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심화 빙의]‘동반자’ 가수 지다연에게 무슨일…

기사등록 2012/01/18 08:01:00

최종수정 2016/12/28 00:06:17

【서울=뉴시스】묘심화 스님의 ‘빙의’ <5>

 ‘외로울 땐 언제나 내 손을 잡아주고/ 괴로울 땐 언제나 내 마음 달래준 사람/ 당신은 오직 내 인생의 동반자/ 사랑의 길을 함께 가야 할 사람/ 바람 부는 날이면 바람을 막아주는/ 내 인생의 동반자 당신은 나의 동반자/ 당신은 오직 내 인생의 동반자/ 사랑의 길을 함께 가야 할 사람.’

 대중가요에 아무리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79년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동반자’라는 노래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 순위에 오르는 노래이다. 나 역시 이 노래를 매우 좋아해서 자주 즐겨 부르곤 했다.

 ‘동반자’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고 30년 가까이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지다연이라는 가수의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는 우리나라에도 고고 열풍이 불어서 혜은이, 이은하 같은 톱가수들이 댄스곡들을 히트시키며 주가를 올리던 때였다. 그런 중에 감미롭고 호소력 짙은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단비처럼 촉촉하게 스며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녀는 ‘당신의 미소’, ‘그대 있어야 할 자리에’ 등의 노래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나는 가슴속에 잔잔히 파고드는 노래와 허스키하면서도 어딘지 청아함이 감도는 목소리를 사랑해서 젊은 날에는 그녀의 활동을 줄곧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운명으로 불제자의 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대중가요와 함께 그녀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이 있다. 소식이 없다는 것은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니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잘 곱씹어보면 ‘관심을 가장한 무관심’이니 이처럼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아마도 지다연씨의 사례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1993년 그녀는 돌연 가요계에서 사라졌다. 하루에도 걷잡을 수 없이 엄청난 뉴스가 펑펑 터져 나오는 나라이다 보니 은퇴한 가수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급속히 냉각되어갔다. 은퇴 사유가 무엇이며 은퇴 이후 그녀의 생활에 대해 세상은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한때 팬이었던 사람들도 어쩌다 그녀를 떠올리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예전에 ‘동반자’ 불렀던 가수 있잖아. 지다연이라고.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낼까? 은퇴한 지 한참 됐는데….” “뭐, 별 소식 없는 걸 보면 잘 지내고 있는 거겠지.”

 나 또한 이 같은 막연한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은퇴를 했으니 이제는 그녀의 노래처럼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평범한 일상 속의 행복을 맘껏 누리며 살고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녀가 불운한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는 사실도, 그 이후로 끔찍한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죽음을 동반자로 여기고 있으리라는 것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한 여인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혼자서 걷는 것조차 힘이 드는지 조카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핏기가 보이지 않는 파리한 얼굴, 숨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생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대신 음기만이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의 가련한 인생이 나를 찾아왔는가. 그녀는 잠깐 나를 쳐다보다가 금세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어딘지 낯익은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조용히 물었다. “이상하네. 아는 얼굴인가? 낯이 익은데….”
그러자 그녀가 머리를 수그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동반자’라는 노래…아세요? 제가 그 노래를 불렀어요.”

 나는 믿어지지 않아 몇 번이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럼 지다연씨?” 그녀는 대답 대신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변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이 비록 20여 년 전의 모습이라고 해도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던 눈부신 자태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인생의 절반을 지옥에서 보내다 온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다. 차라리 지옥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라면 희망의 빛이라도 보일 터인데, 그녀는 아직도 끝 모를 지옥을 헤매는 사람처럼 절망만 가득 끌어안은 채 귀신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말로 그녀의 지친 영혼을 보듬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수많은 빙의 환자들을 치료해온 나로서도 쉽게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스님….” 그녀의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먼저 어두운 공기를 깨뜨렸다. “제발…저를…구해주세요.”
힘겨운 듯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어쩌면 가장 솔직한 말이란 이처럼 단순하고 짧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무언가 뜨뜻한 것이 치밀어 올라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한참 격한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야 울음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굳은 마음을 먹은 듯 입을 열었다. “스님을 내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과도를 준비해두고 왔어요. 더 이상은 삶을 버텨낼 자신도, 또 이런 채로 살아가야 할 이유도 모르겠어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가득한 음기만 보아도 지금까지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지내왔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너무 오랜 세월을 짓눌려온 탓에 그녀 자신이 마치 거대한 음기 덩어리가 된 듯이 보였다.

 “그때부터였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 그녀는 마지막 기운을 짜내듯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들여가며 그간의 고통스런 기억들을 토해냈다.

 그녀에게 1980년대는 꿈 같은 시기였다. 1979년에 ‘동반자’가 대히트를 하면서 톱가수의 반열에 올랐고, 이후에 발표한 곡들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덕에 그녀는 가수로서의 생명력을 인정받아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그녀 혼자만의 공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었던 어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인생을 받쳐주던 단 하나의 기둥이었다. 사람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두 기둥을 버팀목으로 성장하여 때가 되면 스스로 자립의 길을 찾아 나서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올망졸망한 자식들을 세상에 남겨놓고 일찍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빈자리를 어머니가 대신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집 안에서는 여느 어머니들보다 더한 사랑으로 자식들을 거두고 품어주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보다 몇 배는 더 애쓰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만으로 아버지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입에 풀칠할 쌀 한 톨, 밤을 지새울 방 한 칸이 아쉬운 형편이었다.

 그녀는 철들기 전부터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는 어머니를 지켜봐야 했다. 방문을 열면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무거운 어머니의 어깨를 비추고 들어와 거리로 나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그녀의 눈에 짙은 그림자로 남았다. 어머니가 거리에 나가서 무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다 합해도 몇 푼 되지 않는 물건들을 팔아보겠다고 보따리를 이고 나서기도 했고, 골목길에 자그마한 좌판을 벌이기도 했다.

 얼마 되지 않는 벌이로 여러 남매를 먹여 살리다 보니 늘 눈앞의 끼니를 때우는 데 급급한 생활이었지만, 그녀에게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세상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울타리였다.

 어머니는 여러 남매 중에서도 막내였던 그녀를 유난히 사랑하고 아꼈다.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채 험난한 세상 속에 남겨진 어린 딸이 안쓰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그녀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어 했다. 그녀가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어머니의 뒷받침과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었고, 어머니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자신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영광의 이면에 숨은 고독과 힘겨운 날들도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이겨냈다. 그녀는 한 번도 어머니 없는 생활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늘 자신과 함께할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라는 거대한 대지 위에 그녀가 서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믿기지 않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하늘이고 땅이었던 어머니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연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은 영원한 이별을 맞이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빨리, 이런 형태로 자신의 곁을 떠나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예기치 못한 어머니의 죽음과 끔찍한 사고사에 대한 충격은 일상을 마비시켰다. 밥을 먹고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등의 일상적인 행위가 불가능해졌다. 지금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당연히 해왔던 일들이었는데, 모두 낯설게만 느껴졌다. <계속> 물처럼 출판사 02-379-8850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종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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