마 출연이 줄다 2005년 MBC드라마 ‘가을소나기’ 이후론 내리 3년을 쉬었다. 다시 드라마로 복귀한 SBS ‘식객’에서도 작은 역할만 맡게 됐다. 박지윤의 경우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2003년 이후 내리 6년을 쉬다 돌아왔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2003년, 아직 박지윤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던 시점임에도 JYP 측이 가차 없이 계약을 종료시킨 건 바로 이 같은 속성을 간파한 탓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박지윤을 마지막으로 팔 수 있었던 시점이 바로 2000년 ‘성인식’ 당시였고, JYP 측은 그 시점을 전에 없던 섹시 콘셉트로 더욱 부풀려 터뜨림으로써 소위 마지막 축포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 박지윤에게 5집 ‘맨’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준 뒤, 이미 성인여성이 돼버린 박지윤에겐 추가적 가능성이 없으리라 판단, 6집의 성패와는 관련 없이 계약을 종료시켜버린 것일 수 있다. 한 마디로, 박지윤이 ‘팔리게 된 이유’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처럼 단호한 계약종료를 취할 수 있었으리란 것.
이제 다시 박지윤의 ‘현실’로 돌아가 보자. 흥미롭게도 박지윤이 ‘오페라스타2’ 등을 통해 서서히 대중적 관심을 다시 모아가고 있는 현 시점은, 김소연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시점과도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김소연은 2009년 KBS2 ‘아이리스’ 조역으로 다시 주목받은 뒤 2010년 SBS ‘검사 프린세스’와 ‘아테나: 전쟁의 여신’을 거쳐 곧 개봉될 영화 ‘가비’에선 1997년작 ‘체인지’ 이후 무려 15년 만에 영화주연급으로 돌아오게 됐다.
김소연의 부활에는 물론 여러 호재가 작용하긴 했겠지만, 사실상 보다 원론적인 부분에서 원인을 찾을 필요도 있다. 콘텐츠가 없던 ‘쉬는 기간’ 동안 김소연은 연기자로서 실제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김소연은 그동안 가만히만 있었던 게 아니다. 대중 노출도는 크게 떨어지지만 진지한 작업들을 해왔다. 한 마디로 ‘백 투 더 베이직’이란 명제 하에서 부활의 기미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더 재밌는 점은, 박지윤도 현재 비슷한 방식으로 부활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복잡한 전략들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지닌 가수로서 본래 역량을 평가받으려 애쓰고 있다. 2009년 7집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유를 TV예능프로그램과의 스킨십 부족으로 파악, 그중에서도 자기 노래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오페라스타2’를 선택했다. 괜찮은 판단이다. 적어도 같은 입장에 놓였던 김소연에겐 먹혔던 전략이다.
그런데 지금, 김소연과 박지윤의 행보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김소연은 자신이 ‘못 나가던’ 시절에 대해 딱히 애기하질 않고 있다. 그러나 박지윤은 2009년 7집 홍보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JYP, 성인식, 섹시 콘셉트, 루머 등을 되풀이 얘기하며 6~7년간 공백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그만큼 ‘맺힌 게’ 많아서인 듯하긴 한데, 엄밀히 말해 김소연 식 부활전략으론 별로 좋지 않은 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가면 영원히 대중은 ‘지금의 박지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계속 과거만 떠올리며 비교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악의 자기홍보 전략에 속한다. 거기다 그나마 설명의 포인트도 잘못돼있다. 시한부 전략의 한계가 문제였던 것이지, 섹시 콘셉트니 루머니 하는 문제가 박지윤 앞날을 가로막았던 건 아니다. 문제는 연예인으로서 자기 본질 그 자체에 있었다는 얘기다.
기왕 성공사례가 존재하는 좋은 방향을 선택해놓고, 별 의미 없는 과거사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지윤의 진정한 부활을 고대하는 마음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과거의 문제를 명확히 파악했다면, 그 다음부턴 그저 앞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게 그 어느 업계에서건 가장 현명한 자세다. 건투를 빈다.
대중문화평론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