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이체 '죽은 눈을 위한 송가'

기사등록 2012/01/07 06:01:00

최종수정 2016/12/28 00:03:17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죽은 눈을 위한 송가 (이이체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어느 길에서든 간단하게 헤매면서, 누구도 시린/눈을 죽일 수 없었다//나무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숲/칼의 뼈//흉터 위에 소복하게 내려앉는 색을 보듬고//이형(異形)의 인생이/마르지 않는 강가에 이르러 눈을 씻는다//피와 눈물//피의 눈물.” (‘죽은 눈을 위한 송가’ 중)

 스무살의 나이에 등단, 깊이 있고 감각 넘치는 문장으로 주목 받은 시인 이이체(24)씨가 첫 번째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를 펴냈다.

 2008년 계간 ‘현대시’에 ‘나무 라디오’ 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씨는 생생한 소년의 감성과 함께 인간 실존의 덧없음에 대한 통찰도 지니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번 시집에 담긴 총 83편의 시들은 오랜 상처의 기억에 따뜻한 숨을 불어넣는 웅숭깊음이 느껴진다. 

 출향(出鄕)과 이별을 모티프로 한 시편들이 다수 보인다. 영혼이 안착했던 공간 또는 사람을 떠나면서 느꼈던 분리의 고통이 오롯하게 담겼다.

 “외투처럼,/가지 않아도 가버린 것 같다/멀어진 것들의 목록/외투가 가져간 내 몸을 떠올렸다/침묵하는 단수들을 떠올렸으며/단위가 되고 싶었다 … 드디어 홀몸으로 단위가 될 수 있는 건가/중얼거리는 입술 밑으로/병신처럼 침을 주룩주룩 흘렸다.” (‘실외투증후군’ 중)

 문학평론가 허윤진(32)씨는 “외투로서의 사랑이 사라졌을 때, 빈 허물처럼 느껴지는 자신을 ‘병신’으로 비유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 결핍과 모순에 시달리는 자신의 실체가 눈앞에 생생하게 노출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번 시집에 이별의 정서를 담았으나 사랑의 종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관계의 근원을 바라본다. 슬픔에 천착하지 않고 삶과 사랑의 허구를 들춘다.

 이씨의 시는 유폐의 정서를 강하게 드러낸다. “나는 상처받은 역할에 충실했으므로 책들을 옷 삼아 은닉되었다”(‘골방 연극’)거나 “세상이 날 갖지 않겠다고 결심한다/흐느껴 우는 귀머거리와 섹스하고 싶었다”(‘나쁜 피’)와 같은 태도다.

 그럼에도 이씨의 이러한 고통은 자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없애러 간 곳에서 얻어서 돌아”오고 “언제나 손을 잡고 있게 될”것이기에 “세계와 거의 비슷해지는 중”(‘연인’ 중)인 것이다.

 허씨는 “출향하고 이별한 이씨가 실향과 실연의 상처 안에서 영원히 사랑을 꿈꾼다”며 “상처받고 깨져버린 우리 존재를 시로써 드러내며 또한 어루만지고 있다”고 읽었다.

 이씨는 “삶은 마약이다. 계속 살면 피폐해진다. 사랑은 이별한다고 잊거나 잊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
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덮어두고 떠나는 것이다. 나는 그 안에 중독돼 독신의 처방을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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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이체 '죽은 눈을 위한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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