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이슈진단 '세종시 시대가 열린다'-"비효율적 수도분할" 끝나지 않은 논란

기사등록 2012/01/16 11:07:29

최종수정 2016/12/28 00:05:37

【서울=뉴시스】이득수 기자 = 인구가 10만3469명이 안 돼 지난 연말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국회의원 단독선거구’ 불가 논란을 빚었던 세종시 인구는 올 연말이면 13만5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는 오는 7월1일 독립된 광역자치단체로 출범한다. 9월 국무총리실 이전으로 공무원 1만3000명이 유입되고, 연말까지 중앙기관 1만여 명이 더 들어오면 인구가 현재 8만4000여 명에서 5만 명 가까이 늘어 12만2000여 명이 될 전망이다. 중앙부처와 16개 국책연구기관 등이 모두 이전하고, 아파트 2만 가구 입주가 완료되는 2015년이면 인구 20만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충남 내륙지방에 세계에 내놓을 최첨단 행정중심 도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세종시는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대표하는 사례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행정기능과 인구 자원을 지방으로 이전해 지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지방민의 바람이 반영된 작품이 세종시인 것이다. 지방에 세계적인 행정중심 명품도시를 만들어 행정기관을 배치함으로써 포화상태인 수도권의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지방 발전을 유도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행정기관을 분산 배치함으로써 발생되는 비효율을 내세워 반대하는 목소리는 아직도 완전히 가지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의 주요 부처를 내려 보내지 않고서도 연구기관이나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지방발전에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세종시 건설 추진 과정과 비판 의견 등을 정리한다.

 ◇신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 제정=세종시는 2002년 9월30일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해 청와대와 중앙부처를 옮기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됐으니 입주까지 꼭 10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문제는 세종시가 충청권 표를 얻기 위한 선거 공약으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후 ‘행정수도 건설’ 공약으로 “재미를 좀 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심도 있는 연구와 국민적 합의 없이 정치적 목적에서 진행됐음을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격렬한 논란 끝에 2003년 12월29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총면적 2300만 평, 인구 50만 명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해 중앙부처를 모두 옮기고, 입법부와 사법부는 국회 승인을 받아 이전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강력히 반대해오던 한나라당도 이듬해인 2004년 4월 총선에서 20%에 달하는 충청권 표를 의식해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2004년 7월 ‘수도이전 위헌 헌법소원 대리인단’이 “신행정수도 건설은 위헌”이라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그 해 10월21일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 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관습 헌법론’을 펼치며 위헌 판정을 내렸다.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수도 이전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대신 수도이전이 아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로 방항을 틀어 계속 추진했다. 국회는 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거쳐 2005년 3월2일 충남 연기 공주 지역에 12부4처2청을 이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수도분할은 수도 이전보다 더 나쁘다'고 반대하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2007년 대선기간 중에는 ‘원안보다 더 나은 도시를 건설하겠다’며 세종시 건설에 찬성했다.

 ◇ 정치적 갈등 조성=국론 분열을 불러온 세종시 건설과 관련된 논란은 정치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명박 정부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입각한 이후인 2009년 후반부터 세종시 건설 수정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2010년 들어서는 국회에서 친이계 의원들이 중심이 돼 세종시법 수정안 제출을 본격 추진했다. 박근혜 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세종시 수정안 논란에서 “정치에선 신의를 지켜야 한다”며 ‘원안 고수’ 입장을 천명했다. 

 정부 차원에서 박 위원장 설득에 나서기도 했으나 입장을 바꾸지는 못했다. 자유선진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의 결사반대에 부딪힌 데다 여당은 6·2지방선거에서 패해 추진동력마저 상실했다. 세종시 수정관련 4개 법안은 상임위인 국토해양위에서 부결됐으나, “역사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친이계의 주도로 본회의에 재부의 됐다. 국회법 87조는 상임위에서 부결된 법안이라도 7일 이내에 의원 30인 이상이 요구하면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 있도록 했다.

 본회의 표결은 여야의 대결이기 이전에 이명박·박근혜의 대결이었다. ‘효율성’ 대(對) ‘원칙과 ‘신뢰’의 대결이었다. 박 위원장은 표결에 앞서 찬반토론에 직접 나서서 “미래를 위해선 신뢰가 지켜져야 한다”고 수정안 반대 이유를 밝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이어 3년 만에 벌어진 ‘박근혜 : 이명박’ 대결에서는 박 비대위원장이 승리했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직후부터 친박계로 당의 주도권이 급속히 이동했다. 중도성향 의원들은 물론 친이계 외곽에 있던 의원들까지 친박 진영으로 건너가고, 친이계 핵심 의원들도 대통령과 거리를 두며 간간히 청와대를 공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정운찬 총리는 수정안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한 정치 평론가는 “세종시 수정안 표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참패한 이래 이 대통령은 국회에서 자신감을 잃었고, 모든 정치 행위에서의 레임덕 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세종시 문제가 정권을 뿌리부터 흔들었다”고 지적했다.

 ◇‘수도분할’ 논란 계속=세종시 논란의 핵심은 ‘수도분할에 따른 비효율’ 문제이다. 세종시에 행정부처가 이전돼 수도의 행정기능이 나뉘어 있으면 많은 비효율이 빚어진다는 주장이다.

 2010년 1월 한나라당 국회의원 18명은 독일을 방문해 수도분할로 인한 행정 비효율과 문제들을 조사했다. 여기서 의원들은 “베를린과 본으로 수도가 분할돼 있음으로 해서 공무원들의 교통비 지출과 시간낭비, 공무원들의 사기저하, 업무비효율 등의 문제를 확인했다”며 “세종시는 행정부처보다는 연구소 대학 기업 등을 유치하는 게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며 원안을 수정할 것을 주장했다.

 정운찬 당시 국무총리는 세종시 관련 2010년 1월 민관합동위원회에서 “인위적으로 수도를 사실상 분할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며 세종시 법안 수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했었다. 정 전 총리는 “세종시 비효율의 가장 큰 문제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멀리 떼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정부 부처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것은 유사시에 대응능력을 떨어뜨릴 수 우려가 있고,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안보 전문가들은 “모든 부처가 15분 이내에 각료회의가 소집될 정도의 거리에 있어야 정상”이라고 주장했다. 첨단 영상회의 시설을 갖추고, 업무 분담을 한다 해도 그 차이는 작지 않다는 것이다.

 2009년 내한한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독일은 분단 당시엔 본에 수도를 뒀으나 통일 후 베를린으로 옮겨 현재 2개 도시에 행정부처가 분산돼 불편을 겪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독일 외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입법 사법 행정부가 수도 3곳에 분할돼 있고, 브라질은 1960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겼다. 호주도 1928년 멜버른에서 캔버라도 수도를 이전했다. 이들 나라에서도 수도분할과 이전에 따라 여러 가지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상징인 세종시가 본래의 건설 목적이 달성되고 급속히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간 제기됐던 문제들을 해소하는 방안들이 속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email protected]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61호(1월23~30일자 설 합본)에 실린 것입니다.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뉴시스아이즈]이슈진단 '세종시 시대가 열린다'-"비효율적 수도분할" 끝나지 않은 논란

기사등록 2012/01/16 11:07:29 최초수정 2016/12/28 00:05:37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